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브랜드 시각화 전략: 전문 디자인 스튜디오와의 브랜딩 협업 및 오프라인 팝업 이벤트 운영
  • 국내 시상식: 틱톡, 프리즘 등 뉴미디어 플랫폼과의 협업으로 시청자층 확대 도모
  • 해외 시상식: 미래 세대와 맞닿기 위한 다양성의 주요 가치화 & 리브랜딩

 


 

GOAT. 갑자기 웬 염소냐 싶겠지만, 동물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GOAT는 Greatest Of All Time의 약어로, 한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을 달성한 인물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보통 스포츠 필드에서 최고의 선수를 부를 때 썼으나 이제는 그 범위가 확대되어 예술·과학·기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쓰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Greatest, 최고를 선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스포츠 분야에서는 경기 기록과 점수로 평가할 수 있고 과학·기술은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풀었거나 혁신도에 따라 판가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화·예술 분야는 어떨까?

 

여러 갈래의 해석이 따라올 수밖에 없는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평가 자체가 쉽지 않다. 비평이란 곧 담론이기 때문이다. 창작자가 결과물을 만들면, 수많은 해석이 각축을 벌이고 치열한 논쟁을 거치다 작품이 된다. 창작자는 한 명일지 몰라도 해석자는 다수이다. 다수의 해석이 모여 결과물을 엮어내 오늘날 우리에게 유의미한 작품이 된다. 이런 견해를 밝힌 1960년대 수용미학의 대표주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문학)작품은 완성된 미적 대상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에 의해 인지되고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문화·예술 분야에서 최고를 가리는 과정에는 단순히 작품의 완성도, 수월성만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을 감각하는 해석자가 이를 어떻게 의미화했는지, 더 확장해 말하자면 시대와 사회가 무엇을 예술로 규정하고 평가했는지 역시 포함된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예술 시상식은 이런 관점을 연간 이벤트로 극대화했다. 작품에게는 그 해 “가장 사랑받은, 가장 위대한, 가장 훌륭한”이란 찬사를 아낌없이 달아 준다. 예술가에게는 성공의 지표, 지망생에게는 꿈이자 목표 그 자체가 되었다. 시청자나 팬에게는 누가 수상할지 예측해 보는 스릴을 선사하며 때론 수상 자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토론의 장을 제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미래의 문화·예술은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향유할지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시상식이 지니는 파급력은 단순한 쇼 비즈니스 이상이 되었다.

 

그렇기에 문화·예술 어워드는 지금도 시시각각 진화하고 있다. 그 옛날 기사 작위 수여식처럼 수상자를 한군데로 불러 모아 단순히 상만 수여하지 않고, 각자의 철학 속에서 특유의 브랜딩 전략과 수상 시스템을 마련하며 공신력과 대중성을 잡아가려고 한다. 한 예술가의 커리어 하이이자 동시대와 긴밀히 공명하는 작품을 호명하는 자리인 문화·예술 시상식, 그들만의 특별한 어워드 브랜딩 전략은 어떤 흐름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이진법의 숫자를 표현한 LG 구겐하임 어워드 트로피 ⓒ SWNA
이진법의 숫자를 표현한 LG 구겐하임 어워드 트로피 ⓒ SWNA

시상식을 시각화하다

흔히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단 뜻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시각은 인간의 다양한 감각 기관 중 정보를 수용하는 하나의 창구일 뿐이다. 그럼에도 브랜딩 영역에서 비주얼라이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유는 우리가 주로 접하는 미디어가 문자 및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시각 매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라디오가 주된 매체였다면 인간을 청각적 동물이라 지칭했을지도 모른다.

 

브랜드를 비주얼라이징 한다는 건, 전달하고픈 핵심 메시지가 그 자체로 무기로 기억되게끔 만드는 과정이다. KAIST 전기·전자과 교수이자 뇌과학자인 김대식 교수는 <월간 디자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국 본다는 것은 나만의 내면적 세상을 창조해 내는 것이기에 디자인이란 내가 보여주고 싶은 세상을 타인의 뇌 안으로 전염시키는 시각적 바이러스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워드 브랜딩에서 키가 되는 비주얼라이징 아이템은 무엇일까? 바로 시상식의 상징인 트로피 디자이닝이다.

 

LG는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어 5년간 예술X기술을 실천하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LG X Guggenheim ART+TECHNOLOGY INITIATIVE’를 운영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LG 구겐하임 어워드(LG Guggenheim Award)를 제정해 기술을 바탕으로 혁신적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중이다. 작년 5월에 열린 제1회 LG 구겐하임 어워드에서는 스테파니 딘킨스(Stephanie Dinkins) 뉴욕주립대 교수가 상금 10만 달러와 함께 트로피를 수여했다. 딘킨스 교수는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을 작품에 활용해, 기술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작품을 발표해 공로를 인정받았다.

 

알루미늄 재질의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LG 구겐하임 어워드 트로피는 정보과학과 컴퓨팅 기반인 1과 0, 디지털 신호체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진법의 구성 요소는 놀랍도록 단순하지만 이것이 증강현실이나 인공지능 같은 경이로운 테크놀로지를 가능케 만든다는 소개말처럼, 트로피 디자인은 1과 0 두 숫자가 다이나믹하게 교차되는 순간을 조형적으로 포착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활용으로 실현 가능한 새로운 형식의 미래 예술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 트로피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아름다운 만남이란 미션 하에 진행되는 LG X 구겐하임 미술관 프로젝트를 상징하기도 한다. 트로피 디자인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한 이석우 디자이너(SWNA 소속)가 맡았다.

 

이외에도 산업 디자인 전문 회사인 SWNA는 MAMA AWARDS(舊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 트로피도 디자인했다. CJ ENM이 주최하는 케이팝 대표 어워즈 MAMA는 아시아 시장에서 세계 무대로 반경을 넓혀가는 케이팝에 발맞춰,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에서 MAMA AWARDS로 2022년 리브랜딩 되었다. 함께 변경된 기존의 트로피 디자인은 인공위성과 송전탑을 재해석했다고 한다. 송전탑의 직선적 요소는 수직과 상승을, 상단의 큐브는 인공위성의 연결성을 상징한다. 아티스트와 팬이 음악으로 화합을 이룬다는 의미다. 또 기존의 트로피가 낮은 높낮이로 무게감과 그립감이 좋지 않았음을 고려해 이를 조립식 구조로 바꿔 무게를 줄였다. 바닥에도 MAMA란 로고를 넣어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 시상식 이름을 노출한다.

 

이외에도 MAMA AWARDS는 2022년 11월 18일부터 24일까지 건대 커먼그라운드에서 오프라인 팝업 존인 MAMA WORLD를 열었다. 팝업 존 행사와 체험 이벤트를 통해 K팝 주요 소비층인 MZ세대를 대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기획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K팝 팬들이 단순히 시청하는 것이 아닌, 시상식을 즐기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한다. 팝업 존에서는 레드카펫을 체험할 수 있는 레드카펫 존과 8M에 이르는 초대형 트로피, 포토 부스를 마련해 인증 욕구를 자극하고, 초대형 LED로 MAMA AWARDS의 아이코닉한 무대를 즐길 수 있는 MAMA 스테이지 등 다양한 이벤트를 만날 수 있었다.

2022 마마 어워즈에서 수상한 BTS 제이홉 ⓒ Mnet
생황을 부는 여인상 모습, 2021년 골든디스크어워즈 ⓒ 골든디스크어워즈

음악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시상식으로는 미국의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와 국내 골든디스크어워즈(Golden Disc Awards)가 있다. 그래미 어워드의 경우 그래미(Grammy)라는 이름 자체가 축음기(Gromophone)에서 따온 만큼, 트로피 모양 또한 축음기를 상징하는 몸통과 평평한 바닥으로 나뉘어 있다. 이 트로피는 존 빌링스(John Billings)라는 장인이 40년째 만들며 오랜 세월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다. 여담으로 2017년 영국 가수 아델(Adele)이 올해의 음반 부문을 수상한 뒤 트로피를 두 개로 쪼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골든디스크의 상징은 생황을 부는 여인상이다. 한국조각가협회 부회장을 역임한 김수현 조각가가 제작했다. 한국 범종 외관에 새긴 비천상을 발전시킨 형태로, 승천하는 여인의 실루엣은 시상식의 높은 품격을 나타낸다. 여인이 받쳐 든 생황은 우리 고유의 관악기로 한국 음악의 발전이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 외에도 국내의 대표적인 대중문화 시상식으로는 백상예술대상이 있다. 1965년부터 시작되어 약 60년에 가까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매년 시대와 감응할 수 있는 시상식이 되기 위해 계속해서 변화를 도모하는 중이다. 트로피 또한 2019년, 한차례 바뀐 적이 있다. 한자로 쓰인 백상예술대상 위에 하회탈이 박힌 다소 무게감 있는 디자인에서 부드러운 곡선의 실루엣을 살리되 우뚝 선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되었다. 디자인을 맡은 SWNA에 따르면, 이 트로피의 콘셉트는 창조적인 인간이라고 한다. 대중문화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다양한 인간 군상이 담겨 있다. 백상예술대상은 이러한 예술적 특징을 조각품처럼 표현했다.

창조적인 인간을 형상화한 백상예술대상 트로피 ⓒ SWNA
붓글씨를 활용한 심볼이 돋보이는 대종상영화제 로고 ⓒ 대종상영화제

트로피뿐 아니라 로고에서도 각 시상식만의 브랜딩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국내 3대 영화상 중 하나이자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종상영화제는 최근 쇄신의 마음을 담아 로고를 리뉴얼했다. 대종상영화제는 2015년 영화인 보이콧 사태와 공정성 논란을 겪으며 이미 한 차례 위상이 무너진 바 있다. 당시 대종상영화제는 불참자에게는 상을 주지 않겠다고 해 영화인들로부터 보이콧을 당했다. 이에 조직위는 2023년 대종상영화제 키워드로 새로운 대종상, 공정한 대종상을 내세우며 스타 위주의 영화를 지양하고 10만 영화인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영화제 로고와 타이틀 디자인을 맡은 장혜란 작가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쇄신하고 다시 태어난다는 이번 대종상영화제의 취지를 떠올리니 (로고) 서체에서 멋을 빼고 겸허함이 느껴졌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떠올린 게 예서체다. 예서는 중국 진나라 때 관료들이 쓰기 위해 간결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진 서체다. 예속된 서체라는 의미로 멋을 최대한 덜어내고 덤덤함이 느껴지는 형태가 특징이다. 여기에 훈민정음을 적용해 훈민정음 특유의 간결한 조형미와 예서체 한자와 어우러지도록 했다. 한글의 근본인 훈민정음이 영화제의 새로운 시작에도 걸맞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 장혜란

백상예술대상은 문화·예술의 다양성과 공존을 상징하는 여러 색이 중첩된 그러데이션 컬러로 비주얼을 전개한다. 붉은빛의 TV, 보랏빛의 영화, 초록빛의 연극 등 크게 3가지로 나뉜 시상 부문을 상징하는 각각의 색은 서로 중첩되면서 하나의 세계처럼 원형의 로고를 빼곡히 채운다.

 

특히, 대형 배급사 위주의 대규모 작품 중심으로 후보작이 제한되는 경향을 바꿔 나가기 위해 2022년을 기점으로 국내 시상식에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있다. 최고상 중 하나인 작품상 부문에 평화시장의 여성 노동자들을 다룬 이혁래, 김정영 연출의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이 후보로 오른 점이나, 정가영 감독의 저예산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가 작품상, 감독상, 시나리오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에 후보에 오른 점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대형 상업 영화들의 개봉이 미뤄지거나 취소되면서 자연스럽게 후보군을 독립·저예산 영화로까지 확장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별도의 다큐멘터리 부문상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큐멘터리를 작품상 후보에 올린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2023년에는 유튜브 웹 예능 최초로 피식대학이 TV 부문 예능 작품상을 타기도 했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빠르게 포착해 이를 시상의 영역에 적극 반영하고 시대의 흐름을 존중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시대와 발맞추려는 백상예술대상의 신선한 시도는 단순히 시상의 영역에만 그치지 않았다. 같은 해 리테일 미디어 플랫폼 프리즘(PRIZM)과 협력해 시상식 관람권 증정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프리즘은 자체 플랫폼에서 와우드로우 라이브(WOWDRAW LIVE) 방송을 통해 실시간 추첨으로 시상식 VIP 티겟을 증정했다. 당첨자는 시상식 현장에 마련된 프리즘 존(PRIZM Zone)에서 시상 현장을 즐길 수 있었다. 당첨된 관객에게는 기념용 트로피를 굿즈로 만들어 선물했는데, 두 브랜드의 콜라보를 상징하는 만큼 백상예술대상 로고의 중첩된 그러데이션 컬러와 프리즘의 디스톨트 그래픽이 융합된 형태였다. 참고로 이 라이브 방송에서는 춤추는 아나운서 정영한과 영화·드라마 리뷰 유튜버 지무비(G Movie)가 출연해 작품상 후보작들에 대한 코멘터리 토크도 진행했다.

백상예술대상X프리즘 이벤트 공지 ⓒ PRIZM EVENT
투명한 다섯 겹의 원형 그라데이션이 중첩된 굿즈용 트로피 디자인 ⓒ Prizm Design

시대와 함께 자라는 시상식

국내외 유수의 시상식은 오늘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백상예술대상은 지상파에만 한정되었던 TV 부문을 OTT, 웹 영상까지 확대해 다양한 채널과 플랫폼의 콘텐츠를 아우르는 중이다. 그 덕에 2023년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은 배우 박은빈(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게, 작품상은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게 돌아갔다. 기존의 지상파 콘텐츠가 아닌 케이블과 OTT에서 수상한 이례적 결과였다. 이는 매체와 채널 간 경계가 흐릿해지는 작금의 시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연극 부문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연기상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로 통합했다. 통합 후의 최초 수상자는 <틴에이지 딕>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 준 배우 하지성이었다. 명품 브랜드 구찌와 협력해 신설한 구찌 임팩트 어워드(GUCCI IMPACT AWARD)는 예술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이들을 위한 상이다. 첫 수상작은 콜센터 현장실습생이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을 다뤄 국회에서 관련법 통과까지 끌어낸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였다. 단순히 대중문화의 상업성이 아닌, 예술의 사회적 활동까지 추구하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오늘날 코드커팅(Cord-Cutting, 선을 끊는다는 뜻. 케이블·위성 TV 가입을 해지하고 OTT·온라인 기반 플랫폼 서비스로 이동하는 시청 형태를 지칭)의 물결 속에서 TV를 보지 않는 시청자들과 맞닿기 위해 틱톡과도 협력했다. 그 결과 틱톡 라이브를 통해 전 세계 198만 2,420명이 시청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보다 약 43만 명 증가한 수치다.

 

시상식은 프로그램 구성 측면에서도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담아낸다. 일반적으로 레드카펫, 오프닝, 시상, 유명 뮤지션의 축하공연, 인터뷰 등으로 구성하는 시상식과 달리, 백상예술대상은 유명 가수를 불러 무대에 세우는 전형성을 택하지 않았다. 58회 시상식에서는 뜨거운 씽어즈가 특별무대에 올랐다. 뜨거운 씽어즈는 JTBC 합창단 도전 예능 <뜨거운 씽어즈>에서 만난 나문희, 김영옥, 전현무 등 총 16인으로 결성된 합창단이다. 무대는 82세의 배우 나문희가 등장해 “데뷔 57년 만에 이 무대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됐다. 그는 “여든둘이라는 나이에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여러분이 원하는 게 있다면 끊임없이 도전해 보세요, 확신만 있다면 여러분이 가는 그 길이 맞을 거예요”란 멘트를 남기고 단원들과 함께 영화 <위대한 쇼맨>의 주제곡 <디스 이즈 미(This is me)>를 열창했다.

 

그보다 두 해 전인 56회 시상식에서는 문화·예술계를 마비시킨 팬데믹으로 좌절하는 예술인들을 위로하는 무대가 꾸며졌다. 다섯 명의 아역배우가 모여 가수 이적의 노래 <당연한 것들>을 불렀다. 잊지는 않았잖아요. 간절히 기다리잖아요. 서로 믿고 함께 나누고, 마주 보며 같이 노래를 하던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가사와 함께 영상에는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공연장과 텅 빈 영화관의 모습이 담기며 그때의 우리가 잃어버렸던, 당연한 것들을 비추며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큰 화제를 모았다. 두 번의 특별 무대 모두 시대의 이슈 및 시상식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탁월하게 담아내 안팎으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노래 <디즈 이즈 미(This is me)>를 열창하는 뜨거운 씽어즈 ⓒ 백상예술대상
65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를 수상한 샘 스미스와 킴 페트라스 ⓒ Los Angeles/Reuters

시상식, 우물 안을 벗어나고자

미국의 아카데미상(Academy Awards)과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는 연이은 낮은 시청률로 고전 중이다(사실 모든 시상식이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시상식의 기능은 단순히 예술가의 공로를 기리는 것뿐 아니라 작품을 더 알리고 홍보하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카데미의 최근 3년간 시청률은 역대 시청률 중 하위권에서 1~3위를 다툴 정도다. 아카데미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2019~21년까지 3년 연속 사회자 없이 시상식을 진행했는데, 그 배경에는 2019년에 사회자로 낙점되었던 미국 코미디언 케빈 하트(Kevin Hart)가 과거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게시물을 SNS에 올린 점이 알려지면서 중도 하차한 사건이 있었다.

 

생중계 방식의 시상식은 사회자의 위트와 임기응변 능력 없이는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우려와 달리 오히려 2019년 시청률이 전년보다 최소 12% 증가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사회자 리스크가 줄어든 몫도 컸다. 보통 사회자는 당대의 인기 있는 코미디언이나 진행자가 맡기 마련인데,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다양한 시청 계층을 한 명의 사회자가 커버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간 사회자의 농담이 불씨가 되어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점을 떠올려 보자. 2022년 사회를 맡은 크리스 록(Chris Rock)은 윌 스미스(Will Smith)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Jada Pinkett Smith)를 상대로 농담을 던졌고, 이에 분노한 윌 스미스가 무대로 올라가 그의 뺨을 때렸다. 이 윌 스매쉬(Will Smash) 사건은 소위 아카데미상의 사회자로 서는 게 왜 종종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것과 같은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차라리 다양한 스타들이 참여해 다채로운 무대와 콩트로 꾸며진 시상식이 더 흥미롭고 즐기기에 편하다는 의견에 힘을 싣는 사건이었다.

 

또한 아카데미는 최고상인 작품상을 받기 위해 갖춰야 할 다양성 조건을 영화 내용이나 제작, 마케팅 방식에 모두 적용하기로 했다. 이 항목은 ▲배우, 영화 안에서의 묘사, 주제 ▲감독·작가 등의 스태프 ▲유급 인턴십 등 영화산업 진입 기회 ▲마케팅·홍보 등 네 가지로 구성된다. 배우 캐스팅과 관련해 보면 주연 또는 비중이 큰 조연 중 최소 한 명은 아시아인이나 히스패닉·라틴계,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 중동계 등 유색인종 출신이어야 한다. 또한 편집자, 의상 디자이너 등 스태프 중 최소 두 개 분야에서 여성과 소수인종, 장애인, 성소수자가 고용되어야 한다. 인턴십과 마케팅, 홍보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며 네 개 기준 중 최소 두 개를 충족해야만 작품상 요건에 오를 수 있다. 이는 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그래미 어워드는 젊고 다양한 그래미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며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고 있다. 2023년 2월 5일에 열린 65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소수자와 다양성 존중이 눈에 띄었다. 오프닝 무대는 컨트리 가수 브랜디 칼라일(Brandi Carlile)이 열었다. 레즈비언인 칼라일은 동성 아내와 함께 입양한 두 딸을 데리고 시상식에 나와 스스로를 소개했다. 논 바이너리라고 커밍아웃한 샘 스미스(Sam Smith)와 트랜스젠더 싱어송라이터 킴 페트라스(Kim Petras)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에서 상을 받았다. 그래미 최초 성소수자(LGBT) 공동 수상이란 의미 있는 기록이 탄생한 것이다.

 

그간 그래미는 변화에 둔감하고 보수적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나이 든 백인 남성 중심적인 탓에 유색 인종 아티스트인 비욘세(Beyonce), 드레이크(Drake), 더 위켄드(The Weeknd) 등이 그간 이룬 음악적 성공에 비해 번번이 수상에 실패했다. 그래미 어워드는 이를 극복하고자 900여 명의 여성, 유색인종, 39세 이하의 젊은 선거인단을 대거 투입했다. 그 결과 아시아 가수 최초로 그룹 BTS가 3년 연속 후보에 오르는 등 미래 세대와 발맞춰 더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반세기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시상식들도 계속해서 스스로의 브랜드를 정립하고 진화하며 시대와 유리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한 이는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워하지만, 이 세계에서만큼은 한 해 동안 예술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우리와 함께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시상식은 예술 작품 못지않게 시대와 공명하며 오늘의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작품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