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눈부신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대기실에 앉아있던 친구는 결혼하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기력 없이 답했다. 물론 긴장되는 예식을 얼른 마치고 싶다는 뜻도 있었겠지만, 어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동안 결혼식 준비가 길고 지난했기 때문이었다.

 

일생의 배우자를 맞이하는 일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국내 결혼식은 대부분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보통 결혼식 준비의 핵심이라 여겨지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부터 신혼여행까지 다양한 패키지로 묶여 있고, 이 중에서 ‘상품’을 선택하게 된다. 웨딩컨설팅 업체 간 긴밀한 계약 관계에 있기 때문에, 웨딩플래너의 도움 없이 직접 발품을 팔아 구성할 경우 오히려 비용이 더 커지기 쉽다. 결과적으로 주말이면 예식장에서 여러 커플이 20분마다 연이어 부부가 되는데, 그 모습은 마치 공장 돌아가는 듯하다. 또 주어진 형식을 따라 결혼 준비를 하다 보면 비용 때문에 결혼을 몇 년 미루거나 시작부터 ‘웨딩 푸어’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결혼을 대면한다고 할 때, 좀 더 폭넓은 선택지는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당사자에게 더욱 의미 있는 의식을 기획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900km,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

 

“그저 둘만의 의미 있는 행위만으로도 결혼이 성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디자이너 이혜민, 정현우 부부는 ‘결혼’을 앞두고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대신 산악화와 배낭을 신중하게 골랐다. 야근으로 점철된 팍팍한 일상 속에서 둘의 결혼이 요원하게만 보였던 어느 날, 이들은 과감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버진로드 삼아 걷기로 작정했다. 빈 길 위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걷는 여정 자체를 결혼식으로 계획함으로써, 빚내는 결혼 말고 빛나는 결혼을 택한 것이다.

 

출처>> 900k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900km)

 

이들은 철저한 장기 계획을 통해 양가 부모님께 결혼 허락과 이 특별한 결혼식에 대한 동의를 함께 구했다. 또 장장 한 달 넘게 이어질 그들의 웨딩마치와 이후에 새롭게 펼쳐질 삶을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었다. 늘상 책상 앞에 앉아 일하다가 순례길을 완주하려니 체력이 부족할 게 뻔했으므로 틈틈이 주말마다 트레킹 연습도 했다고.

 

고심해서 싼 그들의 8kg, 11kg 배낭 속에는 작은 면사포와 나비넥타이가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순례길을 걸으며 이따금 멈춰서 등산복 차림에 소품들을 걸치고 웨딩 사진을 찍었고, 같이 길을 오르던 다른 순례자들은 진심으로 함께 기뻐했다. 매일 20~30km씩 42일간 꾸준히 걸으며 실시간으로 페이스북에 전해졌던 이들의 다사다난한 나날은 이제 책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에 담겼다.

 

이들이 경험한 순례자 길은 날씨와 체력적 한계로 인한 어려움을 짝꿍과 함께 극복하는 곳이자, 별 밤과 들꽃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거워하는 곳이다. 900km나 되는 장거리를 걷는 데에 많은 짐을 들고 갈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은 결혼과 결혼식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어떤 은유처럼 다가온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

 

“예식 순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구도 배려할 순 없을까?”

 

결혼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예식장, 드레스와 턱시도, 테이블 세팅, 실내 장식, 음식 등 보이는 행사의 겉면에만 신경 쓰게 된다. 하지만 화려한 결혼식 이면에는 낭비되는 온갖 자원들이 있다. 서너 번 쓰이고 버려지는 합성섬유 웨딩드레스, 절화 꽃 장식, 낭비되는 뷔페음식 등은 인간이 결혼이라는 관습을 지속하는 동안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 대지를 위한 바느질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옥수수 전분, 쐐기풀, 한지, 콩 섬유, 우유 섬유 등을 재료로 한 친환경 드레스를 만들고, 이외에도 뿌리 있는 화분 부케, 유기농 피로연 음식, 액자로 활용할 수 있는 청첩장 등을 제안하면서 결혼식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요소가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게 돕는다.

 

디자이너 이경재 대표는 의상디자인 전공 후 회사를 다니다 강원도 횡성으로 귀촌을 했었다. 그러면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 관련 대학원을 다녔고, 그간 해온 자신의 디자인 작업들이 지구를 파괴하는 데에 일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잡지에 실린 모 톱스타의 결혼 비용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과연 비싸서, 화려해서 결혼식이 의미 있는 것일까?’ 자문하게 되었고, 대학원 연구작으로 옥수수전분 드레스를 만들게 된 것이 대지를 위한 바느질 활동의 첫 발돋움이었다.

© 대지를 위한 바느질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마을웨딩’도 진행한다. 마을웨딩은 대지를 위한 바느질 사옥 및 성북구청 아트홀 등을 장소로 올리는 예식인데,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 항상 자리했던 성북구에서 그간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한다. ‘스드메’는 각각 대지를 위한 바느질, 동네 미용실과 사진관이 나누어 담당하고, 음식은 솜씨 좋은 어르신들께 요청하는 식이다. 여기서 결혼식은 더는 공장식이 아닌, 한때 마을 구성원 모두의 커다란 잔치로 여겨지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정겨운 풍경이다.

결혼식 말고 비혼식

 

“결혼 뭘까?”

 

한편, 결혼을 둘러싼 모든 개인적•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근 몇 년간 ‘비혼주의’과 ‘비혼식’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말 그대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非婚)’는 선언과, 이를 주위 지인들에게 알리는 행사이다. 보통 지인들을 모아 소규모로 비혼 선언을 하는 파티를 열거나, 배우자 없이 혼자서 웨딩 촬영을 하는 ‘싱글 웨딩’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결혼을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거지, 왜 굳이 비혼식을 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결혼을 ‘굳이’ 하라는 주위 사람들에게 ‘굳이’ 안 하겠다고 선언하기 위함이다.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비혼식과 싱글웨딩이라는 용어가 그저 트렌디하고 가볍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용어가 숨기고 있는 질문은 스몰웨딩, 에코웨딩 만큼이나 무겁고, 그렇기에 결혼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봄 직하다.

 

스몰웨딩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과의 의견 차이 때문에 결국 평범하게 했다는 이야기, 결혼을 생각했지만 연인의 직업이나 종교관이 한쪽 부모에게 걸림돌이 되어 헤어지게 된 이야기, 또 그 중 한 사람이 결국 부모님이 선 자리를 알아본 사람과 일사천리로 결혼식을 올렸다는 이야기는 소위 결혼 적령기라 불리는 청년들에게는 ‘뻔한’ 시나리오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결혼인가 질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결혼 후엔 어떨까. 부모가 여유롭지 않다면 의례 빚을 내서 전세금을 마련하거나 집을 산다. 자녀계획이 있다면 여성의 경력단절이 필연적으로 뒤따라오고, 남성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장이 된다. 출산 후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전업주부는 독박육아로 희생하고, 남편은 가장으로서 희생한다. 서로의 희생과 인정 투쟁 속에서 결혼의 원래 동기는 퇴색되고 관성만 남는다. 결국 경제적인 부담과 그 밖의 모든 갈등요소를 피하고자 아이를 낳지 않는, 아니 결혼 자체를 하지 않는 ‘이기적인’ 젊은이들이 사회문제로 지목된다.

 

비혼식, 싱글웨딩은 과연 지나가는 사회 현상일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OECD의 통계에 의하면 2030년에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은 2007년 기준치 대비 43% 증가하여 전체의 24%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같은 기간에 무자녀 가구의 비율은 2007년 기준치 대비 72%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어 OECD 국가 중 그 증가 폭이 가장 높다. 즉, 앞으로 결혼과 출산은 더는 ‘남들 다 하는’ 게 아니게 될 것이다. 또한 결혼뿐만 아니라 이 제도를 뒷받침하는 모든 사회적•법률적 용어들이 비혼과 비출산의 증가에 따라 빠르게 재정의될 것이다.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사랑=연애=결혼=출산이라는 전통적인 결혼관은 이미 점차 균열이 일어나는 중이다.

의미 있는 삶의 관문을 그리며

 

예로부터 결혼식은 삶에서 중요한 네 가지 관문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결혼의 의미가 재탐구되는 오늘날에도, 결혼과 비혼 중 무엇을 택하든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완전히 다른 경험을 가진 개인들이 함께하기를 약속하는 경이로운 순간이 부디 상업적, 사회적 이해관계 안에서 한정되지 않기를, 그래서 자발적인 마음과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념하고 싶은 무언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냥 빨리 지나 보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