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반려자가 된 식물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이다. 다소 비극적으로 보이는 소설의 결말에서 희망을 건져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형제가 식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생태학적 상상력일 것이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려야 하는 작금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무엇이다. 식물을 마주한 채 식물에 마음을 온전히 쏟을 수 있다면 식물은 우리의 반려자가 될 수 있다. 반려 식물은 코로나 블루로 지친 우리들의 마음마저 방역해 준다.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안전을 위협받는 세상 속, 집에서 기르는 식물들은 우리들의 고립감을 해소해 준다. 특허청의 발표에 따르면 반려 식물 관련 물품 디자인 출원 수는 2020년에 전년도 대비 36%나 증가했다. 트렌드모니터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반려 식물로 심리적, 정서적 안정감을 느꼈다는 답변이 응답자의 44%에 달했다.

 

싹을 틔우고 햇빛을 보기 위해 잎의 방향을 조절하는 식물의 몸짓에서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태적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애정과 마음이 식물의 생명과 연결된다는 연대감은 나와 자연이 연결되어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깨우쳐 준다. 식물이 우리와 자연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식물이 제공하는 안정감과 생의 활력은 행정적인 복지제도에도 활용되고 있다. 서울시에서 2017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반려 식물 보급사업’은 지난 3년간 만여 명의 저소득층 노인분들에게 반려 식물을 보급했다. 해당 사업은 2018년에 시행한 만족도 결과에서 100점 만점에 92점을 기록해 성공적인 반려 식물 지원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서울시는 2019년에 반려 식물 예술제를 개최해 반려 식물로 생의 활력을 얻는 사례들을 보여 줌으로써 반려 식물이 우울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바 있다.

 

반려 식물을 복지제도로 활용하는 지자체는 서울시만이 아니다. 양주시는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를 이용 중인 지역 내 독거 어르신 200명에게 반려 식물을 제공하는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거창군 또한 독거노인분들을 포함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반려 식물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반려 식물이 고립된 개인들의 심리 방역에 도움이 되며, 행정적인 복지 제도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반려 식물 관련 물품 디자인 특허 출원 수 Ⓒ 특허청

도시와 자연의 공존 가능성 – 돈의문 수직 정원(Vertical Garden)

식물은 개개인의 심리방역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식물이 자연을 연상시킨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이 시대에 식물이 주목받는 것은 다수의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브랜드의 가치로 내세우는 것과 무관할 수 없다. 이전까지 도시와 기업은 자연과 상반되는 것으로,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을 수반하는 인공적인 이미지로 여겨졌다. 그렇기에 자연은 생산성과 편리성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타자였으며 ‘자연보호’는 다음의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미래 가치였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온몸으로 기후변화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자연보호는 더는 미래로 미룰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이제는 자연이 어떻게 도시/기업과 공존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은 엄중한 윤리적 당위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시민들은 안정감과 자연과의 유대감을 얻기 위해 식물과 공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근교로 나가는 것조차 제약을 받는 지금의 상황에서 도시에 사는 이들은 자연을 접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언택트 환경이 일상이 된 지금, 자연과 도시의 공존을 원하는 개인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런 윤리적 당위와 개인들의 선호가 맞물려 도심과 자연 사이의 접점을 찾아낸 프로젝트가 바로 돈의문 수직 정원이다.

 

수직 정원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으며, 만지는 장소보단 보기 위한 장소, 즉 관상용 정원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도시 내에 넓게 펼쳐진 정원을 조성하기에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주로 대안적인 방안으로 채택되어 왔다. 또한 수직 정원은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기에 관리가 어렵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부산현대미술관 외벽의 수직 정원이 폭염, 폭우 등으로 말라붙어 흉물이 된 사례가 대표적으로 수직 정원이 지닌 관리의 딜레마이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건축된 돈의문 수직 정원은 이런 수직 정원의 문제점들을 고려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플랜터 자체를 회전형으로 제작했다. 접근성을 향상해 관리를 수월하게 만든 것이다. 또한 기후적인 요인뿐 아니라 식물 자체의 특성을 고려한 관수 시스템을 구비하고 가드닝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드는 등, 수직 정원의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돈의문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점은 수직 정원의 문제점들을 보완한 것에만 있지 않다. 그간 도시에 조성된 정원들은 일반적으로 완성에만 초점이 있었다. 건물 공사처럼 정원 또한 완공되면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돈의문 프로젝트는 과정형 사업임을 강조한다. 정원을 어떻게 지속해서 관리할 수 있을지, 지속적인 가드닝 환경에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려하여 시민들이 지속해서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모색하게 만든다. 시민들은 도시 속에서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며, 자연과 함께 성장한다.

돈의문 수직 정원(Vertical Garden)의 외형 Ⓒ 코어 건축사사무소
KUHO와 분더샵 한남플래그쉽 스토어 Ⓒ 아이즈매거진

기업과 자연의 공존 가능성

자연과 도시의 공존 가능성에 발맞추어 기업 또한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브랜드 전략으로 설정하고 있는 지금, 식물은 개인들에게 심리적 편안함을 주면서도 기업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메신저의 기능을 수행한다.

 

식물 콘텐츠 브랜드 플랜트 소사이어티1(Plant Society 1)은 시민들이 어떻게 식물과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플랜트 소사이어티1은 개인들의 상황과 취향에 맞는 반려 식물을 추천할 뿐만 아니라, 식물과 관련된 잡지를 발행하고 식물이 어떻게 도시인들의 삶에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소개한다. 지난 6월 15일부터 6월 30일까지 전개된 KUHO와 플랜트 소사이어티1과의 협업 전시는 자연이 어떻게 도심 속 기업과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협업 전시의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 전시 공간은 식물을 통한 휴양지의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여행마저 제한되는 지친 일상 속에서 식물을 통해 휴양지의 공간을 재현해 낸 것이다. 플랜트 소사이어티1은 KUHO뿐만 아니라 분더샵, 키티버니포니 등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도시 속에서 식물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지난 2월 26일 오픈한 ‘더 현대 서울’의 실내정원 또한 기업과 자연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 준다. 더 현대 서울은 8만9,100㎡에 달하는 서울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지만, 매장 공간의 절반에만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나머지 절반의 공간은 고객편의시설로 구성했는데, 고객편의시설 대부분은 자연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그중에서도 5층에 있는 ‘사운즈 포레스트’는 3,300㎡에 달하는 거대한 실내 정원이다. 유리 천장을 활용해 자연 채광을 극대화한 사운즈 포레스트에는 50여 그루의 나무와 10여 종의 화초류가 식재되었으며, 광장에는 화분 100여 개를 배치해 백화점 속에 그린 인프라가 조성되었다. ‘미래를 향한 울림(Sound of the Future)’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더 현대 서울이 건물의 한 층을 녹지 공간으로 조성한 것은 우리의 미래가 자연과의 공존에 있다는 고백으로 들리기도 한다.

 

기업은 이제 더 나무를 벌목하고, 자연을 훼손함으로써 성장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단기적 성과를 위해 황금알을 낳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다. 자연과의 공존은 우리의 삶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필요조건이라는 인식이 확장되고 있다. 개인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의 친환경 전략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더 현대 서울의 '사운즈 포레스트(Sounds Forest)' Ⓒ 건축 사무소 allee

우리가 식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3년 전 어버이날, 부모님께 작은 몬스테라와 선물을 드린 경험이 있다. 선물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부모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 드렸던 몬스테라는 아직도 집에서 자라고 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였던 몬스테라는 지금 내 허리의 절반까지 잎을 뻗었다.

 

햇빛이 좋은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집에 있는 몬스테라를 생각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온몸을 덮어도 물은 줘야지 하며 일어나고, 햇빛을 쐬게 해주기 위해 화분을 옮기는 나를 생각한다. 나의 정성과 노력은 몬스테라의 활력과 연결되며, 몬스테라의 활력은 나의 활력이 된다.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고, 그 존재가 자연일 때의 생태학적 유대감은 인간의 미래가 자연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식물을 통해 우리와 자연이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식물은 이미, 그리고 언제나 우리의 반려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