OTT가 말 그대로 Over The Top인 시대이다. OTT가 무엇인지 모를 이들을 위해 짤막하게나마 용어의 유래에 대해 소개한다면 Top은 TV에 연결하는 셋톱박스를 지칭한다. 셋톱박스는 각종 방송을 수신하거나 인터넷 연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기다. 단점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 시청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반대로 OTT는 셋톱박스에 얽매여 있지 않기에 가능하다. 그렇기에 셋톱박스를 넘어선다 – 능가한다는 의미가 붙게 되었다.
그 편리성 때문일까. OTT는 미디어 시청 환경의 판도를 뒤집었다. 빈지 뷰잉(Binge viewing: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TV프로그램 전편을 몰아 시청하는 경향)의 일상화, 알고리즘 기반 콘텐츠 큐레이션, 전 회차 동시 시청 등 우리는 더 이상 매주, 매일, 특정 시간대에 방송되는 콘텐츠를 기다리지 않는다. 전통 방송 시장은 퇴색하게 되었고 OTT는 방송이 아닌 새로운 콘텐츠 시장을 열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출범한 지 10년 만에 세계 방송시장을 주름 잡았다. 미국 4차 산업혁명 전략은 빅테크 기업인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와 넷플릭스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빅테크 기업이 세계 콘텐츠 시장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자사 OTT를 활용해 세계 서비스 산업의 혁신을 도모하며 그 규모는 2021년 60조 원가량에서 2030년에는 약 330조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세계 OTT 시장은 평균 20%씩 성장했으며, 앞으로도 그 성장세가 둔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OTT 시장 매출액은 약 1조 원가량이며(2020년 기준), OTT 가입자 수는 약 1,135만 명이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OTT에 가입했으며, 최다 가입자 수를 보유한 넷플릭스의 경우 최근 <오징어 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의 흥행에 힘입어 2022년 1월 기준 528만 국내 가입자를 보유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집에서의 시간은 자연스레 OTT의 호재를 불렀다. 2021년 발표된 문체부 <문화 여가 분야 실태조사>에 따르면 팬데믹으로 인해 여가활동의 제약은 문화, 스포츠, 관광에서 휴식 활동으로 옮겨갔다. 50대 이상을 제외하고 전 연령층에서 OTT를 이용 관람 경험 비율이 증가했다. 특히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여가시간의 비중이 전년 대비 감소했으나 코로나 이전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일의 경우 50% 정도로 여가 시간의 절반을, 휴일 역시 약 40% 정도로 여가 시간의 많은 부분을 스마트 기기를 통해 즐기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처럼 OTT는 팬데믹 특수와 세계적인 인기를 거둔 K-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 이용자들을 사로잡았다.
로컬라이즈된 콘텐츠가 글로벌 성공을 거두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처음 정착했을 때 관계자들은 기자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들었다. “한국에서 넷플릭스가 기대했던 것보다 화제성이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실제로 2017년 국내 넷플릭스 구독자는 6~8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밌는 콘텐츠가 현저히 적었기 때문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 <마르코 폴로> 정도만 화제를 끌었을 뿐이다. 소위 미드 골수팬이 아닌 이상 일반 대중 입장에서는 굳이 넷플릭스를 구독할 이유가 없었다. 국내 구독자 500만 명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로컬라이즈된 콘텐츠가 필요했다.
넷플릭스는 곧바로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렸다. 2017년 제작비 582억 원을 투자해 만든 봉준호의 <옥자>는 5배 이상의 가입자를 끌어왔다. 다음 주자로 나선 조선 좀비물 <킹덤>은 2019년 200만 명 구독자 수를 달성했다. 이는 단순 국내 이용자만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킹덤은 전 세계 27개 언어로 번역돼 극 중 등장한 갓, 한복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글로벌 콘텐츠로서 K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였다.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당시 넷플릭스의 미래 콘텐츠 전략으로 “좋은 스토리를 철저히 현지화해 콘텐트로 만드는 것에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밝히며 <킹덤>의 성공 전략에는 “한국 이외의 것을 넣으려 하지 않음, 의도적으로 조미료를 더하지 않았음”을 언급했다. 이처럼 넷플릭스가 세계 각 콘텐츠 시장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가장 지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는, 진부하지만 결국 로컬의 고유성에 대한 공략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점은 2021년 <오징어 게임>이 찍었다. 전 세계 83개국에서 최소 한차례 이상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를 차지했고 전 세계 시청자 수만 1억 4천여만 명에 달한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경쟁사들의 등장으로 세계 시장에서 주춤하던 넷플릭스를 단박에 끌어올렸으며 넷플릭스 주가를 사상 최고치로 이끌었다. 그 결과 다른 경쟁 업체에도 K-콘텐츠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어서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의 연속적인 흥행 홈런은 K-POP 중심으로만 조명되던 K-콘텐츠의 성공을 드라마와 영화 쪽으로 연결 지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오스카 수상 영향을 단연 무시할 수 없지만, 이는 봉준호라는 한 대가의 재능과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조직적인 아카데미 캠페인을 성공시킨 CJENM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반면, 넷플릭스발 한국 콘텐츠의 연속적인 성공은 넷플릭스의 콘텐츠 로컬라이즈 전략과 K-콘텐츠가 맞물린 상징적인 시스템을 내포한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에서 제조업 외에도 문화 콘텐츠 그 자체가 국가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정도로 크게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K-콘텐츠는 가전제품과 화장품을 제치고 7위의 수출 품목이 되었으며 그 규모는 108억 달러로, 비약적인 성공이 예측된다고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실제로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09~2019년 창의·예술 서비스 종사자 수는 27% 증가한 반면, 제조업 종사자 수는 같은 기간 20% 증가에 그쳤다. 이는 전 세계적 유통망을 지닌 넷플릭스와 호혜적 관계를 구축해 가능할 수 있었던 결과다.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메가 히트가 3주 만에 넷플릭스 시가총액을 28조 원이나 증가시켰다면,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제작비 지원은 국내 GDP 성장 약 5.6조 원과 정규직 1만 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K-콘텐츠에 대한 끊이지 않는 글로벌 수요
그렇다면 왜 창작자들은 방송국보다 넷플릭스에 더 몰려드는 걸까? 일단 넷플릭스의 올해 콘텐츠 제작비 규모를 보면 답이 나온다.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 강동한 VP(Vice President)는 “2021년 5,500억 원을 투자해 15편을 만들었고, 2022년 올해에는 25편을 만든다”라고 밝혔다. 이는 1조 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바로 이 압도적인 자본의 크기가 창작자를 끌어당긴다. 과거 높은 제작비로 큰 화제를 모았던 2016년 <태양의 후예>의 편당 제작비는 7억 5000만원이었다. <오징어 게임>은 편당 20억 원이 넘는다.
최근 독립 선언을 한 김태호 PD의 신작 예능 <먹보와 털보>에서는 한 회당 6억에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갔다. 여기에 100% 사전 제작 시스템을 통해 콘텐츠의 서사적 완결성을 온전히 보전 받을 수 있다는 점, 창작 과정에서 내용과 형식이 지상파에 비해 자유롭다는 점, 전 세계 시청자 층을 확보했다는 점 등은 창작자로서는 끌릴 수밖에 없는 매력이다.
실제로 올해 1월에 열린 비대면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콘텐츠 총괄 VP는 코로나 이후의 콘텐츠 키워드로 “TV와 영화업계의 크로스오버”를 꼽으며, “규격이나 장르, 포맷에 구애받지 않고 창작자가 원하는 이야기 중심의 콘텐츠를 지향하겠다”며 창작자의 자유와 자율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K-콘텐츠는 넷플릭스를 발판 삼아 어떻게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DBR의 기사, “세계적 현상이 된 K-콘텐츠의 힘 한국적·심미적·초국가적 스토리텔링이 먹혔다”는 K-콘텐츠의 경쟁력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① 세계 시장을 제패하기 위해 넷플릭스가 아시아 시장의 핵심 거점지로서 한국 콘텐츠를 호명하고 이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는 사실.
② 기존 한류의 ‘사랑’ 이야기라는 모노톤에서 벗어난 다채로움(소재의 확장-좀비물, 서바이벌물, 판타지 등).
③ 글로벌적 공감대가 있는 소재 공략: 신자유주의, 빈익빈 부익부.
④ 로컬리티의 적절한 가미 : 한국만의 풍경, 전통문화가 주는 신선함.
실제로 최근 화제가 된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외국 시청자는 한국 고등학교의 건축과 교복 문화, 학교폭력 등 이런 요소에 주목하며 로맨스 중심의 미국 하이틴 물과는 다른 모습에 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피상적 로컬리티와 혐오로 뒤범벅된 K-콘텐츠
그러나 로컬리티의 적절한 가미가 과연 경쟁력으로만 기능했는지는 재고가 필요하다. 특히 글로벌 플랫폼이 어떻게 로컬리티를 활용해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지, 전 세계의 자본화된 수많은 로컬리티를 그저 피상적으로만 전시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위근우는 경향신문 칼럼 “<먹보와 털보>, 노홍철의 넷플릭스 타령이 드러내는 글로벌 콘텐츠의 진실”에서 <먹보와 털보> 2회 차에 노홍철은 무려 34번이나 넷플릭스(에 대한 찬양)를 언급한다는 점을 기술하며 “글로벌 자본에 로컬의 고유성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게 아니라 상품이 될 가능성을 통해서만, 아니 자본의 투입을 통해 예쁘고 무난한 상품이 되어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그는 “본질을 가린 글로컬(Glocal) 따위의 신조어가 그러하듯,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거나, K-콘텐츠만의 고유성과 깊이가 세계를 휘어잡는다는 식의 언술은 기만이거나 소설”이라며 넷플릭스 자본에만 종속된 채 여행 프로그램이 지닌 현지에 대한 발견이나 깊이 있는 전달이 이뤄지지 못한 점을 비판한다.
로컬리티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서 그치는 것 외에도, 세계적 성공을 거둔 K-콘텐츠에는 왜 혐오가 가득한지 또한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고등학생이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자극적으로 연출했으며, 기초생활수급자를 기생수라 부르며 멸시하는 문제를 가시화했다. 그러나 어떤 서사적 파고듦이 없는 피상성, 학교 폭력을 액션 장면처럼 디테일하게 연출해 하나의 구경거리이자 자극성으로 치환하는 등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루고 폭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콘텐츠적 재미(자극성까지 포함)를 높이는 데에만 사용되었다는 함의를 지우기 어렵다. 다음 장면으로, 다음 회차로 시청자를 붙들어 두기 위한 도구로서 혐오가 사용되었을 뿐 그 어떤 자정이나 재현의 윤리를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넷플릭스에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가 승승장구하면서 (콘텐츠 속 재현의 윤리) 논의가 후퇴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넷플릭스에서 (폭력적인) 작품들이 수출 상품으로서 큰 성과를 거두면서 작품의 도덕성을 이야기하는 윤리적 담론들이 국익 이데올로기에 가려져 무색해지거나, 무의미한 것처럼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문화적 인식이 나름대로 선진적인 국가다. 작품의 흥행만 볼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품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 잘 나간다는 사실이 윤리적 지적에 면피가 될 수는 없다”고 언급하며 재현의 비윤리성이 어떻게 넷플릭스를 통해 허가를 받게 되는지 지적한다. 이는 미국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코미디쇼 <더 클로저>의 비윤리성(성소수자 혐오)에 분노해, 내부 직원 수 백 명이 가상 파업(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상 파업행위)을 한 것과 사뭇 상반된다.
실제로 넷플릭스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많다. 종종 다양성이 보장된 콘텐츠에 으레 따라붙는 댓글로 “This is more diverse than Netflix(이 콘텐츠는 넷플릭스보다 더 다양한데?)”가 밈으로 있을 정도로, 넷플릭스는 소수자, 다양성을 다루는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왔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그레이스 앤 프랭키>, <포즈>, <퀴어 아이> 등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형 넷플릭스 콘텐츠에는 혐오 논란이 끊이지 않을까? 혹은 왜 더 정치적 올바름(PC)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그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으나 최근 서울신문이 인용한 러시아 관영방송 RT의 보도 “아니메와 망가가 서양을 정복한 이유”에 따르면, 재현의 윤리를 엄격히 요구하는 서구에 비해 한국 콘텐츠는 문화상, 분위기상 더 자유롭기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요소들이 들어간 콘텐츠에 서구 시청자들도 일종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를 느껴 찾게 된다는 분석이 있다.
정리하자면 본인들이 차마 만들지 못하는 콘텐츠를 한국에 외주를 줘 맡기고, 이를 대리 만족하며 소비한다는 분석인데, 관련 매체의 신뢰성을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우리가 유의미하게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긴 하다. 특히 해외 콘텐츠에서 큰 인기를 끈 K-콘텐츠에 디스토피아, 서바이벌(계급·계층적 싸움), 여성 혐오적 요소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계 콘텐츠 시장의 디스토피아, 혐오의 외주화가 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세계에서 국내 콘텐츠까지 진입해 시장을 독주한 넷플릭스
그 외에도 넷플릭스가 국내 크리에이터 생태계에 가장 크게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바로, IP(지식재산권)의 독점과 승자 독식 체제의 형성이다. 넷플릭스와 창작자가 맺는 세부적인 계약 조건은 현재 영업상 비밀로 밝혀지진 않은 상태이지만 <오징어 게임> 사례만 두고 이야기하자면, <오징어 게임>이 흥행할 당시 흥행에 따른 수익은 넷플릭스가 모두 가져가며, 향후 IP 비즈니스도 넷플릭스가 진행하게 된다는 조건이 큰 논란을 불러왔다. 창작자는 콘텐츠가 만들어 낸 파급 효과와 부가 수입을 전혀 얻을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코로나19의 여파와 OTT 춘추전국 시대의 개막으로 우리는 더 이상 영화관을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익 창구가 급속도로 줄어든 제작사에게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OTT는 구세주와도 다름이 없다. 그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제작사와 크리에이터는 콘텐츠의 저작권을 팔아넘겨서라도 제작비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IP 독점 논란과 관련해 넷플릭스는 2021년 국정감사 때 “크리에이터들과 상생 방안을 고민하고 있으며, 넷플릭스에 저작권 독점만 하는 계약이 있는 건 아니”라고 응답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그 방안은 무엇인지, 과연 사기업인 넷플릭스가 이를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흥행이 보증된 창작자와 일하기를 선호한다. 이는 자연스레 신인 크리에이터가 성장하기 힘든 구조이다. 2020년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50편 중 신인 감독의 영화가 17편(34%)인 상황 속에서 국내 신인 크리에이터의 육성과 성공은 요원해 보일 뿐이다. 넷플릭스만이 국내 크리에이터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면, 우리는 결국 미래의 원동력을 잃어버리며 관점과 상상력의 다양성 실종은 말할 것도 없다.
국내 OTT, 세계를 향한 발판
넷플릭스의 독주 체제와 비교해, 국내 OTT는 이제 걸음마 단계라 평가될 수 있다. 토종 OTT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조차 가입자 수가 넷플릭스에 비해 현저히 적다. 2020년 기준으로 넷플릭스는 384만 명, 웨이브 210만 명, 티빙 178만 명, 시즌 130만 명, 왓챠 플레이는 108만 명이다. 또한 넷플릭스가 규모의 자금력으로 올려버린 콘텐츠 제작비 수준도 새롭게 감당해야 할 현실이다.
OTT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양질의 콘텐츠가 필요하단 사실은 진리에 가깝다. 넷플릭스는 앞서 언급했듯 엄청난 규모의 자금과 투자로 우수한 크리에이터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 앞에서 자금이 밀릴 수밖에 없는 국내 OTT는 이에 필적할 만한 대작을 만들기가 어려운 구조다.
이에 대응해 국내 OTT 또한 기존보다 대폭 늘어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웨이브는 2025년까지 총 1조 원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밝혔고 티빙 역시 2025년까지 연평균 1조 원을 콘텐츠에 투자, 총 5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왓챠는 2020년 360억 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를 마무리한 뒤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특히 CJENM은 티빙에만 2023년까지 4000억을 투자해 약 100여 편의 오리지널을 제작하고 한국을 넘어 글로벌 대표 플랫폼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0년 티빙을 독립 법인으로 출범한 뒤, CJENM은 티빙을 미래 성장엔진으로 삼아 해외 시장을 공략할 계획까지 준비하고 있다.
국내 OTT가 살아남으려면 사업자 간 협력을 통해 가입자 확대 및 제휴와 협력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 가입자를 보유한 해외 OTT에 대응해 살아남으려면, 적어도 해외 콘텐츠를 유통할 때는 개별 플랫폼이 아닌, 연합 플랫폼일 때 접근성이 높으며 경쟁력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티빙은 적극적으로 다양한 기업과 합종연횡을 하고 있다. 네이버와 JTBC를 2, 3대 주주로, 글로벌 미디어 기업 라인과의 파트너십으로 글로벌 진출의 발판을 다져놨다. 해외 기업과는 영화 <라라랜드>, <콜 미 바이 유얼 네임>의 투자·제작·유통·배급사로도 유명한 미국 엔데버 콘텐츠 인수, 바이아컴CBS와의 동맹으로 본격적인 도약을 준비 중이다.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의 세부 미래 전략은 어떠할까? ▲프랜차이즈 IP 본격화, ▲원천 IP를 활용한 콘텐츠 LTV(Life Time Value) 밸류 확장, ▲티빙 표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등 장르 다변화와 외연 확대, ▲극장·TV 채널 등과 상생·공생을 추구하는 유통 전략 다변화, ▲영화 크리에이터와의 협업, 영화적 소재, 영화급 규모를 바탕으로 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 등을 내걸었다. 여기에 멀티 스튜디오 체제로 변신해 스튜디오드래곤 이외에도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신규 스튜디오 설립도 추진한다고 공시했다.
이처럼 국내외 시장에 토종 OTT가 성행하게 되면, 국내 시장의 독식자로서 넷플릭스의 독과점 현상과 K-콘텐츠 유통의 일원화 문제는 다소 완화될 수 있다. 더 다양하고 더 새로운 인력과 콘텐츠가 유입되고 유통될 수 있으며 자국 크리에이터에 대한 공정 계약 모니터링도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구독 경제에 대한 피로를 호소하는 시청자들이 점차 OTT에 대한 코드커팅(Cord-cutting)을 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런 경향성 또한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OTT 춘추전국 시대 속, 정부도 관련 지원과 규제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방송, 미디어 법제 재편을 준비하고 있으며 방송 및 OTT를 구별하기보다 디지털미디어서비스로 재정의해 포괄적인 정책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2010년 이후부터 새롭게 등장한 OTT는 우리에게 어떤 미디어로 기억되고 어떤 진화를 일궈낼 것인가. 미디어를 쿨과 핫 두 가지 분류해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OTT는 쿨과 핫 중 어떤 미디어라고 지칭했을까? OTT는 방송, 영화, 게임 중 어느 하나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 모든 콘텐츠가 뒤섞여 있는 정글처럼 쿨과 핫한 성격을 지닌 콘텐츠가 서로 공존한다.
OTT는 그 자체가 혼종이며, 끊임없이 콘텐츠를 빨아들임으로써 오리지널리티를 가시화해야 하는 플랫폼이다. 결국 플랫폼에 있는 작품들 사이에서는 어떤 연관성이나 철학을 확인하기 어렵다. 디지털 노마드처럼 이용자들은 콘텐츠와 크리에이터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시청자로부터 OTT 그 자체에 대한 충성심을 기대할 수는 없다. 각개전투, 우후죽순, 춘추전국이 현재 OTT 시장을 수사하는 용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구독 피로, 콘텐츠 과잉공급의 문제도 있다. 일관성이 없고 무제한 가까울 정도로 수많은 콘텐츠가 구비된 이 환경에서 현재에도, 당분간도, 가까운 미래에도 OTT는 더 많은 구독자를 얻기 위한 미래 전략만을 내세울 듯하다. 그 속에서 피상적 로컬리티와 일시적으로 확보된 대중성은, K-콘텐츠를 단순한 트렌드로 소비할 가능성이 농후해 그 어느 때보다도 국내 크리에이터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절실해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