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ee 이수정
DMZ Peace Train Music Festival
축제는 체험이다.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의 입장 게이트를 일단 넘어서면, 일상과는 다른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세계가 현실로, 피부로 느껴진다.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공연 관람이나 귀로만 듣는 음악 감상을 넘어 관객들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음악과 함께 초월적인 체험을 한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관객과 공연자와 기획자 모두가 이 체험을 통해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눈부신 평화의 순간과 만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피스트레인은 단순히 유명 뮤지션의 이름을 나열하기보다 우리가 그리는 축제의 현장을 큐레이션한다는 마음을 최우선하여 라인업을 꾸린다. 비상업적이지만 난해하지 않으며, 대중친화적이지만 유명세에만 기대지도 않으려고 한다. 우리 모두 이 축제를 일 년 중 최고의 시간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긍정적이고 건강한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하며 꾸린 피스트레인의 라인업. 이들 중 이미 공개된 첫 번째와 두 번째 큐레이션의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WATCH!
페스티벌 라인업은 기획의 제일 첫 단에 있다. 일 년 내내 무대 생각만 하는 예술 감독을 중심으로 아티스트를 선정하고 섭외와 계약을 진행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그사이 많은 변수가 생기기도 한다. 2020년 2월, 피스트레인 역시 전염병이라는 커다란 변수와 맞닥뜨리며 갑자기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관객과, 그리고 아티스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종의 스테이트먼트에 가까운 큐레이션을 제일 처음으로 내놓게 되었다. 나윤선, 이센스, 애리,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이날치. 이들의 공통점이 뭐냐고? 없다. 개별로 비교하면 공통점이 없지만, 다섯을 함께 모으니 새로운 그림이 나온다. 해외 재즈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나윤선과 힙합 무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센스의 공연을 같은 무대에서 보며 관객들은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는 감동을 경험할 것이고, 홍대 공연장이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는 훌륭한 밴드인 애리,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야외무대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그들의 아우라를 뽐낼 것이다. 이날치는 기존 장르의 어법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음악과 공연을 보여주는 그룹으로, 전 세대가 함께 춤추며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선사하리라고 확신한다. 세대, 장르, 성별에 연연하지 않고 음악과 퍼포먼스에서 아티스트가 가진 최대치의 무대가 보장되는 라인업. 이것이 <WATCH>의 다섯팀뿐만 아니라 앞으로 공개될 피스트레인의 뮤지션들이 관객에게 보여줄 가장 선명한 그림인 것이다.
SLAM!
피스트레인은 록 페스티벌이 아니다. 다만, 장르를 떠나, 원초적이고 솔직한 퍼포먼스를 통해 무대를 휘두르는 아티스트의 태도를 ‘로큰롤스럽다’고 묘사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엄청난 특효(특수효과)나 번쩍번쩍한 조명이 없더라도, 대단한 안무와 거대한 스케일의 악기 구성이 아니더라도, 록스타의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교감하는 밴드들, 이들을 두 번째 큐레이션에서 모아 보았다. 비주얼부터 눈길을 끄는 두 밴드가 있다. 스타크롤러(Starcrawler)와 항가이(Hanggai). 스타크롤러는 미국 LA 출신의 밴드다. 프론트우먼인 애로우 드 와일드(Arrow de Wilde)의 스타일과 무대 퍼포먼스는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과 이기 팝(Iggy Pop)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는데, 눈빛만 스쳐도 으르렁댈 것 같은 위험한 70년대 록스타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니 젊디젊은 밴드 스타크롤러의 첫 내한 무대가 얼마나 폭발적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스타일로 따지자면 항가이(Hanggai) 역시 만만치 않다. 내몽골을 중심으로 중국 소수민족 출신의 음악가들로 구성된 항가이는, 몽골 전통 창법을 록 음악과 접목했다고 해서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밴드다. 서부극에 등장할 법한 의상과 유목민의 전통 복장을 입고 뿜어내는 무대에서의 아우라는 실제 보지 않으면 제대로 느낄 수 없으며, 컨셉 충만한 이들의 공연을 직접 보고서야 비로소 산과 강, 숲과 들판이 있는 이상적인 땅을 의미하는 단어 항가이의 세계관을 체험할 수 있다.
세계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피스트레인의 두 번째 라인업에서 삶의 철학과 지향점을 음악으로 드러내는 밴드는 항가이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인스펙터 클루조(The Inspector Cluzo)는 록 음악이 가진 DIY 스피릿을 삶에서도 그대로 실천하며 8헥타르(8만 제곱미터)가 넘는 농장에서 농부로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원초적이면서 자연스러움이 폭발하는 인스펙터 클루조의 공연은 고석정의 자연과 어우러져 여느 때보다 생생하고 건강하며 기분 좋은 슬램의 순간을 끌어내리라 믿는다. 원초적인 자연성은, 일본 출신의 키카가쿠 모요(Kikagaku Moyo)의 무대에서도 만나게 된다. 세상 만물이 서로 조화롭게 이해하고 영감을 주고받는 유토피아의 세상. 늘어진 머리를 취한 듯 흔들며 악기를 연주하는 키카가쿠 모요의 눈빛만 봐도 아, 이것이 바로 저세상 사운드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이키델릭 계열을 밴드 중, 단연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그룹, 키카가쿠 모요. 우드스탁이 여전히 열리고 있었다면 섭외 1순위였음을, 단연코 확신한다.
한국 밴드 DTSQ 역시, 저세상 사운드라면 빠지지 않는다. 펑크로 데뷔하였지만 개러지와 사이키델릭에 대한 애정을 음악과 공연을 통해 꾸준히 드러내면서도, 요즘 밴드답게 장르에 사로잡히지는 않는다. 모듈러를 활용해 테크노의 요소가 충만하게 포함된 DTSQ의 무대는 VJ 오혜미의 현란한 비주얼 아트 작업물과 함께 완성된다. <형광색의 은하수(Neon-Coloursed Milky Way)>라는 1집 음반의 제목으로 그려지는 저세상 풍경을 눈으로, 귀로, 몸으로 체험할 수 있으리라.
페스티벌의 록 무대라면 상상할 수 있는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대변하는 밴드는 캡슐라(Capsula)와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이다. 캡슐라는 영어 캡슐(Capsule)의 스페인어 단어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노래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의 배경이 되는 우주선 캡슐에서 밴드명을 땄다. 밴드명을 따올 정도니, 캡슐라가 추구하는 음악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으리라. 더 후(The Who), 소닉 유스(Sonic Youth)를 떠오르게 하는 캡슐라의 무대를 통해 전성기 시절의 개러지-글램 록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편, 드링킹소년소년합창단은 스케이트, 펑크, 술이라는 마치, 삼위일체와 같은 완벽한 인디록의 특유의 기운을 뿜는 밴드다. 대구에서 결성되었으나 이제 주 활동 무대는 영국이 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스케이트 펑크룩만 봐도 신나고 온몸이 근질거리니, 갑자기 6월이 멀게만 느껴진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한국 밴드 까데호는 마치 봄의 장범준처럼, 여름 시즌이라면 한 번은 재생해야 할 음악을 연주한다. 6월 중순의 기분 좋게 따가운 태양빛 아래, 관객들과의 100% 교감을 통해서 나오는 잼 음악의 감동은 까데호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팀으로는 신인이지만, 이미 대한민국 음악씬에서 내로라하는 경력을 가진 멤버들의 내공 충만한 연주로 내 안의 에너지를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신인 아닌 신인은 또 있다. 별보라의 리더 황영원은 아시안 체어샷 출신으로, 오랫동안 음악 작업과 공연으로 다져온 내공을 ‘별보라’라는 산뜻하면서도 기운 넘치는 새로운 밴드를 통해 뿜어낸다. 어딘가 너무 멋있어서 다가가기 어려운 록스타의 아우라를 풍기는 별보라 세 멤버의 사이버펑크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첫 페스티벌 공연을 놓칠 수가 없는 이유다.
여기에,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특별히 소개하는 두 밴드가 있다. 더 호르몬즈(The Hormones)는 중국 인디의 메카 청두 출신으로, 펑크와 신스가 버무려진 21세기 록 사운드를 추구한다. 더불어, 자국에서는 드물게 음악을 통해 사회적 이슈와, 여성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재고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니, 잠시도 쉬지 않고 무대를 뛰어다니는 이들의 에너지에 눈과 귀에 빼앗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칼레미(Kallemi)는, 분쟁지역인 팔레스타인에서 결성된 다국적 그룹이다. 정치적, 지리적으로 제한된 요건 아래, 팔레스타인의 대중음악가를 위한 쇼케이스인 팔레스타인 뮤직 엑스포(Palestine Music Expo)를 통해 프로젝트성으로 시작된 칼레미는 팔레스타인 싱어송라이터 마이사우 다우(Maysaw Daw)와 더불어 스위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여성 뮤지션들이 결성했으며, 얼번, 소울, 힙합에 기반한 음악을 선보인다. 다만, 이들의 특별함은 단순히 모였다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간직한 정체성을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에너지 넘치는 하나의 퍼포먼스로 완성했다는 데 있다.
아, 가볍게 시작했으나, 각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을 주체하지 못해 긴 글로 마무리하게 된 라인업 큐레이션 소개. 이 소개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이들 공연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부풀렸기를 바라며, 관객과 마찬가지로 피스트레인에 참여하는 아티스트 역시 이곳에서의 공연을 통해 관객과 색다른 체험을 하기를, 그리하여 만드는 사람들과 공연자, 관객 모두가 다 같이 축제의 날에 평화의 기운을 만끽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