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어둡고, 더럽고, 냄새나고, 무섭다” 어느 도시에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 동시에 각종 사건과 괴담으로 흉흉해진 이곳. 도시의 공중화장실을 묘사하는 수식어다. 공중화장실은 떠올리기만 해도 더러울 것 같고, 잘 관리되지 않는 공간 같다. 게다가 유동 인구가 적은 곳에 있는 화장실은 혹여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불안하기만 하다. 여성의 경우, 더 안심하기 어렵다. 강남역, 신당역에서 일어났던 여성 혐오 범죄와 각종 불법 촬영물로 인한 일련의 사건을 떠올려보면, 공중화장실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도시 곳곳에 있지만 기피하고 싶은 공간으로 변질한 것만 같다.

 

최근 일본 도쿄에서는 2022년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맞아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The Tokyo Toilet)를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는 공중화장실이 모두를 위한, 공공을 위한 화장실이 될 수 있도록 도쿄 시부야구 공중화장실 공간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일본 재단(Nippon Foundation)이 기획과 실행을 맡아 2018년 시부야구와 계약을 맺었고 총 16명의 건축가(및 디자이너)가 참여해 17개의 공중화장실을 설치하는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일본재단은 그간 공헌하는 삶(Live to Contribute), 삶의 이유(IN THE CAUSE OF LIFE),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A FUTURE FOR YOUTH)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장애인, 전쟁 및 재해 피해자, 어린이 등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번 프로젝트 역시 앞선 활동과 마찬가지로 공중화장실이 진정으로 공공을 위한 것인지를 되짚어보고자 했다.

 

도쿄 올림픽을 대비해 일본의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로 여기기에는 이 프로젝트가 던져주는 함의가 무척 크다. 모두, 공공이라는 범위에 누구를 배제하진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 화장실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한 것이 아닌 예술적 심미성을 구현함으로써 공공예술의 가치와 범위를 어떻게 확장했느냐는 질문. 이 교차하는 질문은 도시가 어떻게 소수를 포함하고 배제하지 않는지, 여러 구성원이 당연하게 도시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하는지 선례를 남긴다.

 

국내 건축 전문 웹진 SPACE와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우에키 미호코와 한 인터뷰에서 미호코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되기 위한 필수 요소로 “공중화장실에 적어도 한 칸만큼은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갖춰져 있는 것”이라 말하며 16명 크리에이터에게 공통으로 이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 예로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충분한 공간, 인공 배설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루 위생시설 설치, 아기 의자와 기저귀 테이블 등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선 나이와 장애 유무만 고려하지 않았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란 소수자 중 레즈비언・게이・트랜스젠더・바이섹슈얼 등 퀴어(LGTBQ+)를 고려한 화장실도 의미한다.

 

시부야구 내 노후하고 낙후된 화장실을 리모델링하는 이 프로젝트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일본의 건축가 및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이 중에는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도 포함되어 있다. 안도 다다오, 반 시게루, 마키 후미히코, 이토 토요가 그 예이며, 그 외에도 일본의 스타 건축가 쿠마 켄고와 소우 후지모토, 애플 출신 산업 디자이너 마크 뉴슨 등 각 크리에이터들이 협업해 각자의 철학과 고유의 기능이 담긴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화장실을 창조했다.

휠체어 및 남녀 공용으로 화장실 이용이 가능한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 중 일부 모습 Ⓒ The Tokyo Toilet
시부야구에 설치된 17개의 화장실 위치도, 이 중 회색 표시한 4곳은 아직 오픈하지 않았다. Ⓒ The Tokyo Toilet

안도 다다오 ‘아마야도리(雨宿り)’

Jingu-Dori Park, 6-22-8 Jingumae

 

“자연과 인공을 분리하지 않고 건축을 통해 자연이 인간에게 말을 걸게끔 해야 한다”는 말로 유명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해 진구도리 공원에 위치한 화장실, 아마야도리(雨宿り)를 디자인했다. 그는 이 작은 건축물이 공중화장실의 경계를 넘어 공공적 가치를 제공하는 도시 경관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이러한 염원을 표상한 아마야도리는 비를 피할 곳, 처마 밑을 의미하는 단어처럼, 화장실 지붕은 원형 평면으로 돌출돼 지나가는 이에게는 비를 피할 장소나 그늘이 되어준다. 벚나무로 둘러싸인 이 화장실의 원형 외벽은 수직 금속 루버(vertical metal louvres)로 둘러싸여 있다. 루버는 좁고 기다란 판을 수직 또는 수평으로 사이를 두어 평행으로 조립한 것으로 채광과 통풍을 조절하기 위해 벽이나 천장에 설치된다. 이 세로 격자 외벽은 전통적인 툇마루를 본뜬 디자인으로 바람과 빛이 통하게 되어 방문자는 원통형 벽 내부를 이동하며 주변 환경에서 바람과 빛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반대편에도 나 있는 출입구는 공기의 순환을 불러와 이용자에게 쾌적함 또한 선사한다.

 

화장실 입구에는 픽토그램을 표시했다. 이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마크의 일종으로서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화장실에 표시되어 있다. 하단 이미지를 참고하면 휠체어 이용자(Accessible facility), 고령자(Priority facilities for eldery people), 임(산)부(Priority facilities for expecting mothers), 아이와 동행자, 장루용 화장실(Faciliteis for ostomy), 간이침대가 있는지 등 다양한 이들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고려해 관련 장치를 마련하고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표기했다. 아마야도리의 경우 휠체어, 유아 돌봄방, 유아 의자, 장루용 화장실 시설이 갖춰져 있다.

아마야도리 스케치와 외형 Ⓒ The Tokyo Toilet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 픽토그램, 빨간색으로 표시한 픽토그램은 해당 화장실에 구비한 관련 시설을 의미한다. Ⓒ The Tokyo Toilet

반 시게루의 투명한 화장실

Haru-no-Ogawa Community Park, 5-68-1 Yoyogi

 

2014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종이로 세상을 구하는 건축가 반 시게루의 공중화장실은 두 가지 문제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공원에 위치한 화장실에 들어갈 때 두 가지를 걱정한다. 첫 번째가 청결이고, 두 번째는 내부에 사람이 있는 여부이다.” 화장실은 내부 이용자를 위해 항상 가려져야 한다는 인식을 뒤집은 그의 화장실은 평소에는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상태를 유지했다가 이용자가 문을 잠그면 불투명해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외부에서는 이를 통해 이용 유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청결도 또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밤에는 네온 빛으로 빛나는 이 화장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랜턴처럼 도시공원의 어둠을 밝힌다.

 

반 시게루는 사회적 문제를 포착해 해결하는 데 정평이 난 건축가이다. 공중화장실을 기피하는 심리에는 “공중화장실은 더럽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크다. 건축가는 화장실을 투명하게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청결과 안전함을 이용자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장 직관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법을 찾아내는 그의 기발함은 이전의 작업에서도 돋보인다. 1994년 르완다 내전으로 발생한 200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는 데 있어 큰 문제 중 하나는 임시 거처였다. 당시 유엔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유엔 난민 기구)가 제공한 임시 거처의 주재료는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이었는데 난민들은 생존을 위해 이를 암시장에 팔았고, 나무를 벌채해 충당하면서 산림까지 황폐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반 시게루는 종이 지관을 활용한 설계를 제안했고 이는 대량의 주택을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짓는 효율성 덕분에 기존 난민 주거 환경을 일시에 바꿨다.

 

그는 말한다. “건축가는 아름답고 사용감과 거주성이 좋은 건축물을 만들어야 한다. 업자들은 빠른 시간 안에 저렴하게 만드는 게 사명이겠지만 건축가의 역할은 다르다. 우리는 문제점을 해결해 좀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집을 구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의 이러한 철학이 돋보이는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는 건축이 어떻게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현재 그의 화장실은 도쿄 두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부야 하루노오가와 공원의 다소 차가운 톤의 화장실과 요요기후카마치소 공원에 놓인 따뜻한 톤으로 디자인된 화장실이 있다.

이용자가 입장하면 화장실은 투명에서 불투명으로 전환된다. Ⓒ The Tokyo Toilet
차가운 톤의 하루노오가와 공원 화장실 Ⓒ The Tokyo Toilet

쿠마 켄고의 A Walk in the Woods

Nabeshima Shoto Park, 2-10-7 Shoto

 

“A Walk in the Woods”(숲속의 산책).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인 쿠마 켄고는 쇼토 공원 녹지에 자리 잡은 이 화장실을 이같이 칭한다. 화장실은 마치 공원 속 나무 마을에 방문하는 것처럼 240개의 삼나무 판자로 지어진 불규칙한 형태의 프레임으로 울타리를 형성했다. 울타리를 지나 들어가면 5개의 오두막(화장실)이 있으며 각 구역은 마치 하나의 마을처럼 분리되어 있다. 다시금 이 5개 오두막을 나오면 숲속으로 사라지는 숲속 산책로와도 연결되어 있다. 화장실 내부 벽은 재사용된 체리와 메타세쿼이아 나무로 장식되어 있으며 아기 침대 및 의자, 어린이용 변기, 오스트메이트를 위한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나무의 건축가로 정평이 나 있는 쿠마 켄고는 10살 때 1964년 도쿄 올림픽 요요기 국립경기장 모습을 보고 건축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당대 일본을 대표하던 건축가 단게 겐조의 요요기 국립 경기장을 보며 건축가를 꿈꾼 이 아이는 2022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의 설계자가 되었다. 나무의 건축가로 유명한 그답게 그는 아시아에 잃어버린 철학, 나무를 다시금 불러와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했고 나무와 철강이 섞인 주 경기장 내부는 마치 숲처럼 관객을 품고, 외부는 나무를 쌓아 올린 둥지처럼 서로를 지탱하는 매력을 풍긴다. 쿠마 켄고는 항상 지역 환경과 문화가 어우러진 건축을 목표로 하며, 부드럽고 인간적인 규모의 디자인을 제안한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로는 아쿠사 문화관광센터, 후쿠오카에 위치한 스타벅스 다자이후가 유명하며, 국내에는 제주도에 위치한 롯데 리조트 아트빌라스가 있다.

마치 하나의 마을처럼 되어 있는 쿠마 켄고 화장실 외부 모습 Ⓒ The Tokyo Toilet
나무를 기자재로 촘촘히 설계된 2022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 모습 Ⓒ dezeen

오직 목소리로만 움직이는 카즈 사토의 화장실

Nanago Dori Park, 2-53-5 Hatagaya

 

미디어 초월 작품으로 일본 및 해외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2012년 칸 영화제 영화 부문 심사위원을 비롯해 디자인, 디지털, 프로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상을 받은 카즈 사토(Kazoo Sato)는 Disruption Lab Team과 협업해 음성 언어로 모든 게 가능한 비접촉식 화장실을 고안했다. 공중화장실 변기, 레버가 청결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 카즈 사토가 인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화장실 이용자 60%는 물을 내리기 위해 변기 레버를 발로 밟고, 50%는 화장지로 문을 열고, 40%는 엉덩이로 문을 닫고, 30%는 팔꿈치를 사용하는 등 최대한 손 접촉을 피한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3년간의 연구, 기획, 설계 끝에 개발한 모든 명령이 음성으로 작동되는 화장실은 문을 열고, 물을 내리고, 손을 씻고, 심지어 BGM 재생하는 일까지 모두 비접촉형으로 진행된다.

 

조그마한 눈사람 머리처럼 보이는 이 화장실은 하타가야 나나고 거리에 있다. 흰색 내부를 발판으로 삼은 하얀 반구 모양의 화장실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하나의 미적 체험으로서 기능하며 그 자체로 청결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특히 화장실 내부 악취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공기가 외부 하단에서 들어와 순환해 빠져나가는 환기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방문하면 화장실이 어떻게 음성 인식으로만 작동하는지 볼 수 있는 영상이 있으니 참고해보면 좋을 듯하다.

 

참고로 이렇게 만들어진 17개의 화장실에는 꼼꼼한 유지보수 관리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일본재단과 시부야구가 협력해 화장실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눠 청소 및 유지 관리한다. 일일 청소는 하루 세 번, 정기 청소는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데 매월 외부 컨설턴트로부터 청결 검사를 받으며, 매월 유지관리 회의를 개최해 시설물 사용현황을 점검하고 유지관리 시스템을 개선한다. 청소 공정은 다음의 과정으로 세분화했다. 드라이클리닝, 웨트 클리닝, 특수 청소(외벽, 조명기구, 환풍기, 지붕 등), 정기 점검(소대형 소변기, 공기 탈취, 설비, ATP 와이프 테스트 등), 특별검사(암모니아, 조명, 온도 및 습도 측정)로 나뉜다.

하얀 반구 모양의 화장실 Ⓒ The Tokyo Toilet
화장실 내부 공기 순환 구조 Ⓒ The Tokyo Toilet

공공(public)에 모두 개방한 것만 같지만 실제로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이와 이용할 수 없는 이는 명백하게 나뉜다. 그렇기에 공중화장실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당위성이 무색할 만큼 차별적이고 배제적이다. 휠체어 접근성, 유아 및 반려동물 동반, 여성과 남성으로 이분화된 구별 체계 등 일상에서 만난 화장실을 떠올려보면 화장실은 명확하게 특정 이용자만 접근 용이하게끔 운영되고 있다. 그 외의 이용자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화장실은 이용이 어렵다.

 

인권변호사이자 지체장애인인 김원영은 저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이처럼 오줌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오줌권은 말 그대로 자택이 아닌 공공장소, 다른 공간에서 편히 오줌을 눌 권리이다. 비장애인은 공공장소나 일터에서 화장실 시설로 인해 불편함을 겪은 적이 드물 것이다. 그러나 신체가 불편한 사람은 집 밖을 나서면 편히 소변을 편히 보지 못하며 관련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일터에서는 오줌을 참을 수밖에 없다.

 

가장 기초적인 사회 활동에서부터 막히니 김원영은 오줌권 침해가 깊은 수준의 인권 침해이자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배제하는 기제 중 하나라 설명한다. 조금 더 확장하면 산업 현장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가령 남초인 건설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여성 화장실이 없어 오줌을 편히 누지 못하는 사례, 최근 일어난 일 중 미국 아마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과도한 물류량으로 인해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 플라스틱병에 해결했다는 침해 사례들이 있다.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는 산업 현장에서의 오줌권을 보장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기본 전제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건축과 예술이 어떻게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앞서 소개하지 않았지만 사카쿠라 다케노스케가 건축한 니시하라 이초메 공원 화장실에는 여성, 남성 전용칸이 없다. 밤이 되면 건물 자체가 하나의 가로등처럼 빛나는 이 화장실은 세 칸 모두 남녀공용으로 만들었다. 사토시(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앞서 space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러한 기획 의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 칸의 화장실 모두 남녀평등한 공간으로 설계했다. 남녀공용 화장실은 또한 LGBTQ+에 대한 여전한 사회적 편견, 그들이 이용하기에 적합한 남녀공용 화장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세 칸의 화장실을 모두 성별을 불문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LGBTQ+가 보다 편안하게 공중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2022년 3월 성공회대는 교내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했다. 성별, 장애, 성적지향, 성정체성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끔 설계된 화장실이며 화장실 앞 표지판에는 성 중립 표현, 휠체어를 탄 장애인, 기저귀를 가는 인물 등 다양한 상징이 포함되어 있다. 국내 대학 중에서는 최초이며 지난한 토론과 설득의 과정으로 일구어낸 민주적 합의 결과물의 상징이기도 하다.

 

가장 기본적인 영역에서 배제당한 이들을 생각한다. 1960년대 미국-소련 우주 경쟁에서 머큐리 계획에 기여했지만 인종과 성별의 이유로 가려질 수밖에 없었던 유색인종 여성 과학자 실화 이야기를 다룬 영화 <히든피겨스(Hidden Figures)>가 있다. 극중 인물 캐서린은 센터장 알 해리슨에게 왜 그녀가 업무시간에 장시간 사라지는지 추궁당한다. 유색인종이었던 캐서린은 말한다. “이곳에는 제가 갈 화장실이 없습니다.” “이 건물엔 유색인종 화장실이 없고 해당 화장실은 서관에만 있어 800m를 나가야 해요.” 인종 분리 정책으로 캐서린은 근무하는 곳으로부터 800m나 떨어진 화장실에 가야만 했던 것이다.

 

캐서린이 업무시간에 장기간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캐서린이 유색인종이기 때문이거나 800m나 되는 거리를 재빠르게 다녀올 수 없을 만큼 걸음이 느려서가 아니다. 그녀가 근무하는 곳, 건물의 화장실이 백인만 수용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일을 하러 나왔는데 내가 가야만 하는 화장실이 800m나 떨어져 있을 때의 당혹감을. 센터장 해리슨은 캐서린의 말에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는 듯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당연하다 해리슨은 백인 남성이니 그 불편함을 알 리가 없었다) 다음날 건물 내 백인 전용 화장실 간판을 떼어내며 그는 말한다. “여기 나사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색으로 오줌을 눈다.”(Here at NASA, we all pee the same color)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든다는 것. 그것은 단지 도시의 미관을 개선하는 일도, 도쿄 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에 맞춘 일회성 프로젝트도 아니다.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을 비트는 예술처럼, 차별과 배제를 은폐하고 있는 정상성을 비틀어 더 이상 소수자와 약자를 만드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공중화장실이 나아가야 할 길과 기본 셋업을 바꾼 프로젝트로서의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는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