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곡한 고층 빌딩, 지친 표정인 사람들의 기계같은 걸음, 우중충한 회색 도시의 풍경. 도시에 관한 편견이 집약된 상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기와 화려한 색깔로 가득하다. 하나의 생동하는 유기체 같은 도시의 중심에는 모두가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예술이 있다. 이런 도시 속의 예술은 우리가 그리는 미래가 그대로 투영되는, 도시 생활자들의 삶을 더욱더 다채롭고 활기차게 만드는 일상의 예술이다. 도쿄 미드타운(Tokyo Midtown)은 도시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그런 공간이다.
2007년 3월 정식으로 오픈한 도쿄 미드타운은 초대형 MXD(Mixed Use Development) 공간이다. 한국으로 치면 국방부인 일본의 방위청 청사가 있던 자리에 일본의 부동산 디벨로퍼 미쓰이 후도산(三井不動産株式会社)이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에게 설계를 의뢰해 세워졌다. 호텔, 아파트, 오피스와 같은 거주∙사무 공간부터 전시와 문화 섹션, 수많은 브랜드가 들어선 쇼핑센터에 병원까지, 도시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낸다. 도시를 집약한 하나의 작은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도시의 미래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우뚝 서 있다. 대개 이런 명성은 단순한 초호화 주상복합빌딩에서 나오지 않는다.
도쿄 미드타운의 진짜 매력은 공공 디자인과 예술에서 드러난다. 미쓰이 후도산이 도쿄 미드타운의 개관에 앞서 “디자인은 곧 국력”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그 분야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도쿄 미드타운에는 전 세계 수많은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이 입점했다. 또한, 산토리 미술관, 디자인 전문 전시관인 21_21 Design Sight, 디자인 산학협동기관인 디자인 허브(Design HUB) 등 예술∙디자인의 수많은 공간이 들어섰다. 설계 단계부터 빌딩 전체가 대규모 아트 프로젝트임을 강조한 도쿄 미드타운은 실제로도 모든 공간을 퍼블릭 아트가 전시되는 갤러리로 활용 중이다. 어떤 작품을 보기 위해 굳이 갤러리로 마련된 특별한 공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고 먹고 사는 아주 평범한 도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예술을 즐기는 셈이다.
그중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단연 스트리트 뮤지엄이다. 스트리트 뮤지엄은 “Midtown X Street X Art”라는 카피 아래 도쿄 미드타운의 공간 인프라를 활용한 다양한 예술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2008년부터 매년 열리는 도쿄 미드타운 어워드(Tokyo Midtown Award)를 통해 디자인과 아트 분야의 작품을 선발한다. 아티스트의 국적 조건은 없다. 지원 장르도 설치∙조각∙회화 등 무척 다양하다. 다만 이미 창작된 작품이 아닌, 스트리트 뮤지엄을 위한 신작을 만들어야 한다. 선정작은 도쿄 미드타운 플라자의 지하에 두 달간 전시되며, 공간을 찾는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길을 오가며 작품을 감상한다. 2020년 도쿄 미드타운 어워드에 선정된 퍼포먼스∙회화∙설치 등 총 6개의 작품은 2021년 스트리트 뮤지엄에서 3월부터 5월까지 선보였다.
이처럼 스트리트 뮤지엄은 갤러리를 찾아야만 볼 수 있었던 전시나 이전에 갤러리에 걸려있던 작품을 단순히 옮겨온 전시가 아닌, 도쿄 미드타운을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일상을 살아가며 만날 수 있는 예술을 선보인다. 이러한 예술 경험은 푸른 녹지가 펼쳐진 광장에서 극대화된다.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자연과 예술과 함께하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도쿄 미드타운은 전체 부지의 약 40%, 4 헥타르에 달하는 땅을 녹지로 조성했다.
거주자나 이용자가 아니더라도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푸르른 자연과 어우러지는 디자인과 예술 작품이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든다. 갤러리와 달리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떠들며 작품 사이를 뛰어다닌다. 도심 속의 자연 풍경과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스트리트 뮤지엄은 새로운 도시의 경험을 만들고,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처럼 예술과 디자인 커뮤니티가 주도적으로 자리잡은 공간에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다양한 문화적 제반 시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도쿄 미드타운이 갤러리나 미술관 안의 작품을 거리로 꺼내온 오픈 에어 갤러리(Open-air gallery)라면, 반대로 작품의 태생이 거리인 낙서∙벽화 등의 거리 예술(Street art)을 갤러리 속 작품처럼 만든 케이스가 있다. 급진적 예술 형태를 위한 게릴라 큐레이팅, SMoA(Street Museum of Art)다. 2012년 브루클린 거리에 터를 잡은 SMoA는 불법으로 취급되어온 거리 예술과 그래피티 문화에 게릴라 큐레이션을 전략을 도입한 최초의 공공 예술 프로젝트다. 전 세계의 도시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예술가∙스타일∙테크닉의 거리예술을 강조해 거리 위의 예술가와 도시인이 새로운 차원의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SMoA의 큐레이팅은 현대 미술 박물관의 방법을 도시 환경에 적용한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우선 SMoA는 익명으로 운영된다. 거리 예술 작품 옆에는 일반적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의 설명이 적힌 캡션 라벨이 붙는다. 이러한 고전적인 방식은 미술관의 전시작처럼, 거리의 작품들에도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부여한다. 차이점이라면 철저하게 보호∙보존되는 미술관의 작품들과 달리, 거리의 예술이 가진 특징을 살려 도시의 환경과 사람들에 의해 작품이 자연스럽게 변화되고 사라지도록 둔다. 이 방식은 SMoA의 가장 큰 특징이자, 거리 예술 작품이 가진 생동하는 가능성과 에너지를 그대로 담아내기 위한 기획이다.
이러한 전시 방식은 SMoA의 다양한 기획전에서도 나타난다. <This is Art.>(2012)는 거리 예술을 새로운 시선으로 탐험할 수 있는 실험을 이어 가고자 기획된 프로젝트다. 배포된 라벨에 들어갈 내용을 직접 작성하여 거리 예술 곳곳에 붙이면, 그것은 그대로 전시 작품의 일부가 된다.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길거리 자체가 새로운 형식의 미술관이 되고, 곳곳을 살피고 작품을 발견하는 보행자들은 관객이 된다. 이 스트리트 뮤지엄의 핵심은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 도시 곳곳을 살펴보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예술과 도시의 경험은 도시 생활자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SMoA의 다른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브랜드 포드(Ford)와 협력한 <The GOOD Cities Project>(2014)는 도로의 빌보드를 활용해 거리 예술가의 작품과 그들이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기획됐다.
SMoA는 구글 스트리트 아트 프로젝트(Google Street Art Project, 이하 GSAP)와 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GSAP는 30여 개의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5,000개가 넘는 작품 이미지를 모아 온라인에서 언제 어디서든 거리 예술을 즐기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SMoA가 작품을 거리에서 사람, 환경과 자연스럽게 호흡하도록 둔다면, GSAP는 쉽게 사라지는 거리 예술을 기록하는 아카이빙 작업을 한다. 언뜻 상반된 듯한 두 작업은 기존 미술관이 하지 못했던 거리 예술가의 작품을 큐레이팅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협업 프로젝트는 총 5회의 기획전으로 이루어졌다.
<In Plain Sight>(2021)는 가장 먼저 선보인 협업 프로젝트다. 거리 예술가들이 브루클린의 평범한 풍경 곳곳에서 자신만의 캔버스를 찾고, 사람들은 그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 도시를 새롭게 경험한다. <Beyond Banksy: Not Another Gift Shop>(2012)는 거리 예술이라고 하면 무조건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Banksy)만 떠올리는 사람들의 편견을 부수고 진정한 거리 예술의 의미를 찾기 위해, 조각∙프린트∙회화∙설치∙모자이크∙미니어처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큐레이팅했다.
<Breaking Out of the Box>(2013)는 전시의 기준이 되어버린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거리 예술을 선보인다. 아이러니를 더하기 위해 300개가 넘는 상업 갤러리가 모인 런던의 첼시(Chelsea)에서 열렸다. <Dans la Rue>(2013)는 몬트리올 로컬 아티스트 12인의 불법 거리 예술 작업을 다시 한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24hrs in NYC>(2014)는 이름처럼 로컬 아티스트 18인이 24시간 동안 뉴욕의 곳곳을 캔버스 삼아 다양한 공공 예술 실험을 벌인다. 프로젝트들은 구글 지도에서 위치를 찾을 수 있다. 목적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했던 지도는 미술관 관람을 위한 안내도의 역할을 하게 된다. 구글 지도를 통해 거리에 숨은 작품들을 만나다 보면 회색 도시의 풍경은 어느새 편견을 훌쩍 뛰어넘는 일상의 미술관, 스트리트 뮤지엄이 되어있을 것이다.
서울 역시 도쿄만큼이나 사람들의 삶이 집중된 도시다. 서울의 중심에 빼곡히 들어선 빌딩 숲은 점점 높아지고, 한 장소에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주상복합단지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빌딩 사이에서도 사계절 자연을 느끼고,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예술 작품을 즐기며, 평범한 일상에서 마음껏 누리는 예술과 가까이에서 보고 만나고 구매할 수도 있는 디자인이 도시의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쿄 미드타운과 SMoA의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은 예술가들의 캔버스를 넓히고, 도시 생활자들의 삶을 바꿔놓는다. 흐려진 일상과 예술의 경계는 우리가 꿈꾸는 도시의 삶과 풍경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렇게 일상 속 예술에서 도시의 미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