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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 일상과 도시에 푸른 에너지를 주다

    2019-11-11 15분 분량

    정원, 일상과 도시에 푸른 에너지를 주다 


    집 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을 의미하는 ‘정원’이 하나의 산업이자 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도심 속 자투리땅과 유휴공간이 생활정원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삭막한 도시를, 아스팔트 거리를, 딱딱했던 일상을 작은 쉼표와 푸른 에너지로 채워주는 정원. ‘서울정원박람회’와 ‘태화강 국가정원’를 중심으로 도시재생의 키워드로 떠오르는 정원에 대해 알아본다. 



    ‘정원’, 말뜻부터 되짚어 본다.

    정원은 대개 주택의 외부공간을 실용적·심미적 목적으로 처리한 뜰을 의미한다. 정원은 주거문화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한 사회와 시대의 예술, 생활문화, 가치체계를 총체적으로 결집한 장소라 할 수 있다. - 출처 두산백과

    정원을 뜻하는 영어 ‘Garden’의 어원은 ‘Gan(둘러싸다)’과 ‘Oden(에덴)’을 뜻한다. ‘garden(영어)’, ‘Garten(독일어)’, ‘jardin(프랑스어)’ 등은 헤브라이어의 gan과 oden 또는 eden의 합성어이다. gan은 울타리 또는 둘러싸는 공간이나 둘러싸는 행위를 의미하며, oden은 즐거움이나 기쁨을 의미하는 게 합쳐진 말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원을 ‘원림(園林)’이라고 하며, ‘정원(庭園)’은 일본식 용어라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나라 고문에서 ‘가원(街園)’, ‘임원(林園)’, ‘임천(林泉)’, ‘원(園)’, ‘정원(庭園)’, ‘화원(花園)’ 등의 단어가 보이나 현대에는 정원(庭園)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정원을 의미하는 한자 ‘園’의 부수자인 큰 입구(口)는 에워싸는 행위를 뜻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gan’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동양의 전통적 정원은 어떠한가? 동양 정원의 구성 원리는 그 근본에서는 같으나, 세부 수법에서는 동양 삼국이 조금씩 다르다. 중국의 정원은 보통 정원 속에 대자연의 산악·폭포·계곡·동굴 등을 모방하여 만든다. 마치 대자연의 축도처럼 하고, 또 기암괴석을 늘어놓고 문·창살·난간·담장 등에 너무나 많은 변화를 주어 보는 사람을 현란하게 한다. 일본의 정원은 많은 제약과 규칙을 두어 너무나 인공적인 형태의 자연을 이룬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원은 자연 그대로를 보고 즐기며, 사람과 건축 모두가 자연의 일부가 되도록 한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Photo : ©한국정원문화연구소 '월하랑']


    1. 집 밖으로 나온 ‘정원’ , 푸른 서울의 띠를 잇다

    지난 10월,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도심에 ‘푸른 정원의 벨트’가 만들어졌다. 바로 <2019 서울정원박람회>가 열린 것. 5회를 맞은 정원박람회의 올해 주제는 '정원, 도시재생의 씨앗이 되다'로, 서울 용산구 후암동과 중구 중림동 일원에서 열렸다. 

    <2019 서울정원박람회> 포스터

    서울시는 2015년부터 매년 가을 정원박람회를 진행하고 있다. 1회는 난지호수, 메트로폴리스길, 유니세프광장 일대 등 월드컵공원 내 평화의 공원에서 열렸다. ‘정원아 어디 있니? “서울에 사는 정원입니다“’란 주제로 서울의 과거・현재・미래의 정원 찾기에 나섰다. 같은 곳에서 열린 2016년 행사는 '정원을 만나면 일상이 자연(自然)입니다'란 주제와 '정원아 함께 살자'라는 슬로건으로 전년도 행사의 컨셉을 살렸다. 국내외 유명 정원 디자이너가 만든 정원부터 시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꾸민 정원까지 80여 개가 박람회장 곳곳에 마련됐다. 가족 화분 만들기, 정원에 차린 식탁 등 참여 프로그램이 더해졌고, 정원에서 문화 예술의 낭만을 맛볼 수 있는 가을밤의 정원음악회 등이 진행됐다. 2017년 행사는 여의도공원에서 열렸다. ‘너, 나, 우리의 정원(Gardens for you, Me and Us)’이란 주제로 서울이 숲과 정원의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비전을 담고자 했다. 

    2015, 2016 서울정원박람회 포스터

    작년은 이전과 동일한 여의도공원에서 ‘서울피크닉. “도심 속 작은 여유를 만나다!”를 주제로 열렸다. 서울피크닉을 중심으로 한 7개 작가정원이 7일간 90여만 명의 시민을 맞았다. 전시정원을 역 주변 등 박람회장 밖으로 확대해 도시재생을 위한 정원 문화의 확산을 시도했다. 올해의 행사는 ‘어딜 가든 동네 정원’이란 위트 넘친 슬로건에 맞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기획했다. 특히 그동안 특정 장소에서 열린 제한적 행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만리동광장~서울로7017~백범광장~해방촌까지 이어지는 3.5km의 구간에서 동시다발로 열려, 말 그대로 동네 곳곳의 작은 가든 축제였다.

    행사의 초점은 도시재생이었다. 대형공원이 아닌 거리, 골목, 놀이터 등 시민의 생활공간으로 파고들었다. 도시재생과 연계해, 작지만 일상생활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마을 정원에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기존 박람회가 ‘면’적인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박람회는 ‘선’이고 ‘점’이다. 중구 만리동광장에서 용산구 해방촌까지를 ‘가든 로드’로 이었다. 대규모 행사보다는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정원문화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만리동광장과 서울로7017을 중심으로 이번 박람회를 스케치해본다. 먼저 정원문화 페스티벌과 정원산업전이 열린 만리동광장에서 시작한다. 행사 기간 메인무대인 ‘피크닉 스테이지'에서는 정원문화 페스티벌 개막식, 음악회, 버스킹, 소공연, 가든 시네마 등이 열렸다. 









    복합문화공간 윤슬과 정원산업. 꽃과 화분으로 가득한 미니버스 카페가 시선을 끈다.

    만리동광장 옆 복합문화공간 ‘윤슬’은 공간의 특성을 살려 계단식으로 화분을 배치해 색다른 꽃의 향연을 보여준다. 윤슬을 중심으로 서울정원박람회가 배출한 작가가 함께하는 자치구별 정원 10개와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소규모 정원을 만들어내는 ‘팝업 가든’ 작품이 전시됐다. 또한, 정원식물과 소품, 관련 신기술을 소개하는 ‘정원산업전’이 열렸다.

    정원박람회가 열리는 주요 8개소에서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매일 선착순으로 기념품을 증정한다.

    이제 서울로7017로 올라가 보자. 

    옛 서울역 고가를 1km에 이르는 도심 정원으로 바꾼 서울로7017에서 박람회가 열리는 건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서울로는 이번 행사의 두 축인 만리동과 후암동을 연결하는 ‘그린 브릿지(Green Bridge)’ 역할을 한다. 17m 높이 위 고가를 따라 만들어진 서울로7017에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에 살 수 있는 장미과, 물푸레나무과 미선나무, 조롱나무과 풍년화, 참나무과 대왕참나무 등50과(科) 약 300종의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서울로로 가는 꽃길. 이정표 사이로 문화역서울 284가 보인다. 

    이번 박람회를 맞아 서울로7017 곳곳에도 만리동광장처럼 테마 정원과 팝업가든이 자리해 서울로의 색을 더욱 화려하게 했다. 행사 기간 수국전망대와 목련홍보관에서는 솟대작품 전시와 만들기 체험 행사가 열렸다. 또한 평화열차 마켓 기존 서울로의 프로그램과 연계한 시민참여 행사도 진행됐다. 가을을 맞아 서울로7017을 찾은 시민들이 정원박람회 프로그램으로 좀더 풍성해진 도심 속 휴식을 즐겼다. 서울로의 녹색 띠는 남산의 백범공원으로 이어진다. 


    [Photo : ©서울시]

    바닥에 표시된 가든 로드

    백범공원에는 15개 자치구별 정원과 팝업 가든 외에도 목공 작품 전시와 나무 연필꽂이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다 읽은 정원 책을 박람회장에 가져오면 정원 책과 교환해주는 '오픈 가든 라이브러리' 행사도 열렸다. ‘가든 로드’는 이번 박람회의 주제와 슬로건인 도시재생과 생활 정원을 잘 보여주는 용산구 후암동까지 닿는다. 


    [Photo : ©서울시]

    정원박람회의 주 무대중 하나인 해방촌(용산2가동, 후암동)에는 마을의 특징을 살린 ‘동네정원’ 30여개가 조성됐다. 특히 1968년 문을 연 ‘신흥시장’에는 마치 무지개가 뜬 것 같은 정원이 방문객들을 반겼다. 


    2. 정원, 도시의 얼굴을 바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업도시 울산이 정원과 함께 생태 도시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산림청은 지난 7월 12일 울산 태화강 지방정원을 ‘국가 정원’으로 지정했다. 2015년에 지정된 순천만에 이은 두 번째 국가 정원이다. 


    [Photo : ©산림청]

    국내 최초의 수변생태정원인 태화강 지방정원은 84ha의 면적에 6개 주제, 29개 세부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문자센터와 정원 체험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산림청은 오염되었던 하천을 복원시키고 자연자원을 보존하면서 도시재생 성과를 거두는 등 태화강 정원의 생태적 가치를 인정해 국가 정원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태화강은 가지산과 백운산 물줄기가 57개 지류를 품고 도심을 가로질러 동해로 흐르는 길이 47.54km에 이르는 울산의 젖줄로 불린다. 그러나 울산이 중화학 중심의 공업도시로 급성장하면서 태화강은 오폐수가 흘러들고 쓰레기가 쌓이며 생명력을 잃어 갔다. 물고기와 철새가 사라지며 시민들도 외면하는 강으로 전락했다.

    태화강의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신문 보도 (© 울산시)

    2004년부터 본격적인 태화강 살리기가 시작됐다. 울산시는 하수처리장을 만들고 오폐수 유입 차단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 시민과 사회단체가 함께 했고, 기업도 ‘1사 1하천 가꾸기’ 운동으로 힘을 보탰다. 그렇게 태화강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 마침내 올해 국가정원으로 재탄생했다. 강의 상징인 십리대숲, 대나무생태원, 실개천과 초화단지가 어우러진 생태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대한민국 20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됐으며,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으로도 선정됐다. 국가 정원은 태화교에서 삼호교 사이 둔치에 펼쳐져 있다. 30여 개 생태 정원과 함께 대나무 65종과 700여 종류의 나무, 꽃이 있다.

    지난달 18일부터 20일까지 국가정원 지정 선포행사가 태화강에서 열렸다. ‘시민이 품은 정원, 가을을 물들이다’란 슬로건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를 살펴본다. 태화강 ‘에코 산책’은 국가 정원 안내센터에서부터 시작한다. 3층 규모의 안내센터에는 태화강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홍보관이 있으며 언어별 안내자료와 함께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옥상 전망데크에서는 국가 정원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분수가 있는 작은 호수 ‘오산못’을 지나 대나무생태원으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정원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걸리버 정원 여행기’란 테마로 열린 정원 스토리 페어는 전문가, 시민, 학생이 출품한 재미있는 공모작 20여 개가 전시됐다. 정원의 취지에 걸맞는 에코 마켓에서는 가죽, 섬유 등 작가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과 로컬 푸드를 이용한 간단한 먹거리를 판매한다. 에코 마켓은 3년째 매월 둘째 주말 대나무생태공원에서 플리마켓 형태로 열린다. 









    다양한 정원 작품을 지나면 정원 스토리 페어인 걸리버 정원 여행기와 에코 마켓을 만날 수 있다.




    바람개비 정원을 지나 실개천을 건너면 국화 정원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전기 자동차를 기차 모양으로 꾸민 '대통기차'가 국화 정원 옆을 달리고 있다.

    이제 태화강 국가정원의 진수 ‘십리대숲’으로 가본다. 십리대숲은 이름 그대로 대나무가 태화강을 끼고 4km에 이르고 면적도 236,600㎡에 달한다. 한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대나무가 빼곡하고 곳곳에 대나무로 만든 조형물이 있다. 

    울산발전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으로 울산시는 2023년까지 생산 유발 5,552억 원, 부가가치 유발 2,757억 원, 취업 유발 5,852명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원은 이런 숫자적 혜택보다 가늠조차 어려운 우리 삶의 에너지와 정신적 위안을 준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유대감까지 얹어준다. 길거리 화단, 녹지, 작은 정원, 도시 텃밭 등이 곳곳에 더 늘어나야 하는 이유다. 그 안에 우리가 살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