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사회 전반에 양극화, 불평등 등이 문제로 대두되면서 사회적 가치, 사회적 책임(CSR)이 주목받고 있다. 경제 국경이 의미 없어진 글로벌 경쟁 시대에 자본주의 사회를 이끌며 경제적 부를 축적한 기업이 주목하는 새로운 가치와 경영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기업이 그동안의 성장 일변도・이익만이 절대 선이었던 산업 시대 마인드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같이 사는 공영의 사회에 대한 탐구와 실천을 위한 경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사회적 활동이 기업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한 핵심 전략이자 차별화와 고객의 충성도를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핑크 리본 캠페인으로 사회공헌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브랜드를 만나본다. 여성에게 화장품을 팔아 성장해 온 판매자에서,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는 친근한 동반자로 다가선 기업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화장품이 아닌, 여성을 위한 최고의 감성과 경험을 팔다

전 세계 어딘가에서 15초마다 1명의 여성이 유방암 진단을 받고 있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The Estèe Lauder Companies)가 1992년부터 유방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유방암 캠페인을 펼치는 이유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는 27년간 유방암 정복에 다가서는 세계 주요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고, 질환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캠페인 해시태그는 #TimeToEndBreastCancer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는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 클리니크(Clinique), 랩 시리즈(Lab Series), 맥(M·A·C) 등 스킨 케어, 메이크업, 향수, 헤어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세계적 회사로서 전 세계 150여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1946년 에스티 로더 여사와 남편 조셉 로더(Joseph Lauder)가 설립했으며,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최고의 것을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Bringing the best to everyone we touch and being the best in everything we do)” 브랜드 철학으로 삼고 있다. 여성으로부터 창출된 수익을 여성에게 환원한다는 기업 이념을 바탕으로, 에스티 로더의 며느리 에블린 H. 로더(Evelyn H. Lauder)가 1992년 핑크 리본을 공동 제작하며 캠페인을 시작했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는 여성이 자신의 질병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품고, 건강잡지 <셀프(SELF)>의 전 편집장인 알렉산드라 페니(Alexandra Penney)와 함께 유방암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핑크 리본 캠페인을 시작했다. 캠페인은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을 찾은 여성에게 유방암 검진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핑크색 매듭을 나눠주면서 시작됐다. 당시 세계 곳곳에서 여성이 유방암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로더 여사는 유방암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세계적 보건 이슈로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됐다.

 

1993년, 로더 여사는 뉴욕 맨해튼에 유방암 연구재단(Breast Cancer Research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후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는 매년 10월 핑크 리본 스페셜 에디션(Pink Ribbon Special Edition)을 한정 출시하고 있다. 이는 유방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근절을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의 일환이다. 수익금의 일부는 유방암 연구와 의료 서비스를 위한 지원금으로 기부한다. 미국 의회는 10월을 유방암 예방의 달로 지정하기도 했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는 유방암 연구와 교육, 의료서비스 지원을 위해 전 세계에서 약 7천 9백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으며, 유방암 연구재단을 통해 250여 개의 연구를 지원해왔다. 캠페인은 꾸준히 확대되어 현재 70개가 넘는 나라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세계 60개 이상의 유방암 관련 재단과 함께하고 있다.

에스티 로더 여사 © HUFFPOST
핑크 리본 캠페인 25주년 포스터

그동안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가 화장품을 사는 고객에게 나눠준 자가 진단 카드와 핑크 리본은 약 1억 6,700만 개다. 또한, 핑크 리본 캠페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랜드마크를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핑크 일루미네이션(Pink Illumination) 행사를 2000년부터 매년 10월마다 벌인다.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 시드니 오페라하우스(Sydney Opera House), 파리의 에펠탑(Eiffel Tower), 두바이의 부르즈 알 아랍(Burj Al Arab),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을 비롯해 전 세계 약 1천 개 이상의 랜드마크가 참여하며 글로벌 일루미네이션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도 남산 서울타워, 세빛섬, 롯데월드타워 등이 동참해왔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 확산 트렌드에 따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카오스토리 등 다양한 공식 SNS를 활용해 캠페인에 날개를 달고 있다.

 

또한, 유방암 자가진단 앱 핑크 터치를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자가검진 방법뿐 아니라 유방암과 캠페인에 대한 주요 정보, 생리 주기 달력 기능 정보도 제공한다. 정기적 건강검진, 금연과 금주, 과일과 채소 섭취 등 유방암을 예방하는 생활 속의 8가지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 전 세계 지지자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소셜 미디어 캠페인도 주목할 만 하다. 핑크 립스틱으로 손등에 핑크 리본을 그려 #TimeToEndBreastCancer의 의미를 공유하며,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포스팅하고 #ELCdonates 해시태그를 다는 것으로 간단히 기금 모금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10월 한 달 동안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에 대해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가 최대 25만 달러를 유방암 연구재단에 기부한다. 핑크 리본 캠페인이 여성을 위한, 그리고 세상을 좀 더 가치있게 만드는 대표적 시회 운동이 되면서 에스티 로더뿐 아니라 식품, 스포츠, 항공사, 의류업체 등 다양한 기업에게 확대됐다. 핑크 리본을 부착한 서비스와 상품에서 발생한 수입은 여성의 건강의식을 높이는 기금으로 지원되거나 유방암 연구재단의 연구기금으로 기부된다.

남산타워에서 열린 핑크 일루미네이션 이벤트 Ⓒ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 코리아
미국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Atlanta Braves)의 내야수 프레디 프리먼(Freddie Freeman)이 핑크색 배트를 들고 타석에 섰다. 프리먼의 가슴에는 핑크 리본 캠페인을 상징하는 메이저리그 로고가 새겨져 있다. AP연합뉴스

더 아리따운 세상을 위하여

핑크 리본의 창시자이자 글로벌 리더가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라면, 우리나라에는 아모레퍼시픽(Amorepacific)이 있다. 아시안 뷰티(Asian Beauty)의 가치를 대표하며 아름다움과 건강을 추구하는 인류의 영원한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아모레퍼시픽의 핑크 리본 캠페인은 에스티 로더와 궤를 같이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2000년 전액 출연해 국내 최초의 유방암 전문 비영리 공익재단 한국유방건강재단을 설립했다. 한국유방건강재단과 함께 자가검진과 조기검진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으로, 수혜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모든 세대의 여성이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갖고 건강한 삶을 살도록 지원하는 핑크 리본 캠페인이다. 유방암은 우리나라 여성에게도 불청객이다. 한국 여성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암으로 흔히 갑상샘암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유방암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유방암 발병자 수는 21,747명으로 갑상샘암을 넘어섰다. 발병 연령대는 40~50대가 많지만, 20~30대 환자도 점차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아모레퍼시픽의 대표적인 핑크 리본 프로그램은 유방암 조기 발견의 중요성을 알리는 러닝 페스티벌 핑크 런(사랑 마라톤)이다. 국내 최대 핑크 리본 캠페인 행사로 자리 잡은 핑크 런은 한국유방건강재단과 함께 2001년부터 시작됐다. 참가비 전액과 협찬사 기부금 등은 한국유방건강재단에 기부된다. 올해 열린 19회 대회까지 전체 참가자 수는 35만 명에 육박한다. 누적 기부액도 38억 원을 넘었다. 핑크 런은 서울을 포함해 부산, 대전, 광주, 대구 등 5개 도시서 통상 매년 3월부터 10월까지 열린다. SNS를 중심으로 핑크 러너 릴레이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5개 도시서 진행되는 핑크 런과 달리, 나와 내가 추천하는 주위 사람들이 릴레이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내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혼자 혹은 누군가와 함께 달릴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다. 핑크 런 외에도 유방 건강 홍보물 제작, 핑크 리본 전시회, 수술치료비・학술연구비 지원과 함께 자가검진 교육 프로그램인 핑크 투어와 유방암 환우회 등 커뮤니티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화장품 한류를 주도하는 기업답게, 한국을 넘어 중국에서도 캠페인을 전개한다. 2016년부터 아모레퍼시픽 중국법인은 상하이에서 여성 건강 마라톤 모리파오(茉莉跑, Jasmine Running)를 개최하고 있다. 모리파오는 유방과 자궁 건강 인식 제고를 위한 행사다. 핑크 런을 글로벌화한 러닝 축제로, 2020년까지 20만 명의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 약속을 위한 행보이기도 하다. 중국부녀발전기금회(中国妇女发展基金会)와 공동으로 개최한 2018년도 행사에는 4,500여 명이 참여해 달리기라는 방식으로 여성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아모레퍼시픽은 항암 치료로 인한 갑작스러운 외모 변화로 힘들어하는 여성 암 환자들에게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Makeup your Life) 캠페인도 역점 사회공헌 활동으로 벌이고 있다. 2008년부터 진행된 캠페인은 피부 관리, 메이크업 등의 외모 관리를 통해 암으로 고통받는 여성이 본래 누리던 기본적인 일상생활로 돌아가도록 돕고 있다. 2018년에는 6개 지역에서 봉사 단원 899명과 함께 진행했으며, 총 1,694명이 수혜를 입었다. 첫 론칭한 태국은 쭐라릉꼰(Chulalongkorn) 대학의 Queen Sirikit Centre for Breast Cancer와 파트너십을 맺고 40명에게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교육을 제공했다. 중국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도 편하게 참여하도록 정부 병원과 협력해 병원 내에서 캠페인을 열었으며, 싱가포르에서도 44명에게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 교육을 제공했다.

2016년 상하이 모리파오 행사 Ⓒ 아모레퍼시픽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공감

파브리지오 프레다(Fabrizio Freda)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 사장 겸 최고경영자는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는 전 세계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헌신해 왔다”며 “유방암 캠페인을 통한 노력은 이같은 목적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그룹이 추구하는 가족에 대한 가치와 문화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달 발표한 2019 회계연도 기업 사회적 책임 보고서(Corporate Responsibility Report)에서 낸시 마혼(Nancy Mahon) 에스티로더 컴퍼니즈 글로벌 기업 시민·지속가능성 담당 수석 부사장은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는 가치를 위해 헌신하고 사회에 보답하려는 가족 설립 기업으로서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포용성과 지속가능성을 비즈니스 핵심에 두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27년간 이어지고 있는 핑크 리본 캠페인의 결과일까? 1980년대 후반 이후 유방암으로 인한 여성 사망률은 40% 감소했다. 유방암 예방과 진단, 치료 및 환자 생존과 관련된 주요 연구에 에스티 로더 유방암연구재단에서 지원한 과학자들이 관여했다. 유방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조기검진의 중요성을 알리는 메시지가 여성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유방암 조기 진단 시 5년 생존율은 90% 이상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모두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만의 노력의 결과라고는 할 수 없지만, 큰 전기를 만든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누군가의 엄마이고 딸인 여성에게 치명적 질병에 대해 인식을 새로이 하고 모두가 힘을 합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핑크 리본은 국가도 해결하기 쉽지 않을 수 있는 문제를 기업이 사회적 책임 활동을 통해 해법을 찾은 대표 사례다. 특히 기업의 판매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단기적・단편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신의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갖는다.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명멸한 가운데 미국의 작은 가족 기업으로 출발해 세계 최고의 뷰티 브랜드로 성장한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나, K-뷰티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한류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한 아모레퍼시픽이 그 중심에 있다. 앞으로도 핑크 리본 캠페인의 행보에 모두가 관심을 두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