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1851년, 런던에서 시작된 엑스포는 산업과 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무대에서 인류의 미래를 모색하는 글로벌 담론의 장으로 진화해 왔다. 국가들은 국제박람회기구(BIE)의 공정한 규칙 아래 문화와 기술, 비전 등 국가의 풍경을 연출한다.

▪ 그랜드링이 중심이 된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공간은 통합과 연결의 철학을 공간적으로 구현하고 기술을 넘어 사람 중심의 미래 사회를 사유한다.

▪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에 참여한 한국관은 감각과 참여 중심의 전시로 해석의 여백을 열어두었고, 일본관은 정서적 지속가능성과 기술의 조화를 통해 삶의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다음 개최지인 사우디아라비아관은 인간 중심의 서사를 통해 전통과 미래를 이어주는 내러티브를 구축했다.

 


 

1851년 런던, 유리와 철로 지어진 크리스탈 팰리스(Crystal Palace)는 그 자체로 기술과 제국의 선언이었다.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던 영국은 세계 최초 엑스포에서 자국의 위상을 높이며 다른 나라의 현재들을 한데 불러모았다. 이후 엑스포는 시대에 따라 형태를 바꾸며 진화해 왔다. 지금도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히는 엑스포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로 여겨진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까지 엑스포는 국가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적 위상을 과시하는 무대였다. 증기기관, 철도, 전화기 같은 신기술의 등장은 사람들의 흥미를 넘어 근대 국가의 힘과 번영을 상징했다. 냉전기에는 엑스포가 이념과 체제, 경제 발전 모델 간의 경쟁을 펼치는 장으로 활용되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서는 환경, 생명과학, 기술, 그리고 “공존”과 같은 복합적인 주제가 중심을 이루었다. 그렇게 엑스포는 하나의 무대이자 국가 서사의 총체적 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 안을 채운 파빌리온은 건축물이면서 동시에 이야기의 형식이다. 어떤 재료로 짓고, 어떤 동선을 설계하며, 어떤 메시지를 걸어두는가에 따라 국가의 태도와 방향이 드러난다. 엑스포는 결국 “국가의 풍경”을 펼쳐 보이는 일이다.

 

엑스포는 비엔날레나 지역 축제처럼 특정 지역의 문화, 예술을 소개하거나 단기적이고 제한된 이벤트성 테마를 다루지 않는다. 국가 단위로 참여하는 엑스포에서는 각국이 독자적인 파빌리온을 통해 자국의 문화와 역사, 기술과 미래 비전을 종합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다른 행사들과 명확히 구별된다. 오늘날 엑스포는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담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존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통해, 시대적 요구에 따른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런던에 지어진 크리스털 팰리스 © BIE
BIE 홈페이지 © BIE

모두를 위한 약속: 엑스포의 규칙들

엑스포는 국제박람회기구(이하 BIE)에서 관장한다. BIE는 엑스포의 난립과 상업화를 방지하고 국가 간 공정한 전시를 보장하기 위해 1928년 프랑스 파리에 설립된 국제기구다. 우리가 흔히 엑스포라고 부르는 여러 행사들 가운데서도 BIE의 공식 승인을 받은 행사만이 진정한 의미의 “엑스포”로 인정된다.

 

1993년, 노란 마스코트 꿈돌이와 함께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대전 엑스포는 당시 한국 사회에 과학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상징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엑스포는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오랫동안 그 이름조차 낯선 존재로 남게 되었다. 그런 엑스포가 다시금 국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대한민국이 유치에 나섰던 “2030 부산 엑스포”였다. 비록 최종 개최지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Riyadh)로 결정되며 유치에는 아쉽게 실패했지만, 이 치열한 유치전 과정을 통해 엑스포라는 국제 행사가 국민들의 관심 속에 다시 자리 잡게 되었다.

 

엑스포 개최지는 BIE 총회에서 회원국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유치를 희망하는 도시는 사전에 유치 계획서를 제출하고, 수년간의 홍보 활동과 현장 실사 평가를 거친다. 이후 최종 개최지는 회원국들의 비밀 투표를 통해 다수 득표제로 선정되는데 이 과정은 해당 국가의 외교력, 인프라 수준, 주제 기획력, 국제적 신뢰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국제박람회기구(BIE)는 엑스포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5년마다 열리는 등록 엑스포(International Registered Exhibition)로, 흔히 “월드 엑스포”라 불린다. 참가국은 독자적인 파빌리온을 직접 건설할 수 있으며 보편적인 인류 문제를 주제로 최대 6개월간 개최한다. 대표적으로 2010 상하이 엑스포, 2020 두바이 엑스포, 2025 간사이 엑스포가 여기에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인정 엑스포(International Recognized Exhibition)로, 등록 엑스포 사이에 열리는 중소 규모의 박람회다. 약 3개월간 열리며, 참가국은 주최국이 제공한 공동 전시공간 내에 전시를 구성해야 한다. 주제는 주최국이 설정하며, 1993 대전 엑스포와 2012 여수 엑스포가 이에 속한다.

 

한편 두 엑스포 간 개최 간격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1928년 협약에서는 동일 유형 엑스포 간 최소 6년 간격을 규정했고(1948년 의정서에서 일부 예외 조항 도입) 1972년 의정서에서는 이를 10년으로 조정했다. 이후 1988년 개정 의정서를 통해 현재와 같은 5년 간격이 정착되었다. 이러한 분류와 주기 조정은 엑스포의 공공성과 국제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1988년 이후 5년마다 열리는 등록 엑스포(International Registered Exhibition)의 규칙을 처음으로 깬 사례는 2020 두바이 엑스포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개최가 1년 연기되어 실제 개막은 2021년에 이루어졌다. <마음의 연결, 미래의 창조(Connecting Minds, Creating the Future)>를 주제로 열린 2020 두바이 엑스포는 기술과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자 했다. 이로 인해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이례적으로 3~4년 만에 빠르게 돌아왔다. 오사카 간사이에서 열리는 *2025 오사카·간사이·재팬 엑스포(Expo 2025 Osaka, Kansai, Japan — 이하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모두의 삶을 위한 미래 사회 설계(Designing Future Society for Our Lives)>라는 보다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번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1970년에 진행된 오사카 엑스포와 차별을 두기 위해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라고 명명한다.

간사이 지역에서 열리는 두 번째 엑스포인 이번 행사는 1970년 오사카 엑스포가 산업과 기술의 낙관주의를 표방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고령화, 기후 위기, 연결의 피로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의식을 포괄하며 “삶의 질”에 집중한다. 어느 순간 엑스포의 패러다임은 기술 중심에서 사회적 가치와 관계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참가국들은 이 주제 아래 “삶의 미래”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시 공간에 구현할 예정이다.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개최 장소 전경 © Expo 2025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마스코트 © Expo 2025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미래 사회의 실험장

#작지만 강한 공간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간사이만 인근의 인공섬 유메시마에서 열린다. 이번 엑스포는 <미래 사회의 설계(Designing Future Society for Our Lives)>를 주제로, 인간 중심의 기술, 지속 가능성, 생명과 건강, 다양성과 포용을 핵심 키워드로 삼는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기술의 연결”을 지향점으로 삼고 유니버설 디자인과 젠더리스, 기후에 대응한 공공건축 등 현재의 사회적 흐름을 엑스포 공간 안에 반영하고 있다.

 

공간 구성은 압도적인 규모보다는 생활 속 혁신과 세심한 배려에 초점을 둔다. 좁은 섬 위에 정갈하게 배치된 전시관들은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최고의 효율과 미감을 추구하는 일본의 공간 철학을 보여준다. 이는 “작지만 강한” 일본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이 두드러지는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안내 패널, 휠체어 진입이 가능한 무대, 젠더 구분 없는 화장실 표기 등은 누구나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중립적 언어와 젠더리스 아이콘 또한 일본 사회의 포용적 감수성을 반영한다.

 

 

#무대가 된 엑스포, 전시 너머의 경험들

 

엑스포의 중심에는 “8인의 질문”이 있다. 이번 엑스포의 심장부인 시그니처 파빌리온(Signature Pavilion)은 일본의 각기 다른 분야의 큐레이터 8인이 제안한 문제의식으로 구성된다. <Better Co-Being>, <Future of Life>,<Jellyfish Pavilion>, <null²> 등의 전시관은 인공지능, 생명윤리, 연결성, 존재론 등 동시대의 복합적 주제를 건축, 경험, 인터랙션 방식으로 구현한다. 각 관은 하나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품고 있으며 관람객은 그 질문을 걷고 체험하는 참여자가 된다.

 

또한 UN 등 국제기구들이 운영하는 국제관(Pavilion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s)은 전 지구적 과제, 특히 SDGs(지속가능발전목표)를 테마로 한 정책형 전시와 교육적 아젠다를 담는다. 이는 단지 “알리는” 공간이 아니라 관람객이 주체적으로 토론하고 해결안을 제안할 수 있도록 설계된 “참여형” 공간이다. 파나소닉, 미쓰비시, NTT 등 일본의 대표 기업이 참여한 기업관(Pavilion of Corporations)도 곳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에서는 스마트 시티, 디지털 헬스, 모빌리티, 에너지 솔루션 등을 실험적 형태로 구현한다. 미래 기술이 어떻게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지를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까르띠에가 주도한 “Women’s Pavilion”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브랜드가 보석이 아닌 사회적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점이 이례적인데 이곳은  <여성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를 건축, 영상, 텍스타일,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풀어낸다. 여성의 서사가 단지 페미니즘의 영역을 넘어 기후, 돌봄, 기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감각적으로 탐색한다.

 

엑스포의 메인은 역시 국가관이다. 158개의 국가관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리고 국가관 틈과 틈 사이, 엑스포 곳곳에서는 음악, 무용, 융합 퍼포먼스가 무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관람객은 전시와 공연 사이를 유영하며 “참여하는 방문자”라는 역할로 초대된다.

일본관 © Expo 2025
일본관 전시 전경 © 직접 촬영

#미래를 묻는 전시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엑스포 형식 자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과거의 기술 중심 전시에서 벗어나, 이 시대에 맞는 “말하기의 방식”을 탐색한다. 주제와 공간 구성은 “사람 중심의 미래 사회”라는 비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실험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기술을 어떻게 보여주는가보다 그것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묻는 구성은 엑스포의 정체성을 한층 더 확장시킨다.

 

이러한 철학은 주제 키워드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래 사회의 설계>는 단지 기술적 상상력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미래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그것이 누구의 삶을 위한 것인가를 묻는다. 이를 구체화하는 세 가지 소주제는 다음과 같다.

 

Saving Lives (생명을 구하다): 공중보건 향상, 재난 대응, 기후위기 대응 등 생명을 보호하는 사회적 시스템과 기술

Empowering Lives (삶의 가능성을 확장하다): 고령화 대응, 원격 교육, 건강한 삶의 연장 등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술과 환경

Connecting Lives (삶을 연결하다): ICT 기반 네트워크, 감정적 연결, 사회적 포용성을 위한 공동체 구축

 

이 키워드들은 기술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엑스포의 공간, 콘텐츠, 운영 전반에 걸쳐 구체화된다. 그 결과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특정한 미래상을 단정적으로 제시하기보다 관람객 스스로가 미래를 사유하도록 유도하는 열린 장으로 기능한다. 정돈된 공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공존, 작지만 깊은 배려—이처럼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미래 사회를 위한 전시 형식의 새로운 기준점을 제안하고 있다.

 

#그랜드링, 두 층의 서사를 품은 구조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의 중심에는 그랜드링(Grand Ring)이 놓여 있다. 행사장 전체를 원형으로 감싸며 주요 동선을 연결하는 이 목조 건축물은 기념을 넘어 엑스포의 상징이자 개념적 출발점이다. 일본 전통 건축에서 사용되는 누키(Nuki) 기법과 현대 공법이 결합된 이 구조물은 “다양성 속의 통합”이라는 주제를 건축 언어로 풀어낸다.

 

뿐만 아니라 그랜드링은 오사카의 습하고 강한 햇빛, 예측 불가능한 기후에 대응하는 실질적 쉼터이자 이동의 프레임으로 기능한다. 간척으로 조성된 인공섬 유메시마 위에 세워진 엑스포는 이 구조물을 통해 제한된 면적 안에서 수직적 공간 분리를 적극 시도했다. 그랜드링은 수평적 이동과 수직적 경험을 동시에 유도하는 구조로 작동하며 일본 목조건축의 기술과 생태적 감수성이 집약된 공간으로 평가된다.

 

그 아래를 걷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을 넘어 엑스포가 말하는 “삶의 연결”이라는 철학을 공간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이 된다. 바람과 그늘을 품은 그 길은 재료와 구조가 몸에 닿는 감각을 통해 관람객의 이동을 “생각하게 되는”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걸음”이 의미를 갖는 순간, 구조물은 단지 기능을 넘어 서사를 가진 공간이 된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그랜드링의 상부 공간이다. 위층은 또 다른 세계로 작동하며 조형 언어, 조도, 음향이 달라지면서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래층이 쉼과 이동의 축이라면 위층은 체험과 몰입의 장으로 기능하며 하나의 구조물이 복층적 서사를 품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랜드링 © 직접 촬영
그랜드링 내부 © 직접 촬영

서사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가 말하는 방식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는 기술보다 서사, 규모보다 맥락을 말하는 자리였다. 각국의 파빌리온은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그 방식은 제각각이다. 감각으로 미래를 암시하거나 일상적 기술을 통해 정서적 지속가능성을 설계하거나 전통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세 국가의 전시를 중심으로 “국가가 말하는 방식”의 차이를 살펴본다.

 

#한국관, 감각의 총합+열린 해석의 전시

한국관은 감각 중심의 연출이 인상 깊다. 외관은 유려하고 정제되어 있으며 내부는 다층적인 공간 구성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전시의 흐름은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지지만 각 장면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입구에서는 관람객이 한국관이 던지는 질문에 응답하는데, 이 목소리들이 AI에 의해 음악으로 재구성된다. 수많은 언어로 녹음된 목소리는 다국적 관람객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공감각적 사운드로 확장된다. 빛과 소리가 어우러지는 이 연출은 세련될 뿐만 아니라 참여형 콘텐츠로서의 완성도 또한 높다.

 

이어지는 공간은 황폐한 미래 도시를 형상화한 환경 속에서 시작된다. 콘크리트, 폐자재, 철제 구조물들이 배치된 이 공간은 다소 차갑지만 관람객이 직접 에너지를 생성하거나 생태 회복을 상상하는 액티비티가 포함되어 있어 체험 요소로서 의미를 갖는다. 기술과 생명이 공존하는 미래 환경에 대한 은유적 메시지가 녹아 있다. 마지막 장면은 다면 스크린을 활용한 미래형 음악극으로 구성된다. AI 기술로 구현한 2040년의 한국 사회 속 가족 서사를 통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이야기하며 몰입을 유도한다. 공간 구성은 시청각적 몰입을 통해 서사를 전달하며 끝에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구조는 한국적 순환의 미감을 암시한다.

 

전체적으로 한국관은 파빌리온이라기보다 하나의 “무명천”처럼 느껴진다. 한국 고유의 여백이 외관에서부터 느껴지는 형상이다. 전시관 내부 역시 영상과 감각적 경험이 전시의 대부분을 구성하며 특정한 메시지를 강하게 주장하기보다는 해석의 여백을 남기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했다. K-컬처가 확산된 이후, 한국은 더 이상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조금은 모호한 상태로 “아름다움”만을 남겨두었다.

 

한국관은 “전 세계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대한민국의 첨단 기술과 생명에 대한 존중,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기원이 전시 전반에 스며 있다. 이 공간은 단정하고 우아하며 감각과 기술의 조형력도 우수하다. 다만 그 안에 담긴 국가적 메시지와 서사의 흐름이 더 선명하게 들려온다면 감각의 성취를 넘어 더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엑스포는 “무엇을 보여주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를 묻는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관, 정서적 지속가능성을 설계

일본관은 이번 엑스포의 주제인 “우리의 삶을 위한 미래 사회 설계”를 정면으로 받아들인다. <삶 사이(Living Between Lives)>라는 부제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체적인 기술과 정책으로 제안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한 바이오가스 발전 시스템, 탄소 재활용 기술 등은 일본이 축적해 온 환경 정책의 실제 사례로 구현된다. 관람객은 이를 단순히 시청각적 정보로 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거나 관찰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직관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전시 구성은 절제되어 있지만 정갈하다. 일본 국민 모두가 익숙하고 사랑하는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정서적 코드가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주최국으로서의 역할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하게 제안하는 방식이 인상 깊다.

 

일본관은 세 개의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공간은 독립된 주제를 지니지만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흐름을 형성한다. 기술, 환경, 문화라는 키워드를 축으로 각 영역이 “삶의 지속가능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파빌리온 전체가 하나의 설계된 움직임처럼 작동한다. 이 전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일본 특유의 정교함과 장인정신이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기술과 재료의 사용, 표현의 균형감은 일본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공간으로 보여준다. 관람객은 단지 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장인정신이 일본 사회에 어떻게 뿌리내렸고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으로 이어지는 미래

사우디아라비아관은 AI, 몰입형 미디어, 인터랙티브 기술로 넘쳐나는 엑스포의 흐름 속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전통적인 도시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이 파빌리온은 왕국의 과거–현재–미래를 하나의 연속된 서사로 보여준다. 공간은 마치 한 편의 이야기처럼 구성되며 관람객은 고대 마을에서 미래 도시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천천히 따라가게 된다.

 

이 파빌리온은 건축 외관부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막의 모래색을 닮은 샌드 컬러 외벽과 그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식물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과 문화가 피어나는 중동 특유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단순한 조형미를 넘어 파빌리온 전체가 문화적 은유로 작용한다. 특히 이 전시는 기술이 아닌 사람을 전면에 내세운다. 실제 아티스트가 전시장 안에서 전통 문양을 컵에 직접 그리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창작 행위가 공간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들의 현장 퍼포먼스가 더해져 공간 전체가 사람의 손과 숨결로 채워진다. 그렇게 인간의 손이 만드는 예술이 미래를 연결하는 문화적 힘임을 드러낸다.

 

또한 전시장에서는 영상 콘텐츠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스포츠 분야에서도 높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음을 강조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의 힘이 기술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문화와 스포츠라는 일상의 경험을 통해 공동체 정신을 확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통과 미래, 문화와 기술을 연결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단단한 내러티브를 구축해 낸다.

 

2025년 엑스포 그다음 개최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다. 2030 리야드 엑스포는 사우디 비전 2030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중동과 세계를 잇는 새로운 문화·기술의 거점으로 기능할 예정이다. 이번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에서 보여준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시는 다음 개최국으로서의 태도와 방향성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예고편 같은 전시였다.

한국관 © Expo 2025
사우디아라비아관 전시 전경 © 직접 촬영

정체성은 공간에 어떻게 남는가: 파빌리온, 건축, 그리고 국가

파빌리온은 국가의 자화상이다. 그것은 전략의 배치도이자 국가가 말하고 싶은 방식이 구체화되는 전시 형식이다. 그러나 정체성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다. 건축의 재료, 내러티브의 밀도, 전시의 방향성과 의도적으로 비워 둔 여백에 이르기까지…그 모든 요소가 국가의 “말하기 방식”을 설계한다.

 

2025년 간사이 엑스포는 각국이 어떤 얼굴로 미래를 말하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그 얼굴은 때로는 익숙했고, 때로는 낯설었다. 풍경은 충분히 펼쳐졌지만 관람객 각자가 그중 어떤 장면에서 발을 멈추었는지에 따라 엑스포의 경험은 달라진다. “펼쳐진 풍경”은 존재하지만 그 위를 걷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엑스포는 한때 기술의 최전선을 선보이는 무대였고 국가 산업 비전이 응축된 자리이기도 했다. 당시의 엑스포들은 분명히 시대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기술의 진보를 대중적으로 공유하는 데 기여해 왔다. 지금은 그 시기를 지나 기술 자체보다 그것이 어떤 서사로 엮이고 누구에게 전달되는가를 고민하는 전시 형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간사이 엑스포는 여전히 AI, 지속가능성, 기후, 생명과학을 이야기하지만 그 방식은 이전보다 훨씬 섬세하고 다층적이다. 감탄을 유도하는 압도적 진열이 아니라 성찰과 질문을 유도하는 구성이다.

 

“미래”는 더 이상 하나의 언어로는 정의되지 않는다. 너무 많은 미래가 너무 자주 이야기되는 시대, 우리는 엑스포라는 형식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엑스포는 여전히 “어떻게 말하느냐”를 묻는 자리이며 이번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역시 그 질문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증명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