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2020년, 그 역사를 기록할 페이지도 이제 두 장 남짓 남아있다. 2020년의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불과 1년 전만 해도 미세먼지의 농도를 확인하던 아침과 달리 매일같이 다급한 울림과 함께 찾아오는 ‘긴급재난문자’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쓴 채 집을 나서는 것이다. 또한, 내가 방문했던 모든 곳에 나의 일상이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조작되거나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기록된 일상들’은 역학조사에서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무언가를 꾸준히 기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개인이 아닌 타인 혹은 공공을 위해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노고와 정성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대변하기도 한다.
‘기록의 중요성’은 접촉 불가의 상태가 된 현재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검색만으로 다양한 기록들을 쉽게 접할 수 있던 것을 넘어 그 정보들을 얼마나 잘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등 부차적인 내용이 더해지고 있다. 이는 ‘아카이브’ 혹은 ‘아카이빙’이라는 단어로 전문성을 강조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단어는 많이 사용할수록 그 의미가 불분명해지고, 변질되기 쉽다. 아카이브 된 기록들은 훌륭한 정보력을 갖고 있음에도 더 자극적이고 확인되지 않는 거짓 정보에 자취를 쉽게 감추기도 하며,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채 분산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가지 해결책이 있다면, 아카이브의 홍수 속 더욱 분명한 뜻을 찾고 자신만의 가치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방법이지 않을까? 마치 작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견고한 건물을 쌓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도시의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도시의 이야기를 경험해보는 <도시제철> 10월의 쇼케이스에서는, 가치를 콘텐츠로 차곡차곡 쌓아가는 브랜드 ‘브리크매거진(BRIQUE Magazine)’과 함께했다.
[도시를 기록하는 매거진]
벽돌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브리크(Brique)’에서 착안한 브리크매거진은, 도시생활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노력을 발굴하고, 기록하며, 다양한 주거 공간을 담는 온・오프라인 미디업 기업이다. 많은 사람이 선호하고 삶을 영위하는 아파트. ‘평범함・접근성・밀집성’이라는 수식에는 무척이나 어울리는 단어였지만, ‘다양성・차별화・창의력’ 등의 단어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하지만 주거를 둘러싼 업무의 다양화, 주거 방식의 변화, 삶을 바꾸는 외부적 요인 등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맞닥뜨리면서 도시인의 주거 공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브리크매거진은 이 점에 주목했다. ‘1,000개의 집을 쌓자’는 목표로 도시인의 다양한 삶과 라이프스타일을 담고자 첫발을 내디딘 것이 매거진의 시작이었다.
브리크매거진 CEO 정지연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의・식・주, 세 가지 요소가 각각의 콘텐츠로 다뤄질 때 모습은 어떤지를 분석해봤다.”라며 매거진의 방향성을 구체화한 시기를 회상했다. 그들은 ‘의’와 ‘식’을 다룬 콘텐츠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종류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즐거움을 전하는 반면, ‘주’는 매우 전문적이거나 ‘의’와 ‘식’을 뒷받침하기 위한 실용적인 리빙 정보에 치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에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담는 콘텐츠 미디어 기업’으로 방향성을 잡아가며, 라이프스타일로 ‘주’를 규정할 때는 주거 공간과 그 안의 도시인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담겨야 한다고 정의했다.
주거 공간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결코 가볍게 바라보지 않는 태도에서 도시인의 새로운 삶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양한 건축물 사이에서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가공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도시(City)’, ‘공간(Space)’, ‘사람(People)’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브리크만이 지닌 독특한 시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곧 도시 구성원들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는지 기록하고, 또 그것이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새로움을 전달하는 일이 되었다. 주거 공간을 고민하는 도시인과 도시인의 고민을 들어주는 디자이너와 건축가, 인테리어 전문가, 즉 건축과 라이프스타일 사이의 ‘통역사(Translator)’ 역할을 하며 매거진의 무게 중심을 잡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점은 바로 브리크매거진의 차별화된 ‘온라인 아카이빙’에 있다. 온라인 전환이 대중화되면서 누구나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쌓아가지만, 단순히 쌓아두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 모든 정보를 온라인으로 기록하되, 깊이를 더할 스토리, 현장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취재 기사, 다양한 시도가 돋보이는 건축 등은 오프라인으로 확장하여 풀어낸다. ‘소장하고 싶은 책 같은 잡지’를 만드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렇게 다양한 시선이 담기는 데에는 브리크매거진 구성원의 역할도 한몫한다. 세 가지 키워드를 나만의 키워드로 해석하고, 다시 매거진이 지향하는 도시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구성원의 다양한 시선이 녹아든다. 도시를 기록하는 매거진 속의 정보들이 하나의 작은 도시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이유다.
[도시 주거에 대한 시선]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 브리크매거진은 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기 위해 시즌 1을 거쳐 시즌 2를 맞이했다. 판형의 변화, 콘텐츠 구성 내용 확대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대대적인 변화였지만, 이들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고민의 중심에는 ‘도시’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사전적 의미의 도시는 일정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을 뜻한다. 이러한 이유로 보통은 수도나 광역시처럼 인구 밀집도가 높고, 문화 공간이나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을 도시로 인지하기 쉽다. 이것은 ‘수도 과밀화 현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몇몇에 집중된 편의성과 편리성 때문에 사전적 의미가 이미지로 쉽게 굳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그 안을 살아가는 ‘도시인’에게도 도시는 단순히 ‘수도’, ‘행정구역’만의 의미일까?
행정구역상 또는 사전적 의미・현상의 ‘도시’로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비춰볼 때, 그 뜻은 매우 편협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다. 도시인이 휴식을 위해 다른 지역을 방문하거나, 다른 공간에서 한 달 살기에 도전하거나, 공유 주택에 머무르는 등의 모든 행위까지도 하나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가 아닌 ‘도시인’에 주목한다. 도시인이 원하는 주거 공간, 라이프스타일, 필요로 하는 공간, 보충되어야 하는 공간 등 일과 삶이 연결되는 부분의 확장을 통해 ‘도시는 곧 도시인’이라는 규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한국의 주거 공간은 유례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탈(脫) 아파트’ 현상이다. 물건을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보다 삶에 맞게 사용하는 인테리어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공간이 많아진 것이다. 집에 얽매이지 않고, 공간 사용 방식에 규정을 두지 않아 유연성이 높아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공유 주거에 대한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노마드(Nomade)’ 삶의 실현 가능성이 구체화한 것 역시 아파트를 벗어나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경험・체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됐다. 직장과 가까우면서 나머지 시간은 자신을 위해 활용하고자 하는 직장인들의 욕구 또한 증가하여 ‘직주근접’, ‘직주일치’ 등 아파트가 아닌 공간에서 삶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시점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이런 상황은 오히려 더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트 코로나’를 지나더라도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 혹은 다른 환경적 요인의 발생으로 외부와 단절이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팬데믹 현상을 겪으며, 집(주거 공간)을 부동산적 가치가 아닌 자아실현이 가능한 공간적 가치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주거 공간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비로소 바라보게 된 것이다. 단순히 꾸미고, 즐기는 미적인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외부 위험요인에서 개인을 지켜주고,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내적인 영역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아쉬운 점 한 가지가 있다면, 지금의 변화를 이끈 많은 현상은 개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 많다는 점이다. 주거 형태를 선택하고, 주거의 장소를 변화하는 것들이 활용하고, 사용하는 차원에서 멈춰있는 것이다. 이것이 더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의 협업이 중요한 시점이다. 정지연 CEO는 “민간의 창의력과 공공의 추진력이 함께 연결되는 형태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위스테이 별내’를 우수 사례로 언급했다. 국토교통부 시범사업인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위스테이 별내는, 공공이 민간임대주택을 지원하고 입주자가 협동조합을 결성해 주택 공급 및 운영 주체로 참여한 공공과 민간의 협업이 돋보이는 사례다. ‘아파트형 마을공동체’라는 주거 모델을 도입해 민간(개인)이 직접 공공의 영역에 들어와 참여하도록 하여, 주거 공간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는 후문을 전했다.
<도시제철> 쇼케이스 시즌 2에서는 브리크매거진의 다양한 도시 기록 사례를 통해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도시에 대해 살펴본 시간이었다. 브리크매거진은 ‘도시인(사람)’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적인 개념(도시)’에 다가서기 위해 계속해서 다양한 사례를 발굴하고, 1,000개의 아카이빙을 넘어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다짐했다. 삶의 가치를 이어나갈 수 있는 환경과 살기 좋은 도시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거 형태를 고민하는 현재, 도시의 시간과 공간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센터가 생긴 것에 환영의 뜻을 전하며 좋은 취지의 공공의 시설인 만큼 시민들이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응원을 더했다.
‘공간에는 결국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공간도 사람의 손길이 닿고, 발길이 이어져야 제 가치를 드러낸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의 제철을 만난다는 것 또한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일주일 동안 나의 일상이 빼곡히 기록된 곳이 어디였는지 잘 떠올려본다면, 그 안에 숨어있던 도시제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나 자신이 누군가의 도시제철이 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기록이 가득한 공간에 방문해보고 싶다면, 서울도시건축센터 모두의 라운지에서 진행 중인 ‘스몰전시 – Con:text’에서 도시 공유공간・커뮤니티 브랜드의 이야기를 통해 도시의 새로운 맥락을 발견하길 추천해본다. 브리크매거진과 함께한 서울도시건축센터 <도시제철> 10월의 쇼케이스를 여기서 마무리하며 11월, 세 번째 쇼케이스를 함께할 브랜드와 도시의 한 페이지를 다시 기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