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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SEOULive] 서울 속, 서울이 아닌 드라마틱한 사찰

    2021-01-19

    

    서울 속, 서울이 아닌 드라마틱한 사찰

    에디터 지은경 사진 세바스티안 슈티제(Sebastian Schutyser)

    서울에는 크고 작은 절들이 많다. 어떤 절은 도심 한가운데, 또 어떤 절은 도심으로부터 약간 외진 곳에 위치하지만 대부분의 절은 산자락이나 암벽 위처럼 극적인 장소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기술로 생각해도 그러한 터에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기술이 부족했던 과거에 어떻게 그런 건축이 가능했을까? 어쨌건 요즘 같은 상실감이 많은 시절, 고요한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여기 소개하는 절들, 서울 속에 있으나 서울로부터 벗어난 것 같은 장소를 찾아가 보자. 절의 첫 번째 문인 일주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도시의 소음과 잡념은 일순간 사라지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분위기만이 흐르는 듯하다. 형형색색 단청 건물과 온화한 표정의 불상들,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자아내는 풍경은 사찰이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그 자체로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휴식과 사색의 쉼터임을 보여준다. 

    참선이란 선(禪)에 들어간다는 불교 용어다. 선은 고대 인도어로 고요한 마음 상태를 뜻하는 Dhyana를 음역한 선나를 축약한 것이다. 불필요한 장신구는 빼고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배경으로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자. 불교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부처가 될 성품(불성)이 내재한다고 보는데, 평소 나를 혼란하게 하는 분노나 욕심을 내려놓고 조용히 명상을 이어간다면 내 안에 숨어있던 부처의 씨앗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진관사

    은평구에 위치한 진관사는 주변으로 계곡이 흐르고 북한산의 암봉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서울 같지 않은 풍경을 자랑하는 천년 고찰이다. 1010년대에 고려 임금 현종에 의해 세워졌는데, 당시 암살의 위협을 받던 현종을 신혈사의 주지인 승려 진관이 구해주고, 이후 왕위에 오른 현종이 신혈사를 크게 증축하면서 자신을 구해준 승려의 이름을 따 진관사라 이름 붙였다. 조선 세종 때에는 진관사에 독서당을 세워 집현전 학사들이 학업과 독서에 몰두하도록 하였는데, 집현전 학사 성삼문은 세종에게 사가독서(유급 독서 휴가)의 명을 받고 이곳을 찾았다가 아래와 같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위로는 반짝이는 별빛이 부딪히고 아래로는 넓은 평야의 풍성함을 굽어보네.

    아쉽게도 독서당은 6·25 전쟁 때 소실되어 터만 남았다. 대신 눈여겨볼 곳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칠성각이다. 칠성각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전각 중 하나로, 보수 공사 중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일제강점기에 실제로 사용됐던 태극기와 거기에 싸인 독립신문 등 독립운동 관련 유물들이 발견됐다. 당시 이곳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자금을 모으던 백초월 스님이 일제에 체포되기 직전 절 내 한적한 건물인 칠성각에 급히 숨겨놓은 것이다.

    진관사는 한반도 전통 저장∙발효음식을 계승하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산사음식체험관인 향적당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전통 방식으로 만들고 저장한 음식들이 장독대 가득 보관되어 있는데, 수륙재 등 특별한 행사 때 사찰음식을 공양한다. 특히 왕실의 제사에 쓰이는 두부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을 만큼 두부는 진관사의 대표 음식이다. 1464년 주지였던 석명 스님이 두부와 산나물을 섞어 포증(두부찜)을 만들어 나눈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두부를 만들어 나누는 전통이 이어오고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초입 산책로

    극락교 옆으로 난 나무 데크는 계곡물 소리와 풀 내음을 벗 삼아 호젓하게 산책하기에 좋다.

    연지원 절 내 전통 찻집 연지원에서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은 쌀쌀한 추위를 녹여줄 것이다.





    금선사

    태조 이성계의 곁에서 조선 건국을 돕던 무학대사는 도읍을 정하기 위해 살피던 중 삼각산의 정기가 서려 있는 장소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곳에 절을 하나 세웠으니 바로 금선사다. 금선사에 가려면 특이하게도 동굴을 지나야 하는데, (물론 돌아가는 다른 길도 있다) 나무의 정기가 모였다 해서 목정굴이라고 이름 붙은 이곳엔 신비한 설화가 전해진다.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어 근심이 크던 정조의 부탁으로, 목정굴에서 수행하던 농산 스님이 300일을 기도한 끝에 순조로 환생했다는 것. 이후 정조가 목정굴 위로 절을 크게 중창해 주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전소돼 아쉽게도 옛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다. 이러한 설화 때문인지 목정굴에는 아이를 얻으려는 마음을 담아 기도하러 오는 이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1996년 주지로 부임한 법안 스님은 지금까지 금선사 이곳저곳을 손봤는데, 방치돼 있던 목정굴을 정비하고 수월관음보살상을 봉안해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나무를 피해 담을 쌓거나 건물을 짓는 등 세심한 배려를 사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금선사는 산자락에 있어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으면 나무 냄새와 바람 소리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곳이다. 덕분에 템플 스테이 장소로 인기며, 광화문에서 차로 30분 거리라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 특히 108 계단 왼쪽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산길을 오르면 서울 도심은 물론이고 산 한가운데 자리 잡은 절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니 반드시 들러 보길 권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

    108 계단

    해탈문을 지나 한 칸씩 계단을 오를 때마다 한 가지 고민을 내려놓아 보자. 계단 오른쪽, 200년이 넘었다는 소나무도 놓치면 아쉽다.

    대적광전 금선사 주불을 모신 법당으로, <금선사 신중도(1887)>를 소장했다. 신중도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러 신을 담은 그림을 통칭하는 말인데, 재앙을 물리쳐준다고 해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했다. <금선사 신중도>는 서울 지역 사찰에 남아있는 신중도 중 보존 상태가 양호해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연주암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관악산은 곳곳에 솟은 암봉들과 깊은 골짜기가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나 도심과 가까워 많은 이들이 산행지로 찾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연주암은 해발 629m의 기암절벽 정상에 위치하는 연주대와 함께 관악산의 명소로 손꼽히는 만큼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연주대는 신라 문무왕 때인 677년 의상 스님이 지금의 연주암 자리 깎아지른 바위틈에 돌을 채워 평평하게 만들고 의상대라는 이름으로 절을 세운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는데, 태조가 조선을 세우고 조선 왕조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200일간 기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는 이름에 얽힌 두 가지 유래담이 있는데, 첫 번째로 고려 말의 충신이었던 강득룡, 서견 등은 고려 왕조가 멸망한 후 관악산 의상대에 은신하는데, 여기서 멀리 송도(개성의 옛 이름)를 바라보며 고려 왕조를 그리워하여 연주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선시대 태종의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로, 태종의 맏아들인 양녕대군과 둘째인 효령대군이 셋째인 충녕대군(세종)이 왕위를 물려받게 되자 관악사에 올라 수행하며 왕위 욕심을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관악사의 원래 위치에서는 멀리 왕궁이 보여 미련을 끊을 수 없었기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이후 사람들이 두 대군의 심정을 기리는 뜻에서 의상대를 연주대로, 관악사를 연주암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연주암에는 실제로 효령대군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효령대군의 영정과 이를 모시는 전각인 효령각이 있으며, 효령대군이 세웠다고 알려진 석탑도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연주대

    깎아지른 암벽 위에 자리한 모습이 보기 드문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의상 스님이 수행했다고 하여 의상대라고 불렸다가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법당 내부에 석가여래상과 약사여래상, 16나한상을 봉안하고 있다.

    연주암 삼층 석탑

    고려 시대의 탑 양식이 고스란히 담긴 귀중한 문화재로, 효령대군이 세운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꼭대기의 연꽃 모양 장식과 구슬 장식이 특징이며, 전체적으로 균형감과 안정감이 뛰어난 탑이라는 평이 자자하다.




    안양암

    가파른 골목길로 유명한 창신동 주택가 한구석에는 작은 사찰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1889년 성월 스님이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기도처(원당)로 처음 지었는데, 다른 절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거나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다수의 조선 후기 불화, 불상 등을 소장해 절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됐다.

    안양암은 암벽을 끼고 들어선지라 바위가 전각을 둘러싼 기이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절의 첫 번째 문, 일주문이 일반적으로 문짝 없이 양 기둥에 지붕만 올린 형태인 반면 안양암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점이 특이하다. 양 문 위에 그려진 합장하는 두 동자승을 지나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암벽에 등을 대고 딱 붙어있는 건물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이곳 관음전 안에선 안양암을 대표하는 마애관음보살좌상과 만날 수 있다. 바위 절벽을 깎아 만든 높이 3.5m의 불상으로 넓고 각진 어깨, 어깨에 닿을 듯 길고 두텁게 표현된 귀와 술이 달린 보관을 쓴 점이 특징이다. 절을 둘러보고 있는데 이곳을 관리하시는 스님이 오셔서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108배를 드렸다는 말씀을 들려주신다. 불교에서는 인간에게 108가지 번뇌가 있다고 본다. 108배는 이 번뇌를 참회하고 씻기 위한 수행법으로, 한 번 절을 할 때마다 한 가지 번뇌를 내려놓을 수 있으며 몸을 아래로 낮춤으로써 겸손을 익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저물어가는 위기의 조선을 바라보며 황후는 어떤 번뇌를 느끼고 있었을까?

    끝으로, 안양암에 왔다면 꼭 대웅전 뒤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볼 것. 주택들이 오목조목 붙어있는 창신동 풍경을 내려다보는 시간은 다른 절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곳만의 매력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소장 문화재 Cultural Heritage

    1924년 제작된 <대웅전 신중도>, 1933년부터 1936년까지 세 승려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든 석조 불상 1,500구가 모인 <천오백불상> 등 다수 불화와 문화재를 소장했으니 찬찬히 감상해보자.


    Local to Seoul

    서울문화재단의 Local to Seoul 프로젝트는 서울 각각의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와 정체성을 발굴하고, 새롭게 발견한 '로컬'을 바탕으로 '서울'의 정체성을 확장하려는 시도입니다. 동네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서울 X 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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