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2018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 발돋움하는 일러스트레터를 위한

 

우연히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들은 후, 언젠가 꼭 한 번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Bologna Children’s Book Fair)’에 가보고 싶었다. 사실 이 행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단 몇 장의 사진 슬라이드로 엿본 행사장 분위기가 전부지만, 그곳에서 글과 그림이 풀어내는 무궁무진한 세계를 확실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고 2018년 4월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볼로냐 국제아동전에 발을 들였다. 이틀간 일반 방문객으로 참여하고 작성하는 이 글은 이 행사를 궁금해하는 개인, 특히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시작한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을 가다

 

올해로 55주년을 맞은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은 아동 출판 및 멀티미디어 사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거대한 행사다. 지난 3월 26일에서 29일까지 총 4일간 열린 올해 도서전에는, 100여 개 국가에서 온 1,300여 개의 아동 출판사 및 일러스트레이터 등이 각종 그림책을 전시했고, 동시다발적으로 250개의 콘퍼런스와 워크숍을 진행하며 30여 가지의 상을 수여했다. 무엇보다 이 도서전 자체가 아동 도서 및 콘텐츠 저작권 거래를 위한 허브로써 역할이 크기 때문에 해마다 새로운 거래를 기대하는 출판사, 배급사,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번역가, 인쇄업자, 개발자, 교사 등 해당 업계의 다양한 종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모든 프로그램과 부스를 돌아보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행사 규모가 대단하니 미리 필요에 맞는 방문 계획을 짜두는 게 좋다.

볼로냐 라가치 상(BolognaRagazzi Award) 

 

행사장 입구에 들어서면 올해의 볼로냐 라가치 상(BolognaRagazzi Award) 외 여러 수상작을 전시하고 있다. 볼로냐 라가치 상은 시각예술 및 편집 관점에서 뛰어난 출판물에 수여하는데,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근간이 되는 픽션 부문, 정보전달 중심의 논픽션 부문, 작가의 데뷔작을 대상으로 하는 오페라 프리마 부문, 혁신적인 형식의 그림책에 내리는 뉴 호라이즌 부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올해는 41개국에서 온 총 1417권의 그림책이 그 후보였다고 하니 치열한 경쟁률은 말 다 했다. 결과적으로 <L’OISEAU BLANC>, <LA PLAGE> 등 총 6권의 책이 각 부문에서 최우수작(Winner)으로 선정되었고, 구체적인 심사평은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행사 동안 곳곳에 마련된 별도의 매대에서 수상작을 읽거나 구입할 수 있고, 해당 그림책의 작가와 편집자가 직접 진행하는 책 소개를 들을 수 있다.

한국 작가와 출판인들의 활약상을 보다

 

‘올해의 볼로냐 라가치 상’에는 우수상(Special Mention)으로 호명된 출판물까지 포함해 총 3편의 한국 그림책이 상을 받았다. <나무, 춤춘다>(반달), <벽>(비룡소), <너는 누굴까>(반달)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작가의 특별전시에도 6명의 한국 작가들이 이름을 올렸다. 또, 작년에 이어 ‘최고의 출판사 상’을 받은 ‘보림’과 최종 후보였던 ‘책 읽는 곰’ 역시 한국 출판사다. 더욱이, 국가별로 나뉜 출판사 전시장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운영한 한국관은 단연 인기 있는 코너였다. 의외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작가와 출판인들은 이미 독자적인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

개성 넘치는 전 세계 그림책을 경험하다

 

아무런 소속 없이 입장한 일반 방문객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실제로 경험해보니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은 각 출판사의 개별 책 판매보다 저작권 및 판권 거래, 업계 전문가들 사이의 교류와 그림책 및 어린이 콘텐츠 사업을 위한 담론에 더욱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먼저, 출판사 부스를 돌아다니며 온갖 종류의 그림책들을 실컷 읽고 구경할 수 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던 세계 각국의 개성 넘치는 그림책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관점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부스를 돌아다니며 출판사 별 선호 스타일, 특징 등을 비교해볼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여, 자신을 표현하라

 

또한, 행사 기간 4일동안 빽빽하게 계획한 각종 콘퍼런스, 좌담회, 발표 등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도서전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번역가, 디지털 멀티미디어 총 네 가지 그룹에 초점을 맞춰 행사장을 구성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룹별로 강연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그 장소에서 쉴 새 없이 이벤트가 이어지는데, 보통은 예약 없이도 참석할 수 있다. 볼로냐 라가치 상의 심사위원을 포함해 다양한 인물을 초청한 좌담회 및 발표는 모두 영어와 이탈리아어 두 언어로 제공하는 등 배려가 돋보였다.

 

프로그램 중 ‘일러스트레이터 서바이벌 코너’ 에서는 짧지만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직접 수업을 듣는 워크숍 프로그램과 자신의 작업물을 보여주고 상담받을 수 있는 포트폴리오 리뷰가 진행됐다. 저명한 작가의 팁과 생각을 엿들을 수 있는 자리다 보니 인기가 많아서 매일 아침 해당 키오스크 앞에는 선착순 신청 성공을 바라는 긴 줄이 이어졌다.

그림책은 작가의 상상력을 표현해줄 일러스트레이터의 역할도 중요하다

 

행사장에는 검은색 직사각형 가방을 어깨에 메고 돌아다니는 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 혹은 그림책 작가를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커리어 시작 단계에서 대부분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이들 역시 일반 개별 방문객과 다르지 않다. 다만 도서전을 찾아온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매일 중앙홀 주변 빈 벽마다 자기 그림과 명함을 앞다투어 게시하느라 바빴다.

 

출판사들은 일러스트레이터를 위해 일정 시간 동안 각 부스에서 포트폴리오 리뷰를 진행했다. 출판사 담당자가 참여한 작가에게 현실적인 피드백을 줄 뿐만 아니라 추후 계약을 염두에 두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일이 적지 않다. 비교적 한적한 부스에서는 얼마든지 커리어 상담도 가능하다. 열정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라면 분명 준비해오는 만큼 얻어가는 것이 많을 것이다.

상상력으로 무한한 세계를 즐기는 사람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방문객이라면 전 세계 아동도서 및 아동 콘텐츠 산업이 돌아가는 역동적인 현황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테이블 위에 카탈로그를 펼쳐놓고 연달아 미팅을 진행하며, 명함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빈틈없이 채운 벽이 매일 바뀌는 장면을 보면서 이 업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두하고 있는지, 그 치열함이 절로 느껴진다. 동시에, 그들이 독자이자 고객인 어린이만큼 이야기와 그림이 빚어내는 무한한 세계를 얼마나 사랑하고 즐기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2018년도 라가치 상을 수상한 <LA PLAGE>의 프랑스 출신 작가 Sol Undurraga는 책 소개 중 “왜 이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듣고 “저도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솔직한 대답과 그의 얼굴에서 배시시 피어오르던 쑥스러운 웃음은 유명세 혹은 수상 영예와는 상관없이 아름다운 그림책의 세계를 좇아 살아온 그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만약 비용과 그림책과 관련 없는 참가 신분(?) 때문에 방문을 망설인다면 일단 이곳에 참석해보기를 추천한다. 책의 물성은 실로 독특해서, 직접 손에 쥐고 넘기며 읽는 경험은 인터넷으로 이미지를 확인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다채로운 종류의 그림책을 한데 모아 놓고 읽을 기회는 흔치 않다. 또한,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열려 있어서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는 이들에게도 문턱이 높지 않은 분위기다. 매년 새로운 그림책과 콘텐츠를 조명하는 이 현장을 직접 방문해 보면 아동 서적 시장의 하향을 점치는 우려는 무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