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몰고 온 변화가 뉴노멀이 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른바 집콕이 대세가 되며,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등 낯설지 않은 풍경들로 일상이 달라졌다. 이를 가능케 한 솔루션 중 대표적인 것이 화상회의다. 그동안 실리콘밸리 등 IT기업에서나 시도되던 화상회의가 어느새 우리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줌(Zoom)하자”
요즘 젊은 세대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로, 또래끼리 하는 화상채팅을 뜻한다. 그들은 영상 통화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스카이프(Skype) 대신 줌을 찾고 있다. 공부, 취미, 놀이 등 다양한 일상을 화상으로 해결하는 이들 Z세대를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에 빗대어 주머(Zoomer) 세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Z세대.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디지털 기기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유튜브 등 영상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 불린다. 최근 Z세대의 별칭이 주머로 붙여지게 된 데는 코로나19 사태가 크게 작용했다. 감염병 예방과 확산을 막기 위해 학교가 문을 닫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면서 화상회의 솔루션이 주요 매체가 떠오르며 줌의 사용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또한 다르지 않다. 집단근무와 대면 보고처럼 감염병에 취약한 구조에서 원격·재택근무의 도입은 어쩌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얼굴 보고 일하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해온 우리에게 적잖은 충격과 모험이다. 한국사회에 재택근무제가 공식 도입된 건 1997년 3월로, 당시 과로사회를 방지하고 탄력있는 근무제를 시행하기 위함이었지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근 큰 변화가 일어났다. 코로나19로 공기업, 대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도입이 활발해진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1월부터 5월 초까지 중소・중견기업에서 재택근무제를 신청한 근로자가 1만 8,653명에 달했다. 작년보다 60배가량 높아진 수치다. 코로나19로 생애 첫 재택근무를 경험한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재택근무에 대한 평가도 비교적 후하다. 미국의 생산성 전문조사 업체인 발루아(Valoir)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재택근무의 생산성이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에 비해 평균 1%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IT기업 NHN의 재택근무에 대한 직원 설문조사에서도 ‘회사와 차이가 없다는 답변’이 36%로 가장 많았다. ‘집중이 잘 되고 일도 빠르게 진행된다’는 비율은 27%에 달했다. 반면, ‘회사에서 일이 더 잘된다’는 12%에 그쳤다. 생산성 저하를 우려했던 기존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넘어 엔데믹(Endemic·주기적 발병)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함에 따라 각 기업들은 지속가능한 근무체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일시적 방안이 아니라 새로운 근무 방식으로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기업 트위터(Twitter)는 직원이 원할 경우, 영구적인 재택근무를 정착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페이스북 CEO는 직원들과 화상 대화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원격근무에 자신감을 줬다”며, “5~10년 내 전 직원의 50%가 원격 근무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10년 후엔 현재 4만 5,000여 직원 중 2만 2,500여명이 회사가 아닌 집에서 일하게 될 전망이다. 일본 전자업체 히타치 제작소(Hitachi, Ltd)는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계속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새 근무 제도의 대상은 일본 내 직원 70%에 해당하는 2만 3,000명이 될 전망이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일본 산업계에서 사실상 재택근무 정착을 선언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롯데그룹 지주회사인 롯데지주는 최근 직원들이 주 5일 중 하루는 반드시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 국내 대기업 중 의무적으로 재택근무 제도를 도입한 곳은 롯데지주가 처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문화는 학교와 회사뿐만 아니라 종교 활동, 세미나, 모임과 각종 취미 생활도 온라인 예배・법회, 웨비나(Webinar) 등의 화상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SNS를 보면 대학교수, 선생님, 학원 강사, 신문기자, 건축가, 프리랜서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집에서 화상으로 일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싱가포르 대법원은 화상 온라인 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내렸고, 대한명상의학회는 화상으로 하는 언택트 명상을 진행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세계 최대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인 가상 배경이 뜨고 있는데, 화상대화를 할 때 실제 배경 대신 대저택, 자연경관, 영화의 한 장면 등 원하는 사진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화상회의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로,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전하기 위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들다
화상회의 솔루션의 글로벌 대표주자는 미국의 줌 비디오 커뮤니케이션(Zoom Video Communications)이다. 2011년에 시스코(Cisco)의 비디오 화상미팅사업부 웹엑스(WebEx) 출신 엔지니어인 중국계 미국인 에릭 유안(Eric Yuan)이 창업했다. 2013년 처음 서비스를 출시한 이후, 2014년 100만 명, 2015년 5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편리한 UI와 다른 소프트웨어‧하드웨어와 통합 능력 등을 인정받았다. 2017년에는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돌파해 유니콘 클럽에 진입했으며, 2019년에는 160억 달러 시가총액으로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그러나 많은 유니콘 기업이 신기술과 니치마켓의 가능성만 믿고 짧은 기간 고공 성장하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줌 비디오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공존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킨 것이 바로 팬데믹이다. 줌은 한 번에 최대 100명이 동시에 화상회의를 할 수 있고, 대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시스코 제품보다 이용이 편리하다. 어느 기기에서든지 사용할 수 있어 개인, 프리랜서, 중소기업에 큰 관심을 받아왔다. 코로나로 집에서 생활하며, 바깥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간편하고 부담 없는 화상회의 솔루션 줌은 최고의 아이템이 됐다. 현재, 각급 학교의 온라인 강의는 물론 개인과 많은 기업이 줌을 이용해 온라인 미팅을 진행한다.
비단 교육과 비즈니스만이 아니다. 정부 기관에서도 줌을 애용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트위터에 줌을 기반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사진을 올렸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시·도 교육감과 화상회의를 할 때 줌을 사용하며, 온라인 개학이 불가피할 경우를 대비해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줌을 소개하기도 했다. 줌의 인기는 수치로도 나타났다. 구글 검색 트렌드는 2019년 12월부터 올 3월까지 4배 늘었다. 주가 역시 두 배가 올랐다. 하루 이용자 수도 작년 말 1천만 명에 불과했지만, 올 4월에는 3억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IGAWorks)의 자료에 따르면, 주요 화상회의 앱 사용자(월간 사용자 수 기준)는 두 달 만에 8.4배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줌은 스카이프를 제치고 화상회의 앱 시장 1위 제품에 올랐다.
사용자가 늘면서 문제점도 부각됐다. 사이버 보안 문제가 대두됐다. 화상 수업 등에 해커들이 무단 침입해 포르노, 혐오 영상 등을 틀고 나가는 이른바 줌 폭격(Zoom-Bombing)이 발생했다. 미연방수사국(FBI)마저 줌의 보안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줌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새로운 사용자의 유입으로 보안에 미흡했다는 공개 사과와 함께 온라인 암호화 스타트업 키베이스(Keybase)를 인수해 개인정보 유출 보호를 위한 사용자 경험 및 보안 업데이트 등 추가된 가이드를 제시하며 대응에 나섰다.
더 커지고 치열해지는 화상회의 시장
줌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자극받은 기업들은 화상회의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새로운 시장은 아니지만, 코로나19로 교육·업무 분야에서 시작된 화상회의가 대중화될 수 있다는 흐름이 생긴 이유에서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시장조사 기관들은 올해 글로벌 화상회의 시장 규모를 36억 달러 안팎으로 예측했다. 코로나19로 상황이 변하면서 최근에는 시장 규모가 63억 8,000만 달러에 달한다는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하루 평균 사용자가 16억 명에 이르는 페이스북은 메신저 룸스(Messenger Rooms)로 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2015년 중단했던 서비스지만, 현재 전 세계 어디서나 최대 50명까지 동시 접속해 무료로 화상회의가 가능하다. 구글은 미국 G메일 서비스에 미트(Meet)라는 화상회의 서비스 기능을 추가했다. 구글 계정을 가진 모든 이용자에게 구글 미트 서비스를 9월까지 무료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화상회의 서비스 팀즈(Teams)는 보안성을 강조하며, 유료 버전을 6개월간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의 딩톡(DingTalk), 텐센트의 부브 미팅(VooV Meeting) 등도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네이버는 자회사 웍스모바일의 화상회의 서비스 라인 웍스(Line Works)에 역량을 집중해 최대 200명까지 동시에 화상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완했으며, SK텔레콤은 100인 이상이 동시 접속 가능한 화상회의 서비스 서로를 출시를 앞두고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앱을 다운받기만 하면 손쉽게 얼굴을 보며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미 존재했지만, 써볼 일 없었던 기술을 우리는 처음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전 인류의 재앙을 앞에 두고 ‘수혜주’나 ‘기회의 땅’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악조건 속에서도 기회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과 위기는 누군가에게는 놓칠 수 없는 절대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사례들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화상회의 솔루션이 만들 새로운 미래를 우리는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차분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