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니치 향수·홈 프래그런스 중심의 스몰 럭셔리 시장이 성장하며, 향기가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센트 마케팅은 ‘1세대: 단순히 빵 굽는 냄새 같은 배경 향’에서 출발해 ‘2세대: 공간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입히는 단계’로 진화했고, 어느덧 ‘3세대: 스토리텔링과 공감각을 아우르는 총체적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다. 향기는 더 이상 공기 중에 흩어지는 무엇이 아니라 브랜드가 전하는 이야기와 기억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 탬버린즈는 오페라 <썬앤씨>와 자사의 여름 향수 “블루 히노키”를 유기적으로 엮어 하나의 공감각적 무대로 재탄생시켰다. 모래와 무대와 향이 어우러진 순간, 관객들은 그 향과 함께 작품의 메시지를 자신의 경험으로 소유하게 되었다.
최근 뷰티 업계에서 두드러진 흐름은 스몰 럭셔리 시장의 성장이다. 불황 속 작은 사치를 상징하던 “립스틱 효과”는 이제 점차 니치 향수와 홈 프래그런스 같은 향기 제품으로 확장되고 있다. 명품 화장품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특히 향수·향기 제품군이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며 새로운 소비 공식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실제로 사람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향기”를 향하고 있다. 지난 6월 성수에서 열린 메종 21G의 첫 팝업 스토어 “구뜨 아 구뜨(goutte a goutte)”의 뜨거웠던 인기가 이를 방증한다. 단순한 시향을 넘어 자신의 취향이 담긴 비스포크 향수를 직접 만들 수 있었던 해당 팝업에는 첫날에만 1,500명이 몰렸고, 매일 평균 1시간 이상의 웨이팅이 발생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누구나 향을 매개로 연결되는 분위기 속에서, 메종 21G의 팝업 스토어는 일종의 향기 놀이터이자 공동체처럼 기능했다. 향수가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경험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준 현장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수많은 사람이 향기에 열광하는 것일까? 온갖 시청각적 자극으로 소비자의 이목을 사로잡기 어려워진 시대, 영리한 브랜드들은 점점 더 “후각”의 힘에 주목하고 있다. 눈과 귀보다 더 직접적으로 마음을 흔드는 감각, 그리고 한번 스며들면 오래 남는 인상. 바로 그 중심에는 프루스트가 말한 “무의식적 기억”의 힘이 있다.


프루스트 효과: 존재하지 않는 향수(nostalgia)를 창조하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홍차와 과자 맛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그 맛을 훨씬 넘어섰으므로 맛과는 같은 성질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유명한 장면이 하나 있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의 향이 주인공을 단번에 어린 시절로 데려가는 순간이다. 이 짧은 묘사는 후각이 기억과 감정을 연결하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임을 보여준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프루스트 효과”라 명명했고, 마케터들은 이 원리를 브랜딩의 핵심 전략으로 발전시켰다. 향기로 하는 마케팅, 이른바 “센트 마케팅(scent marketing)”이다.
흥미로운 점은 센트 마케팅이 실제로 존재했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향수(nostalgia)”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가령 아베크롬비 & 피치 매장 특유의 강렬한 향수 냄새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특정한 과거의 기억과 연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향은 젊음, 자유, 모험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연상시키며, 브랜드만의 독특한 정서적 영역을 구축한다. 즉 브랜드는 향기를 통해 소비자의 기억 속에 새로운 장소를 만들고, 그곳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심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효과적인 이유는 후각이 뇌의 변연계와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시각이나 청각 정보가 대뇌피질을 거쳐 처리되는 것과 달리, 향기는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편도체와 해마에 곧바로 도달한다. 그래서 향기로 형성된 브랜드 경험은 논리적 판단을 거치지 않고 감정적 애착으로 직결된다. 브랜드가 만든 향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서적 앵커(anchor)가 되어, 소비자를 특정한 감정 상태로 즉각 이끈다.
싱가포르 항공(SIA)의 “Stefan Floridian Waters”는 이런 전략의 교과서적 사례다. 1990년대부터 기내와 승무원, 수건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사용된 이 시그니처 향은 싱가포르 항공을 타는 경험 자체를 하나의 감각적 기억이 되게 만들었다. 승객들은 그 향을 맡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프리미엄 서비스”와 “편안한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30년 가까이 축적된 이 후각적 자산은 이제 경쟁사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만의 영역이 되었다.

센트 마케팅의 진화: 향기에서 경험으로
센트 마케팅은 크게 세 단계의 진화 과정을 거쳐 왔다. 1세대는 단순히 매장에 좋은 향을 뿌리는 수준이었다. 빵집에서 나는 갓 구운 빵 냄새, 커피숍의 원두 향처럼 제품 자체의 향을 극대화하거나 아베크롬비 & 피치처럼 브랜드 고유의 향수를 공간에 분사하는 방식이었다. 이 시기의 센트 마케팅은 “배경”에 머물렀다. 향기가 나되 그것이 적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았다.
2세대는 공간과 향의 전략적 결합이 시작된 시기다. 매장마다 독특한 콘셉트의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솝(Aesop)은 특유의 시그니처 아로마 향을 접목해 각 지점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했다. 르라보(Le Labo)는 향수 제조 과정 자체를 매장에서 보여주며 “향의 공방”이라는 콘셉트를 구현했다. 웨스틴 호텔의 “White Tea Zen”이나 현대백화점 더현대의 층별 시그니처 향처럼, 공간의 성격에 맞는 향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이 단계에서 향기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자리 잡았다.
현재 진행 중인 3세대는 “스토리텔링과 공감각 경험의 시대”다. 조말론은 각 향수에 영국 전원의 서사를 입혀 향으로 읽는 이야기를 만들었고, 딥티크는 향수 하나하나에 파리의 특정 장소와 시간을 담아냈다. 이제 향기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공간, 음악, 조명, 스토리와 결합해 총체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국내 센트 마케팅의 도약: 한국적 정서의 재해석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국내 브랜드들의 약진이다. 이미 10년 전인 2015년, 교보문고는 서점 업계 최초로 자체 브랜드 향인 “센트 오브 페이지(The Scent of Page)”를 개발했다. 베르가못과 레몬의 시트러스 향에 피톤치드와 천연 소나무 오일을 조화시킨 이 향은 숲속에서 책을 읽는 듯한 평온함과 몰입감을 재현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이 시도는 이후 국내 센트 마케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선구적 사례가 되었다. 단순히 매장에 향을 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디퓨저, 룸스프레이, 향초 등으로 제품화해 책 읽는 경험을 일상으로 확장시킨 전략은, 이후 많은 브랜드가 벤치마킹하는 모델이 되었다.
교보문고의 선도적 시도 이후, 국내 브랜드들은 단순히 해외 사례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정서와 문화를 향기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설화수는 “윤조에센스”의 시그니처 향을 개발하며 한국 전통 약재의 향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인삼, 감초, 동백 등 친숙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원료들의 조합은 “K-뷰티의 향”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오설록은 제주의 차 문화를 향기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매장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녹차의 미네랄 향은 제주의 자연을 도심 속에서 경험하게 한다. 특히 삼다연 프라이빗 티 라운지에서는 차를 우리는 전 과정의 향을 단계별로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해, 마치 제주의 다원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탬버린즈 <썬앤씨>: 오페라가 된 향수
그러나 이 모든 사례를 뛰어넘는 혁신적 시도가 있었다. 지난 6월 탬버린즈가 선보인 오페라 퍼포먼스 <썬앤씨(Sun&Sea Marina)>다. <썬앤씨>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리투아니아 출신 여성 예술가 3인(오페라 작곡가 리나 라펠리테(Lina Lapelyte), 연출가 루길레 바르즈듀카이테(Rugile Barzdziukaite), 극작가 바이바 그라이니테(Vaiva Crainyte))가 공동 창작한 현대 오페라다.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를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일상적 대화와 노래로 풀어낸 이 작품은, 유럽 각국에서 공연되며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예술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탬버린즈는 이 세계적 작품을 국내에 단독 초청하면서 단순한 공연이 아닌 자사의 여름 퍼퓸 컬렉션 “블루 히노키(Blue Hinoki)”와 결합한 총체적 감각의 경험으로 재창조했다. 4일간 진행된 이 특별한 팝업 스토어는 향수 브랜드와 현대 예술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팝업 스토어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들은 실내에 조성된 인공 해변과 마주했다. 모래가 깔린 무대 위에서 오페라가 펼쳐지는 동안, 공간 전체에는 히노키 나무의 청량하고 깊은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무대와 1, 2층 전시 공간에는 블루 히노키 제품들이 샌드 아트와 함께 설치돼 향을 시각화했다. 관객 동선을 따라 배치된 센트 오브제들은 “블루 히노키” 향을 자연스럽게 퍼트렸고 음악, 빛, 건축 그리고 향이 하나의 총체적 경험으로 융합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탬버린즈가 단순히 유명 작품을 후원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주제 의식과 제품의 콘셉트를 유기적으로 연결했다는 사실이다. 환경 문제를 다루는 오페라의 메시지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블루 히노키”의 철학이 만나, 관객들은 향기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더욱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공간에 남아있는 향은 오페라의 여운을 이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탬버린즈는 해변을 연상시키는 푸른 색의 샌드돔, 블루 히노키 향이 담긴 미니 바이닐 등을 오프라인 한정 굿즈로 증정해, 현장의 감각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했다. 단순히 공연을 관람한 데 그치지 않고 그날의 경험 전체를 소장하게 만든 것이다. <썬앤씨> 공연을 관람한 모든 관객은 이제 여름이 다가올 때, 혹은 해변가를 거닐 때마다 음악과 어우러진 블루 히노키의 향을 떠올릴 것이다.
이 사례가 센트 마케팅의 진화를 보여주는 이유는 명확하다. 향기를 배경이 아닌 “주인공”으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품에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주입한 기억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체험하고 만들어낸 기억을 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K-뷰티 브랜드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향기, 브랜드의 새로운 언어가 되다
탬버린즈의 사례가 보여준 것처럼, 센트 마케팅의 미래는 단순한 후각적 자극을 넘어 총체적 예술 경험을 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간과 향기, 스토리와 퍼포먼스가 결합된 공감각적 브랜딩은 소비자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로, 제품에 대한 애착으로 전환된다. 센트 마케팅이 진정으로 강력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은밀하면서도 직접적인 소통 방식이기 때문이다. 광고는 스킵할 수 있고, 이미지는 눈을 감으면 사라진다. 하지만 향기는 거부할 수 없다. 숨을 쉬는 한, 우리는 향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향기로 만든 브랜드 경험은 가장 깊이, 가장 오래 남는다.
“당신의 브랜드에서는 어떤 향이 나나요?”라는 질문은 더 이상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브랜드가 소비자와 맺고자 하는 관계의 본질을 묻는 것이다. 향기를 통해 브랜드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소비자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마치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언젠가 문득 떠오르는 향기의 기억으로 남기 위해.
향기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선명하게 남는다. 들리지 않지만 가장 크게 울린다. 그래서 센트 마케팅은 단순한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브랜드가 소비자의 마음속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가장 은밀한 방법이다. 향기가 만들어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고, 오히려 숙성되어 더욱 깊어진다. 그것이 바로 브랜드가 향기에 주목하는 진짜 이유다.


향기와 스토리텔링의 결합은 이제 센트 마케팅의 핵심 전략이 되었다. 브랜드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향기에 담아 전달하고, 소비자들은 그 향기를 통해 브랜드의 세계관을 경험한다. 좋은 센트 마케팅이란 결국 좋은 향수와 같다. 처음에는 강렬하게 다가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은은하게 스며들어, 결국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았듯, 현대의 브랜드들은 향기를 통해 소비자의 마음속에 영원한 장소를 만든다. 그 장소에서 브랜드와 소비자는 언어를 넘어선 교감을 나누고, 이성을 넘어선 유대를 형성한다. 메종 21G의 압도적 몰입감이든, 탬버린즈 <썬앤씨>의 예술적 경험이든, 결국 이들이 추구한 것은 하나다. 후각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감각을 통해, 가장 깊은 연결을 만드는 것.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오래 남는 브랜드의 언어다. 한순간 스쳐 가는 듯해도 다시 만났을 때는 기억과 감정을 불러내며 소비자와 브랜드를 다시 이어준다. 그렇기에 센트 마케팅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이다. 어쩌면 브랜드가 남길 수 있는 가장 깊은 흔적은 말도, 이미지도 아닌 향기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