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패션 큐레이션 스타트업 스티치 픽스

인간의 ‘진짜’ 지능을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결합하다

쇼핑은 스트레스 해소의 아이콘이다. 언제나 즐거운 것으로 묘사되지만, 썩 달갑지 않은 사람도 있다. 쇼핑을 즐기건 즐기지 않건, 어쨌든 모든 사람은 나름의 기준을 갖고 쇼핑한다. 브랜드 유무, 원하는 색상과 스타일, 적절한 가격대, 선호하는 재질, 원하는 모양새 등 다양하다 못해 과하다 싶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 취향을 제법 잘 아는 누군가 신중하게 선별한 옷을 집 앞까지 배달해준다면? 꽤 매력적인 얘기다. 인공지능(AI)으로 내 취향을 분석한 뒤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골라주는 스타일링 비용으로 20달러가 든다면 당신은 지갑을 열 의향이 있는가? 당신이 고민하는 동안, 한 패션 큐레이션 스타트업 쇼핑몰은 220만 명의 이용자를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옷을 고르고 있다.

“소비자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단 한 벌의 청바지를 찾고 싶어 하지, 수많은 선택권을 원하지 않는다.”

카트리나 레이크(Katrina Lake), 스티치 픽스 CEO 

 

스티치 픽스(Stitch Fix)는 작년에 약 1조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나스닥에 상장된 미국의 퍼스널 패션 스타일 서비스 스타트업이다. 기업 가치가 4조 원에 육박하는 거대 기업으로 시장에 안착한 스티치 픽스는 인버스(Inverse), 포춘(Fortune), 블룸버그(Bloomberg) 등 각종 매체가 앞다퉈 언급하는 장안의 화제다. ‘스티치 픽스가 왜 의류 산업의 미래인가’와 같은 기사는 기업이 업계 내에서 갖는 포지션을 명확하게 비춘다. 절정기를 맞고 있는 이 기업의 시작은 직장 생활과 MBA 과정을 동시에 소화하며 현대인의 고질병 ‘시간 부족’에 시달린 카트리나 레이크 CEO가 5명의 직원과 꾸리던 보스턴의 작은 원룸이었다.

 

스티치 픽스의 서비스는 명쾌하다. 사용자가 자신의 스타일과 치수, 피부색, 신체 콤플렉스, 즐겨 입는 색/브랜드, 예산 등을 설정하고, 스타일링비로 20$를 선결제한다. 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 뒤,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고른 5점의 옷과 액세서리를 배송한다.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결제하고 나머지는 돌려보내면 된다.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송료는 스티치 픽스가 부담한다.

 

1점만 구매해도 스타일링 비용을 돌려받고, 만약 5점을 모두 구매하면 25%를 할인받는다. 사용자의 구매∙반품 데이터는 다시 AI의 분석 대상이 되어 회차를 반복할수록 취향 적중률은 높아지게 된다. 과정 자체는 간단명료해 보이지만, 스티치 픽스가 구축한 네 가지 요소의 탄탄한 결합이 이를 뒷받침한다.

스티치 픽스의 4가지 서비스 요소 

 

A. 큐레이션 커머스

B. 간소화와 정확도 

C. 사람과 AI의 협업

D. AI 디자인

A. 큐레이션 커머스

큐레이션 커머스는 바쁜 현대 사회에 최적화된 서비스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취향별로 제품∙서비스를 선별해 제시하는 큐레이션은 시간 절약과 니즈 충족이 동시에 가능해 매력적이다. 옷, 책, 음악, 영화처럼 사용자의 취향을 뚜렷이 반영할 수 있지만, 선택 범위가 방대한 분야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또한, 가구, 가전, 기계와 달리 제품∙서비스가 짧은 수명 사이클을 갖는 산업의 경우에도 큐레이션을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신제품, 신매체를 바라보며 사용자는 선택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한다. 계산의 끝은 부담감과 두통, 혹은 안 사고 말겠다는 포기다.

 

사용자가 기록한 like 데이터를 토대로 추천 음악 리스트를 매일 달리 제공하는 애플뮤직, 시청 기록을 기반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추천해주는 넷플릭스의 인기는 이를 증명한다.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며 힘들게 찾을 필요 없이, 취향과 이용 기록을 분석해 정확히 큐레이팅하는 서비스를 경험한 사람들은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B. 간소화와 정확도 

© Algorithms Tour at Stitch Fix

스티치 픽스는 쇼핑에 필요한 모든 단계를 간소화했다. 스티치 픽스의 소비자는 매장이나 쇼핑몰을 헤매며 발품 손품 팔 수고가 없다. 매장에 상주하는 직원과 불편하다 못해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느라 에너지를 쓸 필요도 없다. 일반적인 쇼핑몰에서 기본으로 갖추는 상품 이미지조차 제공하지 않으니 찾아볼 기회도 없다. 문 앞에 배달된 스타일링 패키지를 받는 순간 쇼핑이 시작된 것이며, 그 자리에서 쇼핑을 끝낼 수 있다. 선택에 필요한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아무리 편해도 취향 적중률이 낮으면 소비자는 떠나기 마련. 넷플릭스 알고리즘 개발에 참여한 데이터 전문가 에릭 콜슨(Eric Colson)의 지휘 아래 80여 명에 이르는 데이터 과학자들이 스티치 픽스의 AI 알고리즘을 담당해 전문성을 입증하고 있다. 소비자가 최초 입력한 설정, 구매/반품 기록, 핀터레스트 및 SNS 계정, 거주 지역의 기후 등 100-150여 가지 정보가 분석 대상이다. 스타트업 초기 시절 레이크 CEO와 직원들이 소비자의 특징과 취향을 엑셀 시트에 하나하나 받아적던 작업을 대체한 AI 알고리즘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정확도로 충성 고객을 늘려간다.

C. 사람과 AI의 협업

앞서 말했듯, AI 알고리즘의 역할은 데이터 분석이다. 사람이 소화할 수 없는 방대한 데이터의 분석을 AI가 맡아 열댓 가지의 경우의 수를 추리면, 전문적인 판단력과 직업적 센스를 가진 3400명의 스타일리스트가 소비자에게 보낼 최종 아이템을 결정한다. 양적 문제를 AI가 해결한다면 질적 문제는 사람이 담당하는 셈이다. 사람과 기술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한 하이브리드 큐레이션이 바로 스티치 픽스의 업무 방식이다.

 

소비자에게 보내는 스타일링 패키지에도 사람의 터치가 들어있다. 패키지에는 상품 외에도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한 퍼스널 스타일링 노트를 포함한다. 아이템을 어떻게 레이어링하거나 매치할지 알려주는 스타일리스트의 조언은 패션 감각을 키울 기회와 경험으로 작용한다. 기술로는 완벽히 채울 수 없는 센스와 감성을 사람으로 보완한 것이 스티치 픽스의 노련함이다.

D. AI 디자인

 

스티치 픽스는 600여 브랜드의 제품을 공급하고, 소비자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최근엔 고가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제품군에 포함했다. 하지만 유저를 가장 만족시킬 방법은 시중의 옷을 골라주는 것이 아니라, 분석한 취향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옷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그래서 스티치 픽스는 그들의 AI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옷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AI 디자이너가 온라인 소비자의 구입 패턴과 인기 스타일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선호하는 슬리브, 넥라인, 핏, 컷, 패턴, 소재 등을 새롭게 조합해낸다. 전체적인 디자인이 부조화스러운 경우, 사람이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AI-사람 협력 방식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결과적인 제품 완성도나 고객 만족도를 봤을 때, 사람이 디자인한 제품만큼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이 스티치 픽스의 의견이다.

스티치 픽스는 영리한 기업이다

 

스티치 픽스는 사용자가 제품을 사도, 사지 않아도 수익을 낸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재적소에 적절한 비율로 적용해 유저가 선택만 하면 되게 하는 놀라운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레이크 CEO는 포춘지가 선정한 ‘40세 이하 젊은 경영인 40인’ 중 한 자리를 장식하고, IT 전문 매체 레코드(Recode)에서 2017년 가장 영향력 있는 CEO 100인 중 9위를 기록했다. 얼마 전 아마존이 스티치 픽스를 ‘프라임 워드로브’라는 이름으로 벤치마킹했고,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몰이 백여 곳 이상 증가한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우리의 일상에 영리하게 접목된 기술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속에서, 라이프스타일은 이렇게 조금씩 바뀌고 있다. 특정한 서비스로 편리함을 맛본 소비자는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편의성을 기대하게 된다. 빅데이터 시대의 소비자는 선택만 하면 되는 편리한 세상을 꿈꾼다. 이들을 대상으로 사냥에 나선 기업들은 편의성, 신속성, 기능성 등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들이 제시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가상/증강현실과 같은 신기술이 언급된다. 하지만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할 것이 아니라, 기술과 사람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접목할 적절한 분야를 찾는 것이 성공의 열쇠 아닐까. 스티치 픽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