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립플랍(flip flops)은 어느새 여름철 패션 필수템으로 자리를 잡았다. 일명 쪼리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신발은 신고 벗기 편할 뿐 아니라, 건조 속도도 빨라 해변 나들이의 필수 아이템이다. 최근에는 여러 브랜드에서 플립플랍을 제작하면서 디자인과 소재 등 그 형태가 다양해졌다. 일반적인 제품과 다르게 37% 이상의 충격을 흡수하는 자체 개발 특수폼(OOfoam)을 사용하고 아치형 쉐입으로 안정감을 더한 제품 우포스(OOFOS)도 있고, 160g 가벼운 무게와 사탕수수를 원료로 블렌딩한 친환경 TENDERATE 소재 제품, 토앤토도 있다. 특히 토앤토 왼쪽에 달린 노란색 태그는 브랜드의 상징이 되었다. 높은 플랫폼으로 제작되어 품절 대란을 일으킨 토앤토와 로우클래식의 콜라보 제품은 특히 10대, 20대 여성 사이에서 편하면서도 예쁜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를 얻었다. 발가락 부분이 갈라져 있는 타비 디자인으로 유니크한 무드가 특징인 꼴레꼴레(cole cole)도 있다.
이처럼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트렌드와 함께 플립플랍은 여행지를 넘어 여름철 우리의 일상으로까지 깊이 들어왔다. 비 오는 날, 비에 젖는 것을 막으려 레인부츠를 신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시원하게 비에 젖고 싶어 플립플랍을 신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또한 리커버리 슈즈(Recovery shoes)로서 발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운동 후에 신기도 한다. 신고 벗는 편안함에서 시작된 플립플랍은 어느새 발을 편하게 해 주는 신발이자 나만의 패션 감각을 드러내기 위한 아이템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여름이 끝나고 아프리카 동쪽 해변으로 모인
그렇다면 여름 한 철 사랑받던 플립플랍은 여름이 끝나고 어디로 가게 될까?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바다 1제곱킬로미터에 평균 13,000개의 플라스틱 및 합성 물질 조각이 떠다닌다고 한다. 플립플랍도 수로와 해양 오염의 원인 중 하나다.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플립플랍이 해양 플라스틱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한다. 합성 우레탄으로 만들어졌기에 최대 10000년 동안 썩지 않은 채 바다를 떠다닌다.
플립플랍은 납작한 판과 발가락 사이의 끈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장애물에 의해 부딪히거나 오래 신으면, 끈이 떨어져 쉽게 망가진다. 신고 벗기 편해 계곡이나, 바닷가에서 자주 신지만 벗겨지기 쉬운 탓에, 물살에 휩쓸려 잃어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저렴한 가격 탓에 30억 명이 넘는 인구가 데일리 슈즈로 플립플랍을 신는다.
플립플랍의 전 세계 판매량은 연간 150억 달러로 추산되며, 이는 운동화 시장보다 많은 수치다. 오래돼 떨어진 것들은 마을의 수로를 오염시키고, 바다로 떠내려간다. 이렇게 바다로 흘러간 일부 플립플랍은 인도양 해류를 따라 인도, 필리핀을 거쳐 케냐 해변에 쌓인다. 주로 플라스틱 페트병과 스티로폼, 비닐이 목격되는 서해안과는 다른 해양쓰레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ESG 경영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기업과 지자체에서 해양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며 정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발도상국의 해양쓰레기는 어떻게 해결되고 있을까?
해양쓰레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기업, 오션솔(Ocean sole)
케냐의 사회적기업 오션솔은 케냐 바다와 수로에서 1,000톤 이상의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해 연간 약 700,000개의 플립플랍을 예술작품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1999년, 설립자 Julie Church가 아이들이 바다에 버려진 플립플랍 잔해로 장난감을 만드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설립하게 되었다. 오션솔은 케냐의 해양 정화를 해결하는 동시에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는 중이다.
일차로 해변 청소 여성 그룹 오션솔마마즈(Ocean sole Mamaz)가 매주 케냐의 해변을 청소한다. 지역주민이나, 현지 아이들에게는 모아 온 플립플랍의 킬로그램당 30센트의 금액을 지급하며 정화 활동을 이어간다. 그뿐만 아니라, 실업률이 약 40%에 달하는 케냐에서 오션솔은 고용 창출까지 기여하고 있다. 신발을 세척하고, 가공하는 직원을 고용하여 약 150명 이상의 케냐인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하는 중이며, 플립플랍을 줍는 인원까지 더하면 약 1,000명의 케냐인이 오션솔을 통해 경제적 수입을 얻는 중이다. 오션솔은 출산휴가와 의료보험 지급, 연차휴가까지도 지원하며 복지프로그램까지 투자한다. 수익의 10~15%는 교육 및 해양 보존 프로그램에 활용하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버려진 플립플랍을 모아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하다
해안에서 수거한 폐 플립플랍은 물과 세제를 활용해 깨끗하게 손으로 세척한다. 물기를 햇볕에 말리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예술가들이 플립플랍을 직접 골라 조각품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 과거 오션솔에서 일하던 아티스트들은 나무를 이용해 전통적인 케냐 목각 조각품을 만들어 관광객에게 판매했었다. 그러나 케냐의 벌목 규모가 줄며,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 목각 작업이 어려워졌다. 그렇기에 플립플랍은 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구이자 재료와 같았다. 아티스트들은 플립플랍으로 작업하는 것이 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동일한 칼과 샌딩도구를 활용해 작업하며, 파편이 덜 튀는 것 외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말이다.
크기에 따라 제작 방식이 조금 다른데, 작은 조각품의 경우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형판을 활용해 모양을 내고 여러 개의 플립플랍을 이어 붙인 다음, 아티스트가 칼로 조각해 작품을 완성한다. 대형 조각품은 최대 3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선적 컨테이너의 오래된 단열재를 베이스로 삼고 플립플랍을 덮어 만든다. 그렇기에 줄무늬 모양을 띠는 작은 조각품과 달리, 대형 조각품에서는 등고선 모양이 나타난다.
형태가 완성된 조각품들은 샌딩머신을 활용해 매끄럽게 다듬고 품질을 점검하는 과정을 거쳐, 예술작품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오션솔의 조각품은 깨끗한 해변 생태계를 희망하며 해양 보호를 알리기 위해 거북이, 고래 등 해양 동물로 만드는 바하리 컬렉션(Bahari)과 사파리에서 영감을 받은 코끼리와 기린 등 케냐의 동물로 제작되는 사파리 컬렉션(Safari)으로 구성된다. 작업 과정 중에 발생한 작은 조각들은 모아두었다가 분쇄기로 파쇄하여 매트리스로 만든다. 북부 케냐의 난민 프로그램에 기부하여 버려지는 것들을 최소화한다.
폐 플립플랍은 케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도, 브라질 등 세계 곳곳의 해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봐야 할 문제다. 오션솔은 나무 대신 플립플랍을 활용해 연간 약 100만 개의 플립플랍을 재활용하고, 한 달에 1톤 이상의 스티로폼을 재활용하고, 연간 500그루 이상의 나무를 절약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플립플랍에 주로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고무는 너무 가벼워서 물에 떠오르기 때문에, 그것을 먹은 해양생물들은 바닷속으로 잠수하기가 어려워져 매우 위험하다. 결과적으로 오션솔은 해변에 있는 플립플랍을 수거해 해양생태계 보존 및 다양한 방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오션솔의 마스터피스(Masterpiece)
어느덧 오션솔의 이름이 알려지며 전시나 소장 목적으로 두바이, 싱가폴 등 세계 곳곳에서 대형 작품을 주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오션솔은 오브제로서의 예술적 역할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해양쓰레기가 된 플립플랍과, 해양오염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에 케냐와 같이 해양오염 문제로 씨름하는 몇몇 국가에서는 오션솔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사실 바다는 하나로 이어져 있기에, 해양쓰레기 전반에 대해 세계인 모두가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보여주기 위한 지속 가능함이 아닌 실질적 해결을 위한 고민과 목적의식을 가진 행동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오션솔의 제품을 구입할 때는 단순히 환경에 깨어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구입하기보다 이 과정 안에 담긴 오션솔의 진심에 먼저 깊이 공감할 필요가 있다. 제품을 구입하면, 작품 위에 태그(tag)가 달려 출고되는데, 그 안에는 작품을 제작한 장인의 이름과, 사용된 플립플랍의 수, 제작소요 시간이 적혀있다. 케냐 장인들의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함께 케냐 해변에서 수집되는 플립플랍 문제에 대한 함께 고민하고 줄일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신발로써의 귀환, 패션브랜드 끌로에(Chloe)와의 협업
패션업계에서 지속가능성이 화두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다. 끌로에 아트디렉터 가브리엘라 허스트(Gabriela Hearst)는 환경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컬렉션마다 오염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방증하듯 이미 2022 S/S는 레 바티소즈(Les Bâtisseuses, 아프리카 여성 벽돌공 단체), 링키(Linkee, 궁핍한 이들에게 식재료를 나눠주는 파리 자원봉사 단체) 등 NGO 단체 7곳과 함께한 경험이 있다.
2021 F/W에서는 친환경적 소재를 사용해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컬렉션을 선보였다. 특히 끌로에의 새로운 풋웨어 라인 루(Lou) 샌들의 밑창은 오션솔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개발도상국의 버려진 신발이 리사이클링되어, 명품 브랜드 끌로에와 만나 샌들로 재탄생되다니. 밑창은 오션솔이 플립플랍을 재가공해 만들었고, 끈은 끌로에에서 제작하였다. 다양한 플립플랍이 모여 탄생한 색감이 멋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든 상품이 수작업으로 제작되기에, 모두 다른 형태와 컬러감인 것이 희소성에 열광하는 이들의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오션솔은 케냐의 해변정화 및 일자리 창출, 예술가 지원 등 긍정적 영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션솔이 플립플랍 재가공 기업으로서 계속 성장해 간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지구촌 마을에 부정적인 신호가 될지 모른다. 오션솔이 있다는 것은 케냐 해변가에 해양쓰레기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양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업사이클에 관심을 갖고 구매하는 것보다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하고, 지자체와 기업에서는 업사이클링 사업에 지원하는 일보다, 관리 사각지대를 없애고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는 등 하천으로 유입되는 쓰레기를 차단하는 관리가 필요하다.
오션솔이 바다, 사파리의 동물을 주 모델로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자연환경과 더불어 동물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쓰레기가 아닌, 동물들이 자연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케냐의 사회적 기업 오션솔과 해양쓰레기가 1/4을 차지하는 플립플랍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내년 여름 다시 플립플랍을 꺼낼 때쯤에는 바다의 해양 오염 문제에 대해 다시 떠올려 주었으면 한다. 이 글이 당신이 매년 여름 플립플랍을 신을 때마다 해양오염 사실을 인지하고 환경보호를 실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