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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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동대문 DDP에서 진행된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Designer of Dreams)>는 무슈 디올의 영감과 디올 하우스의 시작, 그리고 그의 유산이 어떻게 재해석되어 이어지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명했다.

▪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은 전쟁의 금욕적 현실을 뒤집는 우아한 곡선으로 새로운 여성미를 제시한 “뉴 룩”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상징적 순간이 탄생한 몽테뉴가 30번지를 재현하며, 70여 년간 이어진 디올 스타일의 변주와 진화를 생생히 그려냈다.

▪ 디올의 영감의 원천이 된 노르망디 정원은 이번 전시에서 한국적 미학과 만나 새로운 형태로 피어났다. 달항아리와 한지, 모란·매화·소나무로 구성된 디올 정원은 프랑스와 한국의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상상의 공간으로, 디올의 예술 정신이 시대와 문화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동대문 DDP에서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디올의 영혼이 담긴 전시,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Designer of Dreams)>가 열렸다. 디올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세계적인 패션 큐레이터이자 역사학자 플로렌스 뮐러(Florence Müller)가 큐레이션을 담당했고, 글로벌 건축 기업 OMA의 파트너 시게마츠 쇼헤이(Shigematsu Shohei)가 전시 공간을 설계했다. 플로렌스 뮐러는 브랜드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으며, 시게마츠 쇼헤이는 그 이야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그려냈다.

 

이들이 함께 만든 몰입감 넘치는 전시관은 관객들을 2025년 서울 저 너머로 안내했다. 디올 하우스가 시작된 1946년 몽테뉴 거리 30번지(30 Avenue Montaigne), 그곳에서 탄생한 뉴 룩(New Look), 드레스가 탄생하는 디올 아뜰리에(Dior Atelier), 그리고 디올의 드레스가 화려하게 빛나던 디올 무도회(Dior Ball)까지. 관객들은 1946년 파리의 거리, 하얀 캔버스로 가득 찬 아뜰리에, 화려한 드레스로 가득한 무도회 등 몰입감 넘치게 설계된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디올이 7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온 가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예술과 디올의 역사가 만나는 지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는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시작해 런던, 상하이, 뉴욕 등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열렸는데, 도시마다 현지화 요소를 접목해 관객이 자신의 문화와의 연결감을 느끼며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런던에서는 마거릿 공주의 생일 무도회 가운을 통해 영국 왕실과의 인연을 강조했고, 상하이에서는 현지 예술가들과 협업했으며, 뉴욕에서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럭셔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서울 전시 또한 조각보, 한옥의 중정, 달항아리 등 한국 미학을 전시 곳곳에 녹여내며 이러한 흐름을 이어갔다.

 

“디올의 유산” 전시관에서는 반투명한 조각보가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부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에 이르기까지 일곱 디자이너의 작품을 구분하면서도 연결 지었다. 조각보의 반투명한 특성은 일곱 디자이너를 거치며 이어져 온 본질의 연속성을 보여주면서도, 각 디자이너가 지닌 고유한 스타일의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디올 정원” 전시관은 한옥의 중정에서 영감을 받아 작은 전시실을 유기적으로 연결했고, 달항아리 안에서 프랑스 정원과 한국 정원이 하나의 풍경으로 공존하며 두 세계의 조화로운 만남을 연출했다. 이는 한국의 예술을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전시 내러티브와 조화롭게 녹여낼지 깊이 고민해 온 결과로 보인다.

뉴 룩의 탄생 : 몽테뉴가 30번지 그리고 뉴 룩

전시의 시작은 1946년 12월 디올 하우스가 설립된 “몽테뉴가 30번지”, 그리고 1947년 2월 이곳의 살롱에서 발표된 “뉴 룩”이었다. 전시는 디올 하우스의 등장을 재현하며 70년이 넘는 시간을 아우른 디올 스타일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시기, 유럽 전역은 폐허에 가까웠다.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고, 공장들은 군수물자 생산에 매달려야 했다. 나일론·실크·가죽·고무는 전시 필수 물자였기에 의류 생산 또한 극도로 제한되었다. 주름이 잡혀 풍성한 스커트와 화려한 장식은 더 이상 누릴 수 없었다. 영국에서는 1941년 “유틸리티 클로스(Utility Cloth)” 규정을 발표하며 간단한 디자인만 생산하도록 제한하기도 했다. 이 시절에는 스커트의 길이, 폭, 주름, 단추 개수까지 규제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장식은 사치였던 시절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으나 사람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잃어버린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디올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그 마음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포착했다. 그리고 1947년, 디올은 몽테뉴가 30번지의 살롱에서 첫 컬렉션 리뉴코놀르(Ligne Corolle)를 발표한다.

 

꽃잎처럼 피어나는 실루엣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늘게 조인 허리와 넓게 펼쳐진 스커트, 흘러내리는 드레스의 우아한 곡선이 강조됐다. 천을 아낌없이 사용해 장식과 곡선을 되살리는 행위는 현실의 금욕적 질서를 뒤집었다. 동시에 고통스러운 전쟁이 정말 끝났음을 알리고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했다.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카멜 스노우(Carmel Snow)는 이 컬렉션을 보고 “It’s quite a revolution, dear Christian! Your dresses have such a new look.”이라 감탄했고, 그 말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컬렉션의 정식 명칭 리뉴 코놀르보다 “뉴 룩”이라는 별명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몽테뉴가 30번지 전시관”은 혁신적인 컬렉션이 태어났던 디올 하우스를 재현해 냈다. 관객은 몽테뉴가 30번지의 디올 하우스 입구에서부터 여정을 시작한다. 시게마츠 쇼헤이가 설계한 전시 공간의 초입은 마치 1940년대 파리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무슈 디올이 머물던 사무실과 디자인 스튜디오, 모델 룸 등 귀중한 아카이브 사진을 관람하며 패션이 다시 꿈꾸는 예술로 피어오르던 시대를 걷는다.

 

그렇게 “뉴 룩” 전시관에 들어서고 나면 스커트의 곡선을 연상시키는 공간 중앙에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치맛자락이 상징적인 바 수트(Bar Suit)가 배치되어 있다. 뉴 룩을 대표하는 바 수트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 이르러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면 시대의 변화가 고스란히 와닿는다. 각 디자이너가 디올 고유의 여성성과 우아함을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언어로 재창조한 뉴 룩을 바라보며, 관객은 디올의 정체성이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 시대에 발맞춰 변주되어 왔는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The New Look의 첫 번째 컬렉션 © Dior

디올의 영감 : 미스 디올과 디올 정원

그렇다면 뉴 룩의 화려한 곡선과 꽃을 빼닮은 실루엣은 어디서 온 걸까? 그 답은 크리스챤 디올의 가장 개인적인 기억 속에 있었다. 바로 어린 시절 크리스챤 디올이 뛰놀던 노르망디 그랑빌의 정원(*디올의 출생지, 현재 “Christian Dior Museum and Gardens”로 보존 중)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정원에서 꽃과 나무의 이름을 배우며 자란 그의 어린 시절은 그의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크리스챤 디올이 평생 사랑했던 은방울꽃과 장미가 피어나던 그 정원이 75년이 넘게 이어져 온 디올 메종의 시작점이자 수많은 컬렉션에 영감을 준 원천이 되었다. 그가 그려내고자 했던 “femme de fleur(꽃을 닮은 여성)”는 어린 시절 기억 속 강인하고도 섬세한 꽃에서 기인한 영감이었다. 전시는 정원에 관한 기억이 어떻게 디올의 창작 세계를 형성했는지 두 공간을 통해 느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미스 디올” 전시관은 크리스챤 디올에게 향수가 지닌 의미를 조명하는 동시에, 크리스챤 디올 영감의 원천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참고로 전시관의 이름인 “미스 디올”은 1947년 첫 패션쇼와 함께 공개된 디올의 첫 번째 향수다. 어린 시절, 디올의 어머니 마들렌이 정원에 심은 20여 종의 장미들, 그 정원에서 맡았던 향기가 미스 디올에 녹아들었다. 어린 시절 정원에서 향의 아름다움을 깨우친 무슈 디올(Monsieur Dior, 크리스챤 디올의 애칭)에게 향이 없는 드레스는 미완성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향수는 여성의 개성에 없어서는 안 될 보완물이자 드레스의 마무리 터치”라고 믿었다.

 

전시관에는 장미향이 담긴 이 향수와 함께, 향수에서 영감받아 디자인된 드레스들이 전시되었다. 관객들은 이 공간에서 꽃을 닮은 향기와 드레스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완성되는 디올의 미학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디올 정원” 전시관은 단연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와 같았다. 이곳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일순간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췄다. 달항아리를 닮은 전시관 안에는 사계절 영상이 흐르고, 한지로 만들어진 정원 속에 사계절을 담은 듯한 디올의 드레스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장면 속에서 관객은 은행나무잎 의자에 앉아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 정원은 한옥의 중정처럼 전시 공간의 중심에 자리한 채 작은 전시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구심점으로 기능했다. 마치 한옥에서 중정을 중심으로 여러 방이 연결되는 것처럼, 관객은 디올 정원을 지나며 디올의 탄생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에서 디올이 만들어낸 수많은 작업물과 긴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들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정원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전시 전체를 하나로 엮는 서사의 중심이었다. 관객은 이 공간에서 그랑빌 정원의 영감이 어떻게 시대를 넘어 이어져 왔는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식물을 한지로 표현한 김현주 작가는 달항아리를 닮은 공간을 디올의 정신을 구현하는 새로운 디올의 세계로 상상했다고 한다. 디올 정원은 동서양의 식물이 공존하는 상상의 정원으로, 프랑스 정원은 크리스챤 디올의 정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식물들로 구성했고, 한국 정원은 청화백자에 자주 그려졌던 모란, 매화, 소나무로 꾸몄다. 이질적인 두 세계가 하나의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며 신비롭고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달항아리라는 한국 미학의 상징 안에서 프랑스 정원과 한국 정원이 하나의 풍경으로 공존하는 이 공간은,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조화롭게 만나고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간 위의 디올

디올 아뜰리에

“디올 아뜰리에” 전시관에서는 디올 하우스의 수준 높은 장인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중간 작업물을 조명했다. 거울로 완성된 이 공간에는 트왈(Toile) 컬렉션이 웅장하게 늘어서 있다. 트왈은 디자이너의 스케치를 실제 옷으로 만들기 전, 옷의 형태와 볼륨, 비율을 확인하고 수정하기 위한 중간 단계의 작업물이다. 스케치에 담긴 디자이너의 의도를 파악하고 해석해 만들어 낸 작업물의 섬세함이 웅장한 공간 연출 속에서 빛났다. 암호를 해독하듯 디자이너의 의도를 섬세하게 읽어내 옷으로 번역해 내는 이들의 작업은 실제로 마주했을 때 더 압도적이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디올의 유산

“디올의 유산” 전시관은 크리스챤 디올 이후 하우스를 이끈 일곱 명의 아티스틱 디렉터의 여정을 조명하는 공간이다.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마크 보앙(Marc Bohan), 지안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é),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라프 시몬스(Raf Simons),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가 선보인 독창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특히 이 공간은 앞서 언급했듯 한국 전통 공예인 조각보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되었는데 반투명한 조각보가 각 디자이너의 작품을 구분하면서도 연결 짓는 역할을 했다. 서로 다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전체를 이루듯 일곱 명의 디자이너가 각자의 언어로 무슈 디올의 유산을 번역하며 디올의 역사를 완성해 왔음을 보여준다. 전시는 단순한 시간 순서가 아니라 각 디렉터가 어떻게 디올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혁신을 더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관객들은 이 공간에서 연속성과 변화가 공존하는 디올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레이디 디올

“레이디 디올” 전시 공간은 디올 하우스와 한국 사이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레이디 디올 핸드백만을 위해 마련된 전시 공간으로,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재해석한 매혹적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디올 레이디 아트(Dior Lady Art)>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9점의 작품과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Lady Dior As Seen By)> 콘셉트로 완성된 17점의 작품, 총 26점이 전시되었다. 이 공간은 한국 전통 옻칠장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는데, 붉은 옻칠장의 문양과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듈형 캐비닛으로 구성되어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미감을 자아냈다. 각각의 작은 모듈 속에 배치된 레이디 디올 핸드백들은 한국 아티스트들의 창조적 해석을 통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었다. 디올의 유산이 프랑스적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이라는 감각의 토양 위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모습이었다.

 

디올과 스타들

“디올과 스타들” 공간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유명 인사들이 착용한 디올 드레스를 선보였다.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와 같은 시대의 아이콘부터 블랙핑크 지수, 나탈리 포트먼(Natalie Portman) 등 현대의 스타들까지. 이들이 착용한 드레스는 시대의 아이콘을 기억하게 하는 매개체이자 누군가의 꿈이었다.

 

디올 무도회

“디올 무도회” 공간은 크리스챤 디올을 매료시켰던 파티와 무도회를 축제처럼 표현한 공간이다. 이중 나선형 계단을 중심으로 극적인 조명이 연출되었고 그 속에 배치된 무도회 가운들은 전시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국 아티스트 수 써니 박(Soo Sunny Park)이 연출한 공간은 반짝이는 자수 장식으로 가득 채워져 마치 밤하늘 아래 성대한 무도회가 열린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계단을 따라 늘어선 순백의 드레스는 은하수를 연상시키며 파스텔 톤과 한국 문화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 흰색으로 채색된 앙상블이 어우러져 꿈같은 분위기를 완성했다. 밤하늘에 수놓아진 듯한 디올의 드레스들을 마지막으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디올은 여성을 ‘입힌다’기보다 ‘의자를 덮듯’ 옷을 씌운다(Dior doesn’t dress women. He upholsters them).“ 동시대 디자이너였던 크리스챤 디올에 대한 코코 샤넬의 평가다. 동시대 디자이너였던 크리스챤 디올에 대한 코코 샤넬의 평가다. 남성복 아이템을 여성복에 도입하고 스커트를 짧게 만들어 여성 패션에 실용성을 불어넣었던 그녀답게, 디올의 화려함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디올의 첫 컬렉션을 두고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가 만든 옷을 입은 저 여자들 좀 봐요. 여자와 사귀어본 적도 없고, 여자가 되길 꿈꾸기나 하는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두 디자이너가 선물하고자 했던 자유의 형태는 달랐을지 몰라도 옷을 통해 자유를 선물했다는 점은 같았다. 샤넬이 여성을 일상의 불편함으로부터 해방시켰다면, 디올은 여성을 전쟁의 상실로부터 회복시켰다. 샤넬이 여성을 무겁고 불편한 것에서 벗어나게 했다면, 디올은 여성을 잿빛 현실에서 벗어나게 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단 하나, 샤넬은 자유가 편안함과 실용성에 있다고 믿었고 디올은 아름다움과 꿈에 있다고 믿었다는 것뿐이었다.

 

“패션은 꿈에서 태어나고, 꿈꾸는 것이 곧 탈출입니다.”

Fashion, in sum, comes from a dream, and dreaming is an escape.

 –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

 

꿈은 우리의 깊은 무의식에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 우리의 상상 너머까지 뻗어간다. 꿈이 우리를 어디에 데려다 놓을지 알 수 없다. 꿈에서 태어나는 것은 옷일 수도, 향기일 수도, 문학일 수도, 건축일 수도, 미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꿈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꿈꾸는 것 자체로 우리는 해방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패션이 가장 억압되었던 시대,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꿈이 생겨났고 디올은 그 꿈을 위해 장미 정원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디올의 패션에는 회색빛과 탄약 냄새 속에서 살아남은 장밋빛 꿈이 담겨 있다. 회색의 각진 현실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장미의 곡선을 꿈꿀 자유, 그것이 시대를 뛰어넘어 모두에게 중요한 무언가이기에 꿈을 디자인해 온 디올의 브랜드가 7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