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된 전시《시간과 클라우드》의 작가, 현대미술가 호추니엔은 싱가포르의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주로 “역사”와 “시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보여준다.

▪ 그의 미디어 작업은 동시대 아시아인의 삶에 대한 질문이자 해답을 찾아가는 작가의 광대한 여행으로 읽힌다.

▪ 대표작으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분열을 다룬 <호텔 아포리아>, 시간의 근대성에 대한 <타임피스>, 동남아시아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던진 <동남아시아 비평사전> 등이 있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이름, 호추니엔(Ho Tzu Nyen). 호추니엔은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된 적이 있어 익숙한 이름처럼 들린다. 그러나 친숙한 이름과는 별개로 그의 작품은 과거와 역사를 다루는 만큼 꽤 엄중하고 무겁다. 특히 탈식민주의라는 무거운 주제는 호추니엔 작품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만 같다.

 

탈식민주의는 1978년 출간된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식민주의를 담론의 차원에서 해석함으로써 탈식민주의 이론을 본격화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쉽게 말해 “동양과 서양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론적이자 인식론적 구별에 근거한 하나의 사고방식”을 뜻한다. 서양이 인식하는 동양(Orient)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서양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라는 뜻이다.

 

싱가포르의 현대미술가 호추니엔은 이러한 탈식민주의 담론을 기반으로 “역사”와 “시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보여준다. 최근 서울 종로에 위치한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된 개인전에서는 서구와 아시아, 아시아와 아시아, 제국과 식민지, 식민지와 식민지가 만나고 충돌하며 형성되는 새로운 공간으로서 아시아의 현재를 보여주었다. 작가의 이러한 탐구는 이분법적 대립 구조를 넘어 다양한 근대성이 충돌하는 지점을 담아내면서 확장하는 아시아의 현재를 드러낸다.

 

전시 제목 《시간과 클라우드》에서 “클라우드”는 일차적으로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가리키지만, 호추니엔의 작품 세계에서는 보다 넓은 의미로 확장된다. 그에게 클라우드란 신화적이고 영적이며 종교적인 상징물이자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어떤 미지의 대상이기도 하며, 미술에서 화면을 나누는 시각적 장치이기도 하다. 또한 온라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서버와 데이터베이스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클라우드는 호추니엔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면서 그의 세계관을 미학적으로 작동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는 20년에 걸친 호추니엔의 작업 세계를 밀도 있게 보여주었는데, 크게 보았을 때 각 층에 전시된 세 점의 작품 <미지의 구름>(2011), <호텔 아포리아>(2019), <시간(타임)의 티>(2023-2024)가 중심이 되었다. 이 작품들은 동시대 아시아인의 삶에 대한 질문이자 해답을 찾아가는 작가의 광대한 여행으로 볼 수 있다.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시 전경 © 아트선재센터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시 포스터 © 아트선재센터

제국주의의 분열 <호텔 아포리아>

먼저 탈식민주의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내는 작품으로는 <호텔 아포리아>가 있다. 일본 다이쇼 시대에 지어진 일본 전통 여관(료칸)에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으로 제작·상영되었고, 아트선재센터 전시장에서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재현되었다.

 

이 료칸은 가미카제 특수공격부대의 마지막 연회 장소로 사용된 곳이다. 가미카제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연합국 함대에 시도한 비행기 자폭 전술과 이를 위해 조직한 특공대를 가리킨다. 가미카제 조종사들은 태평양 전쟁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키나와로 출발하기 전 이곳에서 마지막 날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이 공간이 오래된 일본식 전통 여관에 머물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와 긴밀한 연관이 있는 장소임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호텔 아포리아>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분열과 자기애, 그리고 그 여파를 그려내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영상물 속 인물들의 얼굴을 지우고 영상 및 소리 그리고 설치물들 사이로 바람을 불게 만들었다. 지워진 영상 속 인물들의 얼굴은 제국주의의 결과를 익명화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영향이 현재의 투명한 시간 속에 존재하며 오늘날에도 언제든 다시 작동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현재의 시간은 전시장을 채우는 바람과 함께 흐르며 비어 있는 존재를 허무하게 드러낸다.

호추니엔, <호텔 아포리아>, 2019. © 직접 촬영
호추니엔, <동남아시아 비평사전(the Critical Dictionary of South-east Asia)>, 2012-2017. © 작가 홈페이지

시간 안에 집약된 근대성 <타임피스>

탈식민주의와 연결되는 개념으로는 “근대성”을 들 수 있다. 근대성이란 근대의 특징을 표현하는 용어인데,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근대성의 개념을 대략 정리해 보면 지리적·국가적 경계를 넘어 정치·사회·경제·문화 전반을 가로지르는 교차점에 위치하는 무언가를 지칭한다.

 

호추니엔의 <타임피스>라는 신작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근대성에 좀 더 접근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특별히 이 작품은 “시간”을 다루는데, 바로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의 개념이 근대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유럽 근대인들은 시간을 물리적으로 측정하여 계량하고 기준점을 만들어 그 시간을 지구라는 공간에 대입시켜 시간 개념을 공간적으로 구축했다.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 장치의 개발은 근대 이전에도 동양과 서양 모두에 있었지만 시간을 균질하게 전 지구적으로 적용한 것은 근대 유럽인이 처음이었다.

 

근대인들이 발명한 시간의 공간화는 지구라는 공간을 시간상으로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정치와 경제를 전 지구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기에 호추니엔에게 시간에 대한 탐구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가 탐구하는 아시아와 근대성,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문제는 근대적 의미의 시간의 공간화에 의해서 더욱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시간(타임)의 티>와 <타임피스>는 쌍둥이와 같은 작업이다. 작가는 이 작품들에서 시간에 대한 총체적 연구를 수행한다. 동양과 서양의 시간에 대한 신화에서부터, 근대 이전의 시간에 대한 인식과 문화, 각 언어에서 시제의 문제, 시간을 계량화한 시계라는 기계 장치, 이를 토대로 형성되는 시간성 등을 두루 다루는 것이다.

 

시간의 거대한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 <시간(타임)의 티>와 <타임피스>는 시간을 공간적으로 인식한 근대적 시간의 발명에서 출발해 인류의 시간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탐구하고, 궁극적으로 시간과 공간이 응축되고 확장하며 사라지는 거대한 우주론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근대성”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호추니엔, <타임피스>, 2023-2024. © 직접 촬영
호추니엔, <시간(타임)의 티>, 2023-2024. © 직접 촬영

아카이브의 역설 <동남아시아 비평사전>

이번 전시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호추니엔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은 그가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을 어떻게 사유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A부터 Z까지 26개의 알파벳에 상응하는 동남아시아와 관련된 일화, 개념, 신화, 인물 등을 선별해 놓은 아카이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은 언어, 정치, 종교 등 하나의 맥락으로 통합된 적 없었던 아시아의 남동부 지역이 어떻게 동남아시아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수렴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동남아시아”라는 용어는 현지인들에 의해 사용된 개념이 아니라 식민주의 시대에 서구인들이 이 지역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각각의 지역이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음에도 동남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묶여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품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을 들여다보면 실시간 영상들을 무작위적으로 편집하고 재배열한 방식이 돋보인다. 이렇게 편집된 이미지들은 일회적이기 때문에 고정되지 않고 흘러가는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계속해서 변화하는 아카이브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끊임없는 기록을 생성한다. 동남아시아에 대한 백과사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불완전한 기록의 양상을 제시함으로써 “사전”이 지닌 객관성을 전복하는 것이다.

 

아카이브에는 공적 기록물과 그 기록물이 보관된 공간이라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미술 비평가들과 구조주의 철학자들은 아카이브에 대한 탈근대적 접근에 대해 주목했다. 가령 미술 비평가 할 포스터는 2004년 「아카이브 충동(An Archival Impulse)」이라는 글에서 아카이브를 활용한 예술이 보여주는 탈근대성의 시각 표현 특징과 그 의의를 분석했다.

 

아카이브가 객관성과 중립성이라고 하는 근대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지켰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카이브를 차용한 예술가들은 주관적인 시각으로 아카이브의 원칙을 넘어 기록물을 자유롭게 다룬다. 이러한 작업은 아카이브에 포착되지 않은 부분들, 비어있는 부분을 포착하거나 아카이브가 가지고 있던 불확실성과 불충분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연결될 수 없는 것들을 연결하려는 의지.” 현대미술가 토마스 허쉬혼(Thomas Hirschhorn)은 아카이브 아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호추니엔의 아카이브 아트도 잃어버린 과거를 조사하고 그 흔적을 수집하며 현재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려는 의지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연결될 수 없는 것을 연결하는 예술적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호추니엔의 작품을 보면 수많은 영화와 영상에서 시간을 언급하는 장면을 발췌해 연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시간이 현실의 시간과 동기화되어 상영됨으로써 다중적이고 이질적인 시간성을 표현한다. “발견된(found)” “영상(footage)”이라는 뜻의 “파운드 푸티지”로 불리는 이 기법은 원본 자료의 의미와 형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맥락으로 끌어내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처럼 호추니엔은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영상들을 새로운 성좌 속에 재배치함으로써 이미 알려진 공식적 역사를 동요시키고 역사에 대한 대안적 인식을 가능하게 만든다. 보편적인 지식으로 생각되어 왔던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는 그의 전략은 관객으로 하여금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에 대해 스스로 사유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그동안의 지배적인 담론이 지닌 자기모순을 발견하게 되며 역사를 다층적으로 바라보면서 새로운 역사 쓰기가 가능해진다. 특히 서구 중심적인 근대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면서 식민주의의 흔적에서 비롯된 문화 실천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호추니엔이 아시아 지역의 억압된 예술적 상상력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 글로벌 문화 지형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 등은 인식의 틀로서 힘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동안 “동양”이나 “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이 서구의 시각에서 발현된 용어였다면 앞으로의 지형에서는 그동안 소외되었던 지역들이 부상할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호추니엔의 작업은 불완전성이 낳는 모호성, 불안과 같은 심리 작용을 통해 우리에게 사유의 틈새를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