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2006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빠르게 진행된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인해 생산 연령 인구(15세~64세)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로 인한 사회보장 재정 악화와 성장력 둔화가 우려되고 있으며, 일손 부족, 기업 도산, 지방소멸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의 지방소멸 문제는 저출산・고령화와 대도시의 인구 심화로 더욱 크게 대두됐는데, 이 개념은 일본의 마스다 히로야가 쓴 저서 『지방소멸』에서 도입되었다. 해당 책에서는 인구가 대도시권으로만 집중하는 것이 인구문제를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보고,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향후 30년 내 일본 자치 단체는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고 서술했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지 않는다면 지방소멸은 곧 인구감소로, 인구감소는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4년 일본의 아베 정권은 아베노믹스와 함께 지방창생(地方創生) 정책을 마련하여 장기 비전과 종합 전략을 세우고,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법을 제정했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 젊은 세대와 구직자들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여 지방으로 보냈고, 엄청난 정부 자원을 쏟아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일본의 뉴스 기사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작은 산골 마을인 가미야마(神山)에서 IT 회사의 사원이 물에 발을 담그고 도쿄 본사와 화상회의 업무를 진행하는 모습이었다.

산산(Sansan)의 업무 모습 Ⓒ Courrier

도쿠시마현의 가미야마는 일본 수도 도쿄에서 500km 떨어져 있고, 오사카에서 차로 약 5시간을 운전해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2015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인구는 약 5,300명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두드러지며, 일본 내에서도 20번째로 소멸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가미야마는 웹디자이너,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예술가, 요리가, 수제 구두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주하는 곳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IT 벤처 기업이 산골 마을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주자가 많은 시골 마을은 많지만, 소멸 위기의 산골마을에 IT 기업이 이주한 마을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가미야마는 최첨단 과소화 마을로 불리고 있다.

 

가미야마에 1호 위성사무실이 생긴 것은 2010년 10월, 도쿄 시부야에 본사가 있는 산산(Sansan)이라는 IT 벤처 기업이 정착하면서 부터다. 클라우드 명함 관리 분야 시장에서 약 80%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이 회사는 클라우드 명함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거래처와 주고받는 명함 정보를 데이터화하여 회사에 공유해 새로운 영업 영역 창출과 고객 관리에 활용하여 영업력을 강화하도록 한다. 이런 회사가 도쿄에서 500km 이상 떨어진 시코쿠 시골 마을에 위성사무실을 연 이유는 무엇일까?

산산(Sansan) Ⓒ Hisao Suzuki

미국 실리콘밸리에 주재하는 시기에 실리콘밸리의 업무수행 방식에 자극을 받았는데, 그 핵심이 바로 이상적인 자연환경 속에 업무를 본다는 것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시골이어서 조금만 나가면 광활한 푸른 초원이 나타나고 사무실도 넓고 직원은 근처에 살기 때문에 통근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꽤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 엔지니어들이 창조적인 일을 하며 새로운 서비스를 잇달아 내놓는다. 또 하나는 텔레 워크(Tele Work), 리모트 워크(Remote Work, 원격 근무) 방식이 정착된 것이다.

산산(Sansan) 데라다 대표

 

데라다 대표는 가미야마를 직접 방문하여 광통신망을 갖춘 환경과 마을의 독자적인 프로젝트에 제작 공감하며, 지사 설립 논의를 위해 그린밸리(Green Valley)의 오오미나미를 만난다. 그는 그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이사장이 지역공헌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가미야마에서 도쿄에서 업무 환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일을 증명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보통 기업이 지사를 만들거나 설립하게 된다면, 지역 입장에서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공헌을 바라게 되는 것과는 상반된 반응이었다. 2010년 10월, 산산은 그린밸리가 소개한 70년 된 옛집에 위성사무실 가미야마 랩을 열었다. 집에는 안채와 외양간, 밭도 딸려 있었다. 처음에는 도쿄 본사에서 직원이 내려오며 일시적으로 체류하는 방문 체류형 사무실이었지만, 2013년부터 상주형 사무실로 이용하게 된다.

 

2018년 8월 1일 기준으로 가미야마에 위성사무실을 개설한 기업은 산산 외에 15개다. 디자인, 지적재산권, 미디어, 웹컨설팅, 이벤트 등 다양한 기업들이 사무실을 개설하고 지사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최첨단 과소화 지역이라 불리고 있는 가미야마의 더욱 놀라운 점은 가미야마의 지방 재생 전략 수립을 계기로 거버넌스(민관 협력) 주민과 이주자, 민간과 행정기관이 하나가 되어 민관협력 기구 가미야마 연대공사가 구축됐다는 점이다. 이 기구는 농업 인력을 육성하고, 먹거리로 지역을 연결하여 되살리는 지산지식(地産地食) 원칙을 통한 푸드허브 프로젝트, 가미야마의 나무자원을 활용한 임업 프로젝트,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워크 인 레지던스, 임업과 건설업이 조합된 오노지 공동주택 프로젝트, 농업학교 운영뿐 아니라 주민과 지역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와 연대 활동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즐거우니까 하는 일, 그린밸리(Green Valley)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던 미국 실리콘밸리가 IT 산업의 발상지가 된 것처럼 뭔가 새로 생겨나는 창조적 마을로 만들고 싶다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우리 마을에는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사람 사이의 인연은 아주 많았기 때문에 이름을 그린밸리라고 지었습니다.

그린밸리 이사장 오오미나미 신야

 

일본의 변방, 그것도 작은 산골에 있는 시골 마을의 변화는 그린밸리의 역할이 컸다. 그린밸리는 가미야마 이주 촉진과 IT 기업 유치를 담당하는 비영리법인(NPO)으로, 사무국 직원은 6명이고 55명의 회원은 거의 모두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그린밸리가 생기기 이전부터 오오미나미와 동료들은 가미야마 국제교류협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린밸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가미야마의 주요 프로젝트는 그린밸리로부터 시작되었고, 가미야마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현재도 진행 중이다. 현재 그린밸리가 가미야마에서 진행하고 있는 두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 마을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 In Residence)

현재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는 일본 전역에서 60개 이상이 운영되고 있다. 대개 레지던스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해서 주도되는 곳이 많고,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일류 예술가를 초대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손님을 불러들이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미야마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는 추구하는 방향과 가치가 다르다.

 

그린밸리 이사인 모리 미사키는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예술은 사람을 감동하게 하고 사람을 불러들이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예술에 대한 동경심을 바탕으로 면사무소와 도쿠시마현에 보조금을 요청하고, 자신들의 기부금까지 포함해 1999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가 시작되었다. 1년 차에는 9월부터 11월 초까지 영국, 일본, 프랑스에서 각각 한 명씩 총 세 명이 가미아먀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러나 2년 차에는 선발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과 지역 운영 집단 간의 의견 차이가 생겼다. 전문적이고 이름있는 예술가를 선발해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진행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과 주민이 직접 참여하며 작품 만들기를 돕고 교류를 추구하는 과정에 가치를 둬야한다는 의견이었다. 많은 논의가 진행되었고 결국, 후자의 가치 쪽으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가 진행되며, 꾸준히 응모자가 늘어났다. 17회째인 2015년에는 163명까지 늘어났으며, 그중 해외 예술가는 141명을 기록했다.

 

실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는 예술가 선발부터 작품 제작 지원부터 운영까지, 프로그램 전체를 마을 주민에게 담당하게 했다. 그린밸리는 예술가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마을 생활을 상담해주는 어머니 역할과 작품 만들기를 지원하는 아버지 역할을 정해 인력을 미리 배치했다. 운영의 핵심멤버는 15명이었지만, 그 인원만으로 대응하기 힘들 때면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며 함께했다.

 

1999년에 시작된 레지던스는 2017년까지 21개국 68명의 예술가를 초대해 활동을 지원했으며, 가미야마에서 레지던스 후에 이주하는 예술가도 생겨났다. 그중, 2012년에 데쓰키 히데아키가 제작한 <숨겨진 도서관>은 주민들이 일생 세 번, 즉 졸업, 결혼, 퇴직 등의 전환기에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는 도서관으로 주목을 받았다. 도서관은 책을 기증하는 것보다는 기억을 공유하고 지난 일을 추억하는 장소로 더 많은 의미를 갖는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 Artist In Residence
<숨겨진 도서관>, 2012, 데즈키 히데아키 Ⓒ Kamiyama

지산지식(地産地食)을 추구하는 푸드허브(Food Hub) 프로젝트

가미야마가 지방 재생전략을 위해 민관협력으로 구성된 가미야마 연대공사가 만들어졌고,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지산지식을 추구하는 푸드허브 프로젝트다. 2016년 4월, 공사 설립과 함께 주력 기관으로 푸드허브가 설립되었다. 가미야마에 위성사무실을 차린 기업과 가미야마 연대공사가 함께 출자하며 설립되었고, 11개월 후인 2017년 3월 푸드허브가 운영하는 식당 가마야와 빵과 식품 잡화를 판매하는 가마빵&스토어가 진료 지역 국도변에 문을 열었다.

 

푸드허브는 식당, 빵집, 직판매장을 운영하는 회사가 아니며, 지산지식을 추구하는 농업회사다. 가미야마에서 기른 식자재로 요리하여 제공하고, 지역에서 만드는 접시를 활용하는 등 가미야마에서 생산된 것을 사용함을 목적으로 한다.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가기 위해 만든 회사인 셈이다. 가미야마는 중산간 지역에 위치해 농지의 대규모 집약화가 어렵기에 소량 다품종을 생산하는 농업이 주가 되는데, 이는 시장성이 매우 떨어진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유통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에 가미야마 주민 시라모모 가오루는 소량 다품종 작물을 아는 사람에게 유통해 부가가치를 내는 것, 즉 작은 것과 작은 것을 연결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해결의 실마리가 바로 푸드허브이며, 푸드허브는 미국에서 생겨 도입된 말이다. 20세기 들어 대량 생산, 대량 소비와는 차별적인 대안적 식자재 공급 시스템을 이야기하며 미국 농무성이 권장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얼굴을 알 수 있는 지역 생산자와 연대하여 집적, 보존, 유통, 마케팅에 참여하여 소비자를 중개하는 조직을 말한다. 푸드허브와 가마야, 가마빵&스토어는 지산지식, 휴경지 재생, 농업인 육성, 먹거리 교육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현재 20명이 넘는 구성원 중 절반은 도쿠시마현 바깥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현재의 가미야마 

가미야마의 마을 만들기 움직임을 가속화 시킨 것은 위에서 소개한 2015년 ‘지방재생 종합 전략 수립’에 따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미야마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린밸리 주요 멤버들의 세대교체가 진행되었고, 연대공사의 스태프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가미야마의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에서는 2020년 해외 작가 3명을 새롭게 선정하고, 2020년 ‘오노지 공동주택’을 완공을 목표하고 있다.

 

이 공동주택은 전략 수립 계획부터 가미야마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로 탄생한 공간이다. ‘함께하는 장소가 되면 좋겠네’하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으로 진행된 만큼, 도면을 설계 팀에 전달하고 발전하는 일을 거듭해왔다. 이곳은 이주자와 마을 주민, 외지에 나갔다가 가미야마로 돌아오는 전입자 등 모두가 입주 대상으로, 새로운 가미야마의 열린 공간이 될 예정이다. 마을 주민, 그리고 제2의 가미야마를 꿈꾸는 마을들에게 희망의 공간이 되어줄 새로운 가미야마의 모습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오노지 공동주택 Ⓒ Kamiyama

가미야마는 지금도 작은 인연이 이어지며 관계를 만들고 있으며, 사람과 공간, 지역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대도시의 번잡함과 인구 과밀을 피해서 이주한 사람도 있지만, 이주한 많은 사람과 기업의 궁극적인 공통점을 살펴보면 지역의 가능성・연대・개인의 취향・삶의 가치와 공간을 찾기 위해 가미야마로 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산골 마을 가미야마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은 인연을 연결하는 것은 곧 연대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결국 상생과 생존의 씨앗이 된다는 점이다. 가미야마의 지방 재생 전략에 수립된 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양질의 자원이 있어도 그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사람이 없으면, 어떠한 가능성도 구체적인 형태가 되어 공유되지 않는다.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 사람의 조합에서 지역 규모로 확장될 수 있는 일거리가 생겨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