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공예라는 단어의 적확한 뜻을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기본적으로 공예의 사전적 의미는 움직이는 동작을 포함한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공예란 기능과 장식의 양면을 조화시켜 직물, 염직, 칠기, 도자기 따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는 그 의미가 더 넓게 확장되어 공예 활동을 통해 생산된 기물인 공예품을 통칭해 함께 사용 중이다. 동사와 명사를 아우르는 이 창의적 생산활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인간의 손에서 출발하고 완결된다는 점이다. 공예는 인간 수공업의 과정(process)인 동시에 그 결과물인 산물(product)이다.

 

한국공예의 역사는 청동기시대에 첫 시작점을 찍은 이래로 쭉 이어져 왔다. 금속, 흙, 나무, 가죽, 종이 등의 다양한 재료가 활용됐으며, 민중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왕실에서 사용될 화려한 장식품이나 종교적 물품을 고안하는 데까지 계층과 분야를 막론하고 활발히 이어졌다. 공예는 첫 기원부터 사람들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성에 더해,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미적 요소를 가미할 수 있는 장식성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같은 동아시아에 속한 중국 및 일본과 몇몇 유사한 특징이 있지만, 한국공예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그만의 독자적인 특징이 눈에 띈다. 각 시대의 공예품들은 놀랍도록 섬세한 기법과 독특한 변주를 동반한다. 대표적으로 신라의 금관, 고려의 청자, 조선의 백자 및 나전칠기 등은 정교한 기술과 높은 질, 그리고 우아한 멋을 드러내며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얇고 질겨 잘 찢어지지 않기에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용이한 한지는 생소하지만 독특한 공예 재료로 눈길을 끌고 있으며, 조각보나 한복 같은 전통 공예는 한국의 문화적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 본 전시 ⓒ 중부매일
김민주 디자이너 컬렉션 ⓒ Harper’s BAZAAR

공예의 미술화

근대 산업화 이후 전통 공예는 존속을 위협받았다. 빠르고 편리한 대량 생산과 달리 직접 노동인 공예의 느린 속도가 단점으로 취급됐다. 결과적으로 근본적인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손수 정성을 들여 빚어낸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 바로 그 느림의 미학이 공예를 근현대의 대량 생산과 구별시킨다.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완성품이 되어가는(becoming) 과정을 충분히 겪고 태어난 기물에서는 공장형 완제품이 흉내 낼 수 없는 깊음과 기품이 느껴진다.  또한 저가 공산품과 달리 생산 수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시장에 유통되는 수가 적어 모두가 향유할 수 없다는 소비적 특수성도 생긴다. 이처럼 기계가 불러온 위기는 오히려 공예가 가진 희소한 가치를 발굴하고 부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산업화의 물결은 전문가들의 수공예와 대량생산을 구분 및 계급화했다. 이 과정에서 공예는 미술의 한 갈래로 포함되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는 공예가 기물, 즉 생활용품에서 감상할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 또 기물을 제작하는 장인이 엘리트 예술가로 지위가 격상됨을 의미한다. 직접적인 사용 가능성이 다소 결핍된 오브제라도 공예의 이름을 달게 된 것이다. 이때 공예는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진 위상과 확장된 의미를 갖는다. 실용성이 빠져나간 이 자리에는 예술가의 주관성이 담긴다. 기법을 살려 감상에 적합한 아름다운 작품을 제작하거나, 미학적 담론을 나누는 통로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근래에는 장식으로서의 공예가 눈에 띄게 발전해 왔다. 쓰임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공예의 추가 현대에 이르러 후자로 많이 기울어진 것이다. 

 

그러나 쓰임을 잃으면 대중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아름다움을 잃으면 저가 공산품에 밀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 문제를 두고 현대 공예가들은 도구와 미술의 경계에서 창작의 위치를 조율하며 중심을 잡는 중이다. 공예의 근원적 목표가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임을 고려하며 본질적 역할을 놓치지 않되 동시에 창의적인 심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현대의 한국공예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예를 들면 공예가 김윤미 작가의 작품은 실사용과 감상, 이 두 기능을 모두 충족시킨다. 명료한 색과 전통적인 곡선 디자인이 돋보이는 옻칠 소반, 함, 그리고 트레이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대중이 일상에서 거의 매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실용적이다. 무형문화재 윤규상 장인의 양산용 종이우산 또한 매력적이다. 전통 재료인 대나무와 한지를 사용하여 정교하게 제작된 이 양산은 실제로 야외에서 사용 가능하며, 인테리어 오브제처럼 장식할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조각보 여권 지갑, 자개 텀블러, 나전 손톱깎이 세트 등 공예는 다양한 형태로 일상의 빈틈에 침입하고 있다.

윤규상 장인, 양산용 지우산, 대나무와 한지 Ⓒ HEritage REmastered

전통에 기반하여 현대적 기법을 꽃피우다

흥미롭게도 사회의 여러 측면을 담아낼 수 있는 공예는 자국의 고유 문화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각국의 특징적인 이미지나 문양, 또는 재료를 사용함과 동시에 3D 프린팅 등 현대적인 기법을 활용하여, 과거를 적당히 희석한 세련된 공예품을 만드는 것이 트렌드가 된 셈이다. 우리나라의 공예 또한 이러한 흐름에 함께하고 있다. 전통 박물관 굿즈나 관광 기념품 등의 진부하고 제한적인 공예품에서 탈피하여 예스러운 멋을 간직하면서도, 현대의 가구나 소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하고 독특한 형태로 분화하는 중이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기 위해 공예가들은 디자인적 요소, 과학 기술, 해외의 낯선 재료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융합적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어느덧 공예 업계는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다. 고전적인 개성을 보존하되, 빠르게 변화하는 예술계의 유행과 소비 시장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쓰임과 아름다움에 이어 전통과 현대의 교집합에 안전하게 안착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공예가들이 마주한 또 하나의 숙제다. 이에 부합하는 좋은 예시로는 윤지훈 작가가 흙으로 빚고 구워 낸 도자 조명인 <Homebody>가 있다. 흙이 주는 완만하지만 불규칙한 질감과 도자 특유의 반들거리는 광택감이 어우러져 기성품의 지루함을 시크하게 변주한 것이 흥미롭다. 조명 하단에 있는 작은 수납함은 물건을 보관할 수 있어 편리성을 더한다.

 

백시내 작가는 칠보 기법을 번안하여 브로치 및 목걸이 같은 장신구와 오브제를 제작한다. 작품 <Time for me>에서 볼 수 있듯, 일상을 그린 금속 선화 뒤로 펼쳐진 칠보 특유의 화려한 색감은 칠보가 고루한 옛 기법이라는 편견을 부순다. 이렇듯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전통 공예를 변주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가 된 이유는 공예가 가진 낡고 오래된 인상을 바꾸는 것이 대중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한국 현대 공예는 아트페어, 갤러리, 기업 프로모션, 기념품 및 소품샵 등을 통해 대중들을 찾아간다. 

 

현재 한국의 공예 시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심미성이 높은 작품은 갤러리를 통해 소개되고, 그보다 실용성이 강조된 작업물은 아트페어, 백화점, 온라인 플랫폼 등에서 판매된다. 우리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은 카페나 소품샵 등 다양한 창구에서 등장한다.

 

특히 <공예트렌드페어>와 <청주공예비엔날레> 등 대형 프로젝트의 활성화와 함께 공예는 예술시장의 전면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대중이 직접 공예품을 만져보고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이런 행사들은 구매 장려를 넘어, 조형 예술로서의 공예가 수행하는 역할을 소개한다. 또한, 공예가가 온전히 주관성을 발휘해 그들의 고유한 직관이 사용자의 감성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장으로도 기능한다. 이는 작가 개인이 소비자를 설득하는 방법을 고안하도록 돕는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소비자의 니즈에 기민히 반응하면서도, 자신의 안목을 독자적인 트렌드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곳이 정기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공예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위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윤지훈, Homebody, 세라믹, 2022 ⓒ Better-Void
백시내, Time for me (1), 칠보공예, 2022 ⓒ Sinae Jewelry Studio

K-라이프스타일의 파도를 기다리며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세계 엔터 업계를 뒤흔든 K팝에 이어 K-아트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한류라는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시점에서 K-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 또한 덩달아 증가하는 중이다. 김태훈 신임 한국공예디자인재단 이사장은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예술의 한 형태로서, 디스플레이를 넘어 라이프스타일로서의 공예가 빛을 발할 때이며 세계 시장과의 교류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K-라이프스타일은 오브제, 금속∙유리 용품부터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파우치나 한복 등의 섬유∙의류산업까지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해외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 공예박물관인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이 20여 년간 개최한 <Fashion in Motion> 행사는 지금껏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같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참여해 왔다. 이곳에 참가한 최초의 한국 디자이너인 김민주의 <Fashion in Motion: MINJUKIM> 컬렉션은 한국 무속 신화인 바리공주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복을 연상시키는 미려한 곡선의 실루엣, 한국의 전통 문양과 유사한 디테일은 평단과 대중의 극찬을 끌어냈다.

유튜브 브이로그를 통해 센스 있는 일상 공간을 공유하고 개인의 삶을 가꾸는 법에 대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지금, 반복되는 일상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공예가 국내에서도 주목받는 중이다. 공예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샵이 꾸준히 늘고 있으며, 주문 제작으로 만든 오브제∙물건을 소장하는 트렌드도 생겼다. 또한 목∙한지∙유리∙가죽공예를 직접 체험하고 배우는 원데이 클래스류의 취미 공예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다. 이처럼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일상의 기물들이 떨어지는 핀 조명 한가운데로 돌아오고 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유연하게 흘러온 우리 공예의 현재가 앞으로도 더 세차게 흐르기를 바란다. 공예가나 기관적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이자 향유자인 개인의 작은 관심 하나하나가 큰 의미가 된다.

 

국내 최대의 공예 전문 박람회인 <2023 공예트렌드페어>가 지난 17일 막을 내렸다. 기획 전시뿐 아니라 다양한 오브제∙생활용품, 패션, 가구를 만나볼 수 있는 풍성한 자리였는데 작가들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과 손길, 그리고 디자인적 센스가 공간 이곳저곳에 묻어 있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공예가 중심이 된 또 다른 공간에서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지도, 생각지도 못한 작품에 마음을 훅 뺏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