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음악은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가
– 요제프 피퍼(Joseph Pieper)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의 철학을 어떻게 들여다볼 수 있을까? 물리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우리는 한 사람이 표현해 내는 행위를 보거나 들으며 그들의 철학을 짐작하고 해석한다. 이처럼 누군가의 세계가 어떤 사조이자 철학으로 구축되기까지는 개별의 통찰 위에 흐르는 시간이 점차 축적되며 하나의 궤적을 그리는 과정이 수반된다. 그렇기에 반짝이는 자신의 세계를 내보이며 빛을 발하는 예술가를 발견하고 그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신비롭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모든 분야에서 필연적으로 이러한 궤적이 드러나지만 특히 예술가들의 삶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다. 때로는 한 사람이 펼쳐내는 양식이 시대의 표방이 되어 한 세대를 주도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데 서양음악이 흘러 온 궤적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진다. 바로 후대 음악가들의 해석이다.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 낭만, 현대까지 이어지는 서양음악 분야에서는 한 예술가로부터 시작된 작품이 후대의 연주자들이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색을 덧입는 경우가 많다. 시대를 흘러오면서 축적된 양식과 작품의 영향력이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셈이다.
예를 들면 독일의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Dietrich Fischer Dieskau)는 독일 가곡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표현력과 탁월한 해석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았고, 포르투갈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Maria joão Pires)는 모든 작곡가의 연주에 능통하면서도 유독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작품을 뛰어나게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정 작곡가를 사랑하는 청자에게는 그 전문성을 인정해 스페셜리스트라는 칭호를 붙이기도 한다.
물론 어떤 예술가가 특정 작곡가나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기 시작한 때와 그 영향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예술가는 그것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 정의하기 어려운 영향력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씩 꺼내 보인다.
당연히 이때의 영향력은 한 지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예술가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을 대하는 자세가 변해감에 따라 작품을 대하는 철학과 태도 역시 바뀐다. 그렇기에 연주자들이 젊었을 때 레코딩했던 작품을 시간이 흐른 뒤 재해석하며 재녹음하는 경우들이 빈번하다. 연주자의 철학과 예술세계의 변화가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이어진 경우다. 많은 작품이 여기 속하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n Bach)의 작품들이다.
종교적인 음악과 세속적인 음악을 동시에 창작했던 바흐의 작품들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불러왔다. 진정한 창조성은 종말과 성숙이라는 혼돈 속에서 발휘된다. 바로크 시대 최후를 장식한 대가였던 그의 작품은 독일 음악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탈리아나 프랑스 양식을 융합해 독자적이며 개성 있는 음악을 창조했다. 창작의 범위가 넓었던 만큼 자신의 생애 동안 꾸준히 작곡 생활을 이어 나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작가라는 명성답게 약 1천 개의 작품들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바흐의 건반 작품 곡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Variations Bmw 988)>은 후대의 여러 연주자에 의해 해석되어 왔다.
캐낼수록 더 빛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1741년 작곡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주제곡과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하프시코드 곡집이다. 기본 조성은 G장조이며 총 32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Aria(아리아), 30개의 변주곡, 최초의 아리아가 반복되는(Aria da capo) 구성이다.
이 곡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18세기 초 작센의 영주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주러시아 대사였던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Hermann Karl von Keyserling) 백작의 불면증이 있었다고 한다. 바흐는 백작의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 곡을 썼으며 바흐의 제자였던 요한 고트리프 골드베르크(Johann Gottlieb Goldberg)가 백작을 위해 이 변주곡을 연주하는 과정에서 하프시코드를 사용해 골드베르크라는 이름도 붙게 되었다는 설이다. 이 일화는 최초의 바흐 전기 작가였던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Johann Nikolaus Forkel, 1749~1818)이 쓴 책에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상 공식적인 증거는 없으며, 바흐가 카이저링크 백작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지 않았다는 점, 또 1741년 당시 요한 고트리프 골드베르크의 나이가 무척 어렸다는 점 등이 반론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사실 바흐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작곡한 시기에는 대위법(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작곡 기술)을 이용한 복잡한 작품보다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오페라처럼 듣기 좋은 음악이 유행했다. 대위법의 대가였던 바흐는 자칫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작곡가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흐는 변화의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그는 정통과 새로운 사조가 맞물려 오히려 아주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할 만한 적절한 시기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만들었다.
실제로 바흐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작곡하며 대위법으로 뼈대를 세우고 당시 유행했던 시대의 양식들로 변주곡을 완성했다. 30개의 변주곡은 3개씩 10개의 그룹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이 그룹 내에서 마지막 변주는 항상 Canon(카논)이 되었다. 세 개의 마지막 그룹은 두 개의 민요 멜로디를 대위법으로 엮는 유명한 쿼들리베트(Quodlibet)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의 대표적인 건반 작품이 되었다. 수많은 예술가가 여러 방면으로 확장을 시도한 곡이자 바흐 음악 세계의 정점이며,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보물을 간직한 작품이 된 것이다. 많은 예술가가 이 보물을 발굴해 내고자 나름의 해석을 담아 음반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바흐 음악의 권위자로 인정받았으며 바흐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한 예술가들의 음반을 소개하려고 한다.
글렌 굴드(Glenn Gould)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술가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에서 항상 회자되는 피아니스트이자 예술가이기도 하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청년이자 무명의 예술가였던 글렌 굴드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며, 그를 골드베르크의 세계 대표급 연주자 반열에 올려 준 작품이다.
글렌 굴드는 1955년 미국 음반 회사인 CBS(콜럼비아)와 계약을 맺고 첫 녹음 음반을 만들었다. 이 음반은 1955년에 녹음한 뒤 이듬해 출시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이후 한 번도 절판된 적 없이 지금까지 팔리고 있다. 이 음반을 통해 글렌 굴드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모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특히 글렌 굴드는 본인의 캐릭터와 연주 방법 등에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골드베르크를 연주하며 따라 부른 선율이 유명해져 음반에서 그의 허밍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글렌 굴드는 세계적 주목을 받는 피아니스트가 되면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부담스러워하다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며 30대에 이른 은퇴를 선언했다. 그렇기에 그는 청자를 직접 만나는 무대 활동보다 스튜디오 녹음을 선호했다. 그런 그가 세운 원칙 중 하나가 기존에 녹음했던 곡을 재녹음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글렌 굴드 생애 그것을 깨뜨린 유일한 작품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1981년에 재녹음된 골드베르크는 1982년에 굴드 사후에 발매되었는데, 비평가 팀 페이지에 의하면 첫 번째 골드베르크 앨범 중에서 몇몇 부분이 맘에 들지 않아 늦은 나이에 재녹음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연주자는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다.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로서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등 유수의 작품들을 연주할 때마다 모범적이고 자신만의 피아니즘을 구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 뒤에는 안드라스만의 작곡가에 대한 탐구와 명확한 철학이 숨어 있다.
바흐를 음악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하는 안드라스 쉬프는 열여섯 살 때부터 매일 바흐를 30분간 연주했다고 한다. 바흐의 곡에는 음악의 정서적, 지적, 물리적 속성이 서로 최적의 형태로 어우러져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흥미롭게도 그런 안드라스 쉬프 역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두 번 녹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2년 Decca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과 2001년 스위스 바젤에서 라이브 녹음으로 진행된 ECM 음반이다. 두 음반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스튜디오와 라이브 녹음이라는 점, 그리고 20여 년의 시간을 두고 재녹음을 진행했다는 사실이다. 2001년, 라이브 녹음에서는 안드라스 쉬프가 피아노 페달을 거의 밟지 않고 연주한다. 평소 시대 악기와 현대 피아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시대에 맞게 연주하려는 안드라스의 철학 덕에 이러한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녹음된 안드라스 쉬프의 골드베르크는 스탠더드 하면서도 가벼운 첫인상, 자연스러운 터치를 통한 객관적인 공감 등을 끌어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글렌 굴드와 안드라스 쉬프의 두 음반 모두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재녹음되었다. 평론가 팀 포스터(Tim Foster)가 이야기한 것처럼 연주자들이 기존 녹음에서 몇몇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롭게 시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여기엔 단순한 오류나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분명 그 20년의 세월 동안 이 보물 같은 곡 안에서 발견된 새로운 가치를 연주자의 철학과 새로운 해석에 담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레전드가 된 두 연주자는 20년이라는 긴 세월 끝에 미처 다 발견해 내지 못한 그 보물이 무엇이었는지 확신할 수 있게 된 시기에 재녹음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담긴 세계는 예술가들에게 폭넓은 상상의 터와 곡과 함께 무르익어갈 수 있는 철학을 제공했다. 어떤 예술가의 말처럼 골드베르크 변주곡 자체가 하나의 우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시대에 흐르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악은 문화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삶 곁에서 늘 새로운 정서를 제공해 왔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역시 그 특유의 아름다움과 정서적 느낌 덕에 영화, 만화, 드라마 등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공포영화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1991)>에서 한니발 렉터가 사람을 죽일 때마다 흘러나왔으며, 간호사와 환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주제가 된 <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 (1996)>에서도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설국열차, (2013)>에서는 꼬리 칸에 있는 하층계급 사람들이 머리 칸으로 전진하며 식물 칸에 도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나오는 곡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이 외에도 <비포 선라이즈(Before Subrise), (1995)>, <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る少女), (2007)> 등 다양하지만 영화,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대부분 첫 번째와 마지막 곡 아리아(Aria)다. 곡이 지닌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선율, 그 안에 함축된 묘한 우수, 슬픔 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흐의 곡은 영화의 맥락과 서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そして父になる), (2013)>,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미 잘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これえだ ひろかず) 감독의 아홉 번째 장편 영화이다. 똑똑한 아들,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던 건축가인 료타가 6년간 키운 아들이 자기 친자가 아닌 병원에서 바뀐 아들임을 알게 되고, 다른 친자의 가족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그렸다.
이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서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을 수 있다. 료타가 다른 친자의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아들을 만나러 갔을 때, 아들이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 도망치자 료타가 그 뒤를 쫓는 장면이 나온다. 료타는 천천히 아들 케이타를 쫓아가는데 이때 두 갈래의 길이 등장한다. 케이타는 윗길로 가고 료타는 아랫길에서 걷는다. 그리고 료타와 케이타가 하나의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료타가 케이타를 안아주는 장면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가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아리아는 두 가족이 모이는 장면까지 계속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음악 감독이 어떤 의도로 이 곡을 선택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 추론해 보면 이렇다. 극 중 아버지 료타는 아들 케이타에게 엄격한 교육방침으로 사교육과 예절 교육을 가르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대위법이라는 체계 안에서 당시 유행했던 양식들을 담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아에서 시작되어 여러 가지 변주로 이어지다 다시 아리아로 마무리되는 이 구조가 영화의 전반적 구조와 비슷하다. 즉 감독들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선택한 건 극 중 이들의 관계처럼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은 게 아닐까 싶다. 또한 이런 의미 외에도 친자가 뒤바뀐 사이키가가 살고 있는 일본의 군마현이 고즈넉하고 조용해 골드베르크의 아리아와 무척 잘 어울렸다는 평도 있다. 아버지와 가족의 변화를 차분하고 깊이 있게 조명하는 영화와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잘 어울린 작품이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る少女), (2016)>, 호소다 마모루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어떤 한 장면이 아닌 주제 음악처럼 사용되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콘노 마코토라는 17세 소녀가 어느 날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면서 마미야 치아키, 츠다 고스케라는 친구들과 함께 타임리프를 통해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츠츠이 야스타가의 중편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바탕으로 2006년에 개봉한 이 애니메이션은 소설이 바탕이 되었지만 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소설의 원작자인 츠츠이 야스타가 역시 이 부분을 인정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아리아에서 제1변주까지 이어졌으며,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아리아, 그리고 상반된 분위기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제1변주가 타임리프 장면에서 항상 흘러나온다. 짐작하건대 영화감독 호소다 마모루와 음악감독이 타임리프를 그려 보면서 적절한 음악을 찾기 위해 고심한 끝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과 하나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저 한순간 흘러가는 게 아니라 작품 내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인 타임리프 때마다 흘러나오기에 이 곡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알 수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세계
이처럼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연주자의 철학에 따라 작품 해석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은 보물 같은 작품 중 하나다. 예술가마다 자신만의 철학과 해석을 바탕으로 표현하며, 해석에 따라 연주 시간이 극명하게 차이가 나기에 무엇이 정답인지 말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번 아리아가 끝난 뒤의 여운, 그 틈에서 1변주로 나아가기 위한 도약이 느껴지고, 2번 제1변주로 넘어가는 순간과 29번 Quodlibet(쿼들리베트) 변주를 마친 뒤, 다시 다시 30번 Aria da capo(아리아 다 카포)로 돌아오는 순간 등 마치 시처럼 많은 행간과 선율이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만든다. 그렇기에 여러 연주자의 음반을 듣다 보면 각 변주곡에서 다음 곡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염두에 둔 그들의 해석과 그에 따라 다르게 빚어지는 여백과 쉼이 인상적이다.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이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발표한 비킹구르 올라프손(Vikingur Olafsson)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Goldberg Variations(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는 정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각 변주곡에서 다음 곡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결정하고, 순간의 연결이나 크고 극적인 쉼을 만들어 내는 것도 바로 정적이죠.”
이처럼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이해하면 할 수록 신비롭다. 16번 변주를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칭적으로 나뉘는 점, 곡 진행 과정에 수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는 점(3의 배수에 해당하는 변주가 돌림 노래 Canon(카논) 형식), Aria(아리아)를 중심으로 토카타, 푸게타, 2성/3성 인벤션, 쿠랑트, 가보트, 지그 등이 변주곡에 포함되어 있는 점 등이 그렇다. 이 외에도 담긴 비밀들이 많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란 작품이 지닌 위대함과 가능성은 하나의 세계이며, 여전히 오늘의 예술가들을 도전하게 만드는 무엇이 된다. 그리고 그 비밀은 생각보다 심오하고 깊어 세월이 지나 준비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답을 들려 주기도 한다. 동시에 예술가마다 다른 독창성을 품게 만들어 세상의 수많은 예술가들을 창작의 세계로 뛰어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바흐라는 작곡가의 탁월함이자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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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Bach 권위자인 Andras Schiff(안드라스 쉬프)의 2번째 라이브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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