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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으로 짓다, OMA와 AMO

    2017-11-22

    기술로 건설하고 생각으로 건축하다

    싱크탱크로 움직이는 건축사무소, OMA와 AMO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브렉시트(Brexit)의 국민 투표 이후 9개월 만에 리스본 조약 50조가 발표됐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결국 공식화됐다. 브렉시트는 유럽권의 대내외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다. EU의 영향권을 벗어나려는 주요 국가 회의론자들의 '탈(脫) EU' 목소리가 커지고, 다른 인종과 국적자들을 겨냥한 증오 범죄가 급증했으며, 세계 경제는 들썩였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EU에 대해 연합 관계를 유지하면서 개별회원국을 지원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틀과 안전망을 제공해야 하는 연합기구라고 정의했다. 27개의 국가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분쟁과 화해를 번복하는 과정은 분열과 통합을 동반한다. 이런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한 건축사무소는 자신들만의 싱크탱크와 함께 EU의 가치와 의미를 탐구하고 제시한다.



    이론, 실용, 이념의 결합을 추구하는 '생각하는 건축사무소 OMA'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는 로테르담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와 엘리아 젱겔리스(Elia Zenghelis), 마델론 브리에센도르프(Madelon Vriesendorp) 등이 함께 이끌어가는 건축사무소다. 그들이 지향하는 세상을 위해 건설과 도시주의의 경계 안에서 이론과 실용, 이념을 결합하는 건축을 추구한다. OMA의 소장인 콜하스는 특정한 흐름에 속하지도, 동일한 양식을 표방하지도 않는 자유로운 건축이 주특기다. 기술적인 건축을 넘어 생각하는 건축을 지향하는 OMA는 그들만의 독보적인 싱크탱크를 갖추고, 건축 설계 외의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OMA를 뒤집은 AMO로 명한다.



    건축을 위해 건축 외의 모든 것을 탐구하는 '생각하는 싱크탱크 AMO'

    싱크탱크 AMO는 리서치와 브랜딩, 출판, 발행을 담당하는 OMA의 연구 부서 겸 스튜디오다. AMO의 구성원 또한 저널리스트, 역사가, 건축가 등 다양한 전공과 국적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OMA의 건축 활동 밖에서 벌어지는 미디어, 정치, 사회, 테크놀로지, 재생에너지, 패션, 브랜드, 그래픽 디자인 등이 그들의 탐구 대상이다. 기존의 무료한 형식보다 더욱 실험적인 탐구의 바탕으로 OMA의 건축 프로젝트를 한 단계 더 확장시키기도 한다. 가령 프라다의 아이덴티티 프로젝트는 그들이 탐구한 아이덴티티 리서치, 인-스토어 기술, 패션 콘텐츠 제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OMA의 건축 설계에 더하면서 프라다가 뉴욕과 로스 앤젤레스의 패션 근원지로 재탄생하는 데 일조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법으로 세계의 각종 현상을 탐구하는 OMA와 AMO는 자신들의 건축적 경험과 창의적인 디자인 사고를 바탕으로 EU의 의뢰를 진행했다.


    사례 1 : The Image of Europe

    사례 2 : Roadmap 2050

    사례 3 : Barcode


    사례 1 : The Image of Europe

    브뤼셀로 수도를 정한 EU는 미래의 의사결정에 영감을 주고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공간을 필요로 했고, EC(European Commission, 유럽위원회)는 OMA의 문을 두드렸다. 그들이 원하는 아이디어의 핵심은 통상적인 국가의 수도 형태를 띠지 않고, 조화롭게 연결된 다양성들이 유럽의 중심에 안정적으로 놓이는 것이었다.



    ‘건설이 최선은 아니다’는 건축사무소라는 이름이 무색한 그들의 이념이었다. 거대한 건축물 대신 서커스 텐트가 심볼과 시각언어의 역할로 브뤼셀의 구시가지 중심에 놓였다. 텐트 천막에 새겨진 색색의 줄무늬는 회원국 국기를 나열해 형상화한 일종의 심볼이다. 색색의 얇은 줄이 동그랗게 모여 거대한 텐트를 만드는 형태는, 함께 행동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과 개별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이 동시에 표현되는 것을 시각적으로 나타낸다.


    유럽의 정체성과 정치적 의도를 생각하다

    AMO는 현란한 ‘EU color’의 서커스 텐트를 매개체 삼아, 브뤼셀에서 뮌헨과 비엔나로 향하는 <The Image of Europe> 전시를 개최했다. 텐트에 속해 있는 60m, 80m 길이의 파노라마식 벽에는 개념, 정체성, 정치적 현실과 관련된 유럽의 발전이 그려져있다. 내부의 링에는 대륙 이동설에서 시작해 마드리드 폭발 사건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간의 중요한 역사가 담겨있어 사람들이 유럽이라는 거대한 커뮤니티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도록 일조한다. 이 텐트는 유럽 각지를 순회하는 이동을 통해 수도 선정의 진정성을 기념하고 정치적 의도를 담아냈다. 이후에도 뮌헨 예술의 집(Haus der Kunst)에서 EC의 협력하에 유럽과 마샬 플랜의 역사를 전시해 정치적 전략을 꾀하는 시각적 소통 방식을 구현했다.


    사례 2 : Roadmap 2050

    AMO의 <Roadmap 2050>은 유럽기후변화 재단(ECF)의 의뢰 하에 진행된 저탄소 프로젝트로, <The Image of Europe>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이다. 태양열, 풍력 등 EU 회원국별로 주력하는 재생에너지를 하나의 전력 네트워크로 연결한 ‚에네로파(Eneropa)‘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의 80-95% 감축 목표를 위한 로드맵인 셈이다.




    유럽의 전력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다

    ‚에네로파‘ 이미지 속의 유럽은 국가별로 어떤 주요에너지를 갖는지에 따라 Biomassburg, Geothermalia, Solaria, The Tidal States 등 새로운 에너지 영토로 나타난다. AMO의 로드맵과 그래픽 이미지들은 유럽 전력 부문의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함의를 개념화하고, EU의 에너지 시설을 완벽하게 동시통합함으로써 유럽의 지리적 다양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시각언어로 해석된다.


    사례 3 : Barcode


    사실 첫 번째 사례에서 발견했던 서커스 텐트 속 바코드(Barcode)는 2004년에 EU의 의뢰로 진행한, 유럽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시각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유럽의 표상이 반현대적인 채 매스 미디어에 눌려있다고 판단한 AMO는 자신들만의 브레인스토밍이 담긴 새로운 언어를 제시했다.


    유럽의 문명과 발전을 생각하다

    AMO의 바코드는 그 색상만으로도 에너제틱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국기 색의 단순한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회원국의 국기 배열과 유럽 대륙의 진화, 문명의 발전을 나타낸 파노라마식 바코드는 유럽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면서 EU의 각종 집기를 비롯해 크고 작은 회담의 심볼로 널리 사용됐다.


    좌측은 원래의 바코드, 우측은 영국 탈퇴 후 바코드


    하지만 브렉시트가 공식화되면서 영국의 국기가 더 이상 바코드에 남을 수 없게 됐다. EU의 오랜 지지자이면서 영국의 런던 건축 협회에서 건축을 배운 콜하스에게 브렉시트는 큰 충격이었다. 브렉시트는 과거에 붙잡힌 사람들이 위태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무의미한 움직임이라고 비판하며, BBC의 인터뷰에서도 영국의 EU 탈퇴에 대해 강한 반대를 표했다.




    EU 붕괴를 논하는 소통 방식의 깊이

    AMO의 디렉터인 레이니르 더흐라프(Reinier de Graaf)가 제시한 인스톨레이션 이미지에도 EU를 향한 그들의 관점이 잘 나타나있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거실에는 방, 의자, 소파 등 28개(EU 회원국 수를 뜻한다)가 놓여있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바코드 블라인드는 본래 외부의 빛과 시선을 막아주고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 블라인드에 영국의 색 일부분이 사라졌고, 깨진 틈은 블라인드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망가진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블라인드 너머로는 과거 유럽의 잔혹한 역사의 오프닝이 보인다. 이것은 AMO가 브렉시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자 정치적 목소리임과 동시에 확실한 시각적 소통 방식이다.


    확산적, 분석적, 논리적, 창의적, 직관적으로 생각하다. 통합적인 디자인 사고방식


    OMA는 분명 건물을 짓는 이들의 사무소고, AMO는 건물을 더 잘 짓도록 생각하는 싱크탱크다. 하지만 생각과 탐구가 결합된 그들의 일은 동종업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틀에 박힌 태도에서 벗어나 문화와 사회를 바탕으로 건축에 접근하는 시각은 자연히 다른 결과물을 낳았다.


    사람, 건축, 도시, 문화, 사회를 디자인 사고로 생각하다

    OMA*AMO는 도시에서의 삶과 건축을 하나의 현상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업에 확산적, 분석적, 논리적, 창의적,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를 결합했다. 언제나 변화를 감지했고 탐구했으며, 기존의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냄으로써 의미 있는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디자인이란 단순하고 직접적일 수도, 반면에 복잡할 수도 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일 수도 있고, 한없이 가벼울 수도 있으며 과거와 현대를 연결하며 과거의 지능을 끄집어내 회복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 Rem Koolhaas


    사회의 변화에 맞춰 사고의 방법도 변해야 한다

    건축이라는 행위 자체는 그들이 사회에게 제안하는 다양한 솔루션 중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OMA*AMO는 ‘이념과 실용의 결합’이라는 목표 아래 통합적인 디자인 사고로써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냈다. 관찰과 분석이 생각을 만나면 혁신적인 전략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태도는 건축 외에도 예술, 교육, 기술, 정치 어디든 반영될 수 있다. 세상은 변하고 사고를 이해하는 높이도 변화한다. ‘생각하는’ 디자인 사고는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참고하면 좋을 사이트

    월간 디자인 : 극한의 실험을 즐기는 건축가, 렘 콜하스

    레이니르 더흐라프 기고문 : OMA on the European Union

    렘 콜하스 인터뷰 : Rem Koolhaas, with Jennifer Sig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