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레이션, 즉 협업의 목표는 시너지 효과다. 둘 이상의 파트너가 협력하여 모든 행동을 함께 결정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협업은 마케팅 분야에서 이미 하나의 방법론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과거와 달리 브랜드 선택권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대인만큼, 같은 제품군이라도 한 브랜드의 그것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와 인물이 만들어낸 특별한 합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당연지사. 이제 비슷하거나 다른 분야의 브랜드뿐 아니라 아티스트, 셀러브리티, 인플루언서, 캐릭터 등 협업의 상대를 가리지 않고 더 극대화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브랜드와 셀러브리티의 만남은 고전적인 협업 방식이다. 단순히 셀러브리티의 이미지를 차용한 브랜드 신제품을 선보이는 형식은 자칫하면 고루하게 느끼기 십상이다. 이런 함정을 피해 전시, 굿즈, 예술 작품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 협업을 특정 셀러브리티와 전개하는 영리한 몇 브랜드의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다. 제품 협업의 한계를 뛰어넘는 예술 협업으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네 브랜드를 살펴보자.
A. 유아인 X 디젤 <Make Love Not Walls>
배우 유아인의 근황을 새로운 작품 활동에 관한 소식으로만 접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감각적인 취향과 확고한 의견 표현으로 화제를 일으켜 기사란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셀러브리티다. 연기 외에도 에세이와 칼럼을 기고하고, 브랜드 잡지의 편집장까지 맡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게다가 자신을 주축으로 동년배인 80년대생 작가들을 모아 크리에이티브 그룹 ‘스튜디오 콘크리트’와 동명의 갤러리를 설립하고, 이들과 함께 프로젝트 형태의 패션을 전개하는 패션 레이블 CCRT까지 세웠다. 그의 다음 행보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장벽 대신 사랑을(Make Love Not Walls)> 글로벌 캠페인을 진행하는 패션 브랜드 디젤DIESEL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디젤은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세상의 증오와 장벽을 단결과 사랑으로 허물어 모두를 하나로 결합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이자 액션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었다. 디젤의 속뜻을 이해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 그가 적합했다고 생각한 걸까. 이에 대한 화답으로 유아인과 ‘스튜디오 콘크리트’ 작가들은 디젤 캠페인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이것이 우리의 신호(This Is Our Sign)>를 자신들의 갤러리에 펼쳤다.
갤러리 1층을 차지한 수많은 인물 포트레잇 컷은 “We Loved”라는 메시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긍정, 화합, 소통, 위트, 배려’를 얼굴로 표현한 작품이다. 2층의 벽면에는 사랑을 둘러싼 삶의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담은 라인 드로잉이 가득 메웠다. 옆에 비치된 크레용과 컬러 마크를 집어 든 관객이 선으로만 이루어진 드로잉에 마음껏 색을 칠하는 모습은 작가와 브랜드, 관객이 공통된 가치를 내밀하게 이해하며 디젤의 캠페인을 완성하는 인터랙티브 요소다.
디젤 역시 협업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갤러리 내에 디젤 존을 따로 마련해 캠페인 이미지와 시즌 메인 제품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 전시의 백미는 바로 디젤 탱크! 인간 문명의 어두운 이면을 상징하는 디젤 탱크는 분리를 뜻하는 장벽을 하트 모양으로 구멍 내버린다. 화합을 외치며 자유와 사랑이 뒤덮인 행복한 세계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무지개색 고무 탱크는 런던, 밀라노, 뉴욕, 도쿄 등을 거쳐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갤러리의 옥상에 자리하며 성공적인 전시의 마침표를 찍었다.
B. 10 꼬르소 꼬모 X 워너원
1990년 밀라노에 문을 연 10 꼬르소 꼬모(10 Corso Como)는 세계 최초의 복합 문화 멀티숍으로, 편집숍 분야의 막강한 브랜드다. 이 공간을 창조한 카를라 소짜니Carla Sozzani는 ‘보그’의 이탈리아 편집장인 프랑카 소짜니의 자매이면서 동시에 패션 저널리스트, 갤러리스트. 그녀는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라이프스타일 요소에 음악, 디자인, 사진, 건축, 예술 등을 결합하며 자신이 가진 남다른 감각을 10 꼬르소 꼬모에 풀어냈다. 이곳은 다기능적 공간이자, 고객이 쇼핑과 동시에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스토어 브랜드다.
누구든 꼭 옷을 사지 않아도 되며, 그저 친구와 만나거나 문화 예술에 공감하며 즐거운 장소가 되길 원한다는 10 꼬르소 꼬모. 그들이 특별한 굿즈를 만들기 위해 프로젝트 아이돌 그룹인 워너원(Wanna One)에게 협업의 손을 건넸다.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국민 투표로 탄생한 워너원은 포브스 코리아가 선정한 파워 셀러브리티에서 2위를, 2000년 이후 최초로 아이돌 데뷔 앨범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검증된 셀러브리티다. 특히 시장의 미래 고객층인 10대의 폭발적인 인지도를 얻고 있어 그들의 이름 자체가 브랜딩이 될 정도다.
국민이 만들어낸 가장 핫한 아이돌과 감각적인 브랜드의 만남은 자연스레 유쾌함이 묻어나는 굿즈를 만들어냈다. 우선 워너원 멤버들이 자신들의 웃는 얼굴을 직접 스케치했다. 이렇게 탄생한 11개의 얼굴들은 10 꼬르소 꼬모의 디자인 총괄 아티스트인 크리스 루스Kris Ruhs의 손을 거쳐 위트 넘치는 11개의 캐릭터로 새롭게 태어났다. 굿즈 역시 멤버 수를 의미하는 총 11개의 컬렉션으로 출시되었다.
레인코트, 짐백, 에코백, 클러치, 볼캡, 머플러, 키링, 텀블러, 머그잔, 아이폰 케이스, 배지로 만들어진 굿즈를 구매하는 고객 중 멤버들의 스케치 원본과 친필 사인, 폴라로이드 사진 등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함께 열었다. 10 꼬르소 꼬모의 예술성과 상품성이 녹아있는 협업 굿즈는 기존의 워너원 팬덤뿐 아니라 10 꼬르소 꼬모의 주 고객층에게도 수집욕을 불러일으켰다. 음악과 문화를 애정하는 10 꼬르소 꼬모가 이번 협업으로 더 넓은 영역의 잠재 고객층에게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부차 효과!
C. 젠틀 몬스터 X 송민호 <Burning Planet>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 몬스터Gentle Monster의 공간은 정체성이 두드러지는 이색적인 스토리텔링 그 자체다. 동시에 브랜드 미감을 극적으로 드러내어 공간 브랜딩의 정의를 새로이 쓴 브랜드다. 그래서일까. 안경을 파는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들의 신제품 출시보다 어디에서 어떤 공간을 만들고 있는지 찾아보는 기이한 상황이 낯설지 않다. 홍콩, 상하이, 뉴욕, 런던 등 세계 각지에 기발한 컨셉과 오브제, 설치미술로 채운 공간을 선보이는 젠틀 몬스터는 공간 디자인을 전담하는 직원만 40명 이상이다. 제품만큼이나 공간에 쏟아붓는 열정이 이해 가는 대목이다.
젠틀 몬스터는 ‘관객에게 판타지를 선사한다.’는 모토를 공간에 그대로 담아낸다. 보다 순수한 ‘판타지’적 공간을 위해 판매 매대 자체를 없애고 오로지 브랜딩만 보여주는 예술 컨셉 스토어 ‘배트BAT’와, 제품 판매처의 이미지를 최대한 숨긴 쇼룸형 스토어로 두 공간을 운영하는 전략이 태어난 배경이다. 전에 없던 판타지를 만들 협업 상대는 힙합씬과 예능에서 맹활약 중인 위너의 멤버 송민호. 그림 작업이 취미인 송민호와 함께 선보인 <버닝 플래닛(Burning Planet)>은 시간에 쫓겨 모든 에너지를 불살라버리며 일상을 검게 태워버린 현대인의 삶을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설치미술로 표현했다.
화려한 시계방에 무심히 앉아 있는 노인은 전시 기간인 단 1달만 <버닝 플래닛>의 입장문을 열어주는 통로의 주인이다. 그에게 티켓을 건네면 곧 기이하도록 검게 타버린 행성의 문이 열린다. 시간과 기계에 쫓겨 잿더미처럼 타버린 나머지 반복 행동을 되풀이하는 무력한 사람들 속에서, 실제 크기로 구현된 거대한 기계 타조만이 유일하게 관객을 맞이한다. 전시장의 끝에 다다르면 스피키지(Speakeasy)를 차용한 음습하지만 매력적인 카페가 나타난다. 젠틀 몬스터의 전문 파티시에가 만든 타조알 모양의 아름다운 디저트는 전시의 스토리와 콘텐츠에 미각 경험을 끈끈히 결합한다.
오프닝 행사에 등장한 송민호는 불타는 장미를 그리는 라이브 페인팅, 디저트에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로 협업 시너지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가 그림과 오브제의 창작 과정을 SNS로 공개해 이미 시작 전부터 화제였던 <버닝 플래닛>은 하루에 단 200명만이 관람할 수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6시마다 열리는 온라인 전시 예매는 마치 콘서트 티켓팅을 연상시킬 정도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젠틀 몬스터다운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상상력의 공간이 송민호의 워딩과 나레이션, 직접 만든 예술 작품을 등에 업고 성공의 문을 시원하게 열었다.
D. 페리에 X GOT7 & Ben Jones <콜라보란> @낙원상가
‘이 세상 최초의 소프트드링크’, ‘세계 탄산수 시장 점유율 1위’. 화려한 타이틀의 탄산수 브랜드 페리에(Perrier)는 7가지 브랜드 핵심 요소로 예술, 패션, 문화, 나이트라이프, 믹솔로지, 음악, 핫스팟을 꼽는다. 이 요소들은 페리에를 ‘탁월하게 놀라운Extraordinaire’ 브랜드로 정의내리고, 탁월하게 놀라운 예술가와의 협업을 이뤄내는 바탕이다. 상업 예술과 팝아트의 대가인 앤디 워홀Andy Warhol을 비롯한 포스터 아티스트 레몽 사비냐크(Raymond Savignac), 그래픽 아티스트 후안 트라비에소(Juan Travieso) 등은 페리에와 손잡고 작가의 개성과 브랜드 정체성이 조화로운 아트 보틀 협업을 선보여왔다.
이렇듯 다양한 예술가와의 폭넓은 접촉은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페리에의 면모를 소비자에게 각인시켰다. 케이팝 셀러브리티인 GOT7의 JB와 유겸, 그리고 미국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인 벤 존스(Ben Jones)와 함께한 예술 협업 프로젝트 <콜라보란>도 그 행보의 연장 선상이다. 국내의 K팝 셀러브리티와 해외의 스타 작가가 새로운 감성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콜라보란>은 작품 완성으로 프로젝트를 끝내지 않는다. 창작 과정을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 여러 SNS 채널에 배포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 협업을 시도했다.
<콜라보란>은 세 아티스트가 만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시간을 5부 예능 시리즈로 만들었다. 본격적인 창작에 들어가기 전, 완성도 높은 협업을 위해 서로의 삶을 체험하는 사전 미션을 해치우는 세 아티스트의 고군분투는 웃음을 자아낸다. 시종일관 우아했던 존스는 한국식 보컬 트레이닝과 깜찍한 K팝 안무를 배우고, JB와 유겸은 난생 처음 커다란 캔버스에 어색한 붓질을 하며 미션 수행에 진땀을 뺀다.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된 이들은 서울의 예술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낙원상가의 외벽을 어떻게 예술 작품으로 뒤덮을지 함께 고민하기 시작한다.
JB와 유겸이 신발에 잉크를 듬뿍 묻힌 뒤 하얀 종이 위에 서 있다. 갓세븐의 “Look”이 시작되고, 안무에 맞춰 춤을 추는 것에서부터 예술 창작이 시작된다. 종이 위로 무수히 찍힌 발자국들은 존스의 감각으로 재탄생될 작품 초안이다. 존스는 안무의 동선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곧 거대한 배너 아트로 완성되어 낙원상가의 외벽을 큼직하게 덮었다. 또한, 존스의 대표 아트 테마인 사다리에 다른 방식의 안무를 형상화한 이미지를 합쳐 만든 스카시 간판 형태의 작품도 낙원상가를 함께 장식했다. 낙원상가의 외벽을 최초로 변화시킨 세 아티스트의 협업은 예고편과 본편을 합해 100만 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마쳤다.
셀러브리티와의 협업은 대중의 인지도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만큼 비싼 몸값이 대가로 따른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인플루언서 시장도 세분된 지 제법 되었다. 팔로워 수에 따라 메가, 매크로, 마이크로, 나노 등으로 영향력을 구분하는 인플루언서 유형처럼, 셀러브리티도 역량 및 특성에 따라 영향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만일 각각 전문성, 신뢰성, 매력이 강점인 세 명의 셀러브리티가 동일한 마케팅 프로젝트에 초대된다면? 완전히 다른 세 가지의 결과물이 도출될 것이다. 앞선 사례의 셀러브리티들은 그들이 이뤄낸 음악, 영화 등의 문화 예술적 업적과 대중성에 기인한 매력이 강력한 무기였다. 우리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풍성하게 만들어주던 존재란 뜻이다. 자연히 예술 전시나 굿즈, 작품, 미디어 프로그램 형식의 무대는 그들의 무기가 빛나기에 적절한 장르였다.
“Good brands create culture, bad brands buy it.”
똑똑한 브랜드는 셀러브리티의 이미지와 역량을 등에 업고 사회적인 메시지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예술 협업을 추진한다. 협업이 성공적이라면, 브랜드의 창의적인 비전이 가시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처럼 특정 인물의 문화 예술적인 맥락을 강조해 브랜드 콘텐츠와 결합하는 마케팅은 기존의 셀러브리티&인플루언서 마케팅에서 좀 더 진화되고 있다. 셀러브리티의 화려한 이미지를 사용해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의 제품을 출시하고, 이를 단순히 광고하는 지루한 방식의 협업은 분명 한계점을 갖고 있다. 브랜드는 고객이 원하는 스토리와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브랜드는 문화를 창조하지만, 나쁜 브랜드는 그것을 소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