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eamlike time of the present is an opportunity to imagine – and hence start creating – a future.
현재의 꿈같은 시간은 미래를 상상하고 창조하기 시작할 기회다.
– Sanjoy Roy, <가디언(The Guardian)> 무용 평론가
비대면의 일상⏤언택트 시대⏤을 맞은 우리. 사무실에서 보던 업무를 재택에서 소화하고, 강단 위에 조그맣게 보이던 강사가 화면상의 커다란 얼굴로 강의하고, 진료실에서 마주 앉던 의사가 대면 없이 원격으로 진료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온라인상의 만남은 문화예술계에도 거대한 변화의 파도를 일으켰다. 시민들은 문화 향유의 기회를 잃었고,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며 문화예술의 가치를 전달하던 교육 프로그램도 대부분 중단되며 유례없는 공황에 처했다.
‘대면하지 말라’는 강력한 사회적 제재를 몰고 온 포스트 코로나 앞에서 문화예술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크고 작은 콘텐츠의 생존 여부도 문제지만, 1년에 단 한 차례 열리는 각종 학술회의와 축제는 머리를 맞대고 전화위복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중 변화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디지털 전환에 빠르게 적응한 속자생존(速者生存)의 선례를 소개한다. 지금의 위기를 빌미로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문화예술계의 노력을 살펴보자.
Case 1. International Arts Education Week by WAAE
모두에게 열린 친절한 웨비나, #ArtsEdWeek
세계예술교육연맹(WAAE, World Arts Education Alliance)은 국제연극협회(IDEA), 국제미술교육협회(InSEA), 국제음악교육협회(ISME), 세계무용연맹(WDA)이 회원기관으로 활동하는 국제 예술교육협회 연맹이다. 1954년에 파리에서 출범한 InSEA의 경우, 유네스코(UNESCO) 협력기구로 현재 전 세계 70개국 이상이 함께하는 범세계적 미술교육 단체이기도 하다. 장르는 다르지만 이들이 향하는 곳은 하나다. 모든 국가가 예술을 통한 창의적 교육을 장려하고 발전시키도록 국제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가진 국가들과 뜻을 함께하는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International Arts Education Week, 이하 IAEW)>은 그간 오프라인에서 세계 각국의 문화예술교육 관련자가 모였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이전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할 수 없게 된 2020년. IAEW는 그 돌파구로 웨비나를 택했다. 세계 문화예술교육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나눌 IAEW는 어떻게 진행됐을까.
IAEW의 웨비나는 5월 23일부터 30일까지 매일 하나의 세미나가 열렸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한 문화예술교육의 대대적인 전환기를 다양한 관점과 주제의 시리즈로 이어갔다. 참여하고 싶은 웨비나 프로그램을 홈페이지에서 사전 신청만 한다면 누구나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신청이 접수되면 개별 접근 링크를 메일로 전달하며, 웨비나 일정을 잊지 않도록 하루 전에 미리 알림이 자동 설정된다. 이 링크를 통해 세미나를 듣고, 연사와 라이브 채팅으로 실시간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IAEW 웨비나에 활용된 줌(Zoom)은 편리한 UI를 비롯, 타 플랫폼과의 연계 능력을 인정받아 2019년 나스닥시장에서 시가총액 160억 달러로 상장한 화상회의 플랫폼이다. 한 번에 최대 100명이 동시 화상회의를 할 수 있어, 개인∙중소기업∙대기업뿐 아니라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영국 총리가 국무회의 주재에 애용하기도 했다.
IAEW에서 더욱 눈여겨 볼 점은 디지털 아카이브다. 우선 각 세미나 페이지마다 생중계가 끝난 웨비나 프로그램을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에 각각 영상과 음원 형태로 업로드했다. 여기에 연사가 웨비나에 사용한 프레젠테이션 원본 파일을 비롯, 참고하면 좋을 유익한 관련 자료를 간편한 링크로 함께 게시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웨비나를 놓쳤거나 사전 등록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든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되어있다.
또한, IAEW를 활성화하고 온라인상의 적극적인 소통을 끌어내기 위해 웨비나 전후로 소셜 미디어 캠페인을 띄워 적극 홍보∙활용했다. Celebrate IAEW(IAEW 기념하기) 캠페인은 청년 리더십, 멘토십에 대한 존중, 급진적 변화에 대응하는 급진적 실천 등 예술 교육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ArtsUnitesUs, #ArtsEdWeek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게시하는 캠페인이다. 웨비나와 맞물려 진행된 이 캠페인은 누구나 손쉽게 참여할 수 있어 세계인의 문화예술 대화를 확장했다.
Case 2. Spring Forward Festival – The Show Must Go On-line by Aerowave
줌으로 춤추는 웨비나, #CreativeEuropeAtHome
에어로웨이브즈(Aerowaves)는 유럽의 현대무용을 다루는 대표적인 허브이자 플랫폼이다. 신진 무용가들의 유망한 신작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국경을 넘는 공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무용의 세계를 알리고 있다. 이들이 2018년의 안무가로 선정한 피에트로 마룰로(Pietro Marullo)가 <서울세계무용축제>의 개막작을 장식하기도 했으니, 우리에게 그리 낯선 플랫폼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에어로웨이브즈가 2011년부터 해마다 여는 <스프링 포워드(Spring Forward)> 축제의 2020년 개최 방식이다. 지난 축제들과 같은 목적과 배경으로 열렸지만, 장소와 방식에 찾아온 커다란 변화를 눈여겨봐야 한다.
3일간 매일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한국 기준)까지 이어진 <스프링 포워드>는 전 세계의 현대무용 프로듀서와 전문가 2백여 명이 함께했다. 전통적인 관람 장소였던 공연장 무대 대신 집이나 사무실, 혹은 모바일 기기가 있는 어디든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른 차별점이다. 공연 영상 예고편은 무용가들이 자신의 집이나 동네에서 직접 촬영한 셀프 영상으로 대체해, 축제의 메인 해시태그인 #CreativeEuropeAtHome을 솔선수범하는 위트를 보였다. 축제에 사전 등록한 관객들은 온라인 생중계로 22개 공연을 관람하고, 공연 시작 전/후에 예술가와 실시간으로 Q&A를 주고받았다.
<스프링 포워드>역시 IAEW와 마찬가지로 줌을 통해 이루어졌다. 참여예술가들은 약속한 상영 시간에 맞춰 각자의 집, 사무실, 스튜디오에서 대기하고, 원활한 Q&A 진행을 위해 잘 훈련된 무용 기자들이 투입되었다. 아직 웨비나가 정착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철저한 기술 리허설로 만일의 사고를 대비했다. 영상과 음향 송출, 출연자와 카메라의 거리뿐 아니라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이 배경과 비슷한 색의 옷을 입어 얼굴이 둥둥 뜨게 나오지는 않는지 등 세심한 부분까지 고려했다. 또한, 줌이 익숙지 않은 이들을 위해 줌 사용 매뉴얼을 제작 및 배포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공연과 공연 사이의 공백에는 실제 공연과 동일하게 인터미션 시간을 배정했다. 올해의 축제 주관 측인 크로아티아 문화센터(Croatian Cultural Centre, Hrvatski kulturni dom na Suśak)가 제공한 시티투어 영상을 인터미션 때 송출해, 지루함을 느낀 관객이 이탈하는 것을 방지했다. 마치 TV 여행 프로그램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처럼 크로아티아의 곳곳을 보여주어, 모두가 여행을 포기하는 시국에 잠시나마 허기를 달래주는 팝업 콘텐츠였다.
공연 종료와 함께 진행되는 Q&A에는 참여자라면 누구나 패널이 될 수 있다. 질문이 있다면 손들기(Raise Hand) 기능을 통해 패널로 승격되며, 예술가와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한다. 물론 그의 질문과 예술가의 대답은 동시 접속한 모두가 함께 듣는다. 답이 끝나면 질문자는 다시 관객으로 돌아가고, 이때 그의 카메라와 오디오 또한 송출이 자동 종료된다. 모두의 화면에 뜨는 게 부담스럽다면 Q&A 버튼을 눌러 실명 혹은 익명으로 질문을 남길 수도 있다. 다만 대답의 우선권은 손들기 기능을 쓴 참여자에게 먼저 부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스프링 포워드>는 실시간 대화가 이루어지는 줌 내부의 채팅 채널을 이용해 로비(Foyer)라는 새로운 창구를 열었다. 로비에는 축제에 관련된 모든 사람과 예술가, 전 세계 무용인∙애호가∙전문가가 모여 축제의 공연에 대한 감상과 가십을 나누거나, 자신의 작품을 알리며 활기를 띠었다. 일종의 담론의 장이 된 이곳에서 에너지 가득 다양한 담론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최 측이 행사 종료 후에도 그 담론의 확장을 위해 새로운 영상 미팅 일정을 번외로 추가했을 정도다.
재기발랄한 현대무용 플랫폼답게, 열리지 못할 것 같던 애프터파티까지 줌으로 끝내버렸다. 보스니아(Bosnian)의 아방가르드 덥 락 그룹인 두비오자 콜렉티브(Dubioza Kolektiv)가 함께한 애프터파티는 공연을 보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모두가 함께 즐기는 온라인 파티 그 자체였다. 에어로웨이브즈는 먼저 칵테일과 일요일 밤에 어울리는 드레스코드를 준비하라는 가이드를 제시했다. 밤 9시 30분에 맞춰 파티에 온라인으로 입장하는 순간, 에너지 넘치는 디스코의 밤이 펼쳐졌다. 여기서도 손들기 기능으로 모두의 스크린에 등장해 웃음을 안겨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Creativity builds the resilience we need in times of crisis. It has to be nurtured from the earliest age to unlock the imagination, awaken curiosity and develop appreciation for the richness of human talent and diversity. Education is the place where this starts.
창의력은 위기의 시기에 필요한 유연함을 구축한다. 상상력을 열고, 호기심을 깨우고, 인간의 재능과 다양성의 풍요로움에 대한 이해를 발달시키기 위해, 아주 어릴때부터 이를 길러야 한다. 교육은 이것이 시작되는 곳이다.
– 오드레 아줄레(Audrey Azoulay), 유네스코 사무총장
대면과 교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문화예술교육이 마주한 거대한 전환기, 언택트 시대. IAEW와 <스프링 포워드>는 문화예술교육뿐 아니라 모든 장르의 전문가 토론회가 나아갈 방향을 선도적으로 보여주었다. IAEW는 발제의 기록∙보존∙공유가 중요한 세미나의 특성을 고려해 디지털 아카이브를 강화한 웨비나로 지식과 담론의 접근성을 높였다. 최근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각종 담화는 온라인에 적합한 형태로 재가공하는 수고를 거쳐 웹상에 배포되는데 비해, 담화 자체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웨비나는 지식의 보존이 한결 수월하고 직관적이다.
또한, <스프링 포워드>는 신체의 폭넓은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달해야 하는 무용 공연과 애프터파티를 웹상에 성공적으로 옮겨왔다.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900분의 공연과 소통이 이루어졌으며, 74개국의 1,400여 명 참여자가 함께한 성과를 거두었다. 비활동적이고 일방향적인 발언 중심의 기존 웨비나가 깨뜨릴 수 있는 한계를 선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이와 더불어, 두 웨비나 모두 온라인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소통 방식을 고심한 끝에 관심자를 포함한 일반 시민이 전문가와 나누는 무경계의 대화를 만들어냈다. 온라인상에서 갖게 되는 모두의 수평적인 발언권은 일반 참여자와 패널 간의 낯선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분명 줌을 사용한 비대면의 간접적인 만남은 한 공간에서 직접 만나는 대면의 대안이었지만, 외려 대면보다 더욱더 유연하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웨비나를 성공적으로 이행한 두 사례에서 짚어볼 수 있듯, “창의력은 위기의 시기에 필요한 유연함을 구축”한다. 아직은 모두가 시행착오를 감내하고 여러 도전을 펼치는 위기의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앞으로 모두의 만남의 장소가 될 가상 공간은 전에 없던 유의미한 담론을 끌어내는 거대한 도화지가 될 수 있다. IAEW와 <스프링 포워드>가 가상 공간에 그려낸 새로운 미래에서 그 가능성을 가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