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OUND CULTURE
외딴 극장들의 사연
서울의 작은 극장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 내려 대학로를 걷다 보면 극장들의 면면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연극 포스터가 길가를 따라 즐비하고, 극을 홍보하는 단원들도 가까이 볼 수 있는 동네. 극장은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때때로 뮤지션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의 장이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학로 바깥에 위치한 극장에서도 크고 작은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극장들은 대학로 너머의 외딴섬 같은 곳들이다. 심지가 곧고 뚝심 있는 어떤 동네들의 극장. 이들에겐 무슨 사연이 있기에 대학로 바깥으로 자리를 옮긴 걸까?
글 이주연 사진 이종하


아늑한 역사가 만들어지는 곳
북촌아트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어느 길목에 붉은 벽돌 건물이 오뚝하니 자리를 잡았다. 길가 어디에나 있는 빌라인가 싶었는데 건물 바깥에 붙은 기다란 현수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개를 들어 한 자 한 자 읽어 보니 연극 포스터다. 가만히 둘러보면 건물 앞엔 자그마한 매표소도 있다. 애써 퍼즐을 짜 맞추지 않아도 이미 머리가 알고 있다. 이 익숙한 풍경은 필시 극장일 테다.
종로구에 터를 잡은 160석의 아늑한 북촌아트홀은 공연을 즐기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다. 마치 공연을 위해 지어진 작은 세계처럼 공연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극장을 짓고, 임대료에 쫓겨나오고, 다시 짓고, 다시 쫓겨나오는 일들을 반복하다 보니 공간 활용의 노하우를 터득했다는 게 이들의 웃지 못할 사연이다. 북촌아트홀엔 사각지대가 없다. 좁은 간격이지만 장의자를 놓아 편안하게 객석을 구성했고 무대가 잘 보일 수 있도록 구석구석까지 마음을 담았다. 또한 천고가 높고 무대가 깊어 공간감이 훌륭하며, 음향 시설에 적지 않게 투자하여 다른 극장에 비해 사운드가 특출한 것도 눈에 띈다. 오퍼석을 중앙에 두어 오퍼들이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구조는 사려 깊기까지 하다.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공연을 꾸리고 즐기기에 완벽하다"고.
이토록 훌륭한 요령을 가졌음에도 북촌아트홀의 극들은 여전히 바깥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묵묵히 본분에 충실한 이들은 흥행보다도 개개인의 관객에게 집중한다.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연극을 보러 찾아와 준다면 반드시 공연을 해내는 뚝심 있는 극장. 이들의 바람은 어여쁘고 간결하다.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공연을 하고 싶다는 것. 순수한 창작 어린이극이 펼쳐지고, 꾸준히 <천로역정>을 올리는 북촌아트홀은 계속해서 이들만의 역사를 쌓기 위해 골몰한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고자 마음을 다하는 북촌아트홀의 진심이 오늘도 종로구 한 편을 푸근히 데우고 있다.
A. 종로구 창덕궁길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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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담기는 우물
마을극장 수유리
어느 날 강북구 주민들이 우리 극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마을 연극 축제에서 공연하고 난 뒤의 일이다. 사연이 궁금해 주민들의 행보를 거슬러 올라가니, 마을극장 수유리를 지키는 극단 진동에 가 닿는다. 극단 진동은 강북구를 중심으로 활동을 벌여 나가는 성실한 극단이다. 이들은 마을극장 수유리란 공간을 만들기 전부터 극단 연습실에서 세대별 연극 교실을 운영하며 주민들을 지속해서 만나왔다. 극단 진동과 주민이 꾸준히 해온 연극 활동은 자연스럽게 마을 연극 축제로 확장되었다. 화기애애한 이 축제의 순조로운 기획이 위기에 닥친 건 마땅한 무대를 찾지 못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강북구에는 마을 단위의 축제를 열기엔 너무 큰 공간, 혹은 장기간 대여하기 어려운 소극장뿐이었다. 기획부터 철수까지 최대한 타이트하게 축제를 열어야 했던 강북구 주민들은 우리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절실하게 느꼈다. 결국 극단 진동은 연습실로 사용하던 공간을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곳에 마을극장 수유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을극장 수유리 안에서는 펼쳐지는 일들은 비단 연극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연극은 물론이고 간단한 수공예, 운동 프로그램 등 다양한 일들이 모여드는데, 재미있는 건 이 모든 활동이 주민들의 기획으로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점이다. 극장이자 마을의 커뮤니티가 되어서일까, 마을극장 수유리에는 보통의 극장에선 볼 수 없는 넉넉한 마음이 언제나 함께다. 그 마음들이 쉬이 머물 수 있도록 극장 내부는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지 않는 블랙박스 시어터로 만들어졌다. 주민들의 기획에 맞춰 변신할 수 있도록 활용도를 높인 구성이다. 마을극장 수유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면면도 다채롭다. 어르신부터 아이, 청소년, 성인 모두가 어우러지는 이곳에서는 어르신의 예술 활동과 다문화 가정 엄마들이 꾸리는 연극, 아이들과 청소년이 즐기는 작은 극까지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가 펼쳐지고 있다. 마을극장이란 단어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공간이 또 있을까!
A. 강북구 삼각산로 108
T. 070 4639 7467 H. jeendong.co.kr |

멀리 있는 마음을 모아
충동소극장
충동소극장이 광진구에 자리 잡은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충동소극장과 극단 충동을 끌어가는 단장의 자택이 바로 근처에 있기 때문. 매우 사사로운 이유이지만 이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연극에 발을 담글 수 있게 됐다. 충동소극장이 생각하는 연극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극이다. 이들은 누구나 연극을 손쉽게, 또 자주 접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극장을 열었고, 전문 배우만 드나드는 곳이 아니길 바라 대학로 바깥으로 향했다. 극장이 모인 동네를 벗어난 충동소극장의 용기 있는 걸음은 연극과 멀리 있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따뜻한 시도였다.
충동소극장은 광진구에 터를 잡고 연극 주변을 메운 장벽을 천천히 부수었다. 장소성과 더불어 일반인에게도 단원이 될 기회를 열어 연극의 폭을 넓히는 데 손을 보탠 것이다. 극단 충동이 주요하게 생각하는 건 움직임이다. 이들은 간단한 돌기나 구르기부터 아크로바틱까지 직접 지도하고 연기한다. 일반인 단원들의 실력이 프로 배우 못지않아 극의 완성도가 눈에 띄는데, 극을 선정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보통의 극이 작품에 따라 배우를 캐스팅하는 순서라면 충동소극장에 오르는 극은 배우에 맞추어 작품을 선택한다. 어떤 배우가 무대에 오르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는 이들 사연을 좀더 들어보니, 오늘날 던져 마땅한 근본적인 질문을 연극의 메시지로 담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들은 관객을 더 많이 모으고 흥행하는 데 관심을 두기보단 이 시대의 화두를 연극에 담아 보여 주고 소통하는 데 집중한다.
충동소극장은 말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듯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연극에 힘을 보태 좋은 에너지를 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충동소극장 안으로 값진 이야기가 모여드는 이유는 이토록 명백하다. 아마추어 연극인부터 세대를 아우르는 주민들까지, 좋은 에너지를 보태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우리는 지역 소극장의 가치를 본다.
A. 광진구 뚝섬로36길 49
T. 010 3906 8835 H. choongdong.com |
Local to Seoul
Local to Seoul 프로젝트는 동네 문화와 가치를 바탕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확장하려는 시도입니다. 서울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어라운드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도시를 다시 한번 살피고, 곳곳에서 마주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오래된 길목 안에 청년들의 가게가 문을 열고, 일상에서 예술을 찾으며, 한데 모여 취향을 나누는 곳. 사람과 문화가 가까운 서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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