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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우치아의 예술의 전당, 폰다지오네 프라다

    2017-11-23

    미우치아의 예술의 전당: 폰다지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

    미우치아 프라다는 업계에서 ‘별종의 a(patron)'이라 불리운다. 이탈리아의 정치학도였던 그녀가 가업을 잇기 위해 발을 들인 패션계에서 파란을 일으킨 건, 1978년. 명품 가방은 가죽을 소재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나일론 재질로 생산한 ‘테스토 벨로’ 가방을 론칭했을 때였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소재와 디자인뿐 아니라, 혁신적인 생산 공정(수공업과 현대기술을 결합한 생산 방식), 멋스럽고 독특한 분위기의 플래그십스토어(에피센터) 등을 대중에 선보이며 프라다만의 브랜드 자산을 쌓아가고 있다.



    오래된 파트너십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의 렘 콜하스와 미우치아 프라다는 2000년 처음 만났다. ‘의외성’에 대한 공통 분모를 가진 두 사람은 지난 십 수년 동안 의뢰인과 건축가로, 그리고 지향점이 같은 파트너로 지내면서 독특한 건축물을 만들어왔다.

    특히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그리고 도쿄에 자리잡은 프라다 플래그십스토어인 에피센터는 모두 렘 콜하스의 작품으로, 층간을 넘나들며 변화하는 곡선면과 공중에 매달린 전시 공간 등 극적인 공간변화와 함께 내부공간의 의외성을 살린 건축물로 평가 받는다. ‘의외성’과 ‘혁신성’에 기반한 이러한 렘 콜하스의 건축세계는 마치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공정과 디자인을 추구하는 프라다의 실험정신과도 맞아떨어진다. 이렇게 미우치아 프라다와 렘 콜하스가 10년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함께 해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뉴욕 소재의 프라다 에피센터: 층 간을 연결하는 곡선면이 무대로 변신하기도 한다.

    [Photo: OMA]


    별종의 패트론, 예술을 비즈니스로 사용하지 않는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별종의 패트론’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패션 브랜드와 예술을 접목한 마케팅이 유행하면서, 많은 명품 브랜드가 예술작품 이미지를 브랜드에 차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루이비통은 무라카미 다카하시 등 유명한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고, 샤넬은 ‘샤넬 모바일 아트’, ‘더 리틀 블랙 재킷’ 등 세계 각국을 순방하는 전시회를 개최하며 예술의 가치를 브랜드에 이식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반면, 미우치아 프라다는 예술에 대한 후원과 비즈니스의 선을 분명히한다. 프라다 상품을 소재로 한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은 매우 드물고, 브랜드를 앞세워 예술작품에 후원하는 일도 극히 꺼리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패션 브랜드 오너와 구별되며, ‘별종의 패트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밀라노의 프라다 재단

    2015년, 밀라노 근교에 오픈한 프라다 재단(Fondazione Prada) 역시 이러한 미우치아 프라다의 특별한 예술 인식을 반영한 건물이다. 프라다 재단과 미술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브랜드의 명성에 비해그리 높지 않다. 1993년 재단 설립 이후 방치된 교회와 창고 등 에서 팝업 전시관 형태로 예술 후원을 꾸준히 진행해온 미우치아 프라다는 2011년, 베네치아에 프라다 재단 상설 미술관을 연 이후로 예술의 영역을 비즈니스와 분리하려고 노력해왔다.

    “자부심은 느끼지만 그것을 통해 패션 디자이너의 위상을 높이고 싶지는 않다.”는 그녀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미우치아의 고향이자 프라다 정신의 본산인 밀라노 중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프라다 재단은 버려진 철길 근교에 오도카니 서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할 뿐이다.

    폰다지오네 프라다: 20세기 초반에 건설된 공단에 새 옷을 입혔다

    [Photo : OMA]


    예술과 건축, 보존과 신축, 과거와 현재, 무채와 유채

    처음에 밀라노 근교, 라르고 이사르코(Largo Isarco) 지역의 버려진 공단 건물에 미술관을 짓겠다고 이야기 했을 때, 렘 콜하스는 주저했다고 한다. 이미 구조가 정해진 산업 시설에 갤러리를 여는 것은 진부한 일이었고, 혁신과 변화를 창조하는 OMA의 기치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건물의 보존과 신축의 균형을 맞추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공단의 모습이 흔히 그렇듯, 각각의 건물은 주어진 기능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렘 콜하스는 고유의 외형을 가지고 있는 일곱 채의 건물을 그대로 두고, 새롭게 세 채의 건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건축했다.

    ‘흉가(haunted house)’라고 이름 붙여진, 음산한 분위기의 5층짜리 증류소 건물은 겉면을 모두 금색으로 도금하여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층별로 층고와 배열이 다른 신축 건물, ‘Tower’ 안에는 다양한 모양의 갤러리들이 자리했다. 그렇게 렘 콜하스는 주어진 공간 대부분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관람객들이 하여금 이 곳이 공단의 옛 터였다는 느낌을 배제한 채, 앤티크한 분위기의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폰다지오네 프라다의 초기 도면: 노란 부분이 신축 건물

    [Photo : OMA]

    이러한 공간에 걸맞게, 전시되는 작품들 역시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로 나뉘어 과거와 현대가 공존한다. 과거 건물이었던 ‘Haunted house’에서는 상설전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흉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Grotesque Process’라는 석회 동굴을 모티브로 한 설치 미술 작품이 유명하다.

    그리고 OMA의 지휘아래 새로지어진 ‘Podium’과 ‘Tower’ 등지에서는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 중인데, 공간 자체가 워낙 방대할 뿐 아니라 작품의 참신성과 예술성이 돋보여 관람에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예술을 브랜드를 돋보이는 도구로 보지 않고 예술의 진흥을 염원하는 후원자의 진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프라다 재단에서 유명한 공간은 또 하나 있다. 바로 ‘색감의 마술사’라 불리우는 웨스 앤더스 감독이 맡아 꾸민 구내 커피숍 ‘바 루체(The Bar Luce)’다. 웨스 앤더슨은 <문라이즈 킹덤>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통해 감각적인 색감과 애니메이션과 같은 구성에 탁월한 영화감독이다. 그는 1950~60년대 제작된 영화 <밀라노의 기적>과 <로코와 그의 형제들>에서 모티프를 따와 이 바를 꾸며 전체적으로 20세기 중반 밀라노의 느낌을 구현했다.

    프라다가 밀라노의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성장했으니, 이보다 좋은 최적의 모티프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회색과 금색 투 톤으로 둘러싸인 프라다 재단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할 때, 총 천연색으로 꾸며진 ‘바 루체’의 유채색 존재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렘 콜하스가 추구하는 이질적 요소와의 조화와 궤를 같이하기도 한다.

    The bar luce

    [Photo : wallpaper.com]


    버려진 도시공간의 재창조

    프라다 재단 건물을 통해 미우치아 프라다와 렘 콜하스가 보여준 것은 예술과 건축의 공존 이상이다. 프라다 재단이 위치한 곳은 밀라노 중심지도 아닌, 초행에 찾아가기에는 쉽지 않은 도시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100년 전 이 곳에는 석탄을 실은 기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공장의 굴뚝은 연기를 뿜으며 힘차게 가동되었겠지만, 이제 과거의 시끄럽던 공장 마을의 자취는 사라지고, 아무도 재개발 하지 않은 공장 건물만이 이곳이 과거 분주하던 산업 단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곳에서 미우치아 프라다는 예술 공간으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과감히 행동으로 옮겼다.

    프라다 재단이 위치한 라르고 이사르코는 많은 공장들이 폐업하여 떠나버린 미국의 유령도시 디트로이트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성수동 공장지대와 구로공단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앉아 일하던 구 시대의 제조업 패러다임이 저물면서, 슬럼화되는 도시 안의 산업 유물들은 세계 곳곳에 늘어만 간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산업 공간을 예술공간으로 변신시켜 쇠퇴한 도시에 숨결을 불러 일으킨 프라다 재단의 행보는 ‘보존’과 ‘재창조’ 관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프라다 재단은 후원자와 건축가의 손에 의해 ‘보존’, ‘재창조’, ‘조화’의 가치를 살린 건물로 다시 태어났다. 어쩌면 브랜드는 기존에 존재하던 헤리티지를 조금씩 새로운 것들을 덧칠해가며 새로운 것으로 다시 태어나는 유물론적 진화를 거듭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이런 관점에서 밀라노 프라다 재단의 건축물들은 이미 쌓아 놓은 브랜드 자산에 끊임 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롱런하고 있는 프라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일흔을 넘긴 건축가와 곧 일흔을 앞둔 패션 디자이너가 세계 모처에 또 다시 변신시킬 또 다른 '예술의 전당'은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Photo : behance]


    ☞ 참고자료

    1. ‘렘 콜하스의 뉴욕 프라다 에피센터 분석을 통한 건축, 패션, 그리고 확장된 자율성의 연구’,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2016년 2월호

    2. ‘미우치우 프라다의 아주 특별한 미술관’, 보그코리아 2015년 6월 25일

    3. ‘현대건축의 도전적인 모험가, 렘 콜하스’

    4. ‘Prada foundation in Milan’

    5. ‘Rem Koolhaas on Prada, Preservation, Art and Architecture’

    6. ‘전복적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예술실험, 날개를 달다.’, 월간미술 2015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