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명과 MZ세대
MZ세대를 함축하는 무수한 키워드들이 쏟아진다. 사회 분야마다 나름의 단어들로 MZ세대의 문화와 행태를 압축하여 그들을 상징하는 키워드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은 기존의 다른 세대보다 더 세분된 특징을 지니며, 특수성도 강하다. 이는 MZ세대를 설명하는 단어들이 유난히 많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MZ세대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MZ세대 문화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MZ세대가 이전 세대들과 구분되는 경계 지점에는 디지털이 있다. MZ세대의 특징들이 발현되는 여러 현상을 바탕으로 짐작해 보건대, MZ세대의 고유한 문화가 형성된 데는 그들이 디지털화된 세대(Digitalized Generation)라는 배경이 있다. 혹자는 우리가 모두 디지털 세상을 살고 있다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베이비붐 세대를 넘어 7~80대 어르신들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대별로 얼마나 디지털에 의존하는(Digital Dependence) 삶을 살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모든 세대가 동일한 디지털 문명을 향유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MZ세대, 특히 Z세대의 경우에는 태어나자마자 디지털 세상을 접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 나오는 뽀로로는 아이들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학생들은 인터넷 속의 디지털화된 지식을 접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 자료도 책보다는 동영상 콘텐츠를 보편화시키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추억이 된다.
그러나 추억의 결과 내용은 세대에 따라 달라진다. MZ세대로부터 아날로그만의 가치나 아날로그적 추억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아날로그적인 것들로 가득한 기성세대의 추억과는 달리, MZ세대의 추억에는 디지털스러운 것들로 가득하다. 한때 레트로가 사회 전반에서 유행하던 현상도 기성세대에게는 추억 소환이었겠지만 MZ세대에게는 아주 어릴 적에나 유행하던 소재를 이용해 새로운 멋을 추구하는 현대적 활동에 가까웠다.
MZ세대의 소비와 초개인화
MZ세대의 소비에서는 나만의 것이 중요하다. 나만의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현상은 M세대보다 Z세대로 갈수록 더욱더 뚜렷해진다.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Z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자신의 만족을 더 우선순위에 두며 나만의 독립적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나타났다(20대 자아에 대한 인식 및 자아 만족 추구 성향조사, 대학내일20대연구소). 또 다른 조사에서는 M세대와 Z세대 모두 과반이 넘는 응답자가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다고 답했으며, Z세대가 M세대보다 조금 더 그 정도가 높았다(소비 지출 구조와 소비 트렌드에 대한 탐구, 대학내일20대연구소*SK텔레콤).
MZ세대는 타인의 시선과 유명세를 고려하기보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을 찾아 소비한다. 이런 까닭에 그들에게 브랜드 파워는 더 중요하지 않다. MZ세대에게 좋은 브랜드는 유명한 브랜드가 아니라 나에게 잘 맞고 어울리는 브랜드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조사 결과에서 나이키(5.9%)와 아디다스(4.4%) 같은 브랜드를 선호한다고 대답한 이들보다 선호 브랜드가 딱히 없다고 대답한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21.5%, 주관식 자율 응답). 세대는 점점 더 개인화되어가고 있으며, 집단의 정체성에 개인의 정체성이 무조건 종속되는 것을 거부한다. 남이 정해 준 기준이 아닌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라는 사회적 흐름과 맞물린다. 초개인화란 기업이 사용자의 온라인 데이터는 물론 실제 생활 패턴 및 취향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적합한 메시지로 사용자의 소비 경험을 가이드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물론 초개인화는 철저히 기업의 입장에서 사용되는 단어이다.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한 빅데이터 기술 등을 이용하여 사용자들의 구매 및 활동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장 필요한 정보들을 선별하여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구매를 유도하고 촉진한다.
최근 들어 초개인화는 MZ세대와 만나며 전략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격상되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나의 만족과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들에게 기업이 제공하는 맞춤형 정보는 더 광고성 스팸이 아니라 타인과 나의 경험을 차별화시켜 줄 수 있는 소중한 단서가 된다. 중요한 것은 MZ세대가 이러한 초개인화의 수혜자가 되길 자청한다는 것이다.
이전만 해도 기업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광고성 스팸으로 간주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객이 의도를 갖고 적극적으로 브랜드와 정보를 공유하며,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광고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고객이 직접 브랜드에 제공하는 데이터를 제로파티 데이터 (Zero-party Data)라고 부른다. 빅데이터 기술과 제로파티 데이터가 만나면 기업의 광고 집행은 획기적으로 바뀐다.
예를 들어 한 브랜드에서 2~30대 등산객을 타깃으로 등산화 신제품을 출시했다고 가정해보자. 이전에 소비자에게 광고를 전달하는 방식은 스포츠 제품을 구매했던 경력이 있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웹사이트 메인 화면에 등산화를 노출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비자가 제공하기로 동의한 개인의 관심사, 구매 명세, 그리고 핸드폰 위치 정보 등을 종합하여 “김철수 님, 작년에 사신 등산화 바꿀 때 되지 않으셨나요? 김철수 님처럼 서울 북한산 등산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어울리는 등산화를 추천해 드릴게요”와 같은 맞춤형 메시지로 신제품을 소개할 수 있다.
이렇게 초개인화 전략을 통해 차별화된 구매 경험을 유도하고, 맞춤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통 전략을 일컬어 딥리테일(Deep Retail)이라고 한다. 딥리테일 방식은 기존의 오프라인 채널보다는 타깃 소비층인 MZ세대의 이용 빈도수가 높은 디지털 채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019년 기준 10~30대 사이에서 뷰티 애플리케이션 선호도 1위(닐슨 코리안클릭 조사)를 차지한 화해는 최근 사용자 특성이나 관심사에 따라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화장품 정보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맞춤 정보는 기존의 소비자들이 참여해 구축된 380만 건의 평점 및 리뷰들이 바탕이 되어 형성된다. 이렇게 구축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피부 타입, 피부 고민, 필요한 화장품 종류 등을 카테고리별로 선별 및 탐색할 수 있도록 메뉴가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사용자 정보와 일치하는 맞춤형 리뷰만 볼 수 있도록 개인화 서비스도 제공된다.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제품을 살 수 있는 뷰티 쇼핑몰을 운영함으로써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확보하고, 소비자들에게는 종합적 편의를 제공한다. 이처럼 다양한 화장품을 소개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 사용자에게 딱 맞는 화장품을 고르고 구매까지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딥리테일의 핵심이다.
나만의 것을 중시하는 MZ세대는 디지털 정보 기술에 기반해 모든 소비자에게 세분되고 맞춤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초개인화 세상에서 그 어떤 세대보다 큰 만족을 누릴 수 있다. 이제는 내가 직접 바다를 헤엄쳐 필요한 정보와 자원을 찾아다니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뛰어난 기술의 힘을 빌려 정보의 바다에서 내게 가장 필요하고 맞는 정보를 건져 올려 배달받는 세상이 되었다.
MZ세대에게 디지털 문명과 기술은 놀라운 시대 변화의 산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냥 그 모든 것이 그들의 삶 자체이자, 익숙한 수준을 넘어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했던 일상에 불과하다. 그들이 벗 삼아 자라 온 디지털 기술은 이제 그들을 보다 특별한 나로 대접받고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나, 본연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은 어쩌면 그 어떤 세대보다 다양하진 않아도 본인에게 꼭 맞는 정보를 본능적으로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에게는 수많은 물고기가 존재하는 바다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물고기 몇 마리가 사는 연못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기술이 아닌 시대와 세대가 초개인화를 탄생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기술도 결국 쓰임새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