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공간을 어떻게 꾸미는가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내가 직접 고른 혹은 만든 소품들로 공간을 채우며 ‘나만의 공간’에 애정을 기르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구・인테리어 업계 시장 성장의 한 면에는 공간을 잘 꾸미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와 맞물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이제는 단순히 꾸미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간을 어떻게 ‘창의적(Creative)’으로 꾸미는가에 관한 고민이 더해지고 있다. 가변이 쉽지 않은 물건이나 공간을 쓰임새 있게 사용한다는 것은 공간에 관한 높은 이해도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고민이 담겨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거실은 거실로, 안방은 안방으로, 창고는 창고로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해 역할에 맞게 사용했다. 현재는 거실을 서재로, 안방을 영화관으로, 창고를 작은 카페로 사용하고자 하는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며, 공간은 점차 자아를 실현하는 맞춤형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작정 비우고, 채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비우고,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라는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채광이 가득한 안방을 침실이 아닌 나만의 쉼터로 만들고 싶다면, 침대가 아닌 소파나 테이블을 들여놔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가구의 위치를 어디로 선정할지, 어울리는 소품을 둘 것인지, 기존의 짐은 어떤 공간으로 이동할 것인지. 여러 고민이 담겨야 있어야 원하던 공간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공간뿐 아니라 도시에도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많은 것들이 채워지다 못해 흘러넘치는 도시에서는 많은 것들이 빠르게 비워지곤 한다. 다시 빠르게 채워져 가는 공간을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찾는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이제 채운다는 건 더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흐름이다. 비움 이후의 채움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버리고 파괴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공간은 하나의 역할만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물건을 사고파는 단순한 곳을 넘어 경험하고, 축적하고, 공감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모습을 갖춰야 한다.
과거와 현재가 오묘하게 뒤섞인 ‘성수’에 소비의 공간이 아닌 경험의 공간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프로젝트 렌트(Project Rent)’와 함께 <도시제철> 11월의 쇼케이스를 진행하며, 그들이 생각하는 콘텐츠와 공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프라인 매거진, 프로젝트 렌트]
최근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오로지 온라인으로 상품을 알리고, 고객과 소통하는 브랜드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온라인이 익숙한 세대를 겨냥한 좋은 시도로 보이나 소비의 폭이 넓어진 만큼 휘발성 또한 강해졌다. 오랜 시간 함께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객 경험’이 충족되어야 하는 시대. 온라인에서 충족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해소해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샘플을 주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동 인구의 변화와 높은 임대료, 관리・운영의 부담 등 다양한 이유로 이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프로젝트 렌트’의 시작은 이러한 부분과 맞닿아 있다. 도시의 비어있는 공간에 좋은 브랜드들을 알려주고, 브랜드와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것이 그들의 시작점이었다.
대여할 수 있는 많은 공간과 달리 프로젝트 렌트가 사람들에게 더욱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판매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전시처럼 가볍게 공간을 둘러볼 수도 있고, 마음에 들어도 원하지 않으면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된다.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브랜드의 제작 이유와 의미도 가까이에서 들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른바 “콘텐츠를 담는 오프라인 매거진”의 역할로, 팝업 매장의 끊임없는 진화를 통해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주고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상품을 체험하며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함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한다. 브랜드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지닌 힘을 발산할 수 있도록 돕고, 서로 관계를 맺으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을 오롯이 그들의 힘으로 실현하고 있다. “Small Brand, Big Story”라는 슬로건처럼 오직 하나의 브랜드와 하나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한 오프라인 마케팅 플랫폼으로 꾸준한 성장이 기대되는 점이다.
프로젝트 렌트 최원석 대표는 공간을 찾는 브랜드, 공간을 찾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판매 자체는 온라인으로 가지만, 커뮤니케이션은 오프라인에서 조금 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관점에 누구나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브랜드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많이 판매하는 것보다 ‘브랜드의 성장’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최원석 대표는 “브랜드의 진화점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단순히 매출을 많이 올려서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성장을 통해 자연스러운 매출 증가로 연결되도록 하는 과정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서는 일부분이라도 작게 빨리 시도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확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지속가능한 콘텐츠의 힘]
코로나19 이후 많은 오프라인 매장이 타격을 입었고, 프로젝트 렌트 또한 계획했던 프로젝트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상황. 하지만 이들은 당장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멈춰있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이 브랜드의 매력을 설명해줄 것인가’라는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좋은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 오프라인의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즉, 오프라인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궁극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주는 셈이다. 브랜드가 ‘고객 경험’을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한 가지 달라진 포인트가 있다면 ‘직접적인 체험’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루이비통의 <브랜드 전시>, 시몬스의 <팝업 스토어>, 프라다의 <플라워 캠페인> 등 글로벌 기업들도 앞다퉈 다양한 형태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브랜드 고유의 성격을 해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사람들이 지대한 관심을 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흐름은 브랜드를 넘어 ‘로컬(Local)’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동네, 옆 동네라는 정겨운 이미지를 포함한 하나의 브랜드로 기능하는 ‘로컬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과 도전 의식을 깨워주고 있다. 수없이 많은 공간을 통해 브랜드와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목표인 이들이 로컬과 도시를 만나 점차 모습을 확장해가고 있다. 성수동에 터전을 잡았던 프로젝트 렌트가 ‘이대’로 향한 특별한 이유는 서대문구청의 요청으로 ‘죽은 상권 살리기’를 해보자는 시도에서였다고 한다. 상권이 망가지는 것을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하고, 유동 인구를 서서히 늘어나게끔 한다는 것이 목표다. 최원석 대표가 생각하는 죽은 상권이 생기는 이유는 지역에 묻혀 있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지역 주민이 알아차리는 것이 어렵고, 그것이 개발되지 않아 외지인이 소비해야 하는 지역 활성화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최원석 대표는 향후 2~3년 동안을 ‘로컬’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비즈니스 키워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 예상하며,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훔칠 매력적인 콘텐츠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근 1년 동안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라고 이야기하며, 최근 로컬과 새로운 도시로 확장된 개념의 프로젝트를 전시했다. 부산을 주 무대로 나무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키미누(김민욱) 작가’의 전시를 성수에서 개최하여, 공간을 연결하는 플랫폼에서 서울과 부산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다양한 방식을 연구했다고 한다. 근대시대의 모습부터 시작해 구석구석 남아있는 문화적 자원이 많고, 이러한 문화적 단서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부산의 장점으로 꼽았다.
[도시를 담는 미래 공간]
좋은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좋은 브랜드를 찾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최원석 대표는 책 속의 한 구절을 이야기하며, “센스가 좋다는 건 결국은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 모두를 경험해봤을 때 중간지점을 찾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생각의 모든 원천은 ‘경험치’에서 비롯한다. 하나하나에 관심을 두고 호기심을 가지며 경험치를 쌓고, 그것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차례차례 확장해가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기존의 방법을 고수하기보다 기존의 것을 새롭게 즐기기 위해 어떤 형태로 보여줄 것인가라는 연습을 하다 보면 충분히 그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법은 ‘생산자의 마인드에서 소비자의 마인드로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물리적 가치를 중요하게 따지는 것이 아닌 그 콘텐츠 혹은 물건이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가 느끼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이다. ‘만드는 나’가 아닌 ‘사는 나’의 관점에서 프로젝트 렌트의 도전은 계속될 예정이다.
‘프로젝트 렌트’와 함께한 <도시제철> 쇼케이스 시즌 3에서는 콘텐츠가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 다시금 그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좋은 브랜드를 찾는 감각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을 위해 호기심을 일상처럼, 일상을 낯설게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규모를 늘려가는 것보다 ‘작은 브랜드들이 조금 더 빨리 성장하게 도와주고 싶다’라는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브랜드의 신뢰성과 매출에 도움을 주고, 그들이 본격적인 ‘비즈니스 스테이지(Business Stage)’에서 많은 소비자・브랜드와 접점을 만들어낼 팝업 공간 플랫폼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금의 시기에서 공간과 건축이란 개념은 다음 세대로 가기 위한 ‘하나의 도전’을 맞이하고 있고, 이런 점에서 프로젝트 렌트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최원석 대표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 무엇이라도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공간과 건축도 새롭게 진화한다면, 훨씬 더 의미 있고 좋은 시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응원의 말을 덧붙였다.
코로나로 위축되었던 도시 그리고 사람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지금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시도했던 작은 움직임이 <도시제철>로 탄생했고 세 번의 쇼케이스가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주거 형태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도시 주거가 더욱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 사전적 정의가 아닌 ‘도시인을 도시’로 새롭게 바라보는 기록의 중요성, 전달의 기능을 뛰어넘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가 확장하여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도시제철의 다양한 모습 속에서 스스로 비운 것과 채운 것은 무엇인지 느껴보자. 비워진 곳을 채우는 방법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도시제철을 다시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