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도시 브랜딩의 무한 경쟁 시대다. 1970년대쯤,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대두된 도시 브랜드의 중요성은 관광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글로벌 대도시뿐만 아니라 인구 소멸을 겪는 소도시에서도 도시 브랜딩을 더욱더 강조하는 추세다. 실제로 전 세계 수많은 도시는 각자의 차별성과 경쟁력을 살려 브랜드화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러나 도시‧법‧건축‧문화‧사회‧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과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데 반해 실제적인 성과와 장기적인 비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들리기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도시 브랜딩은 기업 브랜딩과 기본적으로 다르다. 도시 브랜딩은 모두의 이해관계를 포괄하는 공공성을 주요 핵심 과제로 삼는다. 주요 목표가 특정 집단을 타깃으로 한 최대 이윤 추구가 아니기에 더욱더 장기적인 차원에서 계획을 세워가며 체계적으로 브랜딩해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전담 기관이 없거나 정권에 따라 변화를 거치며 일시적인 성과를 달성하는 데만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 시민과 관광객, 공공기관과 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결투장이 되는 일도 허다하다. 심지어 지역의 장점과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전략, 의미와 따로 노는 디자인 등 실패 요인이 더해지며 어마어마한 예산을 쓰고도 목적 잃은 도시 브랜딩이 되는 경우도 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뉴욕시에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등장한 I♥NY MORE THAN EVER Ⓒ Los Angeles Times
(좌)I♥NY의 초기 스케치 (우)I♥NY의 상징적인 로고 Ⓒ Fine Print Art

I♥NY 그리고 I amsterdam,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렇다면 모두를 위한 도시 브랜딩은 어떻게 해야 바람직할까? 우선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기존 사례들을 먼저 살펴보자. 가장 성공적인 도시 브랜딩 사례로는 뉴욕의 아이 러브 뉴욕(I♥NY)이 있다. 1970년대 당시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로 몸살을 앓던 뉴욕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관광 산업으로 경제 불황을 타개하고자 1977년 아이 러브 뉴욕이라는 도시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했다. I♥NY이라는 아주 간단한 슬로건과 로고였지만, 아이 러브 뉴욕은 뉴욕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수익 모델로서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도시 브랜드가 되었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도시 브랜딩 사례로는 암스테르담의 아이 암스테르담(I amsterdam)이 있다. 암스테르담은 유흥가, 마약, 성매매 등 환락의 도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도시였다. 그나마 이전에는 해양 도시라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도시의 산업 구조가 개편되며 그마저도 경쟁력을 잃어 리브랜딩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2004년, 암스테르담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도시의 새로운 가치를 소개하기 위해 I amsterdam을 새로운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아이 암스테르담은 모두가 암스테르담의 시민이라는 의미로, 자유로운 예술적 분위기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의 포용성을 내포한다. 그와 함께 암스테르담의 역사적 인물인 세인트 앤드루를 기리는 세 개의 십자가 모양인 XXX가 도시의 새로운 로고로 선정했다. 이 심플한 슬로건과 로고는 아이 러브 뉴욕과 마찬가지로 암스테르담의 매력과 자부심을 담은 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때부터 아이 러브 뉴욕이나 아이 암스테르담과 같은 상징적이고 간단한 슬로건, 활용하기 좋은 심플한 로고 등이 도시 브랜딩의 정석과 같이 여겨지며 유사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다. 왜냐하면 2000년대까지의 도시 브랜딩은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고 관광객과 기업을 유치해 도시산업을 키워 수익을 늘리려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빠르게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단발성 이벤트와 캠페인, 눈길을 끄는 디자인과 슬로건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도시 브랜딩에서 입에 착 붙는 슬로건과 눈길을 사로잡는 로고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들어 그렇게 단편적인 이미지만 내세워서는 도시 브랜딩에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뉴욕과 암스테르담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단순히 인상적인 로고나 슬로건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 러브 뉴욕은 당시 경제 침체로 절망에 빠져있던 도시에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기획된 일종의 구호이자 상징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아이 러브 뉴욕은 단순한 도시 브랜딩을 넘어 “경제불황기를 견디고 극복하는 데 필요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회적 힘과 역할”을 해냈다고 평했다.

 

실제로 아이 러브 뉴욕 캠페인은 1977년 당시 경제 불황뿐 아니라 이후 도시에 닥친 여러 위기에서 계속 변주되며 희망을 위한 구호를 외쳤다. 아이 러브 뉴욕 로고를 디자인한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는 2001년 9·11테러 이후 아이 러브 뉴욕을 변주한 슬로건 I♥NY MORE THAN EVER를 공개했고, 이 슬로건은 뉴욕 곳곳에 전시되며 전 세계인에게 위로와 평화를 전했다. 2023년에는 리브랜딩을 통해 모두를 포용하는 뉴욕시의 이미지를 나(I)에서 우리(WE)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WE♥NYC라는 슬로건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1977년, 슬로건과 함께 공개된 아이 러브 뉴욕(I Love New York) 광고 캠페인 노래는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시장에 의해 뉴욕주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채택되었다. 이후 이 곡은 2020년 팬데믹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도시에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개사한 캠페인 송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이 러브 뉴욕은 단순히 도시를 대표하는 슬로건이 아닌, 도시에 위기가 닥쳤을 때 모두가 외치며 뭉칠 수 있는 구호가 되었다.

포토 스팟으로 사랑받는 I amsterdam의 상징적인 조형물 Ⓒ This is not ADVERTISING

아이 암스테르담 역시 아이 러브 뉴욕과 비슷한 전략을 사용했다. 아이 암스테르담(I amsterdam)은 I am과 Amsterdam의 합성어로, 우리 모두는 암스테르담 시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가치관은 슬로건을 도출하는 과정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암스테르담은 약 2년여의 세월을 투자해 시민, 기업, 관광객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암스테르담을 선택하세요(Choosing Amsterdam)라는 캠페인을 펼쳐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두를 포용하는 체계적인 브랜딩 계획을 세웠다.

 

인구 절반 가까이가 이민자인 암스테르담은 그만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다. 이러한 도시의 특징이자 가치를 내세운 슬로건은 암스테르담을 자유와 포용의 상징과 같은 도시로 만들었고, 그러한 도시에서 느껴지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분위기는 수많은 관광객과 유망한 스타트업을 암스테르담으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아이 암스테르담은 도시의 다양한 문화를 대표하는 자부심의 문구이자 다양성과 자유, 도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로건으로 자리 잡아 지금까지 시민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도시 브랜딩에는 도시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전략이 숨어 있다. 정답이 존재하진 않지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도시 브랜드의 사례에서 방향성을 추론해 보면 그 중심엔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뉴욕과 암스테르담의 성공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겼다는 공통 지점을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심플한 슬로건과 로고의 성공 비결 뒤에는 수많은 이해관계를 묶는 공통의 가치관이 있었다. 두 사례 모두 정치적 색깔과 트렌드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지역의 장점을 살리고 니즈 역시 정확히 반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극적이고 일관된 캠페인을 펼쳐 시민들의 참여를 압도적으로 늘렸다. 그렇게 일련의 노력을 통해 두 도시 모두 도시 브랜딩의 주체를 모든 구성원으로 세우고 다 함께 공감하는 도시 브랜드를 만들어 갔다.

2020년 세계 도시 포럼 Ⓒ RIBA
2023 서울 도시경쟁력 글로벌 포럼 Ⓒ 서울 도시경쟁력 글로벌 포럼

모두가 함께 고민하는 도시 브랜딩

이처럼 괄목할 만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위한 도시 브랜딩은 여전히 쉽지 않다. 도시를 두른 수많은 이해관계를 통합한 슬로건과 로고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추구하는 가치, 캠페인, 정책을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실행하며, 세계인을 대상으로 도시 브랜드를 각인하게 만드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도시 브랜딩은 여전히 주요한 과제다. 특히 최근에는 이러한 흐름이 도시 브랜딩을 특정 국가나 지자체의 사업이 아닌, 전 세계 인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함께 고민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시 포럼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요 키워드와 이슈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요즘의 도시 브랜딩을 아우르는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역시나 지속가능성을 위한 도시 리브랜딩이다. 초기의 도시 브랜딩은 국가와 도시가 주력하는 사업의 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바뀌는 식이었다. 뉴욕은 기존 경제 구조가 무너지면서 강구책으로 시작한 도시 브랜딩을 통해 아이 러브 뉴욕을 도출했고, 암스테르담 역시 해양 무역 산업이 저물면서 각종 IT와 금융 계열의 스타트업을 유치하기 위해 도시 리브랜딩을 단행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운하 지역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살리되, 창의성이 꿈틀대고 모두가 주체인 문화와 경제 허브로서 아이 암스테르담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도시 리브랜딩 작업에는 단순한 산업 구조의 변화보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 위기로 흩어진 구성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모두 함께 나아갈 방향을 함축한 도시 브랜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2020년 이후의 도시 리브랜딩은 디폴트처럼 지속가능성, 다양성, 공존과 상생, 환경 보호라는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다. 단기적인 성장과 경쟁, 빠른 발전만이 전부가 아님을 뼈저리게 인식한 지금, 미래 지향적인 도시 브랜딩은 이런 단어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을 지경이다. 실제로 세계 도시 포럼(World Urban Forum)과 세계도시 정상회의 시장 포럼(WCS Mayors Forum) 등 최근 시행된 주요 대규모 도시 포럼에서는 지속가능성을 메인 키워드로 내세워 장기적인 측면에서 협력과 논의를 유도했다.

 

코로나가 바꾼 도시 브랜딩의 흐름은 지속가능성뿐만이 아니다. 초연결 시대가 열리며 역사, 지형, 문화유산 등 기존 도시 브랜딩에서 많이 쓰던 요소가 아닌 신기술, 디지털 인프라, 미래 지향적인 스마트도시를 내세운 브랜딩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각종 글로벌 도시 포럼에서는 스마트 시티와 관련된 기술과 실천 사례를 공유하며 상생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때 핵심은 기술 자체보다는 그 기술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다.

 

서울시 역시 2023년 2월에 열린 서울 도시 도시경쟁력 글로벌 포럼에서 디지털로 동행하는 매력 도시 서울이라는 부제로 디지털 시대 서울의 브랜딩과 경쟁력에 대해 고민했다. 거기에 동행·매력 특별시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더해 스마트 도시의 최신 기술과 인프라가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구성원 전체를 위함을 드러냈다. 실제로 포럼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최신 기술과 공공 정책이 어떻게 접목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스마트 시티가 어떻게 글로벌한 도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처럼 도시 브랜딩은 2020년, 팬데믹 전후로 찾아든 커다란 변화의 물결 위에서 항해 중이다. 국가와 지자체 주도나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아닌, 도시 브랜딩을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구성원들의 집단 지성과 참여로 풀어가려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이때 지자체들은 단기적인 소수의 이익을 지양하고 지속가능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전 과정에 시민 참여와 공감 캠페인을 필수적으로 넣는다. 고정된 탑다운(top-down) 형식의 이미지 각인이 아닌 과정과 참여 자체가 가치를 만드는 도시 브랜딩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것이다. 뉴욕과 암스테르담뿐만 아니라 또 다른 우수 사례로 평가받는 포르투 역시 이러한 전략을 취했다.

포르투는 도시 브랜딩을 캠페인 형식으로 진행하며 시민에게 당신의 포르투는 무엇인가요? (What is your Porto?)라는 질문을 던졌다. 가장 많이 나온 답은 22개의 상징이 되어 전통 타일 건축 양식인 아줄레주(Azulejo)에 새겨졌다. 타일은 어떻게 조합해도 하나의 디자인이 되는 플렉서블(flexible)한 무엇이다. 포르투는 타일을 조합한 디자인으로 도시 구성원이 전하는 다채로운 메시지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담아냈다. 이것이 바로 포르투의 도시 브랜딩이 과정부터 결과까지, 다양한 구성원의 유연한 연결과 협력을 담아낸 긍정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이유다.

 

부산 역시 2023년 리브랜딩을 시도했다. 이때 가장 강조했던 것이 바로 시민 참여형 도시 브랜딩이었다. 온라인 소통 창구를 만들고, 시민 참여단을 모집해 수시로 의견을 모았다.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슬로건, 로고 디자인, 캠페인 등 다양한 브랜딩 과정에 참여한 결과, 최종적으로 부산이라 좋다(Busan is good)는 슬로건이 채택되었다. 이 슬로건에는 앞 글자를 따서 빅(BIG), 끝없이 확장하는 훨씬 더 큰 부산을 그려가겠다는 시민들의 자부심 또한 담겨 있다. 부산뿐 아니라 인천, 경기, 고양 등에서도 시민 참여와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도시 브랜드를 만들어 가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각 도시들은 캠페인과 도시 포럼을 열어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중이다.

포르투의 도시 브랜딩 Ⓒ blog.

각국의 도시들은 글로벌 시대 속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오늘도 치열한 도시 브랜딩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그 형태가 좀 달라졌다. 무조건적인 기업과 관광객 유치를 지양한다. 시민들의 삶과 고유한 인프라, 자연환경을 병들게 하는 오버투어리즘, 무분별한 지역 개발과 기업 유치는 옛말이 되었다는 의미다. 이제 도시는 시민, 관광객, 기관, 기업, 자연환경 이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투어리즘, 공생과 상생의 주요한 허브가 되는 스마트 글로벌 도시로의 발전을 꿈꾼다.

 

202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도시 브랜딩의 흐름은 분명 유의미하지만, 도시 브랜드를 각인시킬 만한 장기적인 시민 참여 캠페인과 그에 상응하는 정책 추진이라는 거대한 과제는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다. 도시 브랜딩은 슬로건과 로고를 만들고 적용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사실상 진정한 도시 브랜딩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지속가능한 도시 브랜딩이 정말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도시 브랜드의 가치를 모두가 실제로 경험하고, 공감하며, 스스로 체득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럴듯한 구호나 보기 좋은 디자인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모두를 위한 도시 브랜딩은 결국 모두의 삶 전반에서 진정으로 경험할 수 있는 도시의 진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