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위치한 사디야트 섬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이 설계한 랜드마크를 필두로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창조 산업을 실행 중이다. 

▪ 프랑스의 ‘양도불가성’ 원칙을 뛰어넘은 루브르 아부다비는 박물관이 전시 공간을 넘어 문화 외교 및 국가 간 협력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2026년 개관 예정인 구겐하임 아부다비 역시 세계 문화 간 교류 및 상호이해 촉진을 목표로 한다. 

▪ UAE 정부의 문화·종교 정책 중 하나인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는 이슬람교, 가톨릭, 유대교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중동 지역 최초의 종교 복합 시설이다. 

 


 

아랍에미리트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석유 부국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특히 아랍에미리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두바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 세계 최대 규모의 쇼핑몰인 두바이 몰(Dubai Mall) 등 화려한 랜드마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국토의 80%를 차지하는 수도 아부다비는 두바이의 화려함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부다비가 세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아부다비는 사막과 바다, 그리고 현대적인 도시가 공존하는 도시다. 오랜 세월 석유 산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이 도시는 이제 새로운 자원을 탐색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연 공간을 세계적인 문화 허브로 재탄생시키려는 야심에 찬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사디야트 섬(Saadiyat Island)이다.

 

사디야트 섬은 두바이에서 약 2시간, 아부다비 공항에서 단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행복의 섬”이라는 이름처럼 새로움과 가능성을 상징한다. 섬 면적은 여의도의 약 3배 규모에 달한다. 최근 이곳에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이 설계한 랜드마크 건축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자이드 국립 박물관(노먼 포스터, Norman Foster), 해양 박물관(안도 타다오, Tadao Ando), 공연예술센터(자하 하디드, Zaha Hadid), 루브르 아부다비(장 누벨, Jean Nouvel), 구겐하임 아부다비(프랭크 게리, Frank Gehry) 등 각종 랜드마크 문화 시설이 들어서며 예술과 건축의 만남을 주선하는 실험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건축계 거장들에게 사디야트 섬은 창의적 디자인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놀이터와도 같은 존재다.

 

아부다비는 문화 인프라 구축을 통해 관광 도시를 넘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글로벌 도시로의 도약을 꿈꾼다. 이와 같은 전략은 아부다비 정부가 추진 중인 Vision 2030에서 확인할 수 있다. Vision 2030은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예술, 교육, 관광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려는 장기 계획이다. 기존의 자원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적인 문화·지식의 교류를 통해 아부다비를 혁신적인 도시로 재탄생시키려는 야망이 담겨 있다.

 

사디야트 섬의 개발은 Vision 2030의 핵심 실행 수단으로 평가된다. 사디야트 섬의 목표는 랜드마크 건설에 있지 않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문화적 다리(Cultural Bridge)”라는 개념 아래 서양과 동양의 예술을 연결하며 사디야트 섬은 이를 통해 예술과 인류 문명이 만나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사디야트 섬 내의 세계적 문화시설들은 관광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동시에 환경 보전과 지역 사회의 참여를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을 구현하는 데 중추적으로 작용한다. 또한 아부다비는 디지털 기술과 스마트 인프라를 적극 도입해 관광 경험을 혁신하고, 글로벌 방문객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AI 기반의 맞춤형 관광 서비스, 스마트 교통 시스템, 친환경 건축 기술을 적용해 도시와 관광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관광을 경제 성장의 도구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환경친화적 개발을 통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아부다비 스카이라인 Ⓒ위키백과
사디야트 문화지구 조감도 Ⓒwe designers

빛, 공간, 그리고 예술의 교차점: 루브르 아부다비

세계가 아부다비에 주목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국가 간 문화 협력과 외교적 의미를 지닌 프랑스 루브르 아부다비(Louvre Abu Dhabi) 유치였다. 프랑스는 일찍이 문화 자산을 활용한 문화외교의 중요성을 인지해 왔다. 그 때문에 국공립 박물관 소장품은 “양도불가성(Inalienability)-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프랑스 국립 박물관의 유물은 원칙적으로 영구 소유권이 프랑스에 귀속되며, 다른 국가로의 영구 이전이 불가능하다-” 원칙을 철저히 고수해 왔다. 루브르 아부다비 계획이 세워지자 당시 프랑스인 중 일부는 “돈에 프랑스 영혼을 팔았다”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브르 아부다비의 탄생은 이러한 원칙을 뛰어넘은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문화 협력 모델을 만들어냈다. 프랑스 문화부 프랑수아즈 니센(Françoise Nyssen) 장관은 “루브르 아부다비는 단순 문화기관 설치가 아니라 프랑스와 아랍에미리트 양국 사이에 처음 행해지는 문화예술 교류 사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했다.

 

프랑스와 아랍에미리트가 맺은 30년간의 문화 협력 계약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프랑스는 루브르 아부다비에 자국 국립 박물관의 소장품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문화 교류를 추진했다. 박물관이 소장품의 전시 공간을 넘어, 문화외교와 국가 간 협력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와 아부다비의 협력 모델은 박물관 개관으로 21세기 문화 외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과거의 문화외교가 주로 소프트 파워를 활용해 자국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면, 루브르 아부다비 사례는 서구와 비서구 문화권이 협력하여 새로운 문화 공간을 창조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아부다비 루브르 (Louvre Abu Dhabi) ⒸMohamed Somji
사디야트 해변 Ⓒ직접 촬영

사막에 쏟아진 빛의 소나기

 

“나는 단지 건물이 아니라 예술 마을(neighborhood)을 만들고 싶었다. 개념적으로 아랍 성지 메디나와 그리스 광장 아고라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공간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평정심을 가진 상태에서 서로 만나 삶과 예술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 설계했다.” 

– 장 누벨(Jean Nouvel)

 

루브르 아부다비는 건축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박물관을 설계한 장 누벨(Jean Nouvel)은 현대 건축에서 자연과 공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축가로,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그의 철학을 극대화했다. 그는 건물 안으로 바닷물을 유입시켜 공간 자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했다. 이런 형태는 건물이 마치 건조한 사막 위에 떠 있는 오아시스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물속으로 서서히 잠겨가는 듯한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건물의 미적인 요소를 넘어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형태다. 바닷물과 돔으로 인해 형성된 그늘은 외부의 뜨거운 공기를 자연스럽게 순환시킨다. 관람객은 시원한 공기로 인해 자연스럽게 박물관을 산책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이 돔은 직경 180m, 무게 7,500톤, 8겹의 격자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아랍 전통 문양 매쉬라비야(Mashrabbiya)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다. 아랍 건축의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특히 이 돔을 통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빛의 효과는 빛의 비(Rain of Light)라고 불린다. 낮에는 태양 빛이 돔의 작은 틈을 통해 흘러내리며 공간 전체를 하나의 예술적 경험이 되게끔 만든다.

 

루브르 아부다비를 이루는 55개의 크고 작은 건물은 “예술마을(Neighborhood)”의 형상이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해 미지의 도시를 탐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전체 공간 구성은 4개의 큰 전시동을 전시 주제에 따라서 12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공간을 잇는 4개 전시동 사이사이에는 관람객을 위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휴식 공간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외부 바다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관람객은 각 공간의 영역을 마감이나 공간 연출의 변화로 인식하게 된다. 외부에서 웅장한 스케일을 보여주었다면 내부에서는 정교하게 나눠진 인간적인 모습을 비춘다.

비처럼 쏟아지는 빛 Ⓒ현대건축사
매쉬라비야 무늬의 천장 Ⓒ직접 촬영

 시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접근

서구 박물관은 오랫동안 전시 방식에 있어 제국주의적인 시각을 반영해 왔다. 특히 과거 식민지에서 가져온 유물들을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들은 이를 지역별로 구분하여 독립적으로 전시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그러나 아부다비 루브르는 이러한 전시 방식에서 벗어나 인류 문명을 보다 포괄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 그랜드 베스티블(Grand Vestibule)이다. 이곳은 박물관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이 아부다비 루브르의 전시 원칙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랜드 베스티블에는 세계 각지의 문명을 대표하는 동시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바닥과 벽에는 세계 문명 지도가 표현되어 있어 유물이 그 지도에 맞추어 배치된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루브르 박물관이 이집트관, 그리스관과 같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전시했던 것과 차별화되며 아부다비 루브르만의 전시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그랜드 베스티블의 전시 구조는 기존 박물관처럼 쇼케이스를 일렬로 배치하는 방식이 아닌, 공간 곳곳에 유물이 배치되어 있어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관심 가는 방향으로 이동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는 관람객이 정보를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탐색하며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랜드 베스티블을 지나 상설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면 전시 공간은 시대별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시대의 주요 문화와 예술적 흐름을 통합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첫 번째 공간에서는 고대 문명의 발전을 다루며 초기 인류가 남긴 유물과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후 두 번째 공간에서는 중세 시대를 조명하며 이 시기의 동서양 문명 교류와 문화적 융합을 강조하는 전시가 이루어진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대항해 시대를 중심으로 세계 각 지역이 연결되며 문명이 확장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공간에서는 20세기와 현대 미술을 조명하며 모더니즘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적 흐름을 전시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 방식은 같은 시대에 존재했던 다양한 지역의 유물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존 박물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전시 체계를 제시한다.

그랜드 베스티블(Grand Vestibule) 공간 Ⓒ직접 촬영
그랜드 베스티블(Grand Vestibule) 전시 설치 - 동시대 문명을 대표하는 유물 - Ⓒ직접 촬영

현대미술 실험의 장, 아부다비 구겐하임

세계 여러 도시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산업화 이후 쇠퇴했던 스페인의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개관하며 “빌바오 효과”를 일으킨 사례는 도시 재생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꼽힌다. 그렇게 도시재생의 수많은 벤치마킹 사례를 가져온 “구겐하임 미술관”이 2026년 아부다비에서도 문을 연다.

 

아부다비는 사디야트 섬을 세계적인 문화예술 허브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구겐하임 재단과의 협력을 논의했다. 처음에는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의 당시 이사장이었던 토머스 크렌스(Thomas Krens)가 사디야트 섬 종합 개발 계획을 구체성이 부족하고 모호한 프로젝트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부다비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 의지와 개발 비전을 수용하며 2006년 공식 협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구겐하임 아부다비(Guggenheim Abu Dhabi)프로젝트는 여러 차례 지연되었다. 2011년 착공 이후, 경제적 문제와 계약상의 조정으로 인해 완공 예정일이 2013년, 2015년, 2017년 차례대로 연기되었으며 결국 2026년 개관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구겐하임 아부다비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다시 한번 설계를 맡아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기존 구겐하임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현대 미술을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아부다비 분관은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독자적인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전시 대상은 20~21세기 현대 미술과 동시대 미술을 아우르며 1960년대 이후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미술 작품을 포함할 예정이다. 또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지역의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며 이를 통해 문화 간 교류와 상호이해 촉진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수집 방향은 아부다비의 독특한 인구 구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아랍에미리트는 총 940만 명의 인구 중 90%가 외국인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민자 비율을 보인다. 이들의 출신국은 200여 개국에 달하며 이집트, 모로코, 에티오피아 등의 북아프리카 출신과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 등 서아시아 이민자, 그리고 25%를 차지하는 인도인과 12%의 파키스탄인이 주요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 구겐하임 아부다비는 이러한 다문화적 배경을 반영해 중동과 남아시아 현대미술을 집중 조명하는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다.

 

구겐하임 재단은 아부다비 미술관에 전시되는 모든 작품이 UAE의 문화와 이슬람 유산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임을 강조했다. 전 감독 토머스 크렌스는 보수적인 이슬람적 가치관과 현대미술의 실험성이 충돌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작품의 전시 목적은 문화적 대결이 아니라 교류와 상호이해”라고 밝히며, 구겐하임 아부다비가 문화적 다양성과 소통을 위한 플랫폼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현재 글로벌 아트 시장에서 중동 미술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지만 2026년 구겐하임 아부다비가 문을 연다면 중동과 세계 현대미술이 교류하는 새로운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구겐하임 아부다비 조감도 Ⓒ구겐하임 미술관

화합을 향한 새로운 도전,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Abrahamic Family House)는 UAE 아부다비에 건설된 종교 복합 시설로, 이슬람교, 가톨릭, 유대교라는 세 개의 아브라함 계통 종교가 한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종교 간 화합, 관용, 평화를 촉진하기 위한 UAE 정부의 상징적인 문화·종교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가 건설된 계기는 2019년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UAE 방문이었다. 당시 교황은 수니파 이슬람 신학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아즈하르(Al-Azhar) 대이맘 셰이크 아흐메드 엘타예브(Sheikh Ahmed El-Tayeb)와 함께 “인간 박애 선언(Document on Human Fraternity)”에 서명하고 종교 간 화합과 선의, 평화를 도모할 것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대 교황 중 최초로 이슬람교의 발상지인 아라비아반도를 방문하면서 목적지로 UAE 아부다비를 선택한 것, 그리고 그 결과로 아브라함 가족의 집이 들어서게 된 것은 UAE 정부가 추구하는 개방과 포용 정책의 상징적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가 사디야트 섬(Saadiyat Island)에 건설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디야트 섬은 아부다비 정부가 문화·예술·지식 교류의 중심지로 개발 중인 지역으로 루브르 아부다비,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 세계적인 문화 시설의 토양이 되고 있다. 아브라함 가족의 집 역시 종교 시설이 아닌 세계적인 문화·교육 교류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에, 아부다비에서 가장 상징적인 문화 공간인 사디야트 섬이 최적의 장소로 선정된 것이다.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는 가나 출신의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David Adjaye)가 설계했으며 각 종교 시설은 개별적으로 운영되면서도 중앙 광장(Shared Space)을 통해 연결되어 서로 다른 종교 간의 공존과 대화를 상징한다. 건물은 이슬람 사원(모스크, Imam Al-Tayeb Mosque), 기독교 성당(성 프란치스코 성당, St. Francis Church), 유대교 회당(모세 벤 마이몬 시나고그, Moses Ben Maimon Synagogue) 총 세 개의 예배당으로 구성된다. 모스크는 메카 방향, 성당은 해가 뜨는 동쪽, 회당은 예루살렘 쪽을 향하도록 각각 설계되었으며, 화합의 의미로 예배 시설은 같은 높이로 설계하였다.

 

그러나 UAE가 종교 간 화합을 내세운다고 해도 실질적인 종교 자유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UAE에서는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포교하는 행위가 불법이며 이를 위반하면 현행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또한 UAE 국법은 이슬람 신성 모독 및 배교 행위에 대해 최대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현실 속에서도 아부다비 정부가 아브라함 가족의 집을 추진한 것은, 종교적 다원성을 인정한다기보다 정치적, 외교적 차원에서 개방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려는 행보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법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는 중동에서 최초로 공식적인 유대교 회당을 포함한 종교 복합 시설이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며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신자들이 한 장소에서 교류할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비록 법적 제약이 존재하지만 이 공간이 종교 간 이해와 화합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교를 위한 Eminence Ahmed El-Tayeb Mosque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
기독교를 위한 St. Francis Church Ⓒ아브라함 패밀리 하우스

아부다비는 지금 새로운 전환점을 넘어서고 있다. 석유 산업을 기반으로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중동의 중심 도시로 자리 잡았지만 이제는 그 너머를 그린다. “석유 이후 시대(Post-Oil Era)”를 준비하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문화와 창의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사디야트 섬이 있다. 예술 창조와 지식 교류의 중심지로 조성되고 있는 이 섬은 전 세계 도시들이 주목할 만한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하는 중이다. 루브르 아부다비와 2026년 완공 예정인 구겐하임 아부다비를 비롯해 주요 문화 시설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가치는 건축물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예술과 문화를 통해 정체성과 창의성을 재발견하고 중동의 문화적 목소리를 세계에 전달하는 데 있다.

 

아부다비가 만들어가는 변화는 도시가 가진 진정한 경쟁력이 무엇인지 묻는 실험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의존 경제가 변화하고 도시의 역할이 확장되면서 “어떤 도시가 지속가능한가? 어떤 모델이 미래 도시의 기준이 될 것인가?” 묻는 질문이 더욱 중요해졌다. 사디야트 섬 프로젝트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아부다비의 답변이기도 하다. 경제 성장 모델을 넘어 문화와 예술, 교육, 그리고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려는 시도다. 그러나 남아 있는 과제도 크다. 문화와 창조성이 진정한 경쟁력이 되려면 이들이 도시의 구조와 사회 시스템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부다비의 변화가 화려한 랜드마크 건설이 아닌, 도시의 본질적 역할을 재정의하는 실험이 될 수 있을까?

 

도시의 변화는 선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창조성과 공존은 시민의 삶 속에서 실현될 때 의미를 가진다. 아부다비의 실험이 또 하나의 상징적인 프로젝트로 남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아부다비는 이미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은 이제 중동을 넘어 전 세계 모든 도시가 고민해야 할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시가 가진 진정한 경쟁력은 무엇인가? 석유, 그다음은 무엇으로 지속할 것인가?”

 

아부다비는 이제, 그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