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본래 비엔날레(biennale)라는 단어는 2년에 한 번씩(bi-annual) 열리는 대규모 오프라인 미술 전시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도시에서 비엔날레가 개최되어 왔지만, 그중 비엔날레의 이름을 달고 2년에 한 번씩 열리지 않거나 온라인으로 열리는 전시회도 있었다. 흐지부지되어버린 비엔날레의 본뜻은 결국 2020년 세계적 대유행으로 그 사전적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하지만 팬데믹을 계기로 비엔날레의 콘텐츠는 오히려 더 풍부해졌다. 올해 3년 만에 열린 베니스비엔날레는 성황리에 진행 중이며, 디지털 전환의 흐름이 가속화되면서 도시뿐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공간을 넓히게 된 비엔날레는 더 많은 사람에게 기존과는 구별된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었다.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특정 도시 외에도 개최 장소의  범위가 온라인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이처럼 비엔날레의 공간은 잘 준비된 예술을 담아내기 위한 아름답고 실용적인 그릇처럼 기능한다.

기술이 결합된 베니스비엔날레 © The Architect’s Newspaper

2019UABB

UABB는 Bi-City Biennale of Urbanism\Architecture의 약자로, 여기서 Bi-City는 선전과 홍콩을 의미한다. “Eyes of the City”라는 주제로 열렸던 2019년은 도시 공간과 기술의 혁신 사이의 관계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주목적이었기에, 비엔날레 최초로 큐레이팅 단체에 대학을 포함하며 MIT 교수이자 건축가인 카를로 라띠(Carlo Ratti)를 수석 큐레이터로 임명하기도 했다.

 

문제는 개최 직전과 그 이후였다. 2019년 6월부터 진행된 홍콩의 대규모 시위와 정치적 이슈, 그리고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비엔날레 개최 장소인 고속철도역과 비엔날레의 주제(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도시의 눈이라는 표현)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졌으며 이는 비엔날레의 오프라인 공간, 즉 물질적 축소로 이어졌다.

 

하지만 “Eyes of the City”는 이를 계기로 비물질적인 가상 공간으로 비엔날레를 확장하며 재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AI와 알고리즘, 자율주행, 안면 인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기술들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열띤 토론이 온라인에서 진행되었고, 그 결과 디자인과 연구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작성된 비평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상파울루비엔날레 (Bienal de São Paulo)

미국의 휘트니비엔날레, 이탈리아의 베니스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로 불리는 상파울루비엔날레는 2020년에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1년이 연기되었다. 그러나 2021년 역시 기존에 구상했던 연출을 전면 수정하고 단체전은 그대로 연기시킨 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주최 측은 이러한 문제 속에서도 그들만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할 수 있는 색다른 방식으로 비엔날레를 기획하게 된다.

 

상파울루 한가운데에 있는 이비라푸에라 공원의 파빌리온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전시장을 만든 것이다. 현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한 채 도시를 돌아다니며 숨겨진 전시장을 구경할 수 있고, 이동 과정에서 보이는 풍경과 건축물의 모습까지 비엔날레의 일부라고 착각하게 된다. 전시장 바깥으로 관람객들을 유도함으로써, 끝이 없는 무한성이라는 디지털만의 특성을 오프라인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오프라인상에서 넓게 분산된 출품작들은 온라인 웹사이트에 모여 아카이빙된다. 상파울루비엔날레는 기존 온, 오프라인의 역할을 전복시킨 사례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고 주최 측은 올해 개최되는 상파울루비엔날레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발표했다.

카셀도큐멘타 (Kassel Documenta)

도큐멘타는 비엔날레보다 조금 더 긴 5년 주기로, 독일의 소도시 카셀에서 개최하는 대규모 전시이다. 그래서인지 회차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데, 특히 올해 열린 15번째 도큐멘타는 최초의 아시아계 총감독과 팬데믹이 겹치며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부쉈다. 전시회의 주제를 없애고, 참여자들을 작가 대신 멤버라고 지칭하며 초대된 67명에게 각자 함께할 사람들을 다시 초대하라고 공지하는 등의 파격적인 진행을 이어가게 된다.

 

관람 동선의 출발점이자 안내 센터 역할을 하는 루루하우스(ruruHaus)를 시작으로, 도시 내 공원과 거리를 돌아다니며 32개의 전시관과 갤러리를 방문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또한 전시 지킴이로 임명된 카셀 주민들은 도시 전역에서 관람객들에게 길을 알려주거나 전시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올해 도큐멘타에 참여한 사람은 대략 1,500명 정도로 추정된다. 하지만 도시 곳곳에서 멤버와 카셀 주민, 해외 방문객이 함께 소통하면서 정적이었던 현대 미술품 전시 공간은 경험과 관계가 끝없이 이어지는 동적인 교류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고, 도큐멘타는 그들만의 이벤트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하나의 큰 커뮤니티로 그 모습을 탈바꿈하고 있다.

DOCUMENTA FIFTEEN © Kassel Marketing GmbH

파리비엔날레 (La Biennale Paris)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비엔날레를 고르자면 파리비엔날레로 불리는 라 비엔날레(La Biennale Paris)가 있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으로 지어진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열리는 골동품 전시회(La Biennale des Antiquaires)로 시작된 파리비엔날레는, 2017년 연례행사로 리뉴얼을 거쳤음에도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유지하며 순수 예술 작품과 다양한 컬렉션을 함께 수용하고자 했다.

 

2019년 제31회 파리비엔날레를 마친 뒤 파리비엔날레 주최 측(The Syndicat National des Antiquaires)은 팬데믹으로 인해 제32회 파리비엔날레를 1년 연기할 것을 발표했다. 그 대신 온라인상에 가상 부스를 만들어 약 2주간 온라인 경매를 진행하고 미술 시장에서 미술품 딜러의 역할을 탐구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온라인에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팬데믹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2022년 파리비엔날레는 루브르 박물관(Carrousel du Louvre)과 온라인에서 동시 개최되며 Fine Arts Paris & La Biennale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파리비엔날레의 총괄인 루이 드 바이저(Louis de Bayser)가 “향후 3년 동안 루브르에서 그랑 팔레로 장소를 옮겨가며 국제 미술 시장에서의 파리의 위상과 중요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파리비엔날레는 팬데믹 위기를 그들만의 재성장 기회로 만들며 2024년에 개최될 파리올림픽과 함께 더욱 다채롭고 탄탄한 전시 공간을 갖추어나가고 있다.

파리비엔날레 © La Biennale Paris

이처럼 예술가에게 시공간의 변화와 기술의 발달은 매우 큰 변화의 요소다. 동시에 비엔날레에 참여하기 위해 작품을 준비하고 다듬는 2년이라는 주기, 그리고 작품의 크기와 무게 제한 요소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더 넓고 깊어진 비엔날레에서 오가는 예술적 교감과 상호간의 소통은 공간적 확장과 함께 더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이 있게 가 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