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서울역을 라이프 & 컬쳐 스테이션으로 만들어 주는 주변 문화 시설들이 있다. 이들은 서울역을 중심으로 공간과 문화를 연결하고 서로를 더욱더 멋지고 가치 있게 바꾸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문화역서울284, 서울로7017, 서울스퀘어, 국립극단이다.

 

문화역서울284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여행

서울역광장의 북쪽에 또 다른 서울역이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린 100여년 전의 서울역 모습 그대로. 바로 문화역서울284다. 1925년 지어진 우리나라 최고의 철도 건축물이자 근대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옛 서울역은 지금의 역사와는 크기와 시설 면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서울의 대표 건축물로서의 아우라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간직한 채, 한 세기를 넘게 묵묵히 지켜온 만큼 건축물 이상의 그 무엇으로 우리들 마음에 자리 잡았다. 서울역의 첫 출발은 1900년, 경인철도 개통과 함께 지금의 옛 서울역 자리에 작은 목조형 건물의 남대문정거장이 생겼다. 두 번째 역사는 1915년 기존 역사를 헐고 남대문역 명칭으로 건립됐다. 좌우대칭형 목조건물이었다. 현재의 모습인 세 번째 역사는 1922년 6월 착공해 1925년 9월 준공한 경성역이었다.

 

건축양식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에 조적조(돌, 벽돌, 콘크리트 블록 등으로 쌓아 올려 벽을 만드는 건축 구조)를 첨가한 근대적 요소와 돔, 첨탑과 같은 고전적 요소를 결합한 르네상스풍의 절충주의 건축양식으로 볼 수 있다. 경성역은 이국적이고 멋진 모습에 자연히 당시 모더니즘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서울역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광복 후인 1947년 11월 1일. 옛 서울역이 철도역의 임무를 다한 것은 2003년 11월이다. 고속철도 운영을 위해 역무시설을 새로 지은 현재의 서울역사로 이전한 것이다. 코레일에서 문화재청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이후 복원작업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위탁운영을 맡았다. 2011년 문화역서울284란 새 이름과 함께 문화전시 및 공연공간으로 변신했다.

 

여기서 퀴즈! 옛 서울역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며 이름도 새로 만들었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 284는 무엇일까? 284는 문화재로 지정된 옛 서울역의 사적 번호다. 그럼 이제 시간 여행을 떠나볼까? 필자가 문화역서울284를 찾았을 때는 <2019 공예주간>을 맞아 우리가 공예를 사랑하는 방법이란 슬로건으로 기획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시대 공예 수집가들의 이야기」라는 큰 제목 아래 ≪공예+컬렉션: 아름답거나+쓸모 있거나≫ 와 ≪한국 현대공예 시선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어령(문학평론가), 정양모(백범기념관 관장), 성파스님(통도사 방장), 김종규(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구혜자(무형문화재 침선장 보유자) 등 공예 애호가 26명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문화역서울의 매력은 기차역인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며 전시문화공간으로 최소의 변신을 한 것이라고 본다. 입구로 들어서면 당시 기차표 업무를 보던 곳(출찰실)이 현재는 티켓팅과 인포메이션 역할로 쓰이고 있다. 참고로 문화역서울의 대부분 전시는 무료 관람이다. 중앙홀은 말 그대로 전시의 메인 공간이다. 석조 건축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곳으로 석조 기둥은 상부의 돔을 지지하고 있다. 행사의 무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작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이 이곳에서 열렸다. 중앙홀 왼쪽으로 1·2등 대합실, 부인대합실, 역장실, 귀빈실이 연이어 있다.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당시만 해도 남녀구별이 분명했던 터. 또한 열차 등급을 적나라(?)하게 표기한 공간의 이름들이 재미있다. 가장 안쪽에 있는 귀빈실은 대리석 벽난로와 대형 거울 등 한껏 럭셔리하게 멋을 부린 곳이다.

 

중앙홀 오른편은 3등 대합실이다. 가장 큰 전시공간이다. 개인적으로 문화역서울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은 2층에 있다. 최초 건물을 지을 때의 흔적과 역사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복원전시실이다. 복원전시실은 이름 그대로 공간 전체가 전시물이다. 건립 당시 이발실과 화장실로 사용했던 공간의 모습을 살려둔 곳이다. 노출된 곳을 유리로 마감해 예전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배관, 나무로 만든 여닫게, 천으로 감은 전선 등 당시의 시공 방법에 대한 흔적과 옛 서울역사를 원형 복원하면서 나온 부자재 등 역사적 사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기사에서 소개한 최초의 양식당 그릴의 모습도 2층에서 만날 수 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TMO샵도 둘러보자. TMO는 기차역의 여행장병안내소를 의미하는 Transportation Movement Office의 약자로 현재는 판매를 겸하는 작은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카페도 바로 옆에 있다.

준공 당시 경성역사 Ⓒ 서울특별시
현재의 문화역서울284

서울로7017
1700여만 명이 함께 걷는 공중 오솔길 

서울시가 처음 서울로7017 개발을 발표했을 때, 적잖은 논란이 있었다. 1970년부터 도심 주요 도로가 된 서울역 고가도로의 철거가 불러 올 교통혼잡과 안전문제. 여기에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얽히며 찬반에 대한 많은 말들이 오갔다. 다행히 개장 2년이 지난 지금, 도시재생의 우수 사례로 자리 잡아 가는 듯하다. 시에서는 그동안의 이용 후기를 참고해 보완, 개선해 가며 꾸준히 식물을 늘리고,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시 시민들의 참여였다. 사람들이 직접 다녀가며 쏟아낸 아이디어가 물과 거름이 되어 서울로를 가꾼 것이다. 서울역은 그동안 서울역광장 앞 큰 도로에 막혀 섬 아닌 섬으로,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닿을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이제는 서울로를 통해 주변 어디서나 쉽게 걸어갈 수 있게 됐다. 새로운 보행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로가 열리면서 역광장은 물론 연결된 남대문시장, 중림동, 회현동, 만리동 등에 새로운 방문객이 찾기 시작했다. 사실 이곳은 교통이 불편하고 중심가 트렌드에 밀려 낙후돼 가고 있던 지역들이다. 서울로 덕분에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활력이 생긴 것이다. 만리동부터 회현동까지 서울역 북쪽을 가로지르는 서울로의 길이는 1km 남짓. 2년간 서울로를 찾은 이는 지난 5월 17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동안 서울시민은 물론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코스로 떠올랐다. 또, 해외 유수 매체들이 이곳을 소개했는데, 작년 8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금 당장 경험해봐야 할 여행지 100선에 서울로7017을 뽑기도 했다.

 

서울로는 17m 높이 위 고가를 따라 만들어진 도심 정원이다. 개장 초 이곳에 식재된 식물은 50과(科) 228종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300종 가까이 늘었다. 초창기 우려를 씻고 도심 속 콘크리트 길에서도 식물들이 꿋꿋이 잘 자란 것이다. 서울시는 주로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살 수 있는 식물, 그리고 인공지반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생육 특성을 고려해 60여개가 넘는 다양한 타입의 화분을 설치했다. 자동 관수와 유도배수로 등 환경조성에도 신경 썼다고 한다. 주요 공간은 공연·문화, 전시·홍보, 체험·놀이 시설로 나눌 수 있다. 공연·문화시설은 실내 버스킹 공연을 관람하고 쉬어갈 수 있는 수국전망대, 포토존과 버스킹 등 소규모 문화공연 무대인 장미무대, 조형물인 동시에 문화공연도 하는 공간 윤슬, 그리고 대규모 공연, 마켓 등이 운영되는 만리동광장 등이 있다.

 

전시·홍보 시설로는 캘리그라피, 비누, 캔들 등 핸드메이드 작품 전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장미홍보관과 봉제상품 및 프로젝트 전시, 수제화 홍보물 및 상품을 전시하는 목련홍보관 등이 있다. 체험·놀이시설은 다양한 컨셉의 영상을 상영하는 호기심화분, 어린이들을 위한 트램펄린 놀이공간 방방놀이터, 여름철 더위를 식히는 족욕탕 공중자연쉼터 등이 있다. 필자가 서울로를 찾았을 때는 개장 2주년 행사가 한창이었다. 많은 이들이 서울로에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장미마당에서 목련마당까지 벼룩시장이 섰다. 곳곳에 놓인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재밌는 입담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전하는 토크 콘서트도 열렸다. 만리동 쪽으로 해가 지자 낮의 더위를 식혀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조명을 받아 멋진 야경이 만들어졌다. 모두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간간히 버스킹의 음악도 들려오고, 도심 속 공중정원에서 멋과 운치를 느끼는 5월의 어느 주말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서울로7017의 윤슬 Ⓒ Kyungsub Shin

서울스퀘어
낮보다 아름다운 밤을 만드는 23층의 캔버스

서울역광장에서 남산 쪽으로 보이는 이 육중한 건물은 아직도 대우빌딩으로 더 많이 불리는 서울스퀘어다. 이곳은 1977년 지어진 지상 23층, 지하 2층, 132,806㎡의 초대형 빌딩이다. 대우그룹의 사옥으로서 서울 중심가를 대표하는 건물이었는데, 건물주의 몰락으로 부침을 겪다 2009년 새로 단장했다. 오피스에 충실한 무뚝뚝한 이미지를 벗고, 세련되고 생동감있는 느낌으로 리모델링했다. 공간 미학의 가치를 살렸고, 예술의 향기를 더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대표적인 작업은 서울스퀘어 미디어파사드다. 늦은 오후 어둠이 찾아오면 서울스퀘어의 전면은 거대한 스크린이자 캔버스로 변신한다. 가로 99m, 세로 78m의 LED 미디어 캔버스. 4~23층 외벽 테라코타 타일에 구멍을 뚫어 설치한 LED가 만들어내는 마술이다.

 

때로는 런웨이를 걷는 듯한 도시인의 모습, 때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우산을 든 신사의 모습, 때로는 정사각형 방 안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테트리스 게임이 건물 전체를 수놓는다. 형형색색, 알록달록, 비디오 아트 같기도 하고, 웰메이드 CF 같기도 한 미디어 아트 영상들이 단조로운 벽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젊은이들의 SNS에 오르내리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은 역시나, 활기차게 걸어가는 남녀들이 등장하는 영국의 팝아티스트 줄리언 오피(Julian Opie)의 <크라우드(Crowd)>라는 작품이다. 그는 작품 속에 단순한 선과 형태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 움직임의 특징을 미니멀하게 팝아트적으로 표현해 보는 이에게 경쾌감을 준다. 화려한 색감이 조명을 통해 서울스퀘어를 빛나게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서울역 부근을 함께 빛나게 해, 역사를 이용하는 서울의 방문객과 시민들에게 감동을 준다.

 

서울스퀘어에 따르면, 미디어파사드는 일몰 후 30분부터 밤 11시까지 운영한다고 한다. 하절기인 현재는 대략 7시 반부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현재 줄리언 오피를 포함해 우리나라의 미디어 아티스트 양만기, 김신일, 문경원의 작품이 표출되고 있다. 이들이 만든 10분 내외의 작품이 1시간 동안 연이어 나온다. 양만기 작가의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서울의 남산을 배경으로 초현실주의를 넘어서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김신일 작가의 작품은 더 액티브하다. 회사, 집 등 작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테트리스 게임이나 이퀄라이저처럼 재미있고 율동감 넘치게 표현했다.

 

미디어파사드에 나오는 영상은 기본적으로 예술작품만 가능하다고 한다. 간혹 평창동계올림픽, 한-덴마크 수교 60주년 등 국가적 행사를 소개하는 예술작품도 심의를 거쳐 방송되는 경우도 있다고. 서울스퀘어에 미디어파사드만 있는 건 아니다. 건물 곳곳에서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먼저 이스라엘 작가, 데이비드 걸스타인(David Gerstein)의 조각품이 눈에 띈다. 다양한 직업인, 가족, 연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이 위트 있게 표현되어 있다. 이는 모두 8점으로 건물 왼쪽 지하와 지상 입구에 있다. 서울로7017과 연결되는 쪽에 있어 시민들에게 일상의 작은 여유와 창조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서울스퀘어
줄리안 오피의 미디어 파사드 Ⓒ 박영채

국립극단
공연 갈증의 해우소, 빨간지붕

연극에 갈증이 있다면 찾기 좋은 곳이 국립극단이다. 서울역광장의 반대 방향, 서계동 쪽에 있다. 좀처럼 건물색으로 쓰지 않는 빨간색이 매우 인상적이다. 국립극단은 1950년 <원술랑>으로 창단공연을 시작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극전문 공연단이다. 연극전용 극장 3곳에서 연간 20여편의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서계동에서 극단 사무실과 함께 백성희장민호극장과 소극장 판을 운영중이다. 이곳은 원래 옛 기무사 수송대 부지였다. 정부가 2010년 예술인 창작공간과 국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키로 하면서 국립극단이 들어오게 된 것.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에 백성희장민호극장이 있다. 연극계의 전설, 故 백성희, 장민호 배우의 이름을 딴 극장이다. 국내에서 사람의 이름을 딴 극장은 2008년 동국대 안에 건립된 이해랑(1916∼1989) 예술극장이 국내 최초라고 한다. 하지만 국공립극장 가운데, 그것도 건립 당시 생존 인물이었던 두 분을 기념하는 극장으로는 백성희장민호극장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곳은 컨테이너를 활용한 티켓부스, 로비와 함께 공연장을 이은 가변식 소극장이다. 마당극이나 대칭, 그리고 반원형 무대를 뜻하는 프로시니엄(Proscenium, 객석에서 볼 때 원형이나 반원형으로 보이는 무대) 등 자유로운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연극 전용극장답게 공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2층으로 되어 있으며 200석 규모다. 극단 오른쪽에 있는 공연장 소극장 판은 이름 그대로 신명 나는 한판이 벌어질 것 같은 공연장이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하도록 사각형 무대에 따라 사면이 객석이며, 80명 규모다. 이 두 극장 사이에는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공연이 없는 날도 인근 직장인들의 점심 휴식 공간으로도 애용되고 있다.

국립극단 전경
다양한 공연을 만날 수 있는 향유의 장소 Ⓒ 국립극단

서울역 나들이를 한다면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늦은 오후 문화역서울284에서 전시회를 본 후, 서울로7017에서 지는 석양을 보며 가볍게 산책을 할 것. 그리고 국립극단에서 오랜만에 연극을 즐기고, 서울역에서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아트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코스를 짠다면 어떨지. 기차여행이 아닌 그야말로 도심 속 문화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