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테슬라 다이너는 2025년 7월 LA 산타모니카에 문을 연 세계 최대 도심형 충전소 겸 식당으로, 일론 머스크가 2018년부터 구상한 미래의 충전소 개념을 구현한 공간이다. 80개의 슈퍼차저와 함께 햄버거, 핫도그 등 1950~60년대식 다이너 메뉴를 재현해 레트로 감성을 더했다.
▪ 사이버트럭을 닮은 외관과 20미터 대형 스크린, 로봇 옵티머스 등으로 개장 직후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가격 대비 부실한 음식과 로봇 서비스 문제, 교통 체증, 주민 시위 등이 겹치며 기대와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 2012년 이후 브랜드 수익이 최대 하락을 기록한 시점에 오픈했다는 점에서, 테슬라 다이너는 충성 고객을 끌어들이고 오프라인 경험을 강화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동시에 혁신을 명목으로 지역 공동체의 삶의 질을 저하한다는 비판 역시 피하지 못하고 있다.
Gonna put an old school drive-in, roller skates & rock restaurant at one of the new Tesla Supercharger locations in LA.
“LA의 테슬라 슈퍼차저 충전소 중 한 곳에 고전적인 드라이브인 극장, 롤러스케이트 파크, 록 음악을 테마로 한 레스토랑 등을 한데 모은 공간을 만들 예정이다.”
– 일론 머스크(Elon Musk)
2018년 1월, 일론 머스크가 본인 트위터에 직접 포스팅한 글이다. 일론은 테슬라 창업 초기부터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과정도 번거로운 전기차 충전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일론은 두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첫 번째는 충전할 필요 없이 배터리팩을 바꾸는 공간. 그는 전기차가 일상화된 미래에는 배터리 기술도 발전했을 것이니 건전지처럼 쉽게 교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충전하는 시간 동안 즐길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차를 충전하는 동안 간단하게 식사도 하고, 게임도 즐기고, 영화도 보며 쉬는 공간. 그런 곳이라면 전기차 사용자가 아니어도 찾아올 것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7년 후, 일론 머스크의 두 번째 구상은 건축 스튜디오 스탠텍(Stantec)이 설계한 테슬라 다이너로 현실이 되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외벽으로 마감한 외관은 테슬라의 대표작인 사이버트럭이 연상된다. 여기에 두 줄의 붉은색 LED 띠, 테슬라 브랜드 영상이 상영되는 스크린은 복고적이면서도 미래적인 인상을 자아낸다. 공간 내부도 1960~70년대 미국 다이너의 느낌과 테슬라의 사이버틱한 미감을 조화시켰다. 디 아키텍츠 뉴스페이퍼(The Architect’s Newspaper)는 테슬라다이너 외관 설계에 대해 “자동차 등 첨단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했던 1950~60년대의 감성을 불러일으킨다”라는 평을 남겼다.
구기를 입은 테슬라 다이너
테슬라 다이너의 콘셉트를 가장 잘 설명하는 키워드는 구기(Googie) 양식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원자력 에너지 도입, 우주 경쟁 등 첨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언젠가 달이나 화성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구기 양식은 그런 낙관적인 생각이 우주선 모양 간판과 네온사인, 과장되고 화려한 글씨체와 조명 등으로 구현된 것이다. 당시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던 카페, 식당, 극장 등이 고객의 이목을 빠르게 사로잡기 위해 선택한 전략이기도 했다. 미국의 건축가 앨런 헤스(Alan Hess)는 구기 양식의 가치를 이렇게 평했다.
“구기 건축의 핵심 중 하나는 부유층의 맞춤형 주택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구기 양식은 커피숍부터 주유소, 세차장, 은행까지. 그 시대 대다수 사람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건축물에 고루 적용됐다. …(중략)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은 공상과학 영화, 소설 속 묘사가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호기심, 미래 생활상에 대한 매력은 당시 미국 문화 전반에 영향을 줬다. 그렇기에 구기 양식은 미래가 현실이 된다는 희망이 담긴 건축 양식이다.”
– 앨런 헤스(Alan Hess)
구기 양식에 담긴 미래에 대한 낙관은 일론 머스크의 캐릭터와도 연결된다. 일론은 전기차부터 재사용할 수 있는 우주용 로켓, 인간 두뇌와 컴퓨터의 연결까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혁신을 현실로 만들어내며 명성을 얻었다. 그의 이런 끊임없는 도전에는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 등 희망차고 밝은 미래를 묘사한 SF 작가들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에 일론은 지금도 “기술을 통해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다. 테슬라 다이너는 이러한 일론 머스크의 철학과 취향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다시 ‘테슬라’를 위한 고육지책
테슬라 다이너는 테슬라라는 브랜드, 그리고 일론 머스크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과 이슈에서 벗어나기 위한 타개책이기도 하다. 일론이 2018년 테슬라 다이너 콘셉트를 발표한 후, 테슬라에 대한 평가는 쉴 새 없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은 사이버트럭은 2019년 발표 후 무려 4년이나 생산이 연기됐다. 일론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그의 기행은 테슬라 주가와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을 줬다. 그랬기에 일론 입장에서는 전기차 업계, 나아가 첨단 기술의 선두 주자라는 테슬라의 이미지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여러 브랜드가 오프라인 공간에 주목한 트렌드 또한 영향을 줬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는 표현이 남발되면서 사람들은 더욱 기억에 남는 색다른 고객 경험을 기대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브랜드들이 찾아낸 해결책이 바로 공간, 그중에서도 식당이었다. 샤넬은 2023년, 1950년대 느낌을 한껏 살린 팝업 다이너를 운영해 큰 화제를 모았다. 영국 인형 브랜드 젤리캣(Jellycat) 또한 뉴욕에 자사 제품을 디자인 포인트로 내세운 브랜드 식당을 선보였다. 젤리캣의 이러한 시도는 런던과 파리, 상하이 등에도 지점을 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브랜드 정체성을 적용한 공간은 고객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제공한다. 식당은 그중에서도 음식을 통해 브랜드와 고객이 직접 소통하고, 공간에 오래 머물며 그간 익숙하게 느껴온 브랜드의 새로운 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렇기에 테슬라에게도 다이너는 브랜드 가치를 보고, 만지고, 먹고, 마시는 경험으로 전달하는 매력적인 수단이었다. 동시에 일론 머스크 개인이 아니라 테슬라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일관되게 보여주기 위한 매체로도 유효했을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에서 경험하는 시간으로
테슬라 다이너의 핵심 가치는 “충전 그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이를 위해 테슬라는 차량, 충전 인프라, 디지털 서비스, 다이닝 공간 경험이 통합된 생태계를 구축했다. 테슬라 다이너에 설치된 75개 충전기는 단 12분 만에 테슬라 자동차를 0%에서 80%까지 충전한다. 충전기에는 로봇 팔도 설치되어 있어 고객이 주차하면 스스로 자동차에 케이블을 연결한다. 차에서 내려 번거롭게 케이블을 연결할 필요가 없다. 충전용 선 길이도 2m에서 3m로 길어져 보다 다양한 충전구 위치에 대응할 수 있게 개선됐다.
테슬라 차량도 다이너와 완벽하게 연결된다. 운전자가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테슬라 다이너로 설정하면 도착 약 1시간 전부터 차량 내 터치스크린에 메뉴가 표시된다. 덕분에 운전자는 주행 중에도 안전하게 메뉴를 살펴보고 주문할 수 있다. 언제 음식을 받는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차내 식사(In Car) 옵션을 선택하면 테슬라 다이너는 차량 도착 시간을 자동으로 계산해 최적의 타이밍에 메뉴를 제공한다. 고객이 충전기에 차량을 연결하면 직원이 그 위치로 음식을 가져다준다. 결제도 테슬라 앱에 등록된 수단을 통해 자동으로 처리되며 여기에는 직원 팁도 포함되어 있다. 모든 과정에서 고객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최소화한 것이다.
방문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콘텐츠도 풍성하다. 20미터 크기의 대형 스크린들은 SF 영화나 SpaceX 로켓 발사 영상, 테슬라 브랜드 콘텐츠 등을 보여주며 자동차 극장처럼 기능한다. 이때도 고객이 별도로 조작해야 할 메뉴는 없다. 다이너에 도착하면 테슬라 자동차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자동으로 스크린과 동기화되기 때문이다. 과거 유행했던 드라이브인(Drive-in) 자동차 극장에, 테슬라여서 가능한 매끄러운 고객 경험을 결합했다.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옵티머스(Optimus) 로봇도 등장한다. 옵티머스는 다이너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고객에게 직접 음식을 서빙하며 테슬라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제공한다. 팝콘 기계에서 팝콘을 담아 고객에게 건네는 모습은 미국 소셜 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이 진짜 현실에서 구현됐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옵티머스는 테슬라 다이너가 문을 연 이래로 방문객들이 꼭 경험해 봐야 할 코스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참고로 2021년 처음 공개된 옵티머스는 2~3년 만에 경쟁사 휴머노이드들을 따라잡으며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23년 12월 2세대 제품을 발표했고, 올해 말까지 3세대로 업그레이드해 5,000대까지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상적인 약속과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 사이에서
그러나 일론 머스크가 “LA에서 가장 멋진 장소 중 하나”라고 자부한 테슬라 다이너가 문을 연 이후, 화려한 미래의 약속은 현실의 벽 앞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방문객들이 마주한 것은 그동안 테슬라가 보여준 혁신적인 미래가 아닌 미숙한 준비로 인해 발생한 극심한 혼란이었다. InsideEV에서 취재한 리뷰어는 “테슬라가 약속한 자동차 안에서 편리하게 주문하고 음식 받기는 전혀 편리하지 않았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앱은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오류를 일으켰고, 음식이 준비됐다는 안내가 왔지만 알고 보니 에러였던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이너를 찾은 사람들은 2시간 넘게 자동차에 갇혀 기다려야 했다.
제공되는 메뉴의 품질도 문제였다. 모터트렌드(MotorTrend) 기자는 대표 메뉴인 테슬라 버거(Tesla Burger)를 먹어본 후 “나쁘지 않은 패스트푸드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평을 내렸다. 캘리포니아 로컬 업체들로부터 원재료를 공급받았다고 홍보한 것에 비해 어딘가 부족하다는 평이었다.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던 해시 브라운과 초콜릿 칩 쿠키, 샐러드, 샌드위치 등 메뉴들은 오픈 2주 만에 ‘전례 없는 수요’를 이유로 삭제됐다. 잘로핑크(Jalopink)는 “시나몬 롤과 핫도그, 감자튀김, 타코는 다른 곳에서 판매하는 것보다도 못하면서 가격은 더 비싸다”는 비평을 남겼다.
사람들이 실망했다고 가장 많이 언급한 건 바로 옵티머스였다. 초반에는 AI가 탑재된 옵티머스가 스스로 팝콘을 서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원격으로 조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론이 트위터에 “로봇이 여러분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경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광고까지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람이 조종한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자 다이너 측은 옵티머스 로봇 운영 자체를 중단했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7월 29일에는 테슬라 다이너 루프탑에서 식사하던 고객이 느슨해져 떨어진 파티오 덮개에 머리를 맞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자의 남편은 아이까지 다칠 뻔했다며 분노했다. 이 외에도 청결하지 못한 화장실에 대한 지적, 미숙한 직원 응대 등 테슬라 다이너의 거의 모든 부분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게 정말 일론 머스크가 말한 미래형 도시 충전소의 모습인가?”, “메뉴와 서비스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 같은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테슬라 다이너는 머스크가 본인 회사를 위해 내놓은 다른 많은 아이디어와 마찬가지로 선언적인 목적이 강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선언의 요지는 ‘테슬라는 쿨하다’이다. 문제는 이 선언이 식당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데 필요한 것들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
– 마일스 클리(Miles Klee) 롤링 스톤 소속 작가


그러나 테슬라 다이너의 진짜 문제는 실패한 고객 경험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기업이 지역 공동체의 삶을 어떤 식으로 침해하고 있는가이다. 이는 거대 기업이 자본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도시 개발의 주도권을 잡고, 시민의 삶보다는 기업 이윤과 브랜드 가치를 위해 공간을 재편하는 기업 도시주의(Corporate Urbanism)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다이너가 문을 연 이후, 인근 주민들은 극심한 교통 체증과 24시간 영화를 상영하는 스크린으로 인한 빛 공해, 끊임없는 소음 등에 시달려야 했다. 한 주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모님 댁에 응급 상황이 생겨도 구급차가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며 불안감을 호소했고, 또 다른 주민은 밤새 침실을 비추는 불빛 때문에 “세계 최악의 파티장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고 고통스러워했다. 결국 이 지역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노부부가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이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문제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다이너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고 참여를 독려하는 등 안타깝게도 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테슬라 다이너가 일으킨 이런 논란은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화려한 개발 프로젝트가 기존 공동체의 삶을 뒤흔들고, 결과적으로 원주민을 내모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도 닮아있다. 한 주민의 외침은 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다. “화성에 사람을 보낼 수 있다면, 거주민들에게 유효한 공간을 만드는 방법도 알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 뉴욕 타임스는 테슬라 다이너와 관련된 이런 논란을 “한 명의 억만장자가 제시하는 미래의 비전이 도시의 풍경과 공공의 삶을 어디까지 규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대”라고 평했다. 가디언 역시 시위대의 목소리를 빌려 이것이 단순히 레스토랑의 문제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의 가치와 일론 머스크라는 거대 자본가의 철학이 충돌하는 현장”이라고 분석했다.
테슬라 다이너의 거대한 스크린 불빛 아래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미래는 누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디자인해야 하는가? 기업이 제시하는 청사진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