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를 콘서트 무대 위로 올리다
캐주얼 패션 페어 Bread & Butter Berlin
낡음과 새로움이 섞여 이전에 없던 흐름을 만들어내는 도시 '베를린'. 이 도시에는 언제나 ‘예술의 도시’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지금은 사임한 보버라이트(Wowereit) 전 시장의 전폭적인 문화예술계 지원이 전 세계의 수많은 예술가와 창작가들을 끌어모은 덕분이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베를린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파리는 아름다운 박물관 정도로 느껴지고, 로마는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런던은 지나치게 비싸고 복잡하다. 이에 비교해 베를린은 넘쳐나는 아트 갤러리와 클럽, 현대적인 건축물로 가득한 쿨한 도시로 떠올랐다. 이곳은 여전히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도시다.”
이 정도의 미사여구와 수식어로는 성이 차질 않는지, 최근의 행보는 ‘패션의 도시’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탐내는 듯하다. 메르세데스-벤츠가 후원하는 베를린 패션 위크(Berlin Fashion Week)와 프리미엄 국제패션박람회(Premium Berlin)에 이어, 올해로 18년 차를 맞은 캐주얼 패션 페어 브레드 앤 버터(Bread & Butter, 이하 BB)는 수 만 명의 방문자를 기록하며 유럽 최대 규모의 캐주얼 패션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Photo : Arena]
Bread & Butter Style Highlights | Zalando | 2017
from Bread & Butter by Zalando on Vimeo
패션에 음악과 문화를 결합하여 라이프스타일 전시로 만들다
BB는 기존 패션 페어에서 찾을 수 없는 진보적인 스트릿 컬쳐와 스포츠, 캐주얼 웨어를 무역과 전시의 대상에 올려놓으며 패션 시장의 시선을 사로잡은 영 캐주얼 패션 페어다. 2011년 쾰른, 칼 하인츠 뮐러(Karl-Heinz Müller), 크리스티안 가이어(Kristyan Geyr), 볼프강 알러스(Wolfgang Ahlers)가 함께 기획한 패션 무역 페어가 BB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쾰른의 유휴 산업 건물이던 “Eckigen Rundbau”에서 캐주얼 패션 행사를 3번에 걸쳐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가능성을 확신했다. 그 뒤 2003년 베를린을 새로운 출발점 삼아 템펠호프(Tempelhof) 폐공항과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BB를 점차 성장시켰다.
하지만, 미숙한 운영과 악화된 재정 상황으로 2014년, 뮐러는 BB의 파산 신청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이를 독일의 패션 온라인 쇼핑몰 잘란도(Zalando)가 BB를 인수하면서 “Bread & Butter by Zalando”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이듬해 재등장했다. 잘란도는 패션 무역 페어라는 기존의 형태를 유지하는 대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패션에 음악과 문화를 결합한 라이프스타일 페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패션 페어 Bread & Butter - 4 Keywords]
A. Fashion and Style
B. Fashion and Active
C. Fashion and Music
D. Fashion and F&B
A. Fashion and Style
[Photo : Jens Kalaene/DPA, Vogue, Bread & Butter]
베를린은 빈티지, 캐주얼, 스트릿을 오가는 자유분방함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젊은 개성이 분출하는 도시다. 럭셔리의 반대를 지향하는 베를리너를 만족시킬 스트릿, 스포츠, 데님, 캐주얼, 기능성 웨어를 다루는 브랜드가 BB의 주 콘텐츠로 등장한다. 3대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 나이키, 푸마를 비롯해 리바이스, 힐피거 데님(Hilfiger Denim), 리(Lee), 랭글러(Wrangler) 등의 데님 빅브랜드가 라인업에 오른다. 또한, 반스, 이스트팩, 수페르가(Superga), 매즈 뇌르가르트(Mads Nørgaard)처럼 스트릿과 캐주얼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브랜드뿐 아니라 스니커즈 편집숍인 스타디움 굿즈(Stadium Goods), 킥즈(Kickz)도 함께한다.
캣워크는 빅터앤롤프(Viktor & Rolf)의 오트 쿠튀르, 젊고 유쾌한 모습의 휴고(Hugo)와 질 샌더 네이비(Jil Sander Navy), 베를리너의 사랑을 받는 톱숍(Topshop)과 더 쿠플스(The Kooples)가 인터랙티브형 패션쇼로 장식한다. 빅터앤롤프를 제외한 모든 브랜드의 레디 투 웨어(Ready-to-wear) 아이템은 캣워크에 등장한 즉시 잘란도 쇼핑몰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는 <See-now-buy-now-principle> 코너를 마련한 영민함도 엿볼 수 있다.
패션 행사를 빛내기 위한 필수 요소로 충실한 브랜드 라인업과 함께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패션 피플. 펑크의 여왕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가 패션의 소비와 미래, 환경에 대해 논하고, 이를 표현한 전시 섹션도 마련했다. 또한, 여성 인권 활동가로도 유명한 탑모델 애드와 아보아(adwoa aboah)가 자신의 사회활동 플랫폼인 “Gurls Talk”에 관해 대담을 나눈다. 이 외에 초대장을 받은 유명 패션 블로거와 인플루언서, 패션 관련 종사자가 페어에 참여했다.
B. Fashion and 'Active'
[Photo : Klara and co]
BB에 등장하는 많은 브랜드가 자신들의 정체성과 패션을 옷보다 이벤트로 제시한다. 노르웨이 브랜드인 빅 복(Bik Bok)은 유니콘과 슬라이드가 놓인 대형 볼풀을 설치하고, 랭글러는 레트로 분위기를 뿜어내는 롤러스케이트장으로 방문객을 유혹한다. 스포츠 브랜드들은 방문객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트레이닝 세션을 준비했다. 피트니스에 브레이크 댄스를 결합한 브레이크레틱스(Breakletics) 트레이너를 초빙한 아디다스를 비롯한 나이키와 리복의 피트니스/트레이닝 세션이 눈여겨볼 만하다.
방문객들에게 헤어스타일, 스킨케어, 네일아트를 제공하는 “미용실(Beauty Parlor)” 섹션은 여성 소비자의 인기를 끌었다. 또한, 사회자 요한나 클룸(Johanna Klum)이 여성 블로거들과 함께 소셜 미디어의 댓글 분쟁을 토론하는 대담을 준비한 여성 캐주얼 브랜드 민트 앤 베리(Mint & Berry), 원하는 디자인을 요청하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청바지와 티셔츠에 그대로 그려주는 데님 브랜드 킹스 오브 인디고(Kings of Indigo)도 이벤트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C. Fashion and 'Music'
[Photo : Bread & Butter]
BB의 첫 시작은 패션 페어였지만, 현재는 뮤지션 라인업이 공개된 순간 티켓이 매진될 정도로 관람객 중 상당수가 음악을 주목적으로 방문한다. 팝 밴드 빌더부흐(Bilderbuch)와 래퍼 Yung Hurn과 RIN, M.I.A. 등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뮤지션의 라이브 공연과 함께 40명 이상의 국제적인 DJ들이 스테이지를 선보인다. 전설적인 힙합 프로듀서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과의 대담 및 화려한 애프터 파티도 빼놓을 수 없는 음악 콘텐츠다.
D. Fashion and 'F&B'
[Photo : Klara and co, Bread & Butter]
베를린은 커리 부어스트와 케밥 같은 길거리 음식을 우물거리는 행인을 쉽게 볼 수 있는 도시다. 스시 부리또, 라멘 버거, 바오처럼 평소에 볼 수 없는 특별한 길거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스트릿 푸드 트럭 마켓으로 베를리너의 환심을 샀다. 베를린의 유명 로스터리 파이브 엘레펀트(Five Elephant)가 커피를 내려주고, BB를 위해 스페인에서 직접 온 비스트로 2 Estaciones게다가 길거리 음식만으로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싱가포르의 찬혼밍(Chan Hon Meng) 쉐프가 만들어주는 홍콩 치킨 앤 누들은 방문객의 이목을 끌기에 최적의 요소다.
[Photo : Klara and co]
브랜드에서 감각을 느끼게 하다
브랜드 경험이 중요한 시대다. 제품 소개와 바이어 유치가 일순위 목적이었던 패션 페어 관련 행사들은 이제 전통적인 방식을 넘어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잘란도가 이끄는 BB는 스트릿, 영 캐주얼이라는 독특한 패션 아이템에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해 브랜드 경험의 시너지를 내며 소비자 만족을 이루었다. 패션 무역 페어를 단순한 B2B 사업 영역과 브랜드 쇼케이스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옷이라는 유형적 프레임에서 패션을 탈출시킨 기획은 방문객들이 패션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심리적∙신체적 만족감을 주는 오감각적 이벤트 구성을 주축으로 연단 위에서 웨스트우드가 패션의 소비를 말하고, 아보아는 인권에 관해 얘기하며, 장은 음악 세계를 말한다. 마치 잘 짜여진 하나의 대규모 패션-라이프스타일 콘서트를 보는 듯하다. 이를 통해 브랜드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획득하고, 소비자는 최적의 브랜드-이벤트 경험을 누리고, 캐주얼 패션 시장은 성장의 기동력을 얻는다.
물론 잘란도가 적지 않은 예산을 지출하며 사회적 차원의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BB는 잘란도가 고객과 소통하고 시장의 니즈를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다. 게다가 잘란도는 특별한 오프라인 공간 없이 웹으로만 고객과 소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시각적∙물리적으로 제시할 수 없었다. BB는 잘란도에게 있어 베를린이라는 특수한 지역 이미지를 활용하며 일차원적 정체성에서 탈피할 수 있는, 고도의 브랜드 캠페인이자 마케팅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