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광고가 해당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구성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할 것>
<해당 방송 프로그램에서 간접광고를 하는 상품 등을 언급하거나 구매, 이용을 권유하지 아니할 것>
– 방송법 시행령 제59조 3항(간접광고)에 관한 규정 –
방송법 시행령 중 간접광고(PPL)에 대한 규정이다. 방송 제작을 위한 간접광고는 허용하지만, 정도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정도의 문제는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영향을 미치는 선인지, 어디까지가 구매 및 이용 권유인지는 주관적인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결국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다. 시청자들은 도를 넘어선 간접광고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불쾌감 때문에 채널을 돌리기도 한다.
부부싸움 도중 팩을 붙이거나 청소기를 돌리며 성능을 읊는 등. 드라마의 흐름과 무관한 제품 홍보는 정도를 넘어선 것처럼 느껴진다. 극의 흐름을 저해할 정도로 노골적인 간접광고들은 시청자들의 거부감을 심화시킨다. CF인지, 드라마인지 구별이 안 된다는 농담은 광고계와 방송계에서 더 이상 웃어넘길 수 없는 경고 메시지가 되었다.
숨기지 않는 광고의 편안함: 멜로가 체질
간접광고의 딜레마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정면 돌파한 작품이 있다. JTBC에서 방영한 <멜로가체질>이다. <멜로가체질>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거부감을 야기하지 않는 PPL의 사례로 회자된다. 다른 간접광고와 마찬가지로 서사의 흐름을 벗어남에도 시청자들의 반응이 갈리는 이유는 기만당하는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애써 간접광고임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간접광고는 기본적으로 광고가 아닌 척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누군가에게 속은 것 같은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잦았다. 프로그램 시작 전에는 간접광고가 포함되어 있음을 고지해야 하지만 드라마 중간에는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얼마나 광고 같지 않게 광고하느냐가 간접광고 성공의 척도가 되었다.
그러나 <멜로가체질>에서는 간접광고가 광고임을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는 대사에서 15초 노출되어야 하니까 기다리라는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광고임을 명확히 고지하고 그것을 유머로 소화하자 시청자들은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는 드라마의 서사가 드라마 제작 현장이라는 액자식 구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멜로가체질> 식의 정면돌파형 간접광고를 다른 작품들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비자들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제품을 노출시킬 수 있을까?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작품 안에 잘 녹아 든 형태로 제품을 홍보할 방법은 없을까?
콘텐츠 플랫폼을 통한 새로운 광고
생각의 전환은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이제 광고주들은 제작된 콘텐츠에 제품을 끼워 넣는 것이 아닌 제품 홍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15초짜리 CF가 아닌 흐름과 서사가 있는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2019년 tvN에서 방영한 자사 콘텐츠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유통 업체와 콘텐츠 플랫폼을 모두 보유한 CJ ENM은 자사 제품 홍보를 고려한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CJ몰은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과 동일한 제목의 기획전을 개최해 50억 원이 넘는 수입을 기록했다.
이러한 기획들은 제작 단계부터 제품을 고려해 콘텐츠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간접광고와 구분되지만, 엄밀히 말해 광고만을 위한 콘텐츠는 아니다. 또한 콘텐츠 플랫폼과 유통 업체를 둘 다 가지고 있는 기업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광고의 전환을 만들어 냈다고 평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시청자들이 광고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기존의 간접광고 방식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제작 단계에서부터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기획하고, 제품과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맞추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 있는 시도다.
광고가 콘텐츠가 되다: 콘텐츠 커머스
한섬(Handsome)은 TIME, TIME HOMME, SYSTEM, SYSTEM HOMME 등 여러 패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의류 제조 회사다. 2012년 1월, 현대백화점 자회사인 현대홈쇼핑이 한섬의 지분을 대거 인수했다. 한섬은 tvN과 같이 콘텐츠 플랫폼은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유튜브를 통해 자체 제작 콘텐츠를 선보였다. 한섬에서 제작한 웹 드라마 <핸드메이드 러브>는 300만 회가 넘는 누적 조회 수를 기록했고, 매출은 방영 이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한섬 공식 유튜브의 다른 콘텐츠 조회 수가 평균 3~4만 회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시도는 기념비적인 성공을 이뤘다. 콘텐츠를 앞세운 기업의 성공 사례는 이외에도 다양하다. 무신사TV는 닥터마틴 60주년을 맞아 패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기아자동차는 CJ ENM과 함께 인물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자사 제품을 홍보했다. Toss는 자사의 가치와 기업의 이념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한 달 만에 11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드라마, 다큐멘터리와 같은 콘텐츠의 형식으로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거나 기업의 가치를 홍보한 것이다.
콘텐츠 커머스라고 불리는 이런 기획들은 콘텐츠를 즐기다가 소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간접광고와 유사하다. 그러나 기업 제품이나 기업 자체를 위한 콘텐츠이기 때문에 제품의 노출 정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또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도 광고를 위한 콘텐츠임을 알기에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는다. 콘텐츠 커머스는 제품을 찾는 이들에게 제품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구매 욕구가 없던 이들도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 자사 제품의 예비 소비자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CJ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듯, 콘텐츠 커머스 시장에서는 콘텐츠 플랫폼을 가진 회사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선점한다. 또한 콘텐츠 플랫폼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질적으로 완성도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해 거대 자본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대기업에 유리한 기울어진 마케팅 전략이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경기도와 경기중소기업연합회 등에서 공동출자해 설립한 경기도주식회사는 경기도에 있는 중소기업의 콘텐츠 커머스를 돕고 있다. 경기도주식회사에서 제작한 웹드라마 <위험한 참견>에는 경기도의 중소기업 제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자본이 부족해 콘텐츠 제작이 어려운 중소기업을 공적인 차원에서 돕는 이 기획은 콘텐츠 커머스의 전략이 성공적이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대중문화가 된 광고
콘텐츠 커머스의 성공을 통해 그간 소비자가 거부감을 표한 것은 광고 자체가 아닌 속이는 행위였음이 드러났다. 광고임을 고지하고 콘텐츠가 제품의 홍보 영상임을 명확히 밝힌다면 소비자는 기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 높은 콘텐츠로 제공되는 제품 홍보에는 호의를 보인다. 제품 판매를 위해 제작된 콘텐츠라도 콘텐츠 속에 담긴 이야기와 가치에 동의할 수 있고, 그것이 감상하는 이들에게 파장을 일으킨다면 그 영상은 문화가 되고, 예술이 될 수 있다.
콘텐츠 커머스의 콘텐츠는 대중문화와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분명한 콘텐츠이기 때문에 가벼운 상업 영상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이들의 콘텐츠를 단순히 상품을 팔기 위한 마케팅 상품으로 평가절하하는 사고야말로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로 문화를 구분하던 구시대적 사고방식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제품 홍보를 위한 콘텐츠는 대중문화로 볼 수 없다고 누가 정의할 수 있을까? 콘텐츠는 자원이며, 그것을 수용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대중문화가 탄생한다는 말처럼 대중들이 콘텐츠 커머스를 다른 대중문화와 동일하게 수용할 준비가 되었다면 그것은 곧 대중문화가 되는 셈이다.
콘텐츠 커머스는 기존 마케팅 방식에 피로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한 새로운 전략이다. 광고라고 해서 광고라는 이름 안에만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 광고도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브랜드의 가치를 판매한다는 브랜딩 전략과 맞닿아있는 콘텐츠 커머스는 제품뿐 아니라 콘텐츠 속에 담긴 기업의 가치와 이미지를 판매한다. 소비자를 기만하지 않고 기업의 가치를 담아 콘텐츠로 제품을 홍보하는, 보다 진실한 전략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기업의 가치 홍보가 기업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콘텐츠 커머스의 성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