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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아닌 그들의 대안이 돼버린 '팟캐스트'

    2018-07-25 분량

    우리가 아닌 그들의 대안이 돼버린 팟캐스트

    귀를 잡아끄는 로고송,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앎의 재미 혹은 깨달음의 재미. 오로지 귀로만 들을 수 있는 이 콘텐츠를 우리는 과거엔 라디오라 불렀고, 최근에는 팟캐스트라 부른다.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등장한 팟캐스트는 라디오를 즐기던 과거 세대와 IT 문화에 익숙한 요즘 세대 모두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팟캐스트는 시각적으로 특화된 영상 콘텐츠가 난무하는 시대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TV와 유튜브를 ‘바보상자’라 치부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오디오만으로 전달되는 특유의 감성을 사랑하는 그들에게 팟캐스트는 정말 소중한 존재가 됐다. 


    1인 미디어 시대, 이렇게 시작됐다


    아는 이들은 알고 모르는 이들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팟캐스트의 역사는 애플의 MP3 ‘아이팟’에서 시작됐다. 아이팟(iPod)+라디오캐스트(Radiocast)의 합성어로, 2004년 처음 등장했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지만, 당시만 해도 MP3는 카세트 플레이어와 CD플레이어를 잇는 대표적인 음악재생 휴대기기였다. 국내외 많은 회사들의 다양한 제품들이 성능과 디자인을 내세워 경쟁을 벌였다. 

    상대적으로 손쉬운(?) 기술인 라디오 튜너 기능은 거의 모든 MP3에 탑재됐다. 단 한 곳, 애플을 제외하면. 애플 아이팟으로는 라디오를 청취할 수 없었다. (참고로 아이팟을 외면하는 일부 한국 소비자들의 비판도 자연히 여기에 집중됐다. 마치 스마트폰 1세대 시기, 한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DMB 시청 기능이 없는 애플의 아이폰을 낮잡아 여긴 사례와 유사하다. 하지만 지금은 과연(?)

    그렇게 애플이 라디오 대신 내세운 것이 바로 팟캐스트다. 웹상에서 RSS(Really Simple Syndication)를 내려 받은 뒤 아이튠즈를 통해 동기화하는 방식으로 녹음 파일을 음악처럼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라디오 대신 내장된 기능 하나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거대 방송국들과 몇몇 신문들이 군림하고 있었던 콘텐츠 독과점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적인 녹음 장비와 공간만 있으면 혼자서도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었고, 불특정 다수의 귀에 들어가고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아이팟, 그리고 아이폰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보급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아이팟의 기능을 그대로 가져온 아이폰에는 당연히도 팟캐스트 기능이 들어갔고, 콘텐츠 유통의 속도와 규모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과거 기껏해야 ‘해적 방송‘ 정도로 취급받던 개인 혹은 소수의 생산자들이 이제는 당당히 ’1인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메인 스트림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100여개에 불과했던 팟캐스트 프로그램은 수 만 개로 늘어났고, 1년 뒤 영국 뉴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에 등극하기도 했다. 에디슨 리서치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팟캐스트 서비스 월 이용자 수는 5억명을 넘어섰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떠드는 언론과 수용적으로 듣기만 하는 청취자’라는 전통적인 구도는 무너졌으며, 콘텐츠 공급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붕괴됐다.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기성 매체들의 저항도 한 번 뒤집힌 판을 되돌리지 못했다.


    미디어 홍수 시대의 청정수

    일부 매니아층을 제외하곤 팟캐스트의 존재감이 극히 미미했던 2011년 봄, 홀연히 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이름은 ‘딴지라디오: 나는 꼼수다’. 당시 최고 권력자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정 방송’을 표방했지만 실은 대차게 비판하고 조롱하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나꼼수’의 시작이었다.

    언더그라운드 언론사 총수와 탐사보도 전문 기자, 낙선 국회의원, 전직 방송PD 등 4명이 골방에 모여 웃고 떠들며 ‘살아있는 권력’에 메스를 들이댔다. 논란과 의혹이 많았던 권력자를 타깃으로 삼음으로서 엄청난 지지와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음악 대신 이 방송을 들었고, 매주 한 차례씩 올라오는 새로운 업데이트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곤 했다. 첫 방송을 기준으로 넉 달만에 전체 팟캐스트 다운로드 세계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다운로드 횟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서버 비용이 억대에 달했다는 전언도 있다.


    나는 꼼수다


    물론 이들이 정치적으로 뚜렷하게 반(反) 정권 스탠스를 취하면서 중립성을 포기한 데다 욕설도 서슴지 않아 수차례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반대 진영의 공세는 방송 기간 내내 계속됐고, 진보세력 내부에서도 종종 쓴소리가 나왔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별개로 하고 팟캐스트사(史) 측면에서만 살펴보자면 나꼼수는 ‘한국 팟캐스트의 아버지’로 칭해도 손색이 없다. 아이폰 유저 일부가 외국어 학습으로 사용하던 팟캐스트는 나꼼수를 계기로 라디오의 지위를 대체해버렸다. 이들을 뒤따라 수많은 시사 전문 팟캐스트가 난립했고,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됐다. 아이폰이 없는 안드로이드 유저들을 위해 ‘팟빵’ 어플이 개발되기도 했다. 나꼼수가 기록한 최대 다운로드 횟수는 1000만 가량으로, 최근 1위권 팟캐스트의 그것이 300만 내외라면 것을 감안하면 당시의 위세가 얼마나 엄청났는지 알 수 있다.

    그 결과로 팟캐스트는 라디오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콘텐츠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위주의 보도만을 반복하는 방송국 대신 각각의 주장이 담긴 시사 프로그램, 단순히 영화나 서적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신문 대신 작가·연출가·평론가가 등장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생생한 콘텐츠가 생산됐다. 

    나아가 이 콘텐츠 생산자들은 기성 언론에 비해 어젠다(agenda) 세팅과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는 면에서 월등한 능력을 입증했다. 콘텐츠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광고 시장의 규모도 급성장 중이다. 그렇게 팟캐스트는 기존에 과도하게 집중됐던 언론 권력을 무너뜨릴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골목상권에 발 들인 공룡들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떠한 변혁이 움트거나 주도권이 넘어가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그 반작용도 작동했다. 근대 민주주의 체제가 안착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린 것,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최근 급부상 중인 중국을 견제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팟캐스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불과 10년여 사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임에 따라 위협을 느낀 기성 언론들은 기존의 인프라를 총동원해 반격을 시도했다. 나꼼수의 의혹 제기와 비판을 무책임한 행동으로 몰아가며 비판적 논조의 보도로 공세를 퍼부었다. 그래도 효력이 없자 담합이라도 한 듯 보도 자체를 포기하는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떠한 방법으로도 ‘판’을 바꿀 수 없게 되면서 거대 언론들은 아예 ‘판’에 직접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공중파와 라디오 망을 통해 콘텐츠를 송출해오던 이들은 이미 서비스 중이던 ‘다시보기’에 이어 팟캐스트에까지 2중·3중으로 도배에 나선 것이다.


    애플 팟캐스트 순위. 7월16일 기준


    팟캐스트 고유의 콘텐츠들이 고전하고 있는 반면 사실상 ‘재탕·3탕’인 방송사 콘텐츠들은 순위표 상위권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실제로 팟캐스트 순위를 살펴보면 7월16일 기준으로 TOP 10 중 6개, TOP30 중 13개가 2차 콘텐츠다. 살아남은 고유 콘텐츠들은 그나마도 독서나 영어회화 등에 국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 몰려오기 전 팟캐스트 초창기 시절부터 인기몰이를 했던 ‘터주대감’들은 대부분 50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태다. 안드로이드 버전인 팟빵의 경우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다. 아직까진 고유 콘텐츠들이 선방하고 있긴 하지만 서서히 잠식이 이뤄지는 추세다.

    여기에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플랫폼의 콘텐츠 독점 현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팟빵은 최근 콘텐츠 호스팅 비용을 지불해오던 제작자들에게 팟빵 내부에서 방송을 개설하고 업로드하는 것을 조건으로 무상 호스팅을 제안했다. 보다 안정적인 콘텐츠 생산 및 서비스를 도모한다는 취지지만 오디오 콘텐츠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노린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국내외 거대 포털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양대 포털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오디오 콘텐츠 확보를 위해 원천 기술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구글 역시 독자적으로 안드로이드용 팟캐스트 앱을 출시하면서 오디오 콘텐츠 시장에 주목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다시 시작된 자본의 공세, ‘미디어 젠트리피케이션’


    이는 결국 여느 분야와 다르지 않은, 자본 논리에 따른 흐름이다. 포화 상태에 이른 영상 콘텐츠 시장과 달리 오디오 콘텐츠 시장은 최근에 이르러 사물인터넷(IoT)의 등장과 인공지능(AI) 스피커의 개발 등 하드웨어를 발판 삼아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음 달 유료화 1주년을 맞는 팟빵의 유료 콘텐츠는 300개에 달한다. 네이버는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오디오클립’을 통해 유료 서비스를 모색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역시 자체 팟캐스트 서비스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저마다 투자를 유치하거나 직접 투자를 결정했다는 소식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뉴스거리도 아니다. 한 마디로 이 바닥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자본을 바탕으로 양질의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자본’만이 무기가 되고 열쇠가 될 때, 콘텐츠 시장은 멍들어갈 수밖에 없다. 과거부터 자본력이 위에 군림하는 상황에서의 콘텐츠가 결국은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 우리는 수도 없이 학습해왔다.

    팟캐스트가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대안으로 떠오른 지는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았다. 반면 그전까지 기성 미디어가 여론의 눈과 귀를 장악해온 시간은 그 수십 배에 달한다. 힘들게 발견한 대안을 자본의 손에 넘겨준다면 우리는 또 다시 대안을 찾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