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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험이 움직이는 시대, 공간을 향유하다

    2018-07-30 분량

    경험이 움직이는 시대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Thomas Frey)는 다가올 미래를 ‘경험이 움직이는 시대’로 규정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이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기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경험을 하기 원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누가 만들 것이냐가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 될 것이다."

    - 트렌드 코리아 2018 中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역으로 소비자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찾고 있다. 그곳에서 직접 물건을 사용해보고 체험해본 후에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쇼루밍(showrooming)족의 등장을 넘어 이제는 공간 자체를 브랜드로 인식하고, 공간을 향유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전까지 브랜드의 오프라인 공간은 브랜드와 콘셉트에 맞춰 상품을 선정하고 이를 판매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상품보다 공간이 주는 분위기나 그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을 강조하는 숍이 인기다. 패션비즈에서는 이를 ‘공간 편집형 브랜딩’이라고 정의했다. 공간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직접 선택해 배치함으로써 공간에서 브랜드가 추구하는 바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팝업스토어의 새로운 발견, 제주맥주

    홈페이지 : https://jejubeer.co.kr


    [Photo : ⓒ제주맥주]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오픈했던 제주맥주 팝업스토어는 눈여겨볼만 한다. 6월 1일부터 24일까지, 약 한 달 남짓한 프로모션 기간 동안 팝업스토어에는 하루 평균 2000명, 총 5만5000명의 손님이 다녀갔다. 일등공신은 SNS였다. 사람들의 팝업스토어의 외관이나 제주맥주를 즐기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이를 보고 찾아온 손님들로 인해 팝업스토어가 자리 잡은 연남동 경의선숲길 공원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팝업스토어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제주맥주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드라마 협찬을 통해 브랜드를 조금씩 노출했지만, 지난해 8월에 론칭한 이후 최근까지도 제주도 내 한정된 공간에서만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제맥주를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전국 단위 유통에 뛰어들었고, 이에 맞추어 서울 연남동에 팝업스토어를 열면서 단숨에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청정음주구역으로 지정된 연남동 숲길공원에서 노상음주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있지만, 화제성과 인지도 제고 측면에서 팝업스토어를 이용한 프로모션이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수 기업이 인지도 제고를 위해 앞 다투어 팝업스토어를 오픈하는 상황에서 유독 제주맥주의 사례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Photo : ⓒ제주맥주]


    제주맥주는 연남동 팝업스토어를 통해 맥주라는 자사의 제품보다 제주, 그리고 새로운 맥주 문화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점심시간이든, 퇴근 후든 잠깐 다녀올 수 있는 제주’라는 표현은 팝업스토어 자체를 서울 속 제주도로 이미지화한다. 민트색 외관은 제주의 바다를 연상시키며, 내부 또한 제주를 떠올릴 수 있는 강력한 상징과 소품을 이용해 인테리어했다. 

    맥주를 구매하면 대여해주는 피크닉 세트는 팝업스토어 공간을 넘어 연남동 전체를 제주맥주 홍보의 장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피크닉 세트를 빌려주는 행위에 ‘제주를 테이크아웃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실제로 이를 이용해 공원에서 맥주를 즐긴 손님들은 휴가지에 놀러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Photo : ⓒ제주맥주]


    그런가하면 팝업스토어 기간 동안 진행된 낮맥 클래스와 낮맥 회식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맥주를 넘어 다양한 맥주 문화를 즐기는 장을 마련해 새로운 문화 생활을 제안한다. 제주맥주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경험케 하는 마케팅은 팝업스토어뿐만 아니라 제주맥주 본사에서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본사 근무자들이 자신만의 취미와 특기를 이용해 낚맥(낚시+맥주) 클래스나 비어캔 가드닝 클래스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제주맥주는 자사가 추구하는 맥주 문화를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재주맥주라는 브랜드를 취향의 영역으로 진입시켰다. 


    어반북스의 공간 편집 프로젝트, 도시서점 

    홈페이지 : https://bit.ly/2LyOFrb 

    도시서점 인스타그램 : instagram.com/urbanbookshop 


    어반북스의 도시서점은 제품뿐만 아니라 공간 전체에서 어반북스의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편집한다. 어반북스는 동시대에 존재하는 ‘도시적이고(urbanic) 세련된 감성’ 코드를 통해 패션, 뷰티, 라이프, 컬처, 푸드, 디자인, 여행 등 도시생활 콘텐츠에 집중하는 브랜드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추구하는 도시의 삶을 <어반라이크>나 <어반리브> 등 자체 발행하는 매거진과 단행본을 통해 풀어냈다면, 도시서점은 지면을 다시 공간을 구현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Photo : 도시서점]


    도시서점의 첫 번째 공간, 논현점의 기반이 된 텍스트는 현대인의 문구를 다룬 <어반라이크 35호 : My Stationery!>다. 현대적 감성을 추구하는 도시인을 위한 문방구라는 콘셉트로, 단지 사고파는 물건으로써의 문구를 넘어 ‘읽고 쓰는 행위’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서점에서 큐레이션하는 문구는 어반북스에서 제안한 도시생활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된다. 

    그중에서도 주목할만한 점은 도서서점이 음악과 향을 이용해 공간을 편집한다는 사실이다. 감성이나 감각은 단어로 정의해 전달하기 어렵다. 대신, 도시서점은 그들이 추구하는 도시의 삶을 손님들이 오감을 이용해 직접 체험하도록 만든다. 매일 두 시와 일곱 시에 진행되는 도슨트 프로그램에서는 도시서점이 추천하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서점이 추구하는 감각과 어울리는 노래를 선곡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라라랜드 OST”가 첫 도시서점 플레이리스트로 선정된 바 있다. 


    [Photo : 도시서점]


    특별한 전시가 진행되는 날에는 전시와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마련하기도 한다. 2017년 11월, Achim 매거진 8번째 호 ‘Shower’ 발간을 기념하는 전시를 열면서 도시서점은 매거진에 담지 못했던 공기와 소리, 향기와 생각을 담기 위해 Achim 매거진의 과월호와 굿즈를 판매하는 한편, 그와 어울리는 노래를 선정해 방문객들에게 들려주었다. 


    “가끔 욕실 문 너머 들리는 음악이 궁금해지면 머리를 감으며 제목을 떠올려 본다. 끝까지 생각나지 않거나, 기억해내더라도 금방 잊어버린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머리칼을 말리며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노래들이다. 물론 샤워하며 듣기에도 좋다.”

    - 도시서점 인스타그램에서 발췌 


    [Photo : 도시서점]


    사운드뿐만 아니라 향도 공간 편집에 이용되는 중요한 요소다. 도시서점은 ‘공기 디자인(Air Design)’을 통해 비싼 가구나 오브제가 아닌 향으로 공간의 느낌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날의 분위기 혹은 전시에 따라 어울리는 향을 고르는 센트 셀렉팅(Scent Selecting)을 통해 서점은 방문객들이 공간의 분위기를 오감으로 느끼고 체험하도록 만든다. 


    “도시서점의 하루는 문을 열고 환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선반의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쓴 후, 발뮤다 공기 청정기를 틉니다. 이솝의 룸 스프레이 혹은 블렌드 오일 중 그날의 기분에 따라 향을 선택해 공간을 가득 채우면 본격적으로 도시 서점 오픈 준비가 마무리됩니다.” 

    - 도시서점 인스타그램에서 발췌 


    이케아 호텔 & 무지 호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호텔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도 소비자에게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호텔 전체를 자신의 제품으로 채워 거대한 쇼룸으로 만드는 한편, 호텔의 분위기를 통해 브랜드가 내세우고자 하는 가치를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Photo : Ikea Hotel]


    이케아본사가 있는 스웨덴 엘름홀트에는 이케아 호텔이 있다. 지금처럼 매장이 많지 않던 시절, 제품을 사기 위해 엘름홀트까지 온 손님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는 이케아가 지향하는 가치를 담아냈다. 이케아의 창업주인 잉그라드 캄프라드는 구두쇠로 유명했는데, 그의 절약 정신은 기업 문화로까지 이어진다. 직원들은 이면지를 사용해야 했고, 임원들 또한 출장 시 저가 항공과 값싼 호텔을 이용해야 했다. 이케아의 조립식 배송방식도 가구의 가격을 낮추려는 기업 문화로부터 시작되었다. 


    [Photo : Ikea Hotel]


    이케아는 가격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찾지 않는다. 대신 고객들에게 더 나은 일상생활을 안겨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영향 덕분일까. 이케아 호텔의 하루 숙박 비용은 10만 원 내외로 저렴한 편이다. 호텔 곳곳에 비치된 어메니티는 재생지로 만들어졌고, 탁구대나 프론트 데스크에 새기는 호텔 이름에는 카드보드지를 사용했다. ‘호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검소함을 공간 전체에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검소함이 꼭 불편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케아 제품으로 구성된 호텔에는 불필요한 것 없이 꼭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이케아 제품을 사용하며 심플하지만 군더더기없다고 느끼듯이, 호텔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Photo : MUJI Hotel]


    올해 1월, 중국 선전에 문을 연 무지 호텔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무지의 이미지를 호텔이라는 공간에 집약했다. 무지 호텔 또한 사람들이 상상하는 무지의 이미지를 호텔이라는 공간에 집약했다. 가나이 마사이키 무인양품 회장은 무지 호텔을 떠올리게 된 이유를 들어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든다는 무인양품의 철학이 호텔에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호텔을 생각했어요. 중국 출장을 갈 때마다 지나치게 넓은 방에 묵었는데,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직원에게 좀 더 작은 방은 없는냐고 물었는데 그런 방은 없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죠. 방이 넓고 고급스러워 부담스럽거나, 면적이 마음에 들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뿐이었어요. 적당하고 담백한 호텔을 떠올리게 됐죠.”

    - 2018년 1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발췌


    이제는 제품의 기능과 디자인뿐만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회사 자체가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브랜드가 내포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혹은 그들의 가치관이 나와 같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는 구매를 결심한다. 공간을 이용한 브랜딩은 브랜드가 가진 감성과 감각, 생각을 복합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