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우리는 건축의 영향을 받아왔고, 건축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물론 모두가 건축물을 예술적으로 분석하며 직접 설계할 수 있는 건축가들은 아니지만, 주변의 건축물들을 인지하고, 이에 따라 행동을 보이는 것은 관찰 가능한 사실이다. 건축의 영역 중에서도 공공 건축(Public architecture)은 대규모적 측면에서 인간 심리와 행동의 건축학적 영향을 반영하고 있고, 소수의 특정 인원이 아닌 대중(Mass) 모두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건축이라는 단어에 여전히 많은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건축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은 역사가 깊은 문화유산이나, 건축가들이 지은 대형 건축물들 혹은 형이상학적이고 예술 작품과 같은 건축물의 이미지일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주변에서 쉽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소규모의 구조물보다는, 넓은 부지에 정밀하게 설계된 견고한 건축물들을 주로 인식하기 때문에 거리가 멀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예시를 살펴보자.
올해 8월, 일본 도쿄의 공원에 매우 특이한 형태의 공중 화장실이 세워졌다.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반 시게루(坂茂)가 세운 이 공중 화장실은 외관이 형형색색의 투명 유리로 되어있어 화장실 외부에서도 내부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아할 수도 있지만 의도는 명확하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순간, 투명했던 유리는 순식간에 불투명하게 변한다. 이러한 구조는 이용자들이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안전한 상태로 있을 수 있도록 안심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 공중 화장실은 도쿄의 ‘화장실 프로젝트(Tokyo Toilet Project)’의 일환으로, 다른 유명 건축가들 역시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각기 다른 형태로 독창적인 화장실을 설계하였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그동안 지배적이었던 “공중 화장실은 더럽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고정관념을 부수고,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포용적인 곳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건축은 거대한 모습에서 벗어서 서서히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으며, 더불어 우리의 생활 환경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공공성의 차원에서 본 공공 건축
한국에서 공공 건축은 공공청사나 주민센터, 경찰서와 소방서, 학교 도서관 도립예술회관과 같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가 등의 예산으로 짓는 건축물로 정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국가적 차원보다는 공공이라는 단어에 더 집중하여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공공(公共)은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좀 더 넓게 해석하자면, 성별・인종・장애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형식상 법적으로 공공 건축이어도 모든 이들이 향유할 수 없다면, 공공이라는 논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The role of the public realm is to illuminate human events by providing a space of appearances, a space of visibility, in which men and women can be seen, heard, and reveal, through word and action, who they are. For them, appearance constitutes reality, and its possibility depends on a public sphere in which things can come out of a dark and sheltered existence.
공공 영역의 역할은 인상의 공간, 가시의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인간들의 사건을 비추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말과 행동, 누구인지를 통해 보이고, 들려지고, 밝혀진다. 그들에게 인상은 현실을 구성하고, 그 가능성은 어둡고 보호받는 존재에게서 나올 수 있는 곳, 즉 공공 영역에 달려있다.
– Fina Birulés-
공공 건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으로 동의하는 부분은 바로 공공 건축이 건축학적 측면을 넘어 사회적인 측면까지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공 건축을 구성하는 사회적인 요소들은 포용과 상호작용을 통해 통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공공 건축은 건축의 기본적인 기능을 넘어 사회통합의 매개체로 작용하기 시작하였고, 전 세계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를 수행하고 있다.
핀란드 거리로 나온 가구, Mokša
거리를 걷다보면 벤치와 같이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구축물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구축물을 가리켜 거리 가구(Street Furniture)라고 부른다. 거리 가구는 말 그대로 본래 집 안에 있는 가구들이 공공공간으로 나온 것을 의미하며, 1800년대에 본격적인 산업화를 이루면서 발전되었다. 건축물보다는 시설물로 흔히 불리지만, 건물이 없는 평면적인 공간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공공 건축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거리 가구 중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인 가구를 꼽으라면 핀란드 라흐티(Llahti)에 있는 가구를 예로 들 수 있다. Mokša라고 불리는 이 구조물은 핀란드 건축회사인 sito Ltd의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작은 집 모양의 형태를 한 Mokša는 윗부분에 환한 조명 패널이 설치되어 있고, 내부의 스위치로 세기를 조정할 수 있다. 아래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수평 벤치 형태를 띠고 있다. 견고한 철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외부에 목재로 만들어진 내부가 아늑함을 더해주고 있다. 이 거리 가구의 목적은 바로 라흐티의 길고 어두운 겨울밤을 나기 위해서다.
언뜻 보기에 매우 단순해 보이는 구조물이지만, 의도에 담긴 배경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핀란드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은 밤이 매우 길다. 설령 낮이더라도 매우 빨리 어두워져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빛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빛의 부족함은 곧 높은 우울증 수치와 자살률로 이어진다. 때문에 실내에서 빛을 받을 수 있는 공간들이 발달했지만, 건물 밖에서는 실내만큼 빛을 받기 어려워진다. Mokša는 어두운 야외에서 더 많은 빛을 제공함으로써 도시의 생기를 불어넣고,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사람들을 공공공간으로 함께 연대하며 사회통합을 이루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 가치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다.
소통을 위한 평화의 공간, Espacios de Paz
대개의 도시 재생 건축 프로젝트들은 매우 많은 자본과 인력, 시간을 필요로 한다. 특히나 국가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라면 더욱 규모가 커지고, 이에 따라 투자를 하게 된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급격해진 격차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실패할 수 있다. 오히려 지역 사람들과 함께하고, 지역성을 반영한 재료와 디자인을 활용한다면 공공성의 관점에서 더 효과적인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이에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베네수엘라의 EDP(Espacios de Paz) 프로젝트다. 평화의 공간을 조성하고자 하는 EDP 프로젝트는 베네수엘라의 건축회사인 PICO Estudio와 베네수엘라 정부가 협력하여 계획했다. 5개의 프로젝트가 수도 카라카스(Caracas)를 포함한 4개의 지역에서 이루어졌고, 다채로운 색의 지붕부터 공동체의 교류를 도모한 공공 쉼터,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공 놀이터와 농구장 등 다양한 공간들이 만들어졌다. 모든 건축 과정은 일부 건축가들만 진행한 것이 아닌 지역공동체와 학생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협력하여 이루어졌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공간의 변화를 통해 도시 내 사회적 상호작용을 활성화하고, 사회적 소외가 만연한 장소에서 평화와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불안정한 정치와 치안, 도시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시민들은 상당한 빈곤을 겪고 있다. 다시 말해 지역 공동체가 많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인 것이다. EDP는 베네수엘라의 도시 전체를 재건축하는 방식 대신 빈 곳에 시민 간 소통을 증진할 수 있는 중소형 규모의 건축물들을 설치하여 효율적인 사회혁신의 방안을 제안했다.
모빌리티 공간혁신의 선두주자, 쿠리치바 버스정류장
많은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대중교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정류장인데, 이들은 너무 흔한 나머지 위에서 언급한 공공 건축의 역할을 하는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대중교통과 정류장은 환경, 그리고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회의 모습 자체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그러나 대중교통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면 공공성에 맞지 않게 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두 요소가 원활히 순환될 때 비로소 공공 건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는 브라질 쿠리치바(Curitiba)의 버스정류장이다. 이곳의 모든 버스정류장은 투명하고 긴 튜브 형태를 띠고 있으며, 들어오는 입구와 여러 개의 승강구가 있다. 정류장은 승차요금을 미리 지불하게 하며, 승차를 위해 일렬로 서는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효율적인 탑승을 가능하게 한다. 이곳들의 진정한 가치는 교통체증을 함께 감소시키고 환경오염 방지에 기여하며, 승강구와 버스의 문 사이가 가깝게 이어져 있어 사회적 약자들도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쿠리치바의 혁신은 정류장 건축의 변화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1960년대 쿠리치바는 급격한 인구증가를 겪으며 새로운 교통정책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 당시 시장이었던 건축가 출신 자이메 레르네르(Jaime Lerner)는 지하철 노선과 도로의 확장 대신, 간선도로에 버스 전용노선을 설치하고 중간중간 환승 터미널을 배치하여 교통혼선을 줄였다. 또한, 주변에 시청 등 기관들을 설립하여 이동 시간을 감소하고, 반대로 사람이 자주 몰리는 공공시설들은 넓게 배치하는 등 도심집중 현상을 방지하였다. 즉 물리적 구조물도 설계하였지만, 그 구조물을 둘러싼 무형적인 시스템 역시 치밀하게 설계하고 균형을 맞춤으로써 효율성과 공공성을 모두 잡은 것이다.
각 건축물은 서로 다른 목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으며, 설계를 위해서 건축물을 둘러싸게 될 주변 환경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랐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세 건축물은 물리적 규모가 작은 만큼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둔 대규모 도시재생보다 파급효과가 낮지만, 도시재생의 방향성에 대한 긍정적인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공통점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공공 건축물은 영향력이 좁은 만큼, 인간을 포함한 그 지역에 사는 생명체들을 우선으로 두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공공 건축물 설계가 한 지역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된다면, 현대 사회에서 필요하지만 부족한 포용적인 가치들을 확산시키는 방식도 매우 효과적으로 변할 것이다.
First life, then spaces, then buildings.
The other way around never works.
첫 번째가 생명, 두 번째가 공간, 세 번째가 건물이다.
그 반대는 절대로 성립되지 않는다.
– Jan Geh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