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이하 MMCA, 서울관)에서 한국 최초로 소개되는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 또 다른 시작》 전시가 열렸다.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는 예술과 과학·기술을 융합하여 창의적 표현에 새로운 장을 개척한 비영리 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본 전시는 이 단체의 혁신적인 생각과 작품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E.A.T.의 활동을 아카이브 한 자료와 함께,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Nam June Paik, 1932~2006)' 등 당대 예술가들이 예술과 과학·기술을 융합해 시너지를 발휘한 결과물들을 볼 수 있었다.

E.A.T.는 1960년에 처음 그 모습을 갖추었다. 벨 연구소의 엔지니어 '빌뤼 클루버(Billy Klüver)'와 '프레드 발트하우어(Fred Waldhauer)'와 예술가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로버트 휘트먼(Robert Whitman)'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협업체를 결성했다. 이 모임을 통해 팝 아티스트, 영화감독, 전자공학자까지 지금껏 접점이 없던 사람들의 협력과 교류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다른 분야간 융합의 시도는 인간의 창의력을 최대치로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고, 인간 중심의 과학·기술과 예술철학을 발생시켰다.

E.A.T. 관련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앤디 워홀의 <은빛 구름(Silver Cloud)> 이었다. 전시 기간 동안 은박지로 포장한 풍선이 전시관 천장을 두둥실 떠다녔다. 이 작품에는 보기 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이 담겨있다. 앤디 워홀은 처음에 풍선 대신 하늘에 떠있는 전구를 만들고 싶었다. 상상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벨 연구소의 공학자 빌뤼 클리버와 수많은 회의를 거쳤다. 하지만 전구를 띄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에 봉착한 그들은 전구 대신, 당시 군용 샌드위치 포장재였던 은색 스카치백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기로 한다. 은박지는 빛을 받으면 백열등과 비슷하게 보이기도 했고, 공기를 완벽하게 가두면서 가벼운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하늘에 떠있는 구름 같은 오브제로도 표현할 수 있었다. 은박지에 헬륨을 채워 탄생한 <은빛 구름>은 헬륨 풍선의 시초이기도 하다.

<은빛 구름>은 미국 피츠버그(Pittsburgh)에 위치한 '앤디 워홀 미술관(The Andy Warhol Museum)'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MMCA의 'E.A.T.' 전시를 위해 잠시 한국으로 넘어왔었다. 이 미술관은 <은빛 구름> 작품뿐만 아니라 앤디 워홀이 남긴 수많은 작품을 관리하고 있다.

피츠버그는 예술가 앤디 워홀이 태어난 곳이다. 피츠버그 주정부는 앤디 워홀을 오래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한 사람을 주제로 미술관을 만들었다. 한 명의 아티스트 생애를 소개하는 미술관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도 유명하다. 전시관 1층에서 7층까지 올라가면서 오직 앤디 워홀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게 설계했다.
미술관은 앤디 워홀의 작품과 사용한 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전체 스토리를 전달한다. 특히 피츠버그에서 시작해 뉴욕으로 가기까지의 작품 활동과 여정, 삶의 고민이 담긴 오브제들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학업활동과 청년기를 거쳐 유명해졌던 시기, 그리고 마지막 눈 감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삶이 묻어나는 생활용품을 아카이빙 해 놓기도 하였다.

'앤디 워홀 미술관'에 가면 그가 사용했던 컴퓨터를 직접 볼 수 있다. 그는 컴퓨터 1세대 사용자였다. 일찍이 컴퓨터 사용법을 익혀 예술에 과학·기술을 접목하려고 했다. 아미가(Amiga) 컴퓨터를 이용해 컴퓨터 아트를 시도하기도 했다. '존 레논(John Winston Ono Lennon, 1940~1980)' 아들의 생일파티가 있던 날, 그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를 만났다. 잡스는 생일파티에 애플 컴퓨터 ‘매킨토시(Macintosh)’를 들고 왔고, 앤디 워홀은 그 컴퓨터가 너무 신기해 그 자리에서 모니터 앞에만 붙어있었다고 한다. 이날 앤디 워홀은 스티브 잡스에게 컴퓨터 레슨을 받았고, 후에 그가 컴퓨터 아트를 선보인 계기가 된다.


그 후, 앤디 워홀은 컴퓨터 사용법을 익혀 컴퓨터로 그림을 그렸다. 1985년, 4096색 그래픽을 지원하는 '아미가 1000(Amiga 1000)'의 론칭 행사 때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뉴 웨이브 밴드 <블론디(Blondie)>의 보컬 '데보라 해리(Deborah Harry)’의 얼굴을 그리기도 했다.
Andy Warhol Paints Deborah Harry on an Amiga

이렇듯 앤디 워홀은 예술과 과학·기술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도전을 시도한 아티스트였다. 자유분방한 이미지로만 알려진 앤디 워홀이지만, 예술 분야만큼은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실험하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간단해 보이는 그의 작품에는 치열한 고뇌와 선구자 정신이 깃들어 있다. 예술 시장의 선도자라는 평가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An artist is somebody who produces things that people don't need to have.”
예술가는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앤디 워홀-
위의 명언에는 평소 그가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가치관이 녹아있다. 예술 작품이 지금 당장은 쓸모없어 보일지 몰라도 사회를 앞서가는 진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실험과 도전정신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현대미술에서 예술적, 대중적, 상업적으로 성공한 아티스트로 기억된다.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사회의 인식을 달리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그는 예술에 과학·기술을 접목시킨 개척자로 남아있다. 미국 피츠버그를 방문하는 이가 있다면 '앤디 워홀 미술관'에 꼭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