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서른여섯 나이에 이미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된 요안 부르주아(Yoann Bourgeois, 1981-). 프랑스에서 시작해 이제 전 세계가 사랑하는 안무가가 된 요안 부르주아는 현대 서커스, 무언극, 현대무용 등 장르 경계를 교란시키고 모든 장르를 혼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이렇게 혼합된 장르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프랑스 국립서커스예술센터(CNAN)와 국립현대무용센터(CNDC)에서 병행 수학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CNAN과 CNDC에서 병행 수학하면서 무중력 아래에서의 신체 상태와 움직임에 대해 연구했는데, 이는 그의 초기 작품인 <도망(Cavale), 2010>에서부터 <떨어지는 사람(Celui Qui Tombe), 2014>, <역사의 역학, 정지점에 접근하려는 시도(La Mécanique de l’histoire, une tentative d’approche d’un point de suspension), 2017> 등에서 나타나는 ‘정지점’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작품 세계를 “정지점에 접근하려는 시도”로 정의하는 미술 평론가들도 있을 정도로, 그는 정지점(혹은 극점)이라는 주제와 그것에 도달하려는 과정을 고유의 퍼포먼스로 잘 드러낸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험을 통해 지구의 자전을 증명한 푸코의 진자(Pendule de Foucault)에서 영감을 받은 무대부터, 무대 자체를 과도한 중력의 장으로 변형하며 문자 그대로 시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퍼포먼스까지 과감히 선보이는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곡예사다.

 

자기 작품을 무용의 시(詩)라고 지칭하는 그는, 안무를 통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전달하는 매개자로서의 자신을 정의한다. 실제로 그가 탐구하는 정지점, 역학, 중력 등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미지의 것들을 극대화하거나 축소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Yoann Bourgeois 'Opening 2' Ⓒ LG아트센터

그의 작품 세계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를 세계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역사의 역학, 정지점에 접근하려는 시도, 2017>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국립묘지이자 문화재인 파리 팡테온(Panthéon)에서 진행된 <역사의 역학>은 프랑스 위인들의 묘지가 위치한 장소적 특성을 고려해 역사의 메커니즘을 공연의 대주제로 선택했다. <역사의 역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를 자신의 핵심 주제인 정지점을 통해 경유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안정을 찾기 위한 투쟁을 정지점을 찾기 위한 다양한 퍼포먼스로 상징화한다.

 

<궤도(Trajectoire)>에서는 무용수가 땅에서 발을 떼고 공중에서 가벼운 움직임을 선보이는데, 무용수를 공중에 띄우는 것은 결국 중력과 지렛대이다. 이 작품의 정점이 지렛대를 통해 결정되기에 결국 완전한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무용수는 정지점을 찾으려 발구르기를 멈추지 못한다.

 

한편 <평행(Équilibre)>은 불안정 상태에서 안정으로 이행하기 위한 과정들을 보여준다. 두 남녀 무용수를 소품이자 주연으로 활용하는 <평행>은 둥근 구 위에 대형 나무판자를 올린 단조로운 무대 장치 위에서 두 남녀 무용수가 완벽한 평행상태를 이루려 노력한다. 그러나 완벽한 평행 상태는 매우 미세한 움직임에도 깨지기에 정지점의 극점 주위만을 배회할 뿐 결코 완벽한 평행 상태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그들이 완벽한 평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대 자체가 회전해야 하는데, 무대 자체의 회전은 두 남녀 무용수가 건널 수 없는 건너편에서만 진행된다.

 

요안 부르주아는 <역사의 역학>에서 하나의 극점에 닿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무대화한다. 그러나 극점에 닿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노력이 각각의 극점을 담고 있기에, 결국 도달하게 되는 극점에는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역설적인 움직임이 안무로 표현된다. 이례적으로 무대에서 극점에 도달하는 순간이 연출되는 것은 <관성(Inertie)>의 무대 장치이다. <평행>과 유사한 무대 장치이지만, <관성>의 무대는 한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다. 따라서 남녀 무용수들은 정지점을 찾기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여 서로를 끌어안으려 하지만 지속적으로 실패한다. 그러나 바로 그때 역동적인 모든 움직임을 버리고 회전력이 아닌 원심력에 저항할 때 그들의 만남은 성사된다.

Yoann Bourgeois 'He Who Falls' Ⓒ LG아트센터

이제 요안 부르주아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다시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 작품 속에서 강조되는 것은 정지점처럼 보이지만, 결국 재현되는 것은 정지점이 아닌 정지점을 찾기 위한 투쟁이다. “행위 수행 과정 뒤에는 어떤 존재도 없다”는 니체의 말을 더듬어본다면, 우리는 요안 부르주아의 무대가 궁극의 목적으로서 극점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닌 극점을 찾기 위한 투쟁을 초점화하는 무대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요안 부르주아의 시적인 움직임은 자사 제품에 예술적 영감을 전이시키려 노력하는 많은 기업들에게 러브콜을 받았다. 소비자들이 제품의 기술력을 넘어 제품과 기업이 내포한 가치 지향 소비에 중점을 두기 시작한 이래로, 많은 기업이 예술적 가치를 자사 브랜드에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제품 홍보를 위한 광고 또한 제품의 기술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기업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또한 광고 자체를 상업적인 홍보물로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의 한 부분으로서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도 또한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요안 부르주아와 협업해 만들어진 광고를 단순히 기업이 요안 부르주아의 예술가적 이미지와 명성을 활용한 것으로 바라보기보다 요안 부르주아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그의 “예술적 자극의 원천”과 “응용예술”로서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무용의 스토리텔링 ‘Apple : Bounce’

1920년대의 전설적인 스턴트 액션 배우, 버스터 키튼(Buster Keato)과 요안 부르주아에게 영감을 받아 2019년 8월 공개된 애플의 광고 Bounce는 무선 이어폰 Airpods2의 광고다. 칸의 국제 광고제(칸느 라이온즈)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1분 47초의 분량으로 런던 출신의 감독 Hudson, O.가 연출했다. 실제로 요안 부르주아가 안무 디렉팅을 맡은 해당 광고는 CG(Computer Graphics)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점과 광고 음악, 감각적인 연출 등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이 광고는 지루한 일상을 시작하는 남자가 Airpods2를 착용한 채 음악을 감상하며 진정한 미소를 짓는다는 스토리텔링의 형식이다. 스토리텔링 속에서 진정한 미소를 짓게 되는 과정을 요안 부르주아의 핵심 무대 장치인 트램펄린을 통해 보여준다. 트램펄린을 통해 자유로운 움직임을 즐기면서, 삶의 기쁨을 표현하는 주인공은 요안 부르주아가 관심을 기울였던 역학적 운동인 작용/반작용의 원리와 이를 통한 정지점에 이르기 위한 여러 시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자메이카 출신의 프로듀서 겸 가수 Tessellated의 음악과 감각적으로 조화되는 움직임을 강조하는 광고는 에에팟의 노이즈 캔슬링, 무선 충전 등의 기술력 그 자체보다는 요안 부르주아의 움직임 자체를 에어팟2의 이미지 속으로 전이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요안 부르주아의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애플이 CG를 배제한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요안 부르주아는 디지털 기술보다 신체 자체에서 기인한 움직임과 극점을 통해 현실을 초월하는 정지점에 도달하는 시도를 작업의 핵심적인 테제로 삼는데, 애플이 이것을 전적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요안 부르주아의 안무 특성이 고스란히 담긴 광고 Bounce는 칸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광고제인 D&AD (Design and Art Direction) awards에서 Yellow pencil을 수상했고, 다른 국제 광고제인 The One Show에서도 6개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D&AD Awards의 심사위원은 CG를 배제하고 “카메라 안에서 모든 효과를 취하고자” 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언급했다.

 

요안 부르주아의 애플 광고는 일상에서 예술적인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으며, 서커스와 무용 예술의 혼합이 단순히 장르적 경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상업광고의 경계까지도 흐리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요안 부르주아가 다양한 기업과 협업해 작업하는 것이 “예술적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것을 의례적으로 하는 말로 치부하기에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기술의 이미지화 ‘LG Signature – <Panthéon, 2019>’

LG전자의 프리미엄 가전제품 브랜드인 LG Signature 또한 요안 부르주아와 협업한 이력이 있다. LG Signature의 슬로건인 “가전, 작품이 되다”, “삶이 예술이 되다”는 앞서 서술한 광고의 변화들과 맞닿아 있다. 제품이 아닌 작품으로서 자사의 브랜드 제품을 이미지화하려는 전략 속에서 가전제품의 작동 원리와 요안 부르주아의 안무를 접목하는 기획이 탄생한 것이다. 해당 광고는 요안 부르주아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역사의 역학, 2017>을 영상화한 <위대한 유령>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LG Signature의 에어컨 제품과 푸코의 진자에 영향을 받은 요안 부르주아의 작품 <오뚝이(Culbuto)>를 접목한 광고를 먼저 살펴보자. 무대 장치 속에서 무용수가 360도 회전하며 함께 휘날리는 하얀 천은 에어컨의 바람과 오버랩되면서 에어컨의 정제된 디자인을 요안 부르주아의 극점과 대응시켰다. 와인 셀러와 오버랩된 작품인 <부양으로부터의 균형(La Balance de Levité)>은 검은 유리판에 선 무용수가 상승과 하강의 궤도 속에서 유리판에 ‘닿으면’ 검은 유리판이 투명해지며 안과 밖의 경계를 무력화하는 작품이다. 이는 와인셀러의 노크온 기능과 조화되면서 제품의 기능과 요안 부르주아의 작품을 연결했다.

 

이 외에도 세탁기의 기능을 트램펄린을 통해 시각화하는 <월광(Clair de lune), 2018>, 벽에 부착될 수 있는 TV의 기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떨어지는 사람> 등은 LG Signature 제품의 기술력+이미지와 요안 부르주아의 작품을 접목한 광고들이다. 그의 작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가전제품을 작품화한 LG Signature의 광고는 시적인 움직임을 통해 가전제품의 이미지뿐 아니라 LG Signature의 브랜드 이미지까지 제고했다.

 

요안 부르주아의 작품 중 가장 핵심적인 작품들을 통해 광고를 선보인 LG Signature는 광고가 예술가의 작품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대중예술임을 지적한다. 명확하게 제품의 기술력을 설명하거나 전시하는 대신 움직임을 통해 기술력 자체를 이미지화하는 LG Signature의 광고를 단순히 상업 광고로만 치부하는 것은 요안 부르주아의 새로운 작품을 감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물이 되는 건 아닐까?

여러 극점 속에서

“성공은 선형이 아니다(Success Isn’t Linear)”라는 이름으로 화제가 된 요안 부르주아의 행위 예술은 요안 부르주아의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가장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려고 하지만 끊임없이 트램펄린 속으로 떨어지는 이 작품 속에서 우리는 결국은 다시 계단으로 튀어 오르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본다. 이것은 삶의 궤적이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의 작품 속에서 정지점에 도달하려는 모든 무용수의 움직임과도 겹친다.

 

정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무용수들의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완벽한 평형 상태로서의 극점 자체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우리는, 그러한 극점에 도달하기 위해 수없이 미분된 그들의 움직임 각각을 하나의 극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바라본다면, 우리는 요안 부르주아가 기업들과 협업한 광고들이 그의 극점에 대한 투쟁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극점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