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터슨>에는 굉장히 단조로운 일상을 사는 주인공, 패터슨이 등장한다. 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는 패터슨은 매우 반복적인 일과를 가지고 있다. 매일 같은 버스의 노선을 달리며, 운행 중간에는 같은 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퇴근을 하면 집으로 곧장 돌아가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과 산책을 하다가 맥주 한 잔을 마신 뒤,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그의 일상은 그렇게 반복된다. 하지만 패터슨의 일상에는 특별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시를 적는 일이다. 그는 일상의 작은 변화들을 관찰한다. 패터슨은 매일 5~10분 차이가 나는 기상 시간, 매일 달라지는 아내의 꿈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승객의 잡담과 같이 작은 변화에 귀 기울이며 이를 시로 남긴다. 그 때문에 패터슨의 단조로운 일상은 그의 노트 안에서 시라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백과사전의 사전적 정의를 따르면 예술이란 보편적인 것을 직관하여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우리의 보편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을 다채롭게 바꾸는 힘이 있다. 같은 대상이라도 누가 창작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다른 모습의 창작물로 도출된다. 예술 작품을 보고 또 봐도 매일 새로운 감동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평범한 물건도 아름다운 표현을 더하면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예술이 된다. 나아가 그러한 표현들은 그 물건의 가치가 된다. 예술이 가진 힘을 빌려 일상의 것들을 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사례들은 여러 분야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것들에 예술이라는 특별함을 입혔을 때 나오는 시너지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과연 예술의 힘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고 있는지 다음 사례들을 통해 알아보자.
마케팅 속의 예술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서 예술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마케팅에서 예술을 활용하는 아트 마케팅은 이제 하나의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업에서는 예술 작품의 표현법을 빌린 기발하고 독창적인 광고를 만들기도 하고, 예술 분야가 가지는 특유의 고급스러움을 광고 디자인에 차용해 브랜드 이미지로 연결하기도 한다. 여러 예술 활동에 투자와 후원을 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다양한 사례들이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이고 오랜 역사를 가진 사례는 바로 인쇄 광고다. 인쇄 광고에서는 오래전부터 제품의 특징 혹은 제품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하기 위해 기존 예술 작품의 특징점을 차용해왔다. 아래 광고를 예시로 살펴보자.
이는 2014년 등장했던 탄산수 브랜드 페리에(Perrier)의 인쇄 광고이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드는 이 광고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유명작인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을 패러디한 것이다. 달리의 작품은 이성적인 현실 세계를 넘어 무의식의 세계 혹은 꿈의 세계를 표현하기 원하는 초현실주의 사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페리에 광고에서는 본래 작품이 가진 의미보다는 자신들의 제품을 강조하기 위해 작품의 표현 방식을 선택했다. 광고에 등장하는 다른 사물들은 뜨거운 더위에 녹아내리고 있지만, 초록 병에 담긴 페리에는 녹아내리지 않는 이미지를 노출하여 그만큼 페리에가 시원함과 청량감을 준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소비자는 본래 미술 작품의 표현을 재해석해 브랜드의 메시지를 더욱 감각적이고 재치있게 전달한 이 광고를 통해 해당 제품과 브랜드를 더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마케팅 활동에서 예술의 미적 가치를 이용하는 사례가 많았다면, 이제는 반대로 예술계에서 마케팅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예술이라고 하면 어쩐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문화라는 편견을 없애고, 많은 대중이 예술을 가까운 거리에서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다. 일상에서 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일상이 되게 하려는 노력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Abu Dhabi)에 문을 연 루브르 아부다비(Louvre Abu Dhabi) 박물관의 옥외광고 프로젝트하이웨이 갤러리(Highway Gallery)는 대중에게 예술의 접근성을 높인 사례 중 하나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이름에서 쉽게 알 수 있듯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아부다비에 루브르 박물관 분관을 유치하고, 이후 정기적으로 소장품을 대여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막대한 규모의 투자는 홍보로도 이어졌다. 이들은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잇는 고속도로에 10km마다 박물관 소장 작품들을 옥외광고로 노출했다. 자동차로 각 광고판을 지날 때마다 차 안에서 해당 작품에 대한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어떻게 달리는 자동차에서 오디오 가이드가 나오게 했을까? 먼저 지역에서 가장 청취율이 높은 라디오 채널 3개를 선정했다. 해당 채널을 듣고 있는 자동차가 옥외광고에 접근하면 FM 전송기가 기존 신호를 차단하고, 광고판에 달린 신호를 전송해 오디오 가이드가 나오도록 했다. 이는 아부다비에도 세계적인 박물관이 생겼음을 알릴 뿐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예술 작품에 대한 정보를 수용하여 호기심을 자아낼 수 있는 충분한 시도였다. 이 옥외광고 프로젝트는 2018년 칸 광고제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의료기술 속의 예술
예술은 우리 일상에서 회복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쓰였다. 예술치료는 예술활동을 통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나 내면을 표현하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감정의 이완을 유도하고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이완시키는 심리치료 방법 중 하나다. 유명한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 (Carl Gustav Jung)이 심리 상담을 요청한 고객의 무의식을 그림으로 표현하도록 한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술치료가 하나의 연구 분야로 자리 잡은 것이 벌써 90년대 초반이니, 예술이 의료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결코 최근의 트렌드는 아니라 할 수 있다.
특히 예술치료가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대상은 청소년기 이전의 유아 및 아동들이다. 잘못된 행동을 보이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 증상을 개선하는데 예술치료가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사회 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주변인과의 경쟁 가운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예술치료가 사용되기도 한다. 트라우마 장애를 입은 경우에도 예술치료가 효과적이다. 9.11 테러나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의 피해자들은 예술치료를 통해 사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얻기도 했다. 최근에는 예술치료 프로그램이 심리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를 비롯해 보다 폭넓은 계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차의과학대학교(CHA University) 산하의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에서 난임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예술치료를 들 수 있다. 난임 환자들은 자신에게만 이런 불행이 찾아온다고 자책하며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치료는 환자들이 내면에 쌓아두었던 묵은 감정들을 창작 활동을 통해 표출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울감을 완화하고 동시에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도와준다.
예술치료는 성교육에서도 활용된다. 금호타이어는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 교육복지 우선 사업 시행학교 가운데 몇 학교를 찾아가, 전문 강사들의 지도아래 미술치료를 활용한 성교육을 실시했다. 참가자가 일방적인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성 의식 및 태도, 성 행동, 성 고민 등의 주제를 직접 미술 작품으로 표현해 볼 수 있도록 지도하는 형태였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그림을 통해 말로 하기 힘든 부분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이는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서로가 만든 작품을 발표하고 토론을 하면서 올바른 성 인식과 건강한 관계 형성에 대해 스스로 깨닫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의료활동 가운데 만나는 현상 자체를 예술로 남기는 사람도 있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의 김한겸 교수는 병리학자로서 현미경을 통해 인체 조직 세포를 관찰하고 병을 진단하는 일을 한다. 그에게는 현미경으로 병든 세포들을 관찰하는 것이 하루 대부분의 일과다. 그에게 특별한 재주가 따로 있다면 그 현미경 속 세포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 예술로 승화시키는 능력이다. 그는 지난 2013년, 충청북도가 주관한 바이오현미경사진전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예술 작가로서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마이크로 현미경 속 작은 세포들의 모습에 새로운 스토리를 입혀 하나의 예술로 창조한다. 무릎 관절의 연부 조직을 100배 확대한 화면이 막걸리 한 잔 걸친 <흰 수염 할아버지>로, 통풍 환자의 요산 결정체는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으로 재인식된다. 그는 이러한 기발한 상상력을 가지고 일상의 단면에 하나둘 색다른 스토리를 입혀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라는 작은 세계를 드넓은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강한 스토리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의 일상이 병을 진단하는 의료적 기술 행위로 보일지 모르나, 그는 예술적 일상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농업 속의 예술
논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의 일상 또한 예술이 될 수 있다. 농업은 인간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산업이다. 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고, 나아가 먹는 행위와 감각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업과 예술은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사람에게 농업은 꼭 필요하지만, 예술은 꼭 필요하지 않다. 적어도 생존의 문제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살펴 보았듯, 예술은 일상을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하며, 힘있게 바꾸어 놓는다. 농업도 그 범주에서 예외는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뉴욕주, 오렌지 카운티(Orange County)의 몽고메리(Montgomery)를 들 수 있다. 몽고메리는 뉴욕시 중심부에서 차로 약 1시간 반 떨어진 거리에 있는, 농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몽고메리가 속한 오렌지 카운티에는 총 642개의 농장이 있고, 이 가운데 대형 농장도 꽤 많은 숫자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지만, 이 도시에는 예술가도 많다. 몽고메리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허드슨강(Hudson River)이 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 강은 그동안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토마스 콜(Thomas Cole)과 같은 화가들을 중심으로 미국 최초의 미술사조라 할 수 있는 허드슨파(Hudson River School)가 만들어질 정도로 예술가들에게는 꽤 인기 있는 장소였다. 이러한 역사 때문인지 허드슨강이 인접한 몽고메리에는 지금도 꽤 많은 예술가가 살고 있다. 최근에는 뉴욕시의 많은 예술가가 임대료와 주거비의 문제 때문에 이 도시로 이주를 해오기도 했다.
농부와 예술가가 공존하는 도시를 상상해보자.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그래서 도시는 고민했다. 과연 지역사회에 이미 거주하고 있는 농업인구와 예술가를 어떻게 화합하게 할 것인가? 예술가들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할까? 아니면 농부들에게 예술을 배우게 할까? 시에서는 고민 끝에 후자를 택했고, 이 결정은 도시의 문화 전반을 바꾸는 시발점이 되었다.
먼저 지역 예술가이자 언론인인 숀 델 조이스(Shawn Dell Joyce)가 설립한 월킬리버스쿨(Wall Kill River School)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지향점은 간단하다. 지역주민들에게 예술교육을 제공함과 동시에, 일상에서 직접 창작활동에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예술 창작은 그저 고상한 것이 아니라 사실 누구나 일상에서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농부들은 지역을 예술로 가꾸는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마을은 변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벽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농부들은 자신들의 농장과 도시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아가 예술가들과 농부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예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몽고메리의 농부들은 예술가의 그림을, 예술가들은 지역 농부들의 농산물들을 구매했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예술품을 살 수 있는 카페와 상점들이 생기기도 했다. 이를 구경하기 위한 관광객들도 늘기 시작했다. 농업 도시에 예술이라는 색이 입혀지니 새로운 문화와 가치가 창출된 것이다.
이제 몽고메리는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이으며, 예술과 농업이 함께 공존하는 길(trail)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길이 완성된다면, 도시는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는 농업이라는 도시의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그 위에 예술이라는 부가가치를 더했을 때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가 되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Oslo)는 최근 도시 안에서 이루어지는 농업을 장려하고 있다. 이름하여 도시농업이다. 그들이 도시농업을 장려하는 이유는, 도시인도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야 한다는 사회의식 때문이다. 텃밭을 직접 가꾸고, 그곳에서 자라나는 유기농 채소들을 재배해 먹는 과정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음은 당연지사다. 그 때문에 오슬로에서는 농사를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예술로 받아들이는 운동이 일고 있다.
자치단체 주도로 만들어진 도시농업 체험공간 로세터(Losæter)도 그러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오슬로의 항구 쪽을 걷다 보면, 말들이 밭을 갈고, 많은 사람들이 각종 곡물과 채소를 재배하는 다소 생경한 광경을 만나볼 수 있는데, 바로 그곳이 로세터다. 로세터는 사람들이 와서 농사짓는 법을 배우는 체험의 공간이면서, 직접 재배한 곡물로 빵을 구우며 함께 삶을 나누는 문화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농사의 본질에 집중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발달된 기술로 대량 재배가 가능한 현대 농업 시대이다. 하지만 로세터 프로젝트는 효율적인 농법이나 기술 교육보다는, 손에 흙을 묻히며 재배하는 과정을 통해 느끼는 효용과 보람에 집중한다. 도시농업이 가져올 사회의 긍정적 변화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재배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생산 작물에 감정과 노력을 싣게 된다. 또, 최종으로 얻게된 농작물에 감사와 만족을 얻는다는 점은 예술 창작과 매우 비슷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넓은 의미에서 농사도 예술의 범주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요즘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가? 혹시 지루하고 답답한 매일을 반복하고 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의 일상을 깨울 예술 활동을 시작해 보길 권한다. 예술은 오랜 시간 고도의 훈련을 받은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의 결과물이 더 뛰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당신의 삶 가운데서도 충분히 창작을 하거나, 예술을 즐길 수 있다. 당신의 일상을 정리하며 글을 적어 보거나, 때로는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해봐도 좋다. 당신이 매일 단조롭게 하는 일에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스토리를 입혀보자. 그 작업을 사람들은 예술이라 부를 것이다. 적어도 오늘 우리는 예술이 마케팅에서도, 의료계에서도, 농업에서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당신의 일상에서도 예술이 영향력을 미치리라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사실 당신의 일상은 이미 그 자체가 예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