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서울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을 이루는 지역들이 각각의 지역문화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N개의 서울>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네의 문화 자원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 동네의 문제X이슈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시도’, 동네를 바꾸는 '움직임'을 통해, 동네 곳곳에서 만드는 새로운 서울X문화를 기대합니다.
[현장취재] 구로를 관찰하는 젊은 시선, 커뮤니티 아홉 (구로구)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다. 우리는 인터넷 속에서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나누며 살아간다. 다수가 오랜 시간 함께 모은 정보들은 이제 어떠한 주제든 풍부한 내용을 갖추게 되었다. 구로구에서 실시하는 ‘구로백과 2019’ 또한 다수가 모으는 정보의 다채로움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진행되는 사업이다. 구로에 터를 잡은 지역 주민, 예술가, 그리고 외부 자문이 참여해 구로에 대한 각자의 관점을 나누며 공동의 지역문화를 갖춰가고 있다.
구석구석 차곡차곡 - 구로백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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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구로백과 편찬위원회 이야기 찾아가기
구로백과 편찬위원회는 “왜 다 머리만 하려고 할까?”를 다룬 1회를 시작으로, 2회 “어디에서 대본을 구할 수 있을까?”, 3회 “젊은 사람들이 올 수 있는 동력이 뭘까?”를 진행해왔다. 지난 10월 19일에는 구로의 아홉 청년과 함께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주제로 4회가 열렸다. 구로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가는 네트워킹 테이블이자, 구로의 사진집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아홉 명의 노인이라는 구로구 지명 유래에서 착안한 커뮤니티 ‘아홉’은 지역에서 거주・활동・공부하는 청년들을 찾아 이들 세대가 가진 질문을 탐색한다. 이를 통해 지역의 청년 문화를 살펴보고, 구로의 청년들이 실행하고자 하는 개별 및 공동의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커뮤니티 아홉은 청년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구로백과 편찬위원회와 연계하여 다른 문화·세대·경험과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이 모여 '구로백과2019'를 이룬다. 아홉은 노루, 알디, 참새, 제비, 져니 등 별칭으로 서로를 부른다. 이들 중에는 구로에 사는 이도 있고, 이곳에서 일을 하거나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 청년들은 각기 다른 삶의 모습에 따라 구로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회의 장소였던 '남구로븟'에 모인 청년들은 각자 생각하는 '구로'의 모습을 담아온 사진 자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아홉 청년 중 제비, 노루, 늘보와 만나 이번 편찬위원회에 대해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회의가 열렸던 구로동의 공유 주방, '남구로 븟'
자기소개
제비 : 구로구에 살고 있지 않지만, 구로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 제비다.
노루 : 늘보와 함께 남구로의 공유 주방인 ‘남구로 븟’을 운영하는 노루다.
늘보 : 청년 늘보다. 나무늘보를 좋아한다. 딱 자기만큼의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게 좋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동안 나눠온 구로백과에 대한 생각들
구로백과는 그동안 지역문화 콘텐츠, 젊은이들의 동력 등 지역과 청년을 주제로 목소리를 내왔다. 이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은 어떤지 의견을 물었다.
제비 : 4회차 이전의 편찬위원회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지역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각자 관점에서 나눴다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구로백과에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다는 것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느낀다.
노루 : 사람들은 오래된 지역이 가진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신도시를 아무리 멋지고 편하게 만들어놔도 굳이 그곳까지 찾아가진 않는다. 을지로나 익선동은 무엇을 파는지도 모르는 더럽고 오래된 상점이 있는데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굳이 찾아가서 뭔가를 사 먹고 즐긴다. 많은 사람이 오래된 것에 낭만을 느끼지만, 특히 청년은 그 오래됨을 멋으로 느끼고 소비하는 것이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다른 면인 것 같다.
늘보 : 지역, 특히 구와 같은 행정단위는 청년에게 매력 있는 단위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나눈 대화에서도 나왔지만, 지역, 마을, 동네, 로컬 이런 단위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하는 사람도 드물고. 구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구로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 사람도 없었다. 경계를 나누고 구분하는 일에 크게 매력이 없다 보니 '구로의 것'과 '구로가 아닌 것'을 나누기도 힘들었다.
서로의 시선을 나누는 시간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청년들
발표의 시작을 끊은 '져니'의 사진은 흑백이었다. 그는 전철 사진을 띄우며 교통의 요지 같은 구로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구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다는, 구로역 붕어빵 사장님의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에서 그가 바라보는 따스한 구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알디’는 수많은 전깃줄, 낮게 비행하는 비행기의 모습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폐지 줍는 할머니의 안내문, 버스 종점 근처의 ‘희망의 계단’, 공사 현장 사진을 잇따라 보여줬다. 지금 찍지 않으면 보지 못하게 될 것을 찍었다는 알디의 설명에서 순간의 소중함, 구로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함을 엿볼 수 있었다.
늘보는 구로의 옛 정취를 담뿍 담은 사진을 나눴다. 특히, 강을 경계로 두고 옛날 아파트와 새 아파트가 공존하는 사진은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담긴 구로의 모습이었다. 또한,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교회, 형형색색의 타일 사진들은 청년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노루의 사진에는 구로의 다양한 색감과 자연적인 모습이 있었다. 문과 창문을 예쁘게 담고 싶었다는 그는 햇살이 비친 집, 오래된 멘션 앞의 정갈한 텃밭 등을 찍었다. 자연과 공간, 그리고 집이 주는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그의 사진 속에 녹아있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느낀 점을 자유롭게 주고 받는 모습이었다.
청년들은 사진을 함께 감상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구로의 모습을 보다 선명하게 확인했다. 미처 보지 못했던 구로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때로는 사진을 통해 각자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이번 활동은 청년들에게 구로의 새로운 부분을 알리는 자리였다. 구로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는 청년부터, 온수는 부천이 아니라 구로임을 이제야 알았다는 이도 있었다. 개발이 많이 진행되고 있는 구로의 주택 수가 제법 된다는 사실 역시 이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구로의 모습이었다.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청년들
제비 : 이번 3주 차 활동에 출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구로를 리서치하는 '구르르르'를 중점으로, 구르르르가 구로 곳곳을 이동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슬라이드를 모아보니 마치 하나의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여 재밌었다. 많은 지역 주민들이 구르르르를 궁금해하고 질문해주셔서 반가웠다.
노루 : 나는 구로의 모습이 담긴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다. 8명이 촬영을 했는데, 같은 지역을 전부 다른 느낌으로 찍은 것이 가장 재미있고 인상 깊었다. 구로에 사는 사람, 구로에서 공동체를 운영하는 사람, 구로와 전혀 상관없던 이방인의 시선이 각각 달랐다. 그런 다양한 시선을 이번 3주 차에 함께 공유했는데 분위기가 참 좋았다. 꼭 ‘구로는 00하다’라며 하나로 규정하지 않고, 이런 과정을 나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도시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만드는 것 같다.
늘보 : 이번 활동은 어떤 개개인의 시선을 발견하고 그걸 구체화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야기가 있는 장소를 좋아하고, 또 아주 작은 것이라도 무언가를 소중히 생각해본 적 있는 사람들과 공간을 사랑한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그런 사진을 찍고, 또 그에 맞는 글을 썼던 것 같다.
제비 : 구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다른 관점으로 구로를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구로에 대한 내 인식이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노루 : 구로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 자체가 없었으니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구로를 떠올리면 부정적인 분위기의 지역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번 구로백과를 함께 하면서 구로라는 도시의 생활은 사람들의 편견처럼 부정적이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오히려 재밌었다.
열심히 회의하는 청년들
즐겁게 사진을 감상한 후, 청년들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구로백과 페이지를 완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통된 의견은 너무 거창하게 작업하지 않고 본인만의 색을 듬뿍 담자는 것이었다. 정형화된 책에 갇히기 보다는 자유로운 형태를 시도하자며 생각을 모았다. 책의 제목으로 '비행기', '별', '구로구는 거꾸로 해도 구로구', '9개의 시선; 등 재치와 개성 넘치는 다양한 후보가 등장했다. 이후 책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나눴다. 누군가는 직접 그린 그림을 담고 싶다고 했고, 다른 이는 사실 위주보다는 공상과학소설 같은 느낌을 내고 싶다고 했다. 9인의 청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참신한 방식으로 개성 넘치는 페이지들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구로에 대한 새로운 궁금증
자신만의 페이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구로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더욱 선명해진 사람, 또 전혀 새로운 이미지가 형성된 사람도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구로에 대해 새롭게 궁금해진 것이 있는지 물었다.
제비 : 편찬위원회를 진행하며 타인의 관점에서 본 구로의 모습을 나눠보니, 구로라는 지역 자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루 : 구로에서 활동하는 '주부연극동호회'의 낭독을 들은 적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세 배우가 불렀던 '약혼녀'라는 제목의 재즈가 정말 멋있고 아름다웠다. 구로라는 도시에서 활동하는 다른 예술가, 그리고 그들의 작업이 궁금해졌다. 내가 보는 구로와 또 얼마나 다를까? 그런 걸 생각하는 것, 실제로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
늘보 : 구로에서 오랜 시간 지내던 분들이 구로의 변화를 어떻게 관찰하고 기록하는지, 혹은 기억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서 즐거운 순간을 나눈 청년들
이번 편찬위원회 시간에는 구로 주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 향유 조사 설문 결과' 또한 볼 수 있었다. 구로에서 문화예술을 어떻게 향유하는지 묻는 이 설문은 현재까지 230여 명의 답을 기록했으며, 참여자를 위한 참고자료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설문 결과를 통해, 젊은 세대가 구로를 상당히 현대적인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로'하면 회색 공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푸른 수목원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상반된 모습은 구로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아홉 청년들은 오늘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로백과에 넣을 새로운 꼭지를 하나씩 써본 후, 다시 모여 최종 편집하는 것으로 회의를 끝냈다. 열띤 회의 후에는 갓 요리한 음식을 함께 즐기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에게 서로의 존재는 함께 구로백과를 채워가는 동료이자, 여유로운 주말, 맛있는 한 끼를 같이할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구로백과 편찬위원회의 활동과 이동형 리서치 장치 '구르르르'에 대한 설명이 담긴 리플렛. 구로문화재단 사이트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흑백과 색채, 과거와 현재, 기계와 자연이 공존하는 경계의 공간 ‘구로’. 그 구로를 각자의 시선으로 다채롭게 담아내는 구로백과 청년들의 모습은 구로백과의 완성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평소에 그냥 걷던 길도 다시 바라보게 하고, 동네의 새로운 모습은 무엇일까 한번 더 고민하게 만들어준 아홉 명의 청년들. 그들이 한 장 한 장 채워나갈 페이지들에 평소 몰랐던 ‘구로’의 진정한 가치가 가득 담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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