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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데믹 시대를 위로하는 예술

    2020-12-22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코로나-19로 인한 예술계의 타격이 만만치 않다. 공연, 연극, 전시 등은 기약을 알 수 없는 휴무 상태에 들어섰고, 다양한 예술 활동은 점점 제한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앞에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을 포기하는 예술가도 늘고 있다. 막 활동을 시작한 청년예술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까지 해온 것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창작 활동을 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청년예술가도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리고 청년예술가들은 어떻게 예술 활동을 이어가야 할까?

    <사라져라, 살아져라>는 도봉구의 지역연계형 청년예술활동 지원사업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시각∙도예∙연극∙연기∙극작 등 각기 다른 장르의 다섯 청년예술가가 모여 평화 문화를 주제로 협동 작업을 진행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그 어떤 때보다 응원과 지지가 필요한 시대에 어울리는 주제인 평화와 평화 문화, 이들의 활동 기반인 도봉구라는 지역, 그리고 팬데믹 시대에 청년예술인이 전하고 싶은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사라져라, 살아져라>에는 코로나-19 종결의 염원, 모두가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모든 바탕에는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예술가의 고민이 있다.

    도봉구의 다섯 청년예술가가 협업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모습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 예술로 말하다

    <사라져라, 살아져라>는 지역 리서치로부터 시작했다. 도봉구의 다양한 자원을 살펴보던 중 안무가 유지영이 근심 없는 상태를 뜻하는 지명 무수골과 그에 얽힌 무수옹 설화를 찾았고, 모두가 만장일치로 이 설화를 바탕으로 협업 프로젝트를 이어가기로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과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말자는 설화의 주제와 요소가 팬데믹 시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작가 이주영은 무수옹 설화를 재해석한 이야기인 '사라져라, 살아져라'를 만들었다. 무수옹이 신비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항아리를 통해 역병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재해석된 설화를 바탕으로 다른 프로젝트를 변주처럼 진행했다. 연출가 김희라는 재해석된 설화를 다시 한번 영상으로 재해석하여 방역복을 입은 남성이 신비한 항아리를 들고 마을을 누비는 초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유지영은 항아리를 평화 오브제로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김희라와 함께 협업하여 이를 영상으로 남겼다. 도예 작가 최범식은 초 단편 영화와 무용 퍼포먼스에 사용된 오브제인 항아리와 역병을 치료하는 항아리 조각을 의미하는 자석 장식을 만들었다. 작가 김민지는 삽화와 사진이 들어간 <사라져라, 살아져라> 프로젝트 책자 제작을 맡았다. 프로젝트 설화집은 12월 중으로 제작하여 내년 1월에 자석 장식과 함께 배포될 예정이다.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을 함께 준비한 청년예술인들

    지난 12월 3일, 간송 옛집에서 <사라져라, 살아져라>의 무용 퍼포먼스와 영화 촬영이 있었다. 현장에서 김희라, 유지영, 최범식을 만났다. 이들을 통해 이번 프로젝트를 만들게 된 이유와 협업 과정을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Q. 무수옹 설화를 프로젝트 소재로 선정한 이유는?

    최범식 설화가 전하고자 하는 건 결국 어떤 태도라고 생각했다. 팬데믹 시대에는 당연히 근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상은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없지 않나.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그 상황을 대하는 태도뿐이다. 그래서 근심 없는 노인의 이야기를 담은 무수옹 설화를 만장일치로 선택했다.

    김희라 도봉 지역을 리서치하면서 무수(無綏)의 의미에 매력을 느꼈다. 무수옹 설화는 지역과 평화라는 이번 프로젝트의 키워드에도 잘 맞았다. 이 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모았다. 무수옹 설화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무수옹은 왜 근심 걱정이 없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13명의 자녀는 무수옹을 존중하고 사랑했다. 무수옹 역시 자녀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좋은 아버지였다. 이런 행복한 관계 속에서는 어떤 일이 닥쳐도 아무 근심과 걱정이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름대로 설화를 재해석했고, 결국 행복한 삶은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사람을 위하는 과정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


    Q. 하나의 설화, 한 가지의 주제에서 출발했지만 작업의 형태가 모두 다르다. 같은 맥락을 가져가지만 다른 점도 많은데, 각자 작업은 어떻게 진행했나?

    유지영 퍼포먼스는 크게 두 파트다. 선형적인 이야기로 진행되는 설화나 영화와 달리 춤으로 비선형적인 이미지를 제시했다. 곧 출판될 프로젝트 책에 텍스트도 나오고 삽화도 들어갈 예정이다. 그래서 이와도 다른 방향의 작업을 보여주려고 했다. 퍼포먼스를 준비할 때는 각색한 설화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 두 가지만 가져왔다. 역병이 사라지길 간절히 기원하는 행위와, 항아리에서 나온 연기로 모두가 치유되고 행복해졌을 때의 모습이다. 큰 틀만 정하고 세부적인 움직임은 마음의 상태에 몰입하며 즉흥적으로 진행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연은 할 수가 없어서 퍼포먼스는 영상으로 촬영했다. 추후에 프로젝트에 넣을 QR코드로 퍼포먼스 영상을 볼 수 있다.

    간송 옛집에서 <사라져라, 살아져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안무가 유지영

    김희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모두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각자의 표현 방식을 존중하며 함께 작업했다. 서로를 믿었다.


    영화는 설화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가져오면서 최대한 현장감을 살리려고 했다. 고전미와 현대성이 묘하게 뒤섞인 간송 옛집을 장소로 택했다. 영화 스토리는 설화의 재해석으로 변주되기에 이런 분위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주민으로서 자주 오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배우로 활동하다가 첫 연출을 맡아 초 단편 영화를 촬영했다. 연극에서 조연출을 맡았고 연기 코치 경험도 있지만, 영화 연출은 처음이다. 그래도 워낙 현장에서 오랫동안 작업했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영화는 설화에 현 코로나 상황에 맞는 의미를 더해 다른 결로 표현해보고자 했다.

    <사라져라, 살아져라> 초 단편영화 촬영 현장

    최범식 사실 대부분 혼자 하는 일인 도자 작업은 협업 기회가 전무하다. 그래서 이번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전체적인 기획 외에 도예가로서 팀에 어떤 도움이 될지 걱정했는데, 회의 과정에서 팀원들이 영상과 퍼포먼스에 항아리 오브제 활용을 제시했다. 평소에도 도자로 다양한 시도를 하려는 편인데,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 작업이 퍼포먼스 속 오브제로 활용되는 것을 보며 도자 작업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무척 흥미로웠다.


    이번 프로젝트의 평화 오브제인 항아리를 구상할 때 일반적인 매끈한 항아리보다 조금은 기괴하고 투박한 형태로 디자인했다. 평소엔 울퉁불퉁한 것을 보면 깎아야 하는 성격이다. 이 경우는 신비한 항아리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 작업과 달리 새롭게 도전해봤다.


    최범식 작가가 <사라져라, 살아져라>의 평화 오브제로 만든 항아리

    [Photo : ©최지훈]


    Q.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쉽지 않은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감이 궁금하다.

    최범식 도봉구에서 4년간 활동했지만 다른 청년예술가와의 협업 기회가 거의 없었다. 타 장르 예술가와 교류하고 싶은 갈증이 있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그 부분을 많이 해소했다.

    김희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했다. 모두 서로의 작업에 관한 이해도와 참여율이 높았기 때문에 갈등을 찾기 어려웠다. 도봉에서 나고 자랐지만 10년 넘게 연기를 해오면서 도봉에서 활동한 적이 없었다. 내가 사는 지역의 활동 예술가들과 만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유지영 사실 이전의 협업 프로젝트들은 잘 된 경험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내 작업이라는 느낌을 못 받을 뿐더러 흥미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냥 타협하고 적당히 하게 되더라. 그런 내 생각과 태도를 깨고 싶었다. 그렇게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는 진정한 의미의 협업이 이루어졌다.

    최범식 사실 협업을 하면 싸우기도 해야 하는데, 너무 잘 맞았다. 의견은 정말 다양했지만 서로 잘 듣고 합의점을 찾아갔기에 불화 없이 성공적인 협업을 끌어내지 않았나 싶다. 협업은 특정인의 작업으로 몰아가게 되거나, 그 누구의 작업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반면 이번 프로젝트는 글자 그대로, 우리 모두의 작업이다.

    유지영 억지로 한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개인의 영역을 지키면서 하나의 연결되는 작품을 만들어서 좋았다. 각기 다른 장르의 작가가 모여 무조건 통일된 하나만 만들 수는 없지 않나. 그런 부분이 잘 지켜졌기에 오히려 결과도 더 다채로울 수 있었다.

    <사라져라, 살아져라>의 퍼포먼스 촬영 장면
    청년예술인뿐 아니라 배우, 무용가, 촬영감독∙편집자, 퍼포먼스 사진작가, 오브제 사진작가 등 또 다른 파트너 작가들이 협업했다


    Q. 앞으로 청년예술가로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범식 다른 분야의 시각 예술은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도예는 여전히 화이트 큐브에 갇혀 있다. 도예가로서 실험적인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다. 게릴라 설치나 영상을 활용한 작업도 해보고. 이런 작업으로 아무도 밟지 않은 땅에 나만의 새로운 깃발을 세우고 싶다.


    💡 도봉구 015 아티스트, 최범식

    자신이 느끼는 불만을 소재로 작업한다. 흙이라는 진지한 재료와 전통적인 표현기법을 활용하여 작업하지만 비주류 문화, 풍자, 키치함을 즐기며 불편할 수 있는 것을 유쾌하게 표현한다. 그림과 영상 등 다양한 매체 작업을 통해 재료와 장르의 경계를 벗어나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철학이다. 현재 도봉구에서 크크공방을 운영하며, 2019년에는 무중력 지대 도봉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대표작으로 한국에서 유행하는 혐오주의를 상징하는 신조어를 통해 현 세태를 풍자한 <헬로조선 프렌즈>가 있다.



    김희라 코로나-19 때문에 영화 촬영 건이 많이 무산되어서 좌절하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는데, 이번 프로젝트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본다.


    💡 도봉구 015 아티스트, 김희라(한겸)

    한겸이라는 활동명으로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연기자로 활동 중이다. 텍스트상의 이야기를 말과 몸짓으로 표현하여 현재 일어나는 일처럼 새로운 삶의 조각을 구축∙구현하는 작업을 한다. 2007년 대학로에서부터 <드라마 만들기>, <바보 추기경> 등 여러 연극에 참여하고, 연기뿐 아니라 오페라 작품의 무용수로 참여했다. 드라마 <메모리스트>, 영화 <죽여주는 여자>, <한양빌라 401호>, <방구의 무게> 등 다수의 단편영화에 출연했다. 이야기 속 상황과 인물에 스며들어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를 위해 평소에도 자신과 다른 이의 삶을 성찰하며 수많은 분석과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유지영 무용이라는 장르가 조금 더 넓은 의미의 무용이 되도록 꾸준히 작업하려 한다. 내가 하는 작업을 무용이라고 보지 않는 경우도 꽤 있는데, 그 편견이 깨졌으면 좋겠다. 훨씬 더 다양한 작업이 무용이라는 개념 안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 도봉구 015 아티스트, 유지영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를 졸업하고 몸을 주 매체로 사용하여 안무를 지속하고 있다. 신체 그리고 무용에서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쉽게 인식할 수 없는 관념과 상징을 다시 해체하여 살펴보는 것을 작업의 주요 주제로 삼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해부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500년 전 연구된 비례와 비율을 동양의 신체로 재현하는 것을 다룬 <인체도>(퍼포먼스, 2014), 태어나 자라면서 학습한 신체 부위의 명칭과 명칭에 따른 행위를 신체 부위의 명칭을 뒤바꿈으로써 재정립하는 <신체 부위의 명칭에 대한 의문>(퍼포먼스, 2016), 무용이라는 휘발성의 공연예술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문제 그리고 기록 과정을 통해 전통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Lost performance>(퍼포먼스, 토크, 2019), 퍼포먼스 안에서 작동하는 가상 임금 기준치를 상정해 무용수의 움직임 노동을 돈으로 치환하는 <신체교환론>(퍼포먼스, 2019) 등의 대표작이 있다.




    <사라져라, 살아져라>는 이야기∙퍼포먼스∙영상∙오브제∙서적 등 다양한 매체로 팬데믹 시대의 절망을 딛고 일어설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 하지만 단순히 희망의 메시지만 담고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설 곳을 잃어가는 청년예술인을 지원하며 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작업 활동을 이어갈 기회를 마련하는 예술 프로젝트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희원을 만들어간다. 또한 팬데믹으로 흐려진 함께 하는 감각, 공동의 감각을 일깨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청년예술인이 급변하는 팬데믹 시대의 예술 환경 속에서 고민과 생각을 나누며,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갈 무형의 플랫폼으로 작용한다. <사라져라, 살아져라>는 가장 따뜻한 위로를 담아 팬데믹 시대의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사라져라, 살아져라>는 서울문화재단 지역연계형 청년예술활동 지원사업 「0(Young) 아티스트, 15개의 서울」 일환으로 진행되는 사업입니다.

     「0(Young) 아티스트, 15개의 서울」 은 청년예술인들이 자신의 예술활동을 지속할 뿐만 아니라,

    서울 내 지역과 연계한 다양한 예술적 활동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지역 문화기관의 협력 과정을 지원합니다.


    Local to Seoul

    서울문화재단의 Local to Seoul 프로젝트는 서울 각각의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와 정체성을 발굴하고, 새롭게 발견한 '로컬'을 바탕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확장하려는 시도입니다. 동네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서울 X 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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