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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학적 생활방식, 힙(Hip)한 문화를 찾아서

    2017-09-20

    새로운 문화 조류는 스스로가 소비하는 물건의 본질을 강하게 의식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입에 넣거나 몸에 걸치는 물건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알고, '더욱 큰 것을 더 많이'라는 소비 활동과 결별합니다.

    돈을 내면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고급 브랜드 가방보다, 자신과 강하게 연결된 느낌을 주는 물건, 예를 들면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 디자인하고 지역의 공장에서 자기와 같은 전차를 타고 일하러 다니는 사람이 만든 상품을 사용하자 하는 새로운 가치 기준의 제안입니다.

    -힙한생활혁명 中-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 여유를 갖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울의 가장 핫한 곳을 꼽으라면 강남, 홍대, 신촌보다 망원동, 연남동, 서촌, 동묘, 문래동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이런 데 가게가 있어?' 싶을 정도의 주택가 좁은 골목에 작은 커피집이 줄지어 있고, 주말이면 젊은 청춘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핫한 가게를 찾아 나서고 두발로 걸어다니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가죽, 목공, 퀼트, 봉제공방 등 작업실을 찾아 시중에 나온 화려한 완제품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만든 심플하고 의미 있는 물건을 주고받습니다. 턴테이블 위 LP판이 튀고 음악이 지지직거려도 레코드 가게는 옹기종기 모여앉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다양성 영화가 흥행하고, 70·80년대 사랑받았던 음악을 리메이크합니다. 장미꽃 장식이던 안개꽃이 선물 받고 싶은 꽃으로 떠올랐고 회백색 콘크리트 건물보다 붉은벽돌건물이 더 멋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진짜 명품은 무엇인가?

    최근 기사를 검색하다 재밌는 제목을 보았습니다. '명품은 럭셔리가 아닙니다'. 이처럼 역설적일 수 없습니다. 화려함과 부를 드러내는 과시의 상징이었던 명품소비가 물질적 만족이 아닌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정신적 만족의 가치로 변했다는 요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핫플레이스라고 말하는 갤러리, 빈티지한 공간, 낭만적이라고 열광하는 아날로그적 생활방식, 커피문화, 친환경, 가치소비 등은 앞으로 설명할 '힙'한문화의 형태입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뭐든 쉽게 쓰고 버렸던 산업사회 사고방식을 버리고, 과거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가치관과 정신문화이기도 하죠. 인문학 열풍도 이와 결을 같이합니다. 그렇다면 '힙'하다고 하는 문화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우리는 '힙'한 생활방식과 문화에 열광할까요?



    가장 힘든 시기, 그 안에서 새로운 문화가 꽃피다


    "노력만 한다면 새로운 문명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성이 넘치는 문명이 될 것"

    -엘빈 토플러-


    문화의 진화는 '안정적이다'라고 표현하는 관성에 젖은 사회시스템 속에서 변화를 맞이합니다. 태풍의 눈이 고요한 것 처럼 잠잠하다가, 중앙권력의 힘이 정도의 한계선을 넘으면 소외되고 곪아있던 부분이 터지고, 큰 사건을 겪으면서 사회구성원의 성찰과 반성을 통해 어두운 곳에서 더 밝은 문화의 힘이 발화합니다. 인간이 상대방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동물이기에 오히려 위기 속에서 새로운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국가적으로 큰 사건들을 겪으면서 깊은 무력감을 겪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사회·정치에 너무 무관심했던게 아닐까?',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자신의 이웃과 주변, 사회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시작한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집단지성을 형성하고 그것이 문화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현대의 '힙'한문화는 인간적인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 공감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비주류에서 주류문화로 올라왔습니다.


    왜 미국에서 시작되었을까?

    '힙'한 문화의 시작은 세계 경제의 암흑기였던 2007년부터 입니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주택융자제도)사태와 이로 인한 2008년 미국의 대형투자그룹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전 세계 금융시장을 일순간에 얼어붙게 합니다. 쉽게 말하면 국가와 제1금융권을 신뢰하는 국민에게 은행은 자신의 금고 보유액의 몇 배가 넘는 금액을 채권으로 남발했고, 그 실체 없는 돈이 채권이라는 보증서로 돌아다니면서 주택을 사고, 주식, 펀드에 투자 한 것이죠.

    특히, 문제가 된 이유는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을 위한 주택융자제도로 집값의 80% 금액까지 대출해주는 좋은제도 인데,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권했다는 것입니다. 지나친 대출로 인한 연체율 증가로 금리가 오르고 올라간 금리는 연체율을 높이는 악순환을 낳았습니다.

    결국 집값 버블붕괴와 함께 대출금을 갚지 못한 서민부터, 대출금으로 투자받은 투자회사의 부도, 국가가 빚을 상환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졌습니다. 미디어는 연일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사람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거라는 기사를 보도합니다.



    물질주의에 대한 회의, '힙'한 문화의 시작

    10년 전 서프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현재 '힙' 하다는 문화 현상의 시작점입니다. 가장 신뢰했던 은행 기관이 서민을 위한다는 금융 제도로 이익을 얻으려고 했으며, 선망의 대상이었던 월스트리트의 금융맨들이 고위험군 상품임을 가장 잘 알면서도 당장의 이익을 위해 파산 직전까지 영업했다는 인간적 실망.

    더불어 문화를 향유하는 서점, 음반가게, 잡지, 라이브카페, 갤러리 등의 폐점이 먼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동안 땀 흘려 일하는 대가를 무시하고, 경제적 가치가 우선이었던 물질주의 사회에 경종을 울립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돈이 일순위가 아닌, 건강하고 행복한 삶, 자아실현, 지역공동체의 부활을 우선순위로 인식하는 행동의 전환을 맞이합니다.



    새로운 변화의 파도, 독립적인 삶을 택하다

    '힙'한문화의 키워드는 '탈대중화'입니다. 이는 관료체제가 무너지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일을 격려하며, 정해진 원칙과 규범을 지키며 공정함과 신뢰로 사회협력과 정의로움을 높이는 '사회민주화'가 필수인 시대흐름과 맞물려 넓게 퍼지고 있습니다.

    엘빈토플러는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중앙집권 아래 산업화 시대의 규격화된 대량생산, 대량소비 방식은 뒤처지고, '제3의 물결'인 그 다음 사회는 다양화, 탈획일화로 다품종 소량생산, 지역생산과 지역소비, 다양한 아이디어와 상상력, 생산자와 소비자의 갈등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가 되리라 예측했습니다.



    '힙'한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

     '힙스터(Hipster)'

    '힙'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문화의 물결을 공유하는 사람들인 '힙스터'. 이들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간단하게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브루클린과 포틀랜드에 거주하는 아티스트, 디자이너 등 창조적인 일을 하며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헷갈리지 말아야 할 부분은 그들이 트렌드세터, 얼리어답터가 아닌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본마음, 인지상정(人之常情)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으로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열린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럭셔리가 아닌 '노력하지 않은 멋'을 추구한다

    힙스터는 럭셔리가 아닌 '노력하지 않은 멋'을 추구합니다. 위키백과에선 힙스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 뿔테 안경, 딱 붙는 하의, 늘어난 상의, 빛바랜 체크무늬 셔츠 같은 소탈한 맵시를 중시하며 독립적인 생각과 진보적인 정치 성향, 자연 친화제품 사용,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과 예술, 지식 그리고 위트를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 자전거 타기를 즐기며 채식주의자가 많고, 그 지역의 작은 커피전문점에서 산 커피 컵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비주류적인 문화를 누리되, 기술혁명의 은혜는 확실히 받아들인다.

    사쿠마 유미코의 저서 '힙한생활혁명' 에서는 힙스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힙스터는 독립적인(대기업 체인이 아닌) 커피숍 등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역 커피숍은 바리스타가 커피를 한 잔씩 손으로 내려주고, 실내장식은 빈티지 가구와 재활용한 자재를 사용하고, 분필로 메뉴를 직접 쓴 타입의 가게입니다.

    건강에 신경 써 첨가물과 보존료가 들어간 음식은 싫어하고, 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파머스마켓을 찾아갑니다. 기술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아웃도어와 가드닝을 좋아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성공을 거둔 2008년 선거 때는 일을 쉬고 오바마 진영에 참가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힙스터는 펑크, 히피의 카운터 컬처의 가치관을 계승하되 주류와 공존하고, 기술혁명의 은혜는 확실히 받아들이며 손으로 만드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그런 계층입니다. "


    '힙'한문화는 인문학적 생활방식이다

    앞으로 '힙'한문화로 불리는 것들에 대해 알아볼 예정입니다. 몇 년전만 해도 뒤처졌어, 지루해, 낡았어, 귀찮아, 쓸모없어, 불편해 라고 불렸던 것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50년 만에 재탄생한 세운상가는 윗세대에 대한 존경과 장인문화의 부활을 보여주고, '책을 읽지 않는 사회', '서점의 위기'는 지역에 흩어져 있던 독립서점의 노력으로 대중의 관심을 다시 끌어오고 있으며, 개발이 난무했던 도심은 지역공동체를 재생하고, 폐공장과 유휴공간은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개장하고 있습니다.

    길거리는 예술가들의 무대가 되었고, 예술가들은 교육현장으로 찾아갑니다. 학생들을 위한 문화예술페스티벌이 열리고, 수많은 굴곡과 인내를 경험한 인생멘토가 멘티를 찾아가 지혜를 나눕니다. 기업은 지구, 환경, 사회공헌,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바쁜 시간을 쪼개 아이들과 캠핑장비를 들고 특별한 경험과 자연을 선물해주는 부모의 마음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힙'한문화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당연한 가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