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서울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을 이루는 지역들이 각각의 지역문화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N개의 서울>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네의 문화 자원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 동네의 문제X이슈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시도', 동네를 바꾸는 '움직임'을 통해, 동네 곳곳에서 만드는 새로운 서울X문화를 기대합니다.
[지역소식] 예술이 열어주는 소통의 문 (영등포구)
쉬~고 놀=고 팔고 사+가는 곳, <문래미술상회>
밀레니얼(Millennials, 1980~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 근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낯익은 단어다. 사람들은 전 세계 소비 산업의 주축인 이들을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구독 주의로 정의한다. 하지만 밀레니얼의 속내를 자세히 들여보자. 이들에게 경험은 무조건적인 우선이 아니다. 차나 집 마련에 큰 욕심 없을지 몰라도, 자신의 취미와 취향에 관한 매체를 갖고자 하는 소유욕은 강렬하다. 이들에게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구축하는 것은 생의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얼은 집 장만에 드는 거액의 돈으로 차라리 취미와 취향을 소비하며 정체성을 표현하는 나름의 효용적 삶을 추구한다.
밀레니얼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예술 매체를 적극적으로 소비한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하지만, 동시에 LP판과 카세트테이프를 수집하며 행복을 느낀다. 좁디좁은 5평 원룸에 살지라도, 좋아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포스터나 예술가의 원작품을 액자에 걸며 그 작은 벽을 꾸미기도 한다. 젊은 작가들이 만든 작품, 작업 부산물, 소장품 등을 판매하는 '취미관(趣味官)' 이벤트가 국내 밀레니얼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유로 얻는 행복과 만족감이 모든 불편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밀레니얼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겪은 과도기 세대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다원적인 관점이 자아 표현의 욕구와 맞물리면서, 세상의 문화예술을 넓게 향유하려는 새로운 니즈로 연결됐다.
문래미술상회 포스터
이들의 문화예술 향유 욕에 응대하는 <문래미술상회>가 지난 10월 11일부터 20일까지 '문래마을 예술인 예술제'의 중심에서 열렸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 쉬고 놀고 팔고 사 가는 곳'인 <문래미술상회>는 문래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굴해 소개하고, 그들의 원작품과 아트 상품을 판매하는 장이다. 이 행사는 작가의 작업을 어떻게 상품화할 것인지의 고민에서 출발해, 다양한 현실 가능성을 실험하는 기회였다. 단순한 미술 작품의 한계에서 벗어나 돈이 되는 작품으로서의 단계를 밟기 위해서다.
이처럼 당찬 실험의 배경은 문래를 둘러싼 마을의 급격한 변화다. 지난 몇 년간 젠트리피케이션이 문래동을 달구면서 오랜 주민들이 마을을 정리하고,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예술가는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오롯이 작업에만 몰두하여 그들의 예술 가치를 탐구하는 일은 어려워졌다. '문래창작촌 예술인 예술제'와 <문래미술상회>은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한 시도다.
참여 작가들은 작품 판매를 매개로 예술인이 처한 힘든 현실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예술인, 그리고 이들이 사는 문래를 지키고자 했다. 또한, 젊은 밀레니얼이 즐겨 쓰는 스티커, 머그잔, 에코백, 티셔츠 등에 작품 이미지를 새긴 상품을 준비했다. 원작품 가격이 부담스러운 청년층이 손쉽게 예술 작품을 소장하면서 예술인들의 세계를 들여봐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행사 일정 내내 문래미술상회 공식페이스북에도 적극적으로 작품을 게시하고 예술상품을 소개했다. 좋고, 멋지고, 의미있는 예술 작품을 소유하려는 밀레니얼들이 <문래미술상회>를 찾아, 문래는 전에 없이 북적이는 시월을 보냈다.
문래미술상회 참여작가
작품 판매: 강빌리, 김진, 박미라, 류혜두, 전은숙, 박준식, 최라윤
예술 상품 판매: 강빌리, 김진, 류혜두, 박미라, 박준식, 엄아롱, 이록현,이말용, 전은숙, 최라윤
1. 작가 강빌리, 김진
두 사람은 <문래미술상회>에서 서정적인 미술 회화작품을 선보였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파스텔 크레용을 사용해 때 묻은 어른도 담백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정화해주는 페인팅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현장에서 액자에 넣지 않은 원작품과 함께 컵, 프린트, 스티커, 에코백 상품을 판매했다.
상회에서 만날 수 있는 강빌리, 김진 작가의 작품
2. 작가 박미라
박미라 작가는 아크릴, 펜, 목탄, 자수, 실크스크린처럼 다양한 재료를 다루는 서양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다. 종이에 펜으로 그린 드로잉을 애니메이션 프로젝션으로 가공하는 등 작품의 변화와 재탄생을 즐기는 작가이기도 하다. 텀블러 플랫폼(http://www.tumblr.com)을 활용해 자신의 작품을 아카이빙하고 있으니 작가의 더 많은 작품을 간편하게 볼 수 있다. 이번 <문래미술상회>를 위해 '2018 MEET 프로젝트 사업'으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인 전시용으로 제작했던 실크스크린 NO. 2, 3, 4 에디션을 내놓았다. 해당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 예술 상품도 함께 준비했다.
박미라 작가의 실크스크린 에디션 작품
3. 작가 류혜두
미디어아트 ‘Floated Spirit [저 너머 : 잃어버린 한 조각] : 잃어버린 파편들이 모이는 곳’을 선보였다. 작품의 비디오 설치 set1과 에코백, 그리고 작품이 프린팅된 티셔츠를 판매했다.
'Floated Spirit [저 너머 : 잃어버린 한 조각] : 잃어버린 파편들이 모이는 곳'
4. 작가 전은숙
전은숙 작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책임위원이자 국립현대미술관 평가단장을 역임한 김미진 선정위원이 10년 후가 기대되는 유망작가 25인 중 하나로 꼽은 화가다. 2017년에는 '포트폴리오 박람회선정작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장식적 성격이 강한 식물과 그것이 놓인 장소를 바라보는 관점을 굵은 형광빛 터치로 흰 바탕에 담아낸다. <문래미술상회>에서 아름다운 색감과 필치의 캔버스 작품,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 컵, 스티커, 에코백, 프린트를 판매했다.
전은숙 작가의 캔버스 작품
5. 작가 박준식
박준식 작가가 작품에서 찾는 기원은 꿈과 환상이다. 어릴 적 꿈꾸던 희망찬 미래의 순수한 열망이 때론 비관적인 악몽에 가까운 디스토피아가 되는 것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 세계는 사회에서의 권력 구조와 그로 인한 사회구성, 힘, 인간의 욕망에 대한 고찰을 창작 활동과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이다. 그는 그로테스크하고 페티쉬한 분위기에 녹여낸 자기 통찰과 사회 비판적인 드로잉이 특징인 작품을 가지고 나와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박준식 작가의 드로잉 작품
6. 작가 김진
김진 작가는 여성, 일상, 노동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고민하는 작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10월 24일부터 11월 3일까지, 대안예술공간 이포에서 물질과 자본 앞에서 힘을 잃는 인간의 소박한 가치와 삶의 풍경을 바라보는 <이곳에 데메테르가 있다> 전시를 여니, <문래미술상회>가 끝난 뒤에도 작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문래미술상회>에서는 노동에서 버려지는 다양한 사물을 수집해 창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사물을 활용한 김진 작가의 작품들
7. 작가 최라윤
최라윤 작가는 문래동이라는 지역을 거점으로 장소 특정적인 작업을 함으로써 사람과 자연, 그리고 도시의 관계성을 탐색해 온 작가다. 이번 <문래미술상회>를 위해 전주 JEMA 미술관 <아시아와 쌀 展>에서 오픈 퍼포먼스의 결과물 사진과 양평 <바깥 미술> '동구리' 작품 사진을 준비했다. 각각의 사진을 작은 캔버스와 면직물에 프린트해 예술 상품으로 내놓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들여보게 되는 최라윤 작가의 작품
큰 호응을 얻었던 작가들의 예술 상품
문래미술상회에서는 작가들의 원작품의 이미지로 만든 에코백, 스티커 등 다양한 예술 상품을 판매했다. 아직은 원작품 구매를 생소하게 느끼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더욱 쉽게 작품을 구매하고 소유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작가들은 일상 곳곳에 예술의 향기가 스며들기를 바라며 상품 구성에 동참했다. 특히, 에코백은 한 작품당 10개로 한정 제작해, 실제 예술 작품의 스페셜 에디션을 구매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문래미술상회 참여 작가들의 작품 이미지로 만든 에코백과 스티커
<문래미술상회>는 작가들에게 그들의 작업이 어떻게 상품화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고민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지역 예술가에게는 예술상품을 개발해보거나 판매 공간을 구성해 볼 기회, 판로 자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에 머물러 있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판'이 되어주었고, 작업실에 잠들어 있던 작품을 깨울 수 있게 도왔다. 이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작가 간 교류로 연결됐다. 특히, 문래처럼 예술의 생동력이 살아있는 지역에 관심을 갖는 밀레니얼들을 타겟으로, 이들이 즐겨쓰는 형태의 아트 상품을 마련해 지역과 예술이 결합된 새로운 경험을 누리도록 유도했다. 문래창작촌 예술인 예술제와 <문래미술상회>가 끝난 후, 어쩌면 문래는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밀레니얼의 도시가 되어 전에 없던 추진력을 얻을 지도 모른다.
<문래미술상회>를 찾은 이들은 작지만 힘이 있고, 가까이 있지만 절대 흔하지 않은 '문래'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날 수 있었다. 더불어 지역과 예술적 가치를 연결하고 실험하는 작가들을 발견하고 문래의 예술적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앞으로도 지역에서 탄생한 예술, 지역을 빛내는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더욱 풍성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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