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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의 재발견

    2020-11-25 5분 분량

    사전적 의미의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이에 따르면 가족은 결혼과 출생을 기반으로 형성된 공동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며 비혼 가구 또한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이후 혼인 건수는 지속해서 감소했으며,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2년 43.3%에서 2018년 22.4%로 대폭 감소했다. 개인의 삶의 방식과 가족 구성은 자유라는 인식이 점점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은 실제로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비혼은 혼자 살거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의미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혼의 형태는 훨씬 다양하며, 결혼하지 않아도 배려와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 공동체가 존재한다. 이러한 새로운 가족의 개념에 관한 논의가 생산적이고 활발히 이루어지려면 먼저 기존의 인식과 제도의 수정이 필요하다. 결혼만이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에겐 소위 '정상 가족' 이외의 가족을 호명할 언어가 필요하다.

    정상가족 관람불가 展

    [Photo : 가족구성권연대모임]

    현재 한국에는 정상 가족을 벗어난 수많은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일시적인 관계로 생각한다. 언젠가는 해체되고 떠나갈 삶으로 인식하기에 제도적인 보장도, 명명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성애적 가족 관계가 기본값인 한국 사회에서, 결혼과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하지만 기본값을 벗어나는 가족은 제도의 보호 밖으로 밀려난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2014년 '생활동반자법'이 국회에 처음 등장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해당 법이 정상 가족의 해체를 야기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결혼과 출생을 기반으로 하는 가족의 개념은 정말로 불가침의 영역인가? 생활동반자법은 성별이나 함께 사는 이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서로 돌본다는 자발적인 약속을 지키는 생활동반자 관계를 지지한다. 이 법이 실행된다면 누구나 생활동반자로 국가에 등록이 가능하고,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 등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자유롭게 형성된 공동체는 뜻에 따라 자유롭게 해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호 배려와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가족이라는 의미 자체가 해체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도적 소외자를 만드는 좁은 가족의 의미가 해체되고, 더 넓고 다양한 공동체를 담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탄생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삶의 방식을 환영하는 것이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해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코하우징의 모습

    기존 정상 가족의 범위에는 혈연으로 구성된 전통적 대가족이 있다면, 새로운 가족의 형태에는 혈연관계 없이도 다양한 세대가 공동 주택에 함께 사는 '코하우징(Co-housing)'이 있다. 코하우징은 덴마크에서 1970년대에 처음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협동 주거 형태다. 단지 내의 식당과 카페는 주민들의 참여로 공동 운영된다. 코하우징 주민들은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봐주거나 고령층, 또는 1인 가구를 서로 돌보는 등 상호 협력 관계를 지향하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공동 가족의 모습을 띤다. 특히 미국에서는 노인을 위한 '시니어 코하우징'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주거 형태와 공동체의 개념으로 주목받는 코하우징은 가족의 관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영국의 시빌 파트너쉽

    [Photo : PA Images]

    다양한 소규모 가족을 지원하고 제도적 혜택을 보장하는 사례는 이미 해외에 다수 존재한다. 프랑스는 1990년대 비혼 동거 인구가 급증하자 '팍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é)'를 도입했다. 팍스는 결혼이라는 기존 형태에서 벗어난 동거 가정에도 가족수당, 사회보장, 소득세 산정 등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다. 동거의 형태는 동성∙이성과 무관하다. 2018년 기준 약 21만 명이 팍스의 혜택을 받았다. 같은 해 23만여 명이 결혼한 것과 비교했을 때 절대 적지 않은 수다.

    영국은 2004년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을 도입했다. 동성 커플에게 상속, 세제, 연금, 양육 등에 있어서 결혼과 같은 법적 보장을 제공하는 것이 입법 취지였다. 이후 2014년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면서 동성 커플은 결혼과 시빌 파트너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 결혼 관계만 허용된 이성 커플 사이에서도 시빌 파트너십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빌 파트너십의 경우 결혼에 포함된 전통적, 종교적 절차를 생략할 수 있으며, 법적 신고를 할 때도 남편이나 아내가 아닌 '시빌 파트너'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2018년 6월, 영국 대법원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소송에서 "동성 커플에게만 시빌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것은 차별이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법 개정을 거쳐 2019년 12월 31일부터는 영국의 모든 시민이 동등한 가족 구성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비혼 공동체와 다양한 가족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지만, 최근 정상 가족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대형 서점에서 몇 달째 베스트셀러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혼자 살던 두 명의 여성이 한집에 살며 겪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와 비혼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비혼자를 위한 공동체와 커뮤니티 활동도 두드러진다. 2019년 4월에 출범한 비혼 여성 공동체 '에미프(emif, be the Elite without Marriage, I am going Forward)'는 비혼 인식 개선 및 비혼 여성의 연대에 기여하고 있다. 유대감 조성은 물론, 비혼 공동체 구성 시 고려할 점, 비혼 공동체에 적합한 주거 공간 등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한다. 이들은 비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삶의 단계적 순서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라 말한다. 꼭 제도적인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상호 간의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체에 필요한 규칙을 세우고 연대하며, 개인의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간다. 이러한 공동체는 분명한 '가족'의 형태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Photo : JTBC]

    최근 미디어에서도 비혼 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2019년 방영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30대의 친구들이 함께 한집에 사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결혼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단순히 모여 살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든든한 가족이다. 앞서 2014년에 방영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도 홈쉐어링(Home Sharing)을 통해 함께 사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등장한 바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정상 가족이라는 범주 밖에서도 얼마든지 올바른 연대와 존중으로 구성된 사적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으며, 결혼 제도 없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성원들이 함께할 때 연대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모든 공동체는 가족이다. 그 가족의 형태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연대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가족은 정부의 복지 정책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빈틈을 메우는 소중한 공동체다. 그렇기 때문에 꼭 결혼과 출생으로 이어진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모든 형태의 가족에게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

    또한 이성애적 관계 또는 독신이라는 이분법은 다양한 삶과 사랑을 부정한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공동체를 꾸릴 수 없다. 서로가 잘되기를, 서로의 앞날에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단일한 사랑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여러 형태의 삶과 사랑이 보편화되는 사회를 기대하며,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의 한 구절로 글을 마친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