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건축 페스티벌은 도시 안에 숨겨진 고유한 이야기와 색채를 바탕으로 동시대의 문제들을 논의하며 더 나은 도시의 내일을 만든다.
▪ 샤르자 건축 트리엔날레는 문화와 기후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남반구만의 건축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건축적 솔루션을 제시한다.
▪ 코펜하겐 건축 페스티벌은 밀도 높은 온오프 콘텐츠와 Fim Mosaic 영화제를 통해 건축과 도시 계획이 우리 삶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건축 페스티벌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서 어떤 경험을 선사할까? 다양한 회화, 설치, 조각 작품 등을 전면에 내세운 미술 기반 비엔날레와 달리 건축 비엔날레・페스티벌은 건물과 공간이 중심이 되어 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큰 축에서 보면 전시, 투어, 워크숍 등으로 시민을 만난다는 점에서 다른 페스티벌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건축과 도시 자체가 무대이자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 색다른 차별점이 생긴다.
도시 곳곳을 배경으로 한 거대하면서도 독특한 파빌리온과 상징적인 건축물 투어, 건축 전시를 통해 사람들은 우리가 걷는 길, 드나드는 건축물, 살고 있는 도시를 새로운 시선으로 경험하고 인식하게 된다. 매일 집을 벗어나 도시를 누비면서도 그 모두를 무감각하게 지나치던 시민들은 생활 공간으로서의 동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사는 도시를 깊게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환경 문제와 더 나은 삶의 형태 등을 고민한다. 또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해당 도시와 건축에 대한 다층적인 논의를 나누는 장도 만들어진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 도시의 이야기는 국제적인 글로벌 마을의 이야기로도 치환되어 더욱 넓은 시각에서 이해되고 분석된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이미 수많은 국제 건축 페스티벌이 열리는 중이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시카고 건축 비엔날레, 오픈하우스 등 약 35개에 달하는 건축 페스티벌은 각 국가와 도시의 특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건축적 상상과 비전을 공유하고, 동시대의 문제를 논의하며, 발전적인 미래 환경을 위한 방안을 상상한다.
그러나 모든 건축 페스티벌이 보편화된 서구 중심의 건축 문화와 문법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결국 건축의 기반은 각 도시에서 출발하므로 그들만의 고유한 이야기와 소통방식이 존재한다. 지역성 회복과 발전에 집중하고 색다른 건축 콘텐츠를 발굴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세계와 연결하려는 독자적인 색채의 두 국제 페스티벌을 만나보자.
남반구 건축 문화의 회복을 목표로,
샤르자 건축 트리엔날레
2019년 설립된 샤르자 건축 트리엔날레(Sharjah Architecture Triennial, SAT)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즉 남반구 지역의 건축을 회복하고 재건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서아시아부터 남아시아, 남아프리카 대륙에 이르는 지역의 건축과 도시를 위한 플랫폼을 표방하며 전문가, 관심 있는 사람들, 지역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자유롭게 참여하고 논의하는 축제다.
첫 번째 SAT의 큐레이터 아드리안 라후드(Adrian Lahoud)는 한 인터뷰에서 서구 유럽의 프레임과 그 너머를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건축계에서 지배적이던 서구적 시선의 폭력성과 한계를 지적하고, SAT가 고유한 건축을 선보일 수 있는 장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미다. 그 뒤를 이어 나이지리아 건축가 토신 오시노오(Tosin Oshinowo)가 기획한 두 번째 SAT는 “무상함의 아름다움: 건축의 적응성(The Beauty of Impermanence: An Architecture of Adaptability)”이라는 주제 아래 25개 국가가 참여하여 대규모 설치, 전시, 토크 프로그램 등을 꾸몄다. 남반구의 척박한 자연환경, 자원 부족 같은 지역적 결핍의 극복과 적응을 탐구하고,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건축적 솔루션을 제시하는 장이었다.
상징적인 건물의 영원을 추구하는 서구 유럽의 지배적인 건축 경향은 변화하는 문화와 기후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남반구만의 독특하고 뛰어난 건축 문화를 경시하게 만들었다. 오시노오 큐레이터는 풍부한 자원이 바탕이 된 모델은 지속가능성과 거리가 멀다고 이야기하며, 척박한 자연과 부족한 자원을 가진 남반구 환경에서 발달한 건축이 오히려 지속가능한 미래의 방안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부족한 자본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고,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쌓아온 남반구의 건축 경험은 지금 전 세계에 도래한 기후 위기에서 더 유효한 셈이다.
이러한 주제 아래 SAT는 알 카시미야 학교, 옛 알 주바일 야채 시장, 옛 도살장, 산업 5구역, 샤르자 몰, 알 마담(버려진 사막 마을)을 포함한 샤르자와 UAE의 다양한 공간을 무대로 탈바꿈했다. 문을 닫은 학교,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시장, 버려진 도살장, 산업화의 흔적이 남은 구역, 버려진 사막 마을 등의 공간들은 여의치 않은 자연환경의 훌륭한 은유로 기능한다. 각각의 설치 작품들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각 공간 지형과 조건에 어떻게 적응하고, 실용적이고 자유롭게 그 의미를 펼쳐나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샤르자 동부 사막에 버려진 1970년대 알 마담 유령 도시 중심에는 팔레스타인 및 스웨덴 스튜디오인 DAAR이 제작한 <콘크리트 텐트(Concrete Tent)>가 세워졌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집단적 애도와 연대의 이 공간은 2015년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가져온 이동식 텐트를 콘크리트라는 현대식 재료와 결합한 실험적인 보존 프로젝트다. 텐트 안에 들어선 관람객은 10월 7일 이후 가자 지구에서 살해된 어린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녹음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보존은 영속성이 아닌 영구적인 임시성이라는 개념을 탐구한다. 환경, 정치, 경제의 변화로 발생하는 이동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사람들이 지금, 이곳, 현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즉, 현대 이주민 공동체에게 과거의 유랑생활을 상기시키고, 끊임없는 무상함을 불러일으킨다. 언젠가는 이 구조물 또한 전진하는 모래 언덕으로 인해 무너질 것이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형상화한 “덧없는 것들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WallMakers의 <3-Minute Corridor> 파빌리온은 전 세계의 폐기물을 탐색하고 재료 재사용 방법론을 찾는다. 세계에서 매년 폐기되는 약 2억 8천만 개의 타이어 중 약 3천만 개만이 재활용되거나 다시 쓰인다. 파빌리온은 이 폐기물로 “타이어 벽돌 및 불안정한 모래” 기술을 사용해 타이어의 건축 자재 활용법을 제안했다. 1,425개의 폐타이어와 샤르자에서 쉽게 수급되는 사막 모래를 활용한 파빌리온은 타이어의 형체를 시각화한 돔형 구조로 지어졌다. 진흙 석고와 함께 쓰일 때의 견고성을 통해 건축 자재로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건축 자원 부족에 대한 대안도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산하는 엄청난 양의 타이어 폐기물에 대한 성찰도 불러일으킨다.
영화로 탐구하는 건축,
코펜하겐 건축 페스티벌
2014년에 시작된 코펜하겐 건축 페스티벌(Copenhagen Architecture Festival, CAFx)은 건축과 도시계획이 삶과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고,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건축 축제다. 덴마크 수도인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오르후스, 오덴세 등에서 열리며, 강연, 영화, 공연, 워크숍, 세미나, 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건축과 도시 계획 주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고, 영감을 공유하며, 참여를 도모하는 것이 목표다. CAFx는 건축 자체를 비추기보다, 공동체를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에 주목한다. 더 발전되고 건설적인 공동체를 형성할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 나갈 핵심적인 도구로 여긴다. 따라서 코펜하겐이라는 도시와 공동체, 그리고 개인을 잇는 플랫폼으로서 활발한 교류와 아이디어 교환의 장이 되고자 한다.
CAFx만의 독특한 특징이라면 다른 건축 페스티벌처럼 단기간에 설치되는 대형 파빌리온이나 건축물이 아닌, 밀도 있는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중심에 두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에세이∙팟캐스트∙영화로, 오프라인에서는 다양한 연계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 토론회로 대중과 만난다. 특히 영화를 활용해 디자인, 건축, 도시 계획을 예술∙교육적으로 탐구한다. 매년 여름학교를 열어 영화와 건축을 연결하는 건축 영화를 제작하며, 건축 영화 워크숍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전문가 및 교육 기관과 긴밀히 협업하며, 건축에 관심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단편 건축 영화 공모전인 Film Mosaic은 사회 불평등을 해결하는 포용적이고 비차별적인 도시 공간 디자인을 고민하는 워크숍이다. UN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2030 의제 “LNOB(Leave No One Behind)”를 주제로 모든 형태의 빈곤 근절, 차별과 배제를 종식,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잠재력을 훼손하는 불평등과 취약성 감소 등 UN 회원국의 공통된 약속이 바탕이다. 건축을 비롯한 공공∙민간의 도시∙환경의 설계에서 차별은 번번이 일어난다. 성별, 연령, 민족, 성적 취향, 제한된 이동성∙소득, 신체적∙정신적 장애에 따른 차별이 공간 설계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 워크숍은 공간 차별의 해결책을 기록한 단편 영화를 제작하여 LNOB, 즉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위한 현실 속 다양성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공간의 새로운 상상을 창출한다.
약 300편의 접수작 중 1등을 차지한 Spade Hung, Wingchun Cheng의 <DOCKING>은 홍콩 쿤통 공공 부두 당국과 대중, 노숙자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프로젝트를 담은 단편 영화다. 홍콩 쿤통 부두는 2013년부터 노숙자들의 대피소가 되었으며, 절반 가까운 공간이 노숙자의 대피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악취, 소음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부두는 계절에 따라 대대적인 청소를 진행한다. 이때 노숙자들은 부두에서 쫓겨나고 거주 공간은 파괴되며, 청소가 끝나면 다시 돌아와 거주 공간을 새로 만든다. 이러한 과정의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와 쓰레기 발생을 해결하기 위해 입주∙퇴거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이동형 유닛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노숙자의 정착지를 지키고 건축 자재를 절약하는 이 유닛에 입주한 노숙자는 대피소를 재건하는 에너지를 줄일 뿐 아니라 건축 폐기물을 버리는 권한도 직접 갖게 된다.
2등 상을 받은 일본의 타쿠야 와타나베의 <Boundary in Flux>는 일본 후쿠이현 오바라 마을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복잡한 공생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영화다. 단 한 명의 노인만이 남아 살고 있는 오바라 마을은 한때 번성했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찾아보기 어렵다. 풀숲과 잡초와 같은 자연이 다시 번성해 현대 생활 방식과 대립하는 곳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제거해도 다시 자라나는 잡초는 흔한 자연과 인공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과 자연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며 공생에 대한 생각도 일깨운다.
이처럼 두 페스티벌은 차별화된 방향성과 확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의 회복과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SAT는 회를 거듭하며 잃어버렸던 그들의 역사와 고유한 목소리를 되찾고, 밀도 있게 문화를 그려간다. 그간 서구 유럽에 의해 전유되고 일그러졌던 본인들의 독특한 건축 문화, 즉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찾아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늘 부족하고 결핍된 곳이라 여겼던 지역이 오히려 그만의 아름다움을 가졌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도 몫을 한다는 점이다. CAFx은 영화 중심의 다채로운 콘텐츠를 바탕으로 시민과 연결되며, 대중에게 건축의 중요성과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끊임없이 다가서는 중이다. 이를 통해 건축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를 둘러싼 삶의 환경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선사할 것이다.
이처럼 앞으로도 건축 페스티벌은 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뾰족한 방식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담기에 획일화된 한 가지의 이야기 방식은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된다는 말처럼 각 도시만이 가진 것을 들여다보고, 시민들과 밀접하게 연결하고자 할 때 발견되는 것은 더 실용적이고, 놀라운 건축 솔루션으로서 새로운 미래 도시를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