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지하철 플랫폼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하시나요?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어제 놓친 드라마나 예능, 뉴스, 웹툰을 보거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하는 경우가 많죠. 승강장 주변을 쓱 둘러봐도 보이는 건 회색 콘크리트 벽과 광고 스크린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사는 <도시의 일상을 채우는 캔버스 ‘지하철’ (상)>에 이어 승객들이 거쳐가는 지하철 플랫폼을 문화예술로 즐길 거리, 볼거리 많은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사례를 소개해드립니다.
<목록>
C. 스웨덴, 말뫼 지하철
D. 미국, 뉴욕 지하철
E. 홍콩 지하철
F. 독일, 베를린 지하철
C. 스웨덴, 말뫼 지하철
지난 2010년, 스웨덴 말뫼(Malmö) 정부는 8만 7,000명에 달하는 지역주민의 이동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철도, ‘시티 터널(Citytunneln)’을 개설했습니다. 이 철도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하철 플랫폼 어디에서도 광고를 찾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시티 터널 행정부는 지하철 공간이 주민의 문화복지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회색 콘크리트 벽에 광고판 대신 미술 작품을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을 소개해드립니다. ‘중앙철도역(Central Railway Station)’에 설치한 비디오 아트 작품 ‘Elsewhere’입니다. 이는 현대미술과 공공공간의 연결을 도모하는 ‘스웨덴 공공예술 위원회(Public Art Agency Sweden)’에서 본 철도청과 함께 기획한 것으로, ‘영구 프로젝트(Permanent art)’ 작품 중 하나입니다.
Public Art Agency Sweden 홈페이지 : https://publicartagencysweden.com
“‘Seoulmetro’를 태그 한 사진들은 대부분 전동차의 창밖을 주목하고 있으며, 승객들은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과 도시의 풍경을 보며 잠시나마 위로받는다”
위는 (상)편 기사에서 서울 지하철을 소개한 문장입니다. ‘Elsewhere’의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본 작품은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창밖의 도시와 자연 풍경을 촬영한 영상으로, 이를 지하철 플랫폼 콘크리트 벽 위에 빔프로젝트를 사용해 상영합니다. 중앙철도역을 경유하는 승객들은 열차를 기다리며 영상 안의 자연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의 쉼을 선물하는 장소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감각적인 볼거리와 소소한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또, 신진예술가에게는 공공장소 활용법 아래 작품 활동의 기회를 주죠. 문화예술 발전과 생태환경 개선으로 도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말뫼의 도시계획과도 궤를 같이합니다.
Elsewhere – projet Tania Ruiz Gutierrez à Malmö
D. 미국, 뉴욕 지하철
1920년대 뉴욕은 도시가 팽창하면서 주거와 업무공간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대안으로 시민들을 위한 대중교통인 지하철을 도입했습니다. 뉴욕의 지하철은 100년의 세월을 지나온 만큼 건물 내에 유지·보수가 시급한 구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세월 덕분에 시민들은 지하철을 삶의 일부처럼 친숙하게 여기며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의 공간으로 생각하죠. 거리예술가, 행위예술가,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버스킹, 거리예술, 연극, 캠페인 등 다양한 퍼포먼스의 무대로 활용합니다.
<목록>
1) ‘IMPROV EVERYWHERE’의 ‘The No Pants Subway Ride’
2) 더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의 ‘뉴욕 지하철 버스킹(NYC SUBWAY BUSKING)’
3) 뉴욕 지하철의 ‘MTA Arts & Design’ 사업
1) ‘IMPROV EVERYWHERE(이하 IE)’의 ‘The No Pants Subway Ride’
2년 전 오픈북에서 소개해드렸던 ‘재밌으면 그냥 즐기면 되는 거야! 공공장소에서 특별한 경험과 즐거운 일상을 만드는 <IMPROV EVERYWHERE>’ 기사를 기억하시나요? 뉴욕 지하철은 시민들이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창구입니다.
IE는 뉴욕 기반의 코미디팀인데요, 공공장소가 가진 틀에 박힌 이미지를 재치있게 비틉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연출해 일상에 웃음을 전하죠. IE는 17년간 1월 초마다 뉴욕 지하철에서 바지를 입지 않고 지하철을 타는 퍼포먼스인 ‘No Pants Subway Ride’를 진행해 왔습니다. 또, 비정기적으로 시의성 있는 퍼포먼스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지 없이 지하철 타기(No Pants Subway Ride)>
<지하철 사우나(The Subway Spa), 2014>
뉴욕 지하철은 냉난방이 원활하지 않아 여름에 상당히 덥다고 합니다. ‘The Subway Spa’는 이런 상황을 풍자한 퍼포먼스입니다.
2) 더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의 ‘뉴욕 지하철 버스킹(NYC SUBWAY BUSKING)’
‘뉴욕 지하철 버스킹’은 코미디언 겸 배우 ‘지미 팰런(Jimmy Fallon)’이 진행하는 미국 NBC ‘더 투나잇 쇼’의 특별 프로그램입니다. 주요 내용은 이와 같습니다. 뉴욕 지하철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마룬파이브(Maroon5)’ 등 팝스타들이 아무도 못 알아보게 변장한 후 본인 노래로 버스킹을 시작합니다. 지나가던 승객들은 노래 잘하는 팀의 버스킹인 줄 알고 관심 있게 지켜보죠. 노래 후렴부에 들어서면 팝스타와 지미 팰런이 가발과 모자를 벗고 정체를 드러냅니다. 구경하고 있던 승객들은 자지러지게 놀라죠. 그리고 마치 공연장에 온 것처럼 시민들과 함께 깜짝 미니 콘서트를 즐깁니다. 아주 잠깐의 퍼포먼스지만 지하철 승객들에게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 특별한 선물이 아닐까요.
3) 뉴욕 지하철의 ‘MTA Arts & Design’ 사업
홈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MTAArtsDesign
“A lot of exciting underground art has been unveiled recently – and yours could be next”
뉴욕시의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 MTA)는 통근열차를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하루 870만 명의 뉴욕 시민이 이 통근열차를 이용합니다. 본래 1980년대의 뉴욕 지하철은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바닥에 쌓여있고, 전동차 벽면에는 아무렇게나 그려진 낙서가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지하철의 치안 상황도 최악이었습니다. 당시 교통국 국장은 뉴욕 지하철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을 도입하여 대대적으로 지하철 낙서를 지웁니다.
동시에 ‘MTA Arts & Design’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여 지하철 내에 모자이크, 유리를 활용해 설치작품을 제작했습니다. 또한, 디지털 미디어, 포스터 그래픽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하고 신진 작가에서 유명 중견 작가까지 아우르며 관리합니다. 더불어 음악공연, 시낭독 등 문화행사를 개최하여 승객들이 이동 중에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의 질을 높이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Eugenie Tung ’16 Windows’, 2007>
지하철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는 30초에서 30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뉴욕 브루클린(Brooklyn)의 ‘뉴 랏츠 애비뉴(New Lots Avenue) 역’ 주변은 낮은 건물이 많은 단독주택 지구입니다. 작가는 승강장 유리창 너머의 이웃들의 일상은 어떨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6개의 유리 소재 패널을 설치하고 그곳에 도시인의 일상을 그려 넣었습니다. 어느 지역에 살든,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우리 삶에는 특별히 다를 것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Ezra Wube’s, ‘Fulton Flow’, 2019>
MTA Arts & Design에서 의뢰한 새로운 디지털 애니메이션 작품
E. 홍콩 지하철
‘Art in MTR’
‘아트인 MTR(Art in MTR)’은 문화예술로 지하철 서비스와 환경을 개선하는 홍콩 지하철 ‘MTR(Mass Transit Railway)’의 사업입니다. MTR은 지하철이 도시의 일부로서 사람들을 연결하면서 동시에 홍콩의 도시 여행을 담당한다고 믿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승객의 삶을 함께 여행하는 동반자로서 승객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즐거움, 영감을 줄 의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2018년 ‘Art in MTR 아트북’에 소개된 작품 몇 가지를 보여드립니다.
MTR이 사람과 물자 교류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과거와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을 상징하는 모스 부호와 QR코드 이미지를 같이 맵핑했습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든 공공미술 작품으로, ‘케네디 타운 역(Kennedy Town Station)’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합니다. 씨앗을 심어 열매를 맺는다는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홍콩청소년예술재단(Hong Kong Youth Arts Foundation)’의 150여 명의 학생들과 지역 일러스트레이터 ‘스텔라 소(Stella So)’가 함께 한 작품입니다. ‘웨스턴 디스트릭트(the Western District)’의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다룬 일러스트로 역사 내부를 채웠습니다.
F. 독일, 베를린 지하철
독일의 ‘베를린 현대미술관(The Berlinische Galerie)’에서는 지하철 플랫폼 건축디자인의 역사를 상설전시하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의 소재를 활용해 각각 다른 디자인 콘셉트로 건축한 지하철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팝아트나 독특한 무늬가 그려진 당시 설계도면과 사진자료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플랫폼 건축도 현대미술의 한 부분임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서울을 포함한 6개의 도시 지하철 공간에서의 문화예술 활동 사례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지하철은 움직이는 도시의 캔버스로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이 예술적 가능성을 이어가기 위해 정부와 교통 당국은 무엇보다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매일 약 799만 서울 시민이 동시에 탑승하는 지하철인 만큼 언제나 승객의 편의와 만족을 점검하고, 시설도 정기적으로 정비해야 합니다. 스크린도어 안전사고와 열차 지연·고장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곳에는 문화예술이 숨쉬기 어렵습니다. 꼼꼼하게 정보를 알려주는 안내 표지와 화장실, 물품보관소, 수유실, 티켓부스, 에스컬레이터 등 부대 편의시설 관리까지 예술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전부터 지하철 2호선은 각 탑승칸의 혼잡도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하며 승객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몇백만 명의 활기찬 시작과 마무리를 책임지는 공간입니다. 이곳이 대중교통의 역할과 함께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즐길 거리 가득한 곳이 된다면 우리의 도시는 더 사랑스러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