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최근 일본에서 가장 머물고 싶은 트렌디한 숙소로 호텔 K5가 주목받고 있다. 오직 이 숙소에 방문하려는 목적으로 도쿄에 들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사람들이 K5를 찾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1순위로 꼽히는 건 기꺼이 머무르고 경험하고 싶은 감각적인 공간이다.

 

K5는 도쿄의 대표적인 증권가 니혼바시 가부토초에 있는 1920년대 은행 건물을 리모델링한 호텔이다. 모던한 도시 분위기와 어울리는 초록빛 자연, 전통적인 일본 디자인과 북유럽 스타일, 오래된 은행 건물 특유의 분위기와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공존하는 이곳에서는 허물어진 경계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아이마이(曖昧-모호하다)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K5의 카페, 바, 레스토랑, 도서관, 라운지는 모두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고, 호텔 곳곳에서 발견되는 디자인, 건축, 소품 등은 다양한 재료와 문화와의 어우러짐을 추구한다.

 

이러한 공간 디자인은 K5만의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객실과 호텔 곳곳의 사진이 SNS를 통해 퍼지며 특히 젊은 세대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K5의 공간은 멋진 사진 배경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K5가 겨냥하는 것은 분명 젊은 감각이지만, 이들은 소셜 미디어에 전시하기 위한 포토제닉한 이미지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새로운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삶의 형태를 호텔의 장기적인 비전과 경영 원칙에 담아낸다. 호텔의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그러한 가치의 현현이다. K5가 경계를 무너트리며 보여주고 싶은 K5만의 가치는 무엇일까?

젊은 세 기업가의 도전
호텔 K5

K5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이 호텔의 설립자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K5를 만든 유타 오카(Yuta Oka), 아키히로 마츠이(Akihiro Matsui), 다카히로 혼마(Takahiro Homma),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험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30대 젊은 기업가이자 도쿄 토박이라는 사실이다.

 

먼저 유타 오카는 인시추(InSitu)의 창립 파트너로, 기존의 사무실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찾는 사람들의 코워킹, 코리빙 공간을 형성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미디어 서프(Media Surf)의 공동 창립자인 아키히로 마츠이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지역 기반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퍼먼트 주식회사(Ferment Inc.)의 대표 이사이자 백팩커스 재팬(Backpacker’s Japan)의 설립자 다카히로 혼마는 일본을 찾는 여행자들이 지역 사회 커뮤니티를 한층 더 깊은 차원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 야심찬 청년 기업가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지만, 자신들이 나고 자란 도쿄를 끊임없이 재발견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정체가 바로 호텔 K5다.

 

3인의 가치관은 K5의 경영 원칙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이들은 K5의 비전을 삶의 질 향상, 지역 활성화, 다양한 프로젝트 만들기, 커뮤니티 구축으로 정의한다. 호텔이라는 하나의 숙박 시설을 중심으로 전 세계 노마드가 지역 사회와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성장하고 도전하도록 돕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여행자이자 거주자로서 누리는 공간과 지역 커뮤니티에서의 통합적인 경험은 새롭고 창의적인 시선을 낳고, 그 비전에서 시작된 다양하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는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느슨하지만 단단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의 Pressure Point
도쿄의 호텔들

호텔 K5의 비전은 일본의 도시재생 사업 흐름에서 이해할 때 더 분명해진다. 실제로 K5의 많은 가치관이 도쿄 도시재생 사업에서 제시한 목표와 유사하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목표로 도시의 역량을 끌어올릴 만한 장기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역민과 방문자의 삶의 질을 문화∙경제∙사회 등 다양한 면에서 끌어올리도록 주거∙상업∙문화 등 모든 기능을 한 공간에 압축한 콤팩트 시티(Compact City)를 만들고자 했다. 무조건적인 재개발이 아닌, 지역의 역사∙문화∙자연환경을 보전한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그 결과 도시재생 프로젝트 덕에 재탄생한 명소들이 생겨났다. 한때 1950년대 도쿄의 유명한 쇼핑 거리로 전성기를 누렸으나 버블 경제 붕괴 이후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걷다 2017년 대형복합쇼핑몰로 재탄생한 긴자식스(Ginza Six), 7-80년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감각적인 트렌드를 만들어냈지만 명성을 잃다 2018년 문화∙패션∙IT 벤처 기업 중심의 복합문화시설로 다시 문을 연 시부야 스트림(Shibuya Stream-한국의 청계천 복원 사업을 벤치마킹한 사례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재생의 바람이 불던 시점에 시부야의 호텔들 역시 그에 맞춰 지역 특징을 살린 현지화된 경험을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반영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호텔 코에 도쿄(Hotel KOE Tokyo)와 트렁크 호텔(Trunk Hotel)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장 최근 시행된 도쿄의 도시재생 사업 중에는 2020년에 문을 연 미야시타 파크(Miyashita Park)가 있다. 미야시타 파크는 쇼핑몰, 스포츠 시설, 레스토랑, 공원, 호텔 등이 밀집한 복합시설이다. 기반이 된 미야시타 공원은 1960년대 한 차례의 재개발을 거쳐 도쿄 최초의 옥상 공원으로서 삭막한 도시의 풍경에 녹음을 더했다. 그러나 이후 노후화된 채 방치되다 2017년 또 한 번의 재개발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시퀀스 미야시타 파크 호텔(Sequence MIYASHITA PARK)은 시부야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호텔로, 미야시타 파크 내 다양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시퀀스라는 이름을 호텔의 가치관으로 삼아 모든 경험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하는 오픈 커뮤니티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대규모 랜드마크에 가려 상대적으로 가치가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도쿄 도시재생의 흐름에서 바라본 지역 호텔의 역할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K5의 창립자 유타 오카는 호텔이야말로 지역 전체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압점(Pressure Point)임을 짚어낸다. 도쿄 도시재생 계획의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호텔 코에 도쿄, 트렁크 호텔, 시퀀스 미야시타 파크 호텔의 행보는 호텔 K5가 추구하는 가치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삶의 질 향상, 지역 활성화, 다양한 프로젝트 만들기, 커뮤니티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편의 시설과 문화 시설 등 여러 방면에서 지역민과 방문자 모두의 삶의 질을 상승시켰다. 또한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지역의 상징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관광객을 끌어들일 랜드마크를 만들어 지역 활성화에 기여했다. 지역 상권과 상생하는 신선하고 창의적인 프로젝트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업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거기 더해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새 친구를 찾고 이웃을 만드는 호텔이라는 공간의 특징을 십분 활용해 사람들이 서로 기꺼이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형성에 주력했다.

호텔 K5가 오래된 도쿄의 증권가에 불러온
뉴웨이브 투어리즘

호텔이 도시재생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점에 비추어 K5를 다시 살펴보면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K5가 자리 잡은 도쿄의 니혼바시 가부토초는 일본 금융의 가장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 일본 최초의 은행과 증권거래소가 설립되었다. 한때 일본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며 80년대 일본 경제 호황기 때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 쇠퇴기를 맞았다. 그러다 지금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오랜 전통과 새로운 젊은 문화가 뒤섞인 다양한 상점과 오피스가 들어서며 새로운 의미를 지닌 지역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K5는 지역을 대표하는 호텔로서 낙후된 채 방치되었던 증권가를 머물고, 경험하고 싶은 요소가 가득한 지역이자 신선한 시도와 공동체의 다양성을 환영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호텔 K5 근처에는 마찬가지로 오래된 은행을 리모델링한 베이커리 뱅크(Bakery Bank), 비스트로 엔(Bistro Yen), 카페 코인(Coffee bar & Shop Coin), 플라워샵 페트(Flowers fête) 등 다양한 로컬 샵이 있다. 이름부터 은행과 관련된 것들에서 유래한 이 가게들은 자연스럽게 증권가 지역의 전통과 상징성을 끌어안는 동시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좋은, 젊고 유연한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었다. 덕분에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전혀 없는 낙후된 증권가라는 지역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특별한 분위기를 지닌 공간이 가득한 거리, 전통과 트렌디함을 오가는 다채로운 경험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인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도 호텔 K5가 있다.

 

K5는 호텔이 지역민과 타지 사람들의 교류가 일어나는 중요한 장소라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호텔의 매력에 끌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지역에서 오래 머무르며 일부가 되어 볼 수 있는 경험적 가이드를 제시한다. 그 예로 K5의 라운지에서는 근처 빵집이나 카페에서 사 온 음식과 커피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심지어 적극적으로 장려하기까지 한다. 독점적인 영업보다는 지역 가게와의 상생과 투숙객들의 다채로운 경험을 더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호텔에 머물며 지역 상인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지역에 스며든 채 새롭게 협력하거나 기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둔다.

다양한 가치가 녹아든
멜팅팟 같은 공간

K5가 지역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방법은 생각 이상으로 다양하다. 호텔의 공간을 만드는 방식과 연출부터가 그러한데, K5는 오래된 은행의 구조를 그대로 살려 지역과 공간의 역사성을 보전하는 쪽을 택했다. 호텔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은 스웨덴 건축가 클래손 코이비스토 룬(Claesson Koivisto Rune)이 맡았지만, 내부에 배치된 가구는 일본 현지 장인들이 참여해 제작하도록 신경 썼다. 또한 일본 전통 건축 기법과 자재를 이용하는 동시에 북유럽 스타일의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초록빛을 살리는 플랜테리어로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조화롭게 뒤섞었다. 일본과 북유럽, 오래된 은행과 현대식 호텔이 녹아든 감각적인 멜팅팟 같은 호텔의 분위기는 오래된 도쿄 증권가에 다채로운 문화가 새로운 색을 덧입히게 만들었다.

 

지역 호텔을 중심으로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얽힌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K5의 노력은 지속가능한 투어리즘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K5 호텔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근무자와 호텔을 찾는 투숙객들의 연령대는 20~30대로 상당히 젊은 편이다. 특히 변화하는 도쿄의 흐름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하는 도전적인 디지털 노마드들이 K5의 주 고객층이다. 일과 휴식, 새로운 경험이 공존하는 공간은 새로운 대화의 장이자 영감의 장소가 된다. K5는 그들에게 적극적인 자세로 협업 아이디어를 제시해달라고 요구한다. 언제든 새로운 협력의 형태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이다.

 

K5는 분명 오래된 지역을 깨울 젊은 힘을 찾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젊은 층만 타깃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K5는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추구한다. 실제로 오랜 경험을 쌓은 전통 요리사가 K5 내 레스토랑 케이브맨(Caveman)에서 특별한 장어 요리를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K5에 있는 레스토랑, 바, 카페 등은 단순히 먹고 마시기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새로운 이웃을 만드는 장소다.

 

원하는 만큼 머무르며 진정한 로컬 라이프를 체험하기에 호텔만큼 좋은 공간은 없다. 그리고 거기에는 모든 국적, 문화, 성별, 나이의 경계를 허무는 어울림이 있다. 어떠한 만남과 프로젝트에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경계를 없앤다는 뜻의 아이마이가 공간의 컨셉일 뿐만 아니라 호텔 K5가 추구하는 가치와 미래를 모두 담은 하나의 상징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도시재생 붐이 일어나며 낙후된 지역을 되살리려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그저 화려하기만 한 관광지나 사진 찍기 좋은 명소는 아주 일시적인 효과를 낳을 뿐이라는 인식이 늘고 있다. 결국 어느 곳이든 보기에만 좋은 것은 필연적으로 그 빛이 바래고, 순간 반짝했던 인기는 금세 식어 그 역할과 수명이 다하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재생이 실제로 그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는가, 그리고 그걸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어떤 지역이든 매력적인 호텔이나 가게가 들어서고 입소문을 타면 일시적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지역과 상생하며 자라나는 문화를 만드는 일에는 큰 공이 든다. 누구나 함께할 수 있고, 공동체의 다양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상생을 바탕으로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를 만든다는 건 단기간에 손님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알기에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호텔 K5가 공간 디자인에서 내세웠던 아이마이의 힘은 경계를 넘어선 통합과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간다. 함께 살고, 일하고, 먹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힘은 지역을 세우고, 삶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